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사실상의 스카웃 제의나 다름없는 말을 들은 카일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렇군요.”
빅토르는 그런 카일에게 계속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돈 버는 재주가 탁월하다고 해서 관심이 갔는데 조사하면 할수록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더군. 대단해. 솔직히 내가 자네 나이 때는 지금 같은 위치에 있지 못했지.”
‘내 나이 때 뭐 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거듭 말하는 거야?’
카일이 보기에 빅토르는 이룬 업적에 비해서 자신의 과거에 후회와 한이 많은 사람으로 보였다.
“어쨌든 나는 자네가 욕심이 나. 어때? 내 사람이 되겠나?”
“저는 비쌉니다.”
“호오, 내가 자네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말하는 건 공짜니까요”
“훗, 그래. 하지만 내가 자네 약점을 잡고 협박을 한다면 자네는 어쩔 텐가?”
“복종하고 따를 수밖에 없죠.”
“…….”
“왜 그러십니까?”
“이해가 안 가는데, 어차피 내가 협박을 해도 따를 거면서 자신의 몸값이 비싸다고 말해서 뭘 얻겠나? 뭐가 달라지나?”
“저보다 빅토르 클랜장님의 사정이 달라지죠.”
“무슨 말이지?”
“협박으로 저를 거둬 봐야 수동적이고, 마지못해서 억지로 따르고 제 능력을 다 발휘하지 않는 저를 품에 넣어야 합니다. 심지어 저는 앙심을 품고 언제 어떻게 뒤통수를 때릴지 궁리나 하고 있겠죠.”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해도 되나?”
빅토르의 말에 카일은 무시하고 계속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저를 설득해서 합당한 가치를 지불하고 손에 넣는다면 저도 최선을 다해서 빅토르 클랜장님에게 도움이 되도록 행동할 겁니다. 한배를 탄 이상은 최선을 다하는 게 맞는 거죠.”
“…….”
“빅토르 클랜장님은 무엇이 탐이 나십니까? 전자? 아니면 후자?”
카일의 말에 빅토르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보이며 말했다.
“자네 몸값 협상부터 시작하지.”
“감사합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온 카일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시점에서 카일은 이미 이런 결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태풍이라면 차라리 태풍의 눈에 들어가 있는게 안전하다.’
빅토르가 카일에게 말했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이번에 많은 나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고 있네.”
“예. 축하드립니다.”
“나는 그 제의 중에 하나를 받아들여서 공작이나 대공의 작위를 받거나, 혹은 약간의 영토를 받아서 국가를 건국할 생각이네.”
“그렇군요.”
“내가 국왕이나 대공이 된다면 그 순간 자네에게 작위와 영지를 주지.”
“…….”
“어떤가? 이 정도면 자네 몸값에 합당한가?”
“…뜻하지 않게 4번으로 가는 거군.”
“응? 무슨 말이지?”
“아니요. 혼잣말입니다. 그리고 제 몸값으로는… 예. 충분히 합당합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바로 자네를 내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한 가지 일을 맡겨도 되겠나?”
“벌써요?”
“중요한 일이라서 말이지. 사실 이것에 관해서 자네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 불렀네.”
그리고 빅토르는 카일에게 한 뭉치의 서류를 주면서 말했다.
“이게 뭡니까?”
“대륙 각국이 나에게 제시한 제안일세.”
“…….”
“뭘 선택하면 좋겠나?”
처음부터 꽤 중요한 일거리를 떠맡아 버렸다.
던전 공략자라는 것은 그 위업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국가에서는 꼭 영입하고 싶은 인재이다.
우선 던존 공략자 개인의 무력만 놓고 봐도 훌륭한 인재이며, 그를 따르는 클랜의 모험가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인재들이다.거기다 던전을 공략하면서 얻어낸 보상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전의 던전 공략자는 공략의 대상으로 막대한 보물과 함께 9서클 마법 수식 다섯 개와 신화시대의 아티팩트 두 개를 손에 넣었다고 했다.
이나마도 드러난 보상일 뿐이고 실제로 공개되지 않은 것에는 훨씬 더한 것이 있을 거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만큼 던전 공략자가 가지고 있는 보물의 가치가 높은 것이다.
