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101화 (101/215)

101화

실버 팽 클랜.

총인원수는 오백 명이 넘고 창립하고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형급 크랜이다.

이 바이에른에서는 나름 잔뼈가 굵은 클랜으로 선대 클랜장은 소드 마스터의 경지까지 이르렀던 강자였다고 한다.

그 시절의 실버 팽 클랜은 바이에른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모험가 클랜으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나 단체 같은 것은 전성기가 있다면 쇠락기도 찾아오는 법이다.

선대 클랜이 병으로 사망하고 그의 아들이 클랜을 이어받았지만 아들은 아버지만 한 실력도 카리스마도 없었다.

그 때문에 선대 실버 팽 클랜장의 실력과 인품에 이끌려서 클랜에 적을 두고 있던 강자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고 실버 팽은 자연스럽게 그 세력이 축소되었다.

결정적으로 수십 년 전에 스톰 클랜이 바이에른에 자리를 잡고 최단기간에 던전의 최하층까지 도달하는 기염을 토하자 실버 팽은 클랜원 중에 과반수가 스톰 클랜에 흡수당해 버렸다.

딱히 스톰 클랜이 실버 팽 클랜에게 공작을 펼쳤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대세가 변했다는 것을 깨달은 클랜원들이 자발적으로 배를 갈아탔을 뿐이었다.

다행히도 실버 팽 클랜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한때 바이에른 최고를 노렸던 모험가 클랜답게 남아서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클랜원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만 남아 있어도 중간 규모의 클랜은 유지할 수 있었다.

여기서 실버 팽의 클랜장은 선택해야 했다.

남아 있는 이들을 잘 추슬러서 클랜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에 주력을 한다면 그래도 클랜의 명맥은 유지할 수 있다. 어쩌면 나중에는 유능한 모험가를 발굴 육성해서 다시 한번 날아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버 팽의 클랜장은 어떻게든 자기 대에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었다. 자신의 아버지 세대의 실버 팽이 얼마나 화려하고 강력했는지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과거의 영광을 꼭 되찾고 싶었다.

하지만 딱, 잘라 말해서 그건 무리한 욕심이다.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세상의 재난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법이다.

자기 실력 이상의 결과를 바라면서 무리를 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실버 팽의 경우가 딱 그랬다.

무리한 13층 원정.

스톰 클랜을 따라잡고자 클랜의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 결정한 도박이었다.

실버 팽의 현재 전력을 생각하면 13층은 무리라고 클랜의 간부들도 말렸지만, 클랜장의 독단으로 밀어붙인 원정이었다. 그리고 그 원정에서 실버 팽은 주요 전력의 절반 이상을 잃어버렸다.

지독한 실패를 경험한 것이다.

이 실패로 실버 팽의 전력은 크게 떨어졌고 이대로 가면 클랜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워질 것 같았다. 남아 있던 클랜원들도 점점 떠나기 시작했고 클랜과 거래를 하던 상단들도 등을 돌렸다.

100년 넘게 내려온 전통 있는 클랜이 망할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실버 팽의 클랜장은 생각했다.

이대로는 클랜의 깃발을 내리는 수밖에 없다. 그 전에 어떻게든 수를 써야 했다.

그렇게 고심하고 있을 때 그의 생각이 미친 것이 바로 카일의 화이트 울프였다.

최연소 클랜장으로 유명세를 떨친 카일이었지만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명성보다 악평이 더 많았다.

클랜의 구성원이 모두 노예라는 점과 던전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던전 밖에서 상인들과의 거래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더 많다는 점, 스톰 클랜의 간부나 길드의 지부장과 인연이 있다는 점 등등.

세간에서 카일에 대한 평가는 훌륭한 모험가라기보다는 돈 버는 재주가 좋은 정치꾼에 가까웠다. 사실 어느 정도는 시기와 질투가 섞인 평판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화이트 울프 클랜은 돈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금력이 유입된다면 지금 당장 쓰러져 가는 실버 팽의 입장에서는 크게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카일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리를 만들고 제의를 했다.

‘앞으로 화이트 팽이 던전에서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할 테니까 거기에 따른 보호비를 지불하고 사업에 대한 수익금을 나누자.’

