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세비아 왕국의 수도는 노르트하임이라는 곳이다.
하지만 정작 수도인 노르트하임보다 더 발달하고 번성하여 제2의 수도라고 불리는 도시가 바로 솔라니다.
이 도시가 이렇게 번성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이 땅에서 인류 최초의 9서클 마법사라고 불리는 아인스 클라노드프가 마법사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마탑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마탑을 중심으로 발전을 거듭한 솔라니는 그야말로 마법이 가장 번성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 마법의 번성함은 도시에 들어가는 심사 때도 느낄 수 있었다.
병사는 카일에게 수박만 한 수정구를 가져와서 정중하게 말했다.
“이 수정구에 오른손을 얹어 주십시오.”
“이건 뭡니까?”
“개인의 손바닥에 있는 지문을 인식하고 기록하는 겁니다. 도시에 들어오려면 꼭 협조해야 하는 일이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카일은 협조를 하면서도 꽤 놀랐다.
설마 이 세계에 지문 인식을 이용한 검문검색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이 정도면 만약 도시 안에서 부랑자가 사고를 쳐도 사고 현장의 지문을 통해서 범인을 특정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문을 등록한 후에는 출신지와 신분, 방문 목적과 체류 기간 등을 꼼꼼하게 적게 했다. 다소 귀찮을 정도로 신경을 쓰는 경비병의 모습이 카일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이만큼 신경을 쓴다면 도시 내부의 치안도 괜찮은 편이겠군. 여기사들은 괜히 데리고 왔나?’
카일은 그렇게 생각하며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도시 내부의 광경을 훨씬 더 상상 이상을 발전한 풍경이었다.
건물의 층고는 높았고 도시의 대로 중앙에 깔린 철로를 이용해서 기차 비슷한 것이 사람들을 태우고 이동하고 있었다. 카일이 보기에 이 도시는 번화한 것을 넘어서 문명 자체가 다른 도시보다 더 발전한 느낌이었다.
“저기 마법사다. 마법사가 지나가고 있어.”
“저것 좀 봐. 말도 없이 마차가 움직여.”
“건물이 도대체 몇 층이야? 하나, 둘, 셋, 넷… 십층? 건물이 저렇게 높을 수도 있었나?”
말단 부하들은 발전한 솔라니의 모습을 보고 촌놈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짜식들이 쪽팔리게시리…….’
카일은 부하들을 조용히 시키려고 호크를 부르려고 했다.
“오, 오오… 오오오……”
호크 역시 마찬가지로 촌놈 티를 팍팍 내면서 사방에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호크 너 마저…….”
어지간히 신기했던 모양이다.
일행은 우선 숙소부터 잡았다.
제법 큰 호텔에 체크인을 했는데 카일과 아리시아, 레이나, 발레리아, 그리고 그녀가 데리고 온 전직 여기사 다섯 명까지 모두 아홉 명이 잘 수 있도록 방을 잡았다.
호크와 그 부하들 열 명은 어떻게 했느냐 하면…….
“자, 여기 돈을 주마. 술과 고기를 사서 밖에 있는 캠프에 가져다 줘라.”
“예?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애당초 애들은 이런 용도로 데리고 온 카일이었다.
모처럼 대도시까지 왔는데 도시 안에 들어오지는 못해도 편히 쉬면서 먹고 마실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호크와 그 부하들이 조금 실망한 것 같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대신 카일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술과 고기는 저녁 전까지만 가져다 주면 될 테니까 반나절 정도 도시 구경을 하는 건 괜찮다.”
“예. 감사합니다, 주인님.”
호크와 그 부하들은 몹시 기뻐하며 시장으로 달려갔다.
부하들을 보낸 후 카일은 바로 움직였다.
“자, 그럼 나도 나가 볼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카일은 마탑으로 가보고자 했다.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주인님.”
“저도 따라갈게요.”
“주인님. 저도 갈게요.”
발레리아를 시작으로 아리시아, 레이나가 함께 동행 하겠다고 했다.
“가시는 길을 수행하겠습니다. 주인님.”
게다가 발레리아가 데리고 온 전직 여기사 다섯 명도 호위를 위해서 따라오려고 했다.
카일은 그 모습에 머리를 긁적거리며 생각했다.
‘원래 호위를 목적으로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오면서 본 이 도시의 치안 상태를 봐서는 사실 혼자서 다녀도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래도 굳이 따라온다고 하니 안 데리고 갈 이유도 없고…….
‘뭐, 어쩔 수 없지. 일단 데리고 가자.’
그리고 카일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이 결심을 후회하게 된다.
* * *
“여, 저기 좀 봐.”
“어디 시골의 귀족인가?”
“졸부 같은데? 솔라니에 처음 왔나 봐.”
“크크큭… 미인들 데리고 왜 저러냐?”
“그러게 말이야. 촌놈 티가 팍팍 나네.”
“그런데 여자들은 진짜 예쁘다. 거의 여신이야.”