지금 빅토르가 얻어낸 던전 공략의 보상이 무엇인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겠지만 어마어마한 보물일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빅토르를 회유하기 위해서 대륙의 각국들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먼저 지금 빅토르가 있는 율리우스 왕국은 공국의 건설 허가와 대공의 직위, 그리고 셋째 공주와의 결혼을 미끼로 내밀었다.
바로 이웃 국가인 베르나도 왕국도 거기에 비슷한 조건을 걸었고, 그 외에 세비아 왕국에서는 공작의 작위와 여섯째 공주와의 결혼.
대륙 2강중에 하나인 싱카라 연합 제국에서는 공국을 넘어 국가 남단부에 독립 국가를 허용하는 것과 동시에 황제의 손녀와 결혼을 제시했다.
그 외에 사이펀 왕국은 후작의 작위 수여와 첫째 공주와의 결혼, 그리고 특이하게 다음 왕위 계승권자로 임명하겠다고 했다.
그 밑에 게오르그 왕국은 공작의 작위 수여와 북방군 총사령관에 임명, 그리고 여지없이 셋째 공주와의 결혼을 제시했다.
그 내용을 다 읽어 본 카일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공주가… 거의 사은품 행사처럼 따라왔군요.”
“내 말이 말이야. 이왕 이렇게 된 것 공주들을 다 만나 본 후 가장 예쁜 공주가 있는 쪽을 택할까 싶어.”
“차라리 그게 좋을지도 모르겠군요. 이렇게 속 보이는 제안들 사이에서 고르라니…….”
결국 이들이 원하는 것은 빅토르의 힘이다.
그 힘을 손에 넣기 위해서 영토와 작위를 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공주를 반드시 덤으로 딸려 보내는 것이 불측했다. 그냥 왕실과 혈통으로 엮어서 동맹을 강력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공주와의 혼인은 사실상 100년 후를 보고 기약하는 보험 같은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실제로 이전의 던전 공략자가 세운 공국 역시 시간이 지나고 나니 원래의 왕국으로 귀속되었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명분이 뭔지 아십니까?”
“잘 모르겠군.”
“‘어차피 공국과 왕국의 핏줄은 하나다. 그러니 왕실의 일원에게도 대공 직위에 대한 계승 서열이 주어진다.’라는 식으로 몇 대가 지난 후에 왕실에서 대공의 작위를 가로채 버린 거죠.”
“혈통을 이용해서 먼 훗날에 영토를 되찾겠다. 이건가?”
“예. 실제로 그 공략자가 세운 공국이 지금 이 세상에 없는 것이 가장 좋은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가장 좋은 제안은 어디라고 보나?”
“글쎄요. 지금으로서는 싱카라 연합 제국의 제안이 가장 좋군요. 과연 대륙 2강중에 하나랄까요? 독립된 왕국을 만든다고 하면 공국과 먼 미래에 왕위가 회수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제의를 했다고?”
“어차피 싱카라 연합 왕국은 연합체가 모여서 만들어진 국가입니다. 그 연합체 중에 빅토르 클랜장님이 하나 더 끼어든다고 해서 심각한 분열이 일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군. 흐으음…….”
그렇게 서류를 살피던 카일이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루마니스 제국에서는 제안이 오지 않았습니까?”
싱카라 연합 제국과 더불어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대륙 2강중에 하나 루마니스 제국. 그런 나라에서 던전 공략자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을 리가 없다.
카일의 말에 빅토르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루마니스 제국과 손을 잡을 일은 없네. 그냥 빼버렸지.”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뭐, 별로 숨길 일은 아니지. 원래 나의 이름은 빅토르 고르시파. 루마니스 제국의 귀족이었지.”
그리고 빅토르는 자신의 얘기를 시작했다.
빅토르는 원래 루마니스 제국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아무런 문제없이 성장했다.
하지만 그가 열 살이 되었을 때 그의 가문이 정치적인 모략에 당해서 반역의 죄를 뒤집어써 버렸다.
부모님의 죽음과 함께 아직 어린 소년이었던 빅토르 역시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충성스러운 가문의 기사들이 그를 지켜주었고, 그는 간신히 몸을 빼서 함께 국외로 도피했다.