실버 팽의 클랜장이 생각하기에는 충분히 합당한 제의했다.

자기 대에 들어서 조금(?) 쇠퇴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실버 팽이라는 이름은 중견급 클랜으로 알아주는 명성이 있다.

돈밖에 없고 노예들로만 운영되는 하류 클랜의 뒤를 봐주고 거기에 대해서 합당한 대가를 받는다면 서로 간에 도움이 되는 거래가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제의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카일은 그 제의를 거절했다.

받아들일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배 팽의 클랜장은 분노했다.

감히 보잘것없는 장사꾼 주제에 자신의 합당한 요구를 거절한 카일에 그는 분노했고, 그와 동시에 이대로 가면 자신의 대에서 실버 팽이 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결국 그는 해서는 안 될 결심을 하게 된다.

‘좋은 말로 해서 안 되면, 힘으로 집어삼켜 버리는 수밖에…….’

지금의 바이에른은 이른바 스톰 클랜이라는 사자가 모험가들의 정점에서 절대적으로 군림하며 모든 세력을 평정한 상태다. 바이에른의 수많은 클랜들 중에 그 누구도 스톰 클랜에 도전할 생각은 못 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클랜 간 세력 싸움이 치열했고 강한 클랜이 약한 클랜을 집어삼키는 일도 비일비재했었다.

실버 팽의 클랜장은 그런 과거의 싸움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기에 화이트 울프를 집어삼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던전 안에서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서 몰아붙인다.

힘의 우위를 철저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모험가 길드에 손을 써서 자신들이 오히려 피해자임을 주장한다. 당연히 상대는 부정할 테니 길드가 자신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들어 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이거야말로 실버 팽이 바라는 결과이니 말이다.

모험가 길드가 어설프게 중립을 지키는 사이 자신은 던전 안에서 화이트 울프를 맹렬하게 공격할 수 있다.

길드가 중립을 지킨다면 결국 클랜 간의 무력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법이다.

화이트 울프의 모험가라고 해봐야 대부분이 일꾼 노예들을 들여서 훈련시키고 장비를 맞춰서 던전에 투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개개인의 수준이 높을 리는 없으니 던전 안에서 파티 단위로 전투가 벌어지면 자신들이 압승을 할 것이 뻔하다.

그러한 계산하에 그는 움직였다.

실제로 한 번 던전에서 화이트 울프와 전투가 벌어졌고 그들은 이겼다.

실버 팽의 클랜장은 역시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부하들에게 더 가열하게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

모험가 길드가 중립을 언제까지 유지할지 모르니 그 전에 최대한 가열하게 공격해서 적을 몰아붙이고 항복 선언을 받아 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순조롭게만 느껴졌던 계산이 흐트러지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렉스 님. 화이트 울프가 던전에 내려가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뭐? 뭘 그만둬?”

“던전에 아예 안 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클랜 본부와 던전의 입구를 감시했지만 그 누구도 던전에 내려갈 시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빌어먹을 겁쟁이 같으니라고.”

분통을 터트리는 40대 중반의 이 남자가 바로 실버 팽의 클랜장 아렉스다.

그는 지금 굉장히 당황했다.

길드에 공작을 하고 성공적으로 선제공격도 했다. 지금부터 쉬지 않고 밀어붙여야 하는데, 상대가 던전에 내려오지를 않는다.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모험가의 싸움은 보통 던전 안에서 벌어진다.

던전 안에서의 싸움은 밖에서 시비를 가리기 어렵기 때문에 외부에서 개입 소지가 적다.

사실 누가 잘못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고 해도 던전에서 모험가끼리의 전투라면 어느 정도 넘어가 주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기도 했다. 그러니 던전에서 화이트 울프를 몰아붙이기 위해서 남은 정예 병력을 모두 준비시켜 놓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던전에 내려오지 않으면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던전 밖에서?

무리다.

던전 안에서 벌어진 전투가 어느 정도 넘어가 주는 것은 모험가들에게 던전 밖에서 함부로 싸우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던전 밖에서 모험가끼리 싸우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가 정용된다.

예전에 카일이 폐기장을 전소시켰을 때 제법 큰 벌금을 내야 했던 것이 좋은 예다.

“빌어먹을 자식……. 겁쟁이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쫄보 새끼들 줄이야.”

