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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112화 (112/215)

112화

마탑을 통해서 연락을 받은 카일과 헤일로는 면접의 장소로 마탑 주변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헤일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깔끔하고 고급스런 로브를 입고 나갔다. 첫인상에서 궁핍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약속된 장소에 도착한 헤일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약속하신 마법사 분이시죠? 이리로 오십시오.”

“아아아…….”

파지직!

헤일로는 그녀를 보는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류가 흐르는 듯 했다.

헤일로 인생의 첫 번째 운명이었다.

헤일로를 맞이한 것은 화사한 금발에 바람만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하프 엘프 여성이었다.

그녀를 본 순간 헤일로는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로 돌아가 버렸다.

살면서 많은 미인을 봐왔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미인은 처음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넘어서 뭐랄까…….

‘아… 나는, 나는 이 순간을 위해서 살아왔구나.’

그는 운명을 느끼고 있었다.

“저, 저기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헤일로는 용기를 꺼내서 금발 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아리시아라고 해요.”

‘아리시아…….이름마저 아름답구나…….’

그냥 눈에 콩깍지가 쓰이면 모두 다 아름다워 보이기 마련이다.

헤일로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아…리시아 씨, 저는 헤일로 고르초프라고 합니다. 처… 첫눈에 반했습니다!”

“예?”

“부디 저와 결혼을 전제로 진지한 교제를 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빠꾸 없는 것도 정도가 있지, 만나고 1분도 안 돼서 바로 ‘결혼을 전재로 한 진지한 교제’라는 단어가 나왔다. 여자 입장에서는 기겁할 이유가 차고 넘치는 말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하필이면 ‘그’ 아리시아다.

“저기 아리시… 읏?‘

무릎을 꿇고 아리시아를 올려다 본 헤일로는 깜짝 놀랐다.

상냥하고 아름다운 여신이 자신을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감히… 감히 나를 탐하다니! 내 몸과 마음, 영혼, 모든 것이 온전히 주인님의 것인데 감히……!’

아리시아는 순간 시간 가속 능력을 발휘해서 이 남자의 안면에 10연타 콤비네이션을 집어넣을지 말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남자는 주인님과 약속을 잡은 손님이다. 반 죽여 놔서는 곤란하다.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어, 어째서…….”

“저는 오직 주인님만의 노예입니다. 제 몸과 마음 모든 것은 오직 주인님만의 것입니다.”

“노, 노예. 어째서 당신처럼 아름다운…….”

헤일로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

아리시아는 더 이상 대꾸도 하지 않고 냉담하게 시선을 돌렸다.

첫사랑, 그리고 첫 시련.

헤일로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아아… 신이시여. 어찌 이런…….”

좌절하는 그에게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갔다. 그 사람은…….

“이봐요, 괜찮아요?”

타는 듯한 붉은 머리를 뒤로 말끔하게 묶어서 정리한 발레리아였다. 그리고…….

콰콰쾅!

헤일로에게 있어서 두 번째 운명의 조우였다.

“다, 당신의 이름은?”

“…발레리아라고 하는데요?”

“발레리아 씨, 그 사람하고 말하지 마요. 이상한 사람이에요.”

아리시아가 충고를 했지만 발레리아는 믿지 않았다.

“아리시아, 손님에게 무슨 무례한 짓이야?”

“그게 아니라 그 사람이…….”

“그만, 예의를 갖춰야지.”

그리고 발레리아가 손을 뻗어서 엎드려 있는 헤일로를 일으켜 주려고 했다. 그런 그녀의 선의에 헤일로의 심장이 반응했다.

“사랑합니다. 저하고 결혼… 컥억!”

갑작스런 고백에 발레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수도로 뒷목을 쳐서 기절시켜 버렸다.

“과연, 이건 이상한 놈이군.”

“그렇죠? 이상하다니까요?”

하루에 두 명이나 운명의 여인을 만났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심지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광경이 또다시 펼쳐졌다.

“둘 다 뭐 하는 거예요. 주인님 손님을 기절시키면 어떻게 해?”

“그치만 기분 나빴는걸?”

“그리고 나는 기절까지는 안 시켰어요.”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따스한 치유의 빛을 느끼며 헤일로가 눈을 떴다.

‘여, 여기는 어디……. 헉?!’

눈을 뜬 그에게 보인 것은.

콰콰콰쾅!

그의 세 번째 운명이었다.

“사… 사랑합니다.”

“예, 예? …예?”

당황한 레이나에게 헤일로는 더 이상 망설일 것 없이 그녀의 가슴으로 달려들었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저하고 결혼…….”

“꺄아아악!”

훗날 레이나는 회고한다.

사람 뺨을 때려 본 적은 그게 태어나서 처음이었다고 말이다.

짜아아악!

그런 것 치고는 썩 괜찮은 싸대기였지만 말이다.

정신을 차린 헤일로는 기다리는 사이 발레리아의 부하들을 보고 네 번째 운명과 다섯 번째 운명, 여섯, 일곱, 여덟 번째까지… 다양한 운명을 조우했고, 좌절했다.

“거절합니다.”

“싫습니다.”

“저는 주인님만의 것입니다.”

남성 혐오증이 있는 발레리아의 부하들을 상대로 열렬한 사랑 고백 따위가 먹힐 리가 없었다. 애초에 다 떠나서 일단, 남의 노예하고 좋은 관계로 일이 진행될 리도 만무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여자들이 보기에 헤일로는 그냥 이상한 놈이었다.

‘마법사는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들 아니었어?’

‘진짜 마법사 맞아?’

‘나도 몰라. 그리고 좀 징그러.’

‘나도, 나도…….’

‘시선이 기분 나쁘지? 나만 오버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 아니지?’