그 후 빅토르는 자신을 따라주는 가문의 기사들과 함께 어떻게든 쓰러진 가문을 되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다.
모든 걸 잃어버린 빅토르에게는 충성스런 기사들이 남아 있었고 그들은 빅토르에게 검을 가르쳐 주었다.
여기서 다행인 것은 빅토르가 검에 관해서 천재적인 소질을 타고났다는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검을 수련하고 3년 후.
열 셋의 나이에 익스퍼트에 오르더니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렀다.
가르치는 기사들은 빅토르가 다시 가문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저 무력이 강하다고만 해서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수는 없었다. 용병으로서 전장에서 공을 세워도 제대로 된 공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타국에서 귀족의 작위를 약속 받았지만 이용만 당하고 쫓겨난 적도 있었다.
한참을 이런저런 쓴맛을 보다가 빅토르의 나이가 서른이 되었을 무렵 그는 모험가로 대성할 것을 결심하고 바이에른에 찾아왔다.
그리고 당시 막 두각을 드러내던 스톰 클랜에 가입해서 그 안에서 가신들과 함께 활약을 하며 스톰 클랜을 바이에른 최고의 클랜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지금 던전의 최심부를 꾸준하게 공략하면서 드디어 던전 공략자라는 위업을 세운 것이다. 이제 그가 마음만 먹으면 과거 이상으로 가문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다만, 그 중에서 루마니스 제국만큼은 절대 싫었다.
“내 부모님을 죽이고 가문을 멸문 시킨 루마니스 제국의 황가에게 머리를 숙일 수는 없다. 이건 절대야.”
빅토르의 얼굴에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강경함이 보였다.
“클랜장님의 뜻이 그렇다면 잘 알겠습니다.”
루마니스 제국에서 무슨 제안을 했는지는 좀 궁금했지만 어차피 빅토르에게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정해졌군요. 이렇게 되면 무조건 싱카라 연합 제국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의 조건들도 썩 괜찮지 않나? 사이펀 왕국은 나를 다음 왕위 계승자로 만들어 준다고 했는데?”
“무슨 생각으로 사이펀 왕국에서 그런 제안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사이펀 왕국은 너무 약소국이죠. 국가 산업이 해적질일 정도로 엉망인 나라를 받아서 무엇 하시겠습니까?”
“으음…….”
“그리고, 제가 클랜장님의 사정을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지금은 싱카라 연합 제국 말고는 권할 수가 없군요.”
“어째서 그런가?”
“빅토르 클랜장님은 루마니스 제국에 원한을 가지고 계시죠.”
“물론이지.”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빅토르였다.
“그렇다면 루마니스 제국에서도 그런 빅토르 클랜장님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지 않을까요?”
“아마도… 알고 있을 걸세.”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제안을 받고 들어간다고 해도 그 나라에 루마니스 제국의 압력이 들어온다면 과연 그들은 빅토르 클랜장님을 지켜 줄 수 있을 까요?”
“…….”
“아마 무리일 겁니다. 여기 율리우스 왕국만 해도 상당한 강대국이지만 루마니스 제국과는 국력의 차이가 상당합니다.”
“결국, 루마니스 제국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는 같은 급이 나라인 싱카라 연합 제국밖에 없다. 이 말인가?”
“예. 그리고 그것 말고도 싱카라 연합 제국의 제안에는 좋은 점이 있습니다.”
“어디가 좋은 점이라는 거지?”
“그들이 클랜장님에게 제안한 영토를 보시면 싱카라 연합의 남부입니다. 죽음의 사막을 포함해서 남쪽에 이는 사이펀 왕국과의 국경을 바다를 인접하고 있는 영토죠.”
“그게 어쨌다는 건가? 땅은 넓지만 죽음의 사막이 포함되어 있어서 오히려 안 좋아 보이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빅토르 클랜장님이 국가를 만든다고 했을 때, 그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될 것 같습니까?”
“어떤 나라? 그건…….”
말을 하던 빅토르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면 가문을 다시 부흥시키고 그 일환으로 나라를 건국할 생각에 흥분을 주체 못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만드는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될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