아렉스는 이를 갈며서 카일을 욕했다. 그러자 간부 한 명이 다가와서 말했다.

“놈들이라고 언제까지고 던전에 안 들어갈 수는 없을 겁니다. 수익을 올려야 하지 않습니까?”

“멍청한 소리! 그 새끼들이 상인들한테 투자를 해서 버는 돈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모르나?”

사실 그랬다

카일은 모험가로서 밑천을 마련했지만 가장 큰 자금원은 바이에른의 상인들에게 한 투자 사업이었다.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돈벌레니 노예성애자니 하면서 멸시받고 있는 카일이지만 상인들 사이에서는 마르지 않는 지혜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현자로 대우받고 있었다.

당장 던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화이트 울프의 재정 상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반대로 실버 팽의 입장에서는 빨리 화이트 울프를 집어삼키고 재정을 충당하지 않으면 클랜의 존폐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이미 여기저기에서 지불하지 못한 대금을 독촉하는 상인들이 널렸다. 게다가 그들이 강제로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용병단을 고용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들리고 있었다.

‘시간을 결코 내 편이 아니야. 제길, 어떻게 하지?’

아렉스는 몹시 초조해했다.

그런 그에게 간부 한 명이 말했다.

“클랜장님. 일단은 감시를 굳히고 좀 더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쉽지만 지금은 그게 최선인 듯 했다.

“감시 인력을 더 늘려라. 우리 클랜의 사람 말고 뒷골목 양아치들을 고용해서 뒤가 잡히지 않도록 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실버팽은 조용히 화이트 울프의 움직임만을 기다렸다.

* * *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가는 무렵.

“제길, 이 새끼들 어디 방구석 폐인이냐?”

아렉스의 인내심은 한계에 봉착했다.

한 달이 다 되도록 화이트 울프의 클랜원들은 던전은 고사하고 외부 활동도 극도로 자제했다.

물자를 클랜 본주에 유입하는 것조차 상단을 통해서 시키기만 하고 자신들은 클랜 본부 밖으로 일절 나가지 않았다.

이래서는 전쟁을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다.

‘미친 척 하고 그냥 클랜 본부에 쳐들어가서 쓸어버릴까?’

오죽하면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거기다 그를 더 초조하게 하는 것은 상단의 독촉들이었다.

“클랜장님. 제라르 상단에서 저번에 구입한 장비의 대금을 치러 달라고 합니다.”

“다음 달에 몰아서 준다고 그래.”

“유리프 상단에서 더 이상 대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이달치 식료품을 공급할 수 없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줄 테니까 기다리라고 해.”

“클랜장님 베이션 상단에서도…….”

“젠장, 알았다고 해. 무조건 기다리던가 아니면 배 째라고 해. 없는 돈이 닦달하면 나오냐고?”

클랜에 납품하는 식량, 생필품, 그리고 던전에 들어가는 장비까지……. 그 모든 장비를 납품하는 상단들이 매일같이 빚 독촉을 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선대부터 연을 쌓아온 상단도 있었지만 의리와 정으로 호소하는 것도 이제 한계에 달했다.

대금을 받지 못하는 상인들은 이제 법적인 수단을 강구하거나 아니면 용병을 고용해서 무력으로 돈을 받아 내려고 하고 있었다.

‘빨리, 어떻게든 빨리 화이트 울프를 집어삼켜야 해.’

이제 아렉스에게는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클랜장님. 클랜장님!”

초조하게 고민하던 그에게 한 명의 부하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화이트 울프가 병력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뭐라고? 정말이냐?”

“예. 그것도 클랜장인 카일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도시 외곽으로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기회다! 신이 주신 기회야.”

아렉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하루하루 죽어가는 듯했던 아렉스에게 이 기회는 그야말로 신의 계시처럼 들렸다.

‘아렉스여, 적을 공격하고 살아남을 지어라.’

“오오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별로 종교적인 삶을 살지도 않은 아렉스였지만 이 순간은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에게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카일을 잡아서 클랜의 합병 조약을 이뤄내기만 하면 지금의 자금난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었다.

“정예 전력을 모두 집결시켜라. 한 방에 승부를 보겠다.”

“예. 클랜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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