“진짜. 예쁘다. 저런 촌놈한테 아까울 정도야.”
마탑으로 가는 길에 카일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 되었다.
그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카일이 데리고 있는 여자들이 모두 눈이 갈 수밖에 없는 미인들이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그녀들이 그야말로 촌놈 티를 팍팍 내면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허리에 검을 차고 카일의 앞과 뒤에서 완벽한 호위를 펼치며 이동하는 그 모습은 기사의 정석인 동시에 치안이 좋은 솔라니 사람들에게 있어서 촌놈 인증의 행동이기도 했다.
솔라니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도시의 치안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마법 수정구로 인해서 도시 전역에 빈틈없는 감시망이 펼쳐져 있고 작은 범죄라도 저지르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바로 경비대에서 잡아가 버린다.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 왕국의 왕자가 솔라니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잡혀 들어가서 왕국에서 몸값을 내기 전에는 풀어 주지 않은 적도 있었다. 마탑이라는 강력한 힘이 질서를 잡아 주고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강력한 행정집행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솔라니에서 완전무장을 한 기사 전력을 대동하고 다니며 완벽하게 포위망을 구성하고 이동하는 카일의 모습은 시민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사방에서 키득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발레리아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제길, 안 되겠다.”
결국 카일로서는 드문 일이지만 일정을 수정했다
“주인님. 왜 그러세요?”
“마탑은 다음이야. 일단 옷 가게로 먼저 가자.”
“예? 옷 가게는 왜?”
“명령이야. 당장 가자.”
카일은 여자들을 데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옷가게로 달려갔다.
“어서 오세요. 어머, 모두 미인들이시네요.”
점원은 카일이 데리고 온 미녀들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카일은 그런 점원에게 말했다.
“그녀들에게 어울리는 평상복으로 추천 부탁합니다.”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군요. 알겠어요. 저한테 맡기세요.”
점원은 그렇게 말하더니 그녀들을 데리고 가게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자자, 이쪽으로 오세요. 일단 사이즈부터 잴게요.”
카일은 일단 앉아서 쉬면서 한숨 돌렸다.
여자들 쇼핑에 따라가서 참석할 정도로 카일은 어리석지 않았다.
두 시간 정도 후.
“주인님.,다녀왔습니다.”
“어때요, 괜찮은가요?”
“좀 어색한데?”
여자들은 평범한 옷을 입고 나타났다.
“호오오…….”
카일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발레리아를 비롯한 여기사들은 다리에 착 달라붙는 가죽 바지에 상의에는 밝은 색의 셔츠를 입고, 그 위에 간단하게 재킷을 걸치고 검은 간단하게 등에 찼다.
레이나는 하늘하늘한 롱스커트를 입었는데 허리의 잘록한 부분이 강조되어 있는 라인이었다. 덕분에 그녀의 흉부가 더 크게 부각되었다.
그리고 아리시아는 과감하게 미니스커트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숄을 걸쳤는데, 그녀의 날씬한 다리와 하늘하늘한 몸매가 강조되었다.
그녀들이 입고 있는 옷은 카일이 전생에 봤던 현대인의 디자인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아무래도 치안이 좋아지고 문명이 발달한 곳에서는 패션도 기능미와 간편성을 중요한 쪽으로 발전하도록 유도되는 모양이다.
그녀들은 낮선 차림에 어색해 하고 부끄러워했지만 카일은 그녀들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다.
어쨌든 예뻤다.
미친 듯이 예뻤다.
마탑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지금 당장 호텔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보기만 해도 눈에 보양이 되는 그 광경에 카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갈 때 몇 벌 더 사가자.”
그 말에 여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옷가게를 나와서 다시 마탑으로 향하는 길.
이번에도 카일과 일행은 주목을 받았다
다만 좀 전의 시골 촌놈을 비웃는 듯한 주목과는 전혀 다른 시선이었다.
“우, 우와아아아…….”
“여신이다…….”
“하나둘도 아니고 저게 무슨…….”
“어디 왕족의 첩들이라도 들어왔나?”
“미쳤다. 이건, 이건 미쳤어…….”
원래도 아름다운 그녀들이 옷까지 세련되게 입고 나니 주변 사람들은 차마 시선을 때지 못했다.
그럼에도 함부로 말을 걸지 않는 것은 그녀들 중에 다수가 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야. 어딜 봐.”
“아니, 어딜 보는 게 아니고. 그게…….”
길 가던 커플들 중에 몇몇은 아무래도 오늘 부로 헤어질 것 같았다.
카일은 부러움과 질투심이 뒤섞인 시선을 받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
뭔가 미묘한 우월감 같은 것이 들었다.
성공한 모험가나 사업가로서가 아니라, 남자로서 이겼다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 * *
마탑.
마법사들의 종주(宗主)라고 해도 좋은 이 세력은 초국가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마탑의 존재 덕분에 마법사는 사실상 신분 여하를 떠나서 귀족처럼 귀한 몸 취급을 받는다.