실제로 헤일로는 반쯤 썩은 표정으로 여자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그녀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넘어서, 노후에 푸른 초원에 붉은 지붕의 아름다운 저택을 지어 놓고 거기서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행복한 여생을 보내는 미래까지 그리고 있었다.

‘내, 내 운명의 여인들이 모두 노예라니……. 거기다 이미 주인에게 몸도 마음도 모두 바친 상태라니, 크윽…….’

헤일로의 망상은 있을 수 없는 미래였다.

도대체 세상에 어떤 썩을 놈이 자신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서 자신의 운명의 여인들을 모두 독점하고 있단 말인가? 누구는 집안이 망해서 싫은 일도 억지로 하러 나와야 하는데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헤일로는 자신에게 이런 박탈감을 들게 한 인물이 누구인지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헤일로의 바람은 금방 이뤄졌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그녀들이 일제히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녀들의 인사를 받으며 등장하는 이.

“안녕하십니까? 제가 카일입니다. 헤일로 고르초프 마법사님 맞으시죠?”

“…….”

유감스럽게도 그는 원수이자, 자신의 고용하겠다는 인물이었다.

* * *

헤일로는 카일과 마주 앉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절대 이 인간 밑에서는 일하지 않으리라.’

카일은 헤일로의 시선에서 적의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기는 했지만 정작 왜 그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초면인데 왜 이러지?’

카일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카일은 당초의 목적에 충실하기로 했다.

“마탑을 통해서 대강의 조건은 말씀드렸지만, 저는 당신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가서 정착할 신천지에서 당신의 역량을 시험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미리 준비한 말을 하는 카일에게 헤일로가 말했다.

“보수를 다섯 배로 올려 준다면 생각해 보겠소.”

헤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보수를 다섯 배로 늘려 달라는 말은 사실상의 거절이나 다름없었다.

마탑의 중개를 통해서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이쪽에서 멋대로 싫다고 할 수는 없으니 파격적인 보수를 불러서 고용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카일은 헤일로가 상대하기 쉽지 않은 상대였다.

“좋습니다. 받아들이죠.”

“그렇다면 얘기는 여기서… 뭐?”

일어나려고 하던 헤일로는 엉거주춤하게 엉덩이를 의자에 다시 붙였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조건을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만. 뭔가 잘못 됐습니까?”

“제가 다섯 배를 요구한 건 아시죠?”

“물론입니다. 월급을 500골드군요. 말씀만 하신다면 오늘부터 바로 지급하죠.”

“…….”

월급이 500골드면 연 수입으로 치면 6,000골드다.

그 정도 수입이 있으면 지금 지고 있는 빚을 다 갚고 가문이 어느 정도 회복되도록 지원을 해줄 수도 있다.

‘진심인가? 아니, 직업이 무직이라고 들었는데 무슨 돈이 있어서 지불한다는 거지?’

헤일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는 겁니까?”

“인챈트 학파의 마법사에게 시킬 일은 하나밖에 없죠. 제가 원하는 아티팩트를 만들게 할 겁니다.”

“그게 다입니까?”

“예. 물론입니다.”

확실히 아티팩트를 만드는 건 인챈트 학파의 마법사의 특기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보수가 강한 것 외에는 수상한 점은 전혀 없었다. 그때 카일이 말했다.

“다만, 한 가지 약속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요?”

“나하고 일하는 동안 내 쪽의 기밀 정보를 외부에 유출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고용 계약서에 정식으로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건… 당연한 거잖아?’

카일이 조건을 걸기에 무슨 대단한 조건인가 싶었는데 그냥 당연한 말이었다.

국가나 귀족가에 고용되어서 일할 때도 그곳의 비밀을 유지해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카일로서는 부하들의 능력을 숨기기 위한 것이니 엄중하게 계약서에 명시까지 하려는 것이지만 말이다.

헤일로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었다.

결국 그는 벌떡 일어나서 카일에게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카일 씨.”

“예. 그렇게 하죠. 참고로 이제 곧 출발하려고 하는데 준비에는 얼마나 필요한가요?”

“사흘… 아니, 이틀이면 충분합니다.”

“좋습니다. 이틀 후에 정식으로 마탑에서 공증을 서고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죠.”

그렇게 카일은 최초로 마법사 전력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날 밤, 침실에서 레이나가 카일에게 말했다.

“주인님. 진짜 그런 사람이라도 괜찮겠어요?”

“그런 사람? 왜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보였어?”

“그건…….”

레이나가 보기에 헤일로는 이상한 점이라기보다는 이상한 행동밖에 본 적이 없었다.

보는 여자마다 전부다 사랑 고백을 하고 너무 당황해서 그녀는 난생 처음 사람의 따귀까지 때리고 말았었다.

“그냥 좀 믿음직하지 못해서요.”

착한 성격 탓에 악담을 못하는 레이나로서는 이게 최대한의 혹평이었다.

카일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마탑에서 정식으로 중계한 만큼 5서클 마법사인 것은 사실일 거야. 그라면 내가 원하는 물건을 만들 수 있겠지?”

“도대체 주인님은 뭘 만들려는 건가요?”

“뭐, 이것저것…….”

카일은 대강 얼버무렸지만 사실 헤일로가 자기 밑으로 들어오면 시킬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솔라니에서 마탑의 아티팩트 제작 수준이 생각보다 더 높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카일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일들의 상당수가 가능해질 것 같았다.

헤일로는 카일이 월 500골드를 준다고 했을 때 속으로 호구 취급을 했지만, 사실 카일은 헤일로를 통해서 그 백 배, 아니 천 배 넘는 이익을 뽑아 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자고로 기술자는 갈아야 제맛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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