이런 마탑에서는 마법사를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일자리를 주선하는 것. 즉 취업 알선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마법사라고 해도 이슬만 먹고 사는 신비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마법사는 돈이 더 많이 들어가는 직종이다.
마법을 익히고 사용하는데 들어가는 시약과 마석의 양은 어마어마했으며, 거기다 새로운 마법에 대한 연구라도 하려고 하면 진짜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마법사들은 돈이 필요했고 6서클 이하의 마법사들은 마탑에 막대한 회비를 지불해야 했다.
그 회비를 지불하기 위해서 마법사들은 세상에 나가서 일을 해야 했고, 마법사들에게 믿을 만한 일자리를 알선하는 것도 마탑의 중요한 업무였다.
그렇게 마탑을 찾는 것이 마법사를 고용하는 방법 중에서는 가장 떳떳하고 일반적인 방법이 되었다.
카일은 마탑에 도착해서 바로 용건을 꺼냈다
“마법사를 고용하고 싶소.”
“여기 양식을 작성해 주십시오.”
사무적으로 응대하는 마탑의 마법사는 젊은 나이지만 로브를 입고 있었다. 아마도 말단 마법사 중에 한 명인 듯 했다.
카일이 양식을 받아 보니 거기에는 꽤 많은 정보를 기록해야 하는 양식이었다.
‘원하는 마법사의 서클과 전문학파는 그렇다고 쳐도 내 신분과 직업, 그리고 향후의 사업 계획도 적어야 하는 건가?’
꽤나 철저하게 정보를 요구하는 양식을 봐도 마탑의 꼼꼼한 일처리를 알 수 있었다.
카일은 펜을 잡고 차분하게 양식을 기입해갔다.
모든 정보를 다 기록한 후 마법사는 그걸 세심하게 받아서 살폈다.
“여기 직업란에 전직 모험가 클랜장, 자작(예정)이라고 적혀 있는 것은 뭡니까?”
“말 그대로요. 이전에 모험가 클랜을 이끌고 있었지만, 이번에 싱카라 연합 제국에 생기는 신생 국가의 자작위를 받기로 약속 받고 가는 길이오.”
“그렇군요. 그렇다면…….”
직원은 카일이 적어 놓은 직업란에 두 줄을 찍찍 긋더니 그 옆에 ‘무직’이라고 적었다.
‘저 새끼가…….’
살짝 열이 받은 카일이지만 직원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 먹고 들어간다고 하지 않은가?
마탑에는 2서클 마법사만 되도 어지간한 나라의 왕족에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원하시는 마법사는 인챈트 학파 4서클 이상 맞습니까?”
“맞소.”
“보수는… 흠, 이건 꽤 높군요. 월급 100골드에 협상 가능 맞습니까?”
“맞소.”
“실례지만 현재 직업이 무직인 이상 이런 거금을 지불 할 수 있다는 증거가 없으면 서류를 통과시켜 줄 수 없습니다.”
“증거라… 뭘 원합니까?”
“1년 치 월급을 선금으로 주신다면 증거금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거기에 상응하는 담보를 맡기신다면 가능합니다.”
“그 정도라면 가능하오.”
“뭐, 그러시다면…….”
카일이 가능하다고 순순히 말하자 그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에 통과 인장을 찍었다.
“일단 이걸 마탑의 공문에 올리겠습니다. 카일 님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마법사가 나온다면 지금 묶고 계신 호텔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소.”
그렇게 마탑에서 일은 마친 후 카일은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다 그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이런 것도 있군.”
마탑의 한쪽에 있는 아티팩트 판매 매장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혹시 쓸모 있는 게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번 보고 가기로 했다.
진열장에 있는 아티팩트 대부분은 카일도 이미 본 적 있는 것들이었다.
불을 피워주는 마도구와 물을 끌어 올려주는 마도구, 난방이나 조명의 역할을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것들의 사이즈와 디자인을 약간씩 다르게 해서 진열해 놓고 있었다. 그 밑에 자세히 보면 성능도 조금씩 다르다고 어필하고 있는 설명문이 있었지만 카일이 보기에는 거의 다 대동소이했다.
‘기본적으로 우려먹기군.’
누구 하나가 머리를 잘 써서 획기적인 히트 상품을 만들면 주변에서 거기에 몇 가지 생각을 더 붙여서 양산을 시작한다. 세계 어디를 가도 돈 버는 방식은 비슷한 면이 있었다.
‘하긴 그러니까 나도 투자 사업으로 대박 쳤던 거지만 말이야.’
그래도 몇 가지 특이한 상품도 보여서 카일은 천천히 상품을 구경했다. 개중에는 카일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상품도 있었다.
“어머, 주인님 이것 봐요. 신기하게 진동을 해요.”
부우우우웅.
레이나가 들고 있는 것은 사람의 근육을 풀어 주기 위한 안마 도구로 막대기 앞에 있는 끄트머리의 단단한 부분이 고속으로 진동을 하는 도구였다.
“…그래. 신기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