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여기는 도대체 뭐지?”
“제길, 다시 농장으로 돌아가고 깊어.”
“빌어먹을……. 온 몸이 안 아픈 곳이 하나도 없어.”
2기생들은 오전 훈련을 받고 아픈 몸을 이끌고 식당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노예 신세라는 것이 아무리 고달프다고 하지만 이번에 그들이 팔린 곳의 노동(?)강도는 이제까지 거쳐 왔던 그 어떤 곳보다 가혹했다.
훈련을 마친 후 1기생들은 2기생들을 데리고 샤워 시설이 있는 욕실로 인도했다.
“식사 전에 씻어라. 더러운 몸으로 식당에 들어오면 쫄쫄 굶을 줄 알아라.”
1기생들의 호령에 2기생들은 억지로 몸을 씻었다.
“젠장, 더럽게 깨끗한 척 하네.”
“무슨 밥 먹기 전에 몸을 씻으래.”
“제길, 그러게 말이야.”
2기생들은 투덜투덜 거리면서 단체로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기를 맞은 그들은 감탄했다.
“오오, 신기하다.”
“우물에서 씻는 것보다 훨씬 편한데?”
“뭐, 이러면 씻는 건 좀 빨리 씻을 수 있겠네.”
생전 처음 접하는 샤워 시설에 감탄한 그들은 간단하게 먼지를 씻어 내고 욕실을 나왔다.
씻고 나온 그들을 기다리는 건 갈아입을 수 있는 새 옷이었다.
“전에 입었던 옷은 여기 바구니에 넣어 놔라.”
1기생들이 시키는 대로 2기생들은 움직이며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마침내 밥을 먹기 위해서 식당으로 향했다.
“밥이다. 밥!”
“배고파 죽겠네.”
2기생들은 빨리 뭐라도 입에 집어넣고 싶었다.
원래 노예들에게 식사시간이야 말로 최대의 낙이었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식당에 도착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악마 같은 1기생들이었다.
“전원 정지!”
‘또 뭐야?’
‘젠장, 밥 좀 먹자고.’
2기생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원래 먹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하면 그것만큼 치사한 것도 없는 법이다. 하지만 1기생들도 아무 이유 없이 막은 것은 아니다.
“식사를 위해서 식당의 이용 규칙을 알려주겠다. 우선 이걸 받아라.”
그리고 1기생들은 철로 된 판자 같은 것을 나눠 주었다.
“이게 뭐지?”
“글쎄, 잘 모르겠는데?”
2기생들은 이상한 철판을 받고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그들이 받은 식판은 중간에 홈이 움푹 파여 있었는데 큰 홈 두 개와 그 위에 작은 홈 세 개가 있었다.
식판의 정체를 모르는 2기생들에게 1기생 중에 한 명이 나와서 말했다.
“지금 너희가 받은 것은 식판이라고 해서 너희들이 사용할 식기다.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기는 하지만 함부로 다루면 벌을 주겠다.”
“식판?”
“그게 뭐야?”
어리둥절해하는 2기생들에게 1기생들이 나서서 말했다
“지금부터 배식을 시작하겠다. 식당 안에 들어와서 순서대로 줄을 서서 음식을 받아 가라.”
그리고 드디어 식당의 문이 열렸다.
“오… 오오오……!”
“와아아…….”
2기생들은 별천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식당의 안에는 요리가 가득 쌓여 있었고 메이드 여럿이 앞치마를 하고 그 앞에 있었다.
1기생부터 앞으로 가서 식사를 받았다.
정해진 장소를 스윽 지나가기만 하면 메이드들이 식판 위로 음식을 올려 주었다.
빵, 호박 수프, 구운 닭고기, 샐러드, 우유.
카일의 지시대로 만들어진 식단은 단백질을 중요시 하면서도 영향 밸런스가 완벽하게 잡혀 있었다.
“오, 오오오……. 이게…….”
“이런 식사는 처음이야.”
“빵이 완전히 부드러워!”
2기생들은 충실한 식사의 내용에 감탄했다.
무엇보다 그 식사를 예쁜 메이드들이 배급해 준다는 것은 어쩐지 마음을 들뜨게 했다. 물론 1기생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기에 감히 메이드에게 말 한마디 붙이는 이는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충실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2기생들은 행복했다.
식사를 마친 후 2기생은 수돗가로 가서 사용한 식판을 직접 씻었다.
“식판은 개인 사용품이니 깨끗하게 씻어라. 대충 씻다가 걸리면 단체로 기합을 주겠다.”
1기생은 씻은 식판을 일일이 검사했고 그렇게 살벌하지만 행복했던 식사 시간은 끝이 났다.
“오후 훈련은 두 시에 시작한다. 그때까지 휴식을 취해도 좋다.”
악마 같은 1기생들은 그렇게 말하더니 정말로 2기생들을 내버려 두고 자신들도 어디론가 가버렸다.
“뭐지? 쉬라고?”
“진심인가?”
“진짜 그냥 쉬어도 돼?”
2기생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전에는 훈련이랍시고 죽일 듯이 굴리더니 밥을 먹은 후에는 쉬라고 한다.
보통 노예라면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 일, 일. 오로지 일만 계속 해야 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훈련 이외의 시간은 알아서 쉬라고 하다니?
이해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휴식 또한 명을 내린 것이니 2기생들은 모두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잡고 쉬었다.
“그래.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어이구, 좋다.”
숙소에 돌아가서 누워서 쉬는 이들도 있었고 연병장 근처의 잔디밭에 누워서 팔자 좋게 잠을 자는 노예도 있었다. 힘든 훈련을 마치고 배부르게 식사도 마친 상태이다 보니 모두들 잠시 솔솔 오는 모양이다.
‘이런 매일이 이어진다면 나쁘지 않겠어.’
‘천국이다. 천국…….’
그런 2기생들의 생각은 안타깝다고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기상! 오후 훈련 시간이다!”
“이 새끼들 기상! 기상하라고!”
“1분 준다. 연병장에 집합! 늦으면 단체로 뒤진다!”
세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와장창 무너졌다.
오전 훈련보다 훨씬 빡센 오후 훈련이 시작되었고 그 훈련 속에서 훈련생들은 쓰러지고 토하기를 반복하면 자기 인생에 가장 힘든 순간을 맞이했다.
‘힘, 힘들어…….’
‘차라리 광산으로 다시 보내 줘.’
‘으, 으어어어어…….’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 * *
몇 주일 후.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라고 하던가?
처음에는 힘들어 했지만 2기생들은 서서히 이곳의 생활에 적응해 갔다.
하루 두 번의 빡센 훈련과 충실한 식사. 그리고 노예에게 주어졌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상태의 숙소와 옷가지 등등.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니 여기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오히려 좋았다.
훈련은 어마어마하게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 요령이 붙으면 적당히 꾀도 부릴 수 있었다.
1기생들은 2기생들이 어느 정도 요령을 피우는 것을 알면서도 못 본 척 하고 넘어갔다.
대신 무언가 끼리 쑥덕거리면서 애기를 하는 듯했지만, 대부분의 노예들이 그러듯 2기생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힘든 훈련은 적당히 해서 넘어가고 맛있는 식사와 편한 휴식 시간만 즐기고 싶어 할 뿐이었다.
“야, 들었어?”
“뭐가 말이야.”
“세탁소에 메이드들이 빨래하고 있데.”
“진짜? 누구누구 있는데?”
“그 갈색 머리에 가슴 큰 메이드하고 키 크고 늘씬한 금발 머리 메이드.”
“오오오~ 걔 진짜 예쁘던데?”
“가서 구경하자.”
몇몇 2기생들은 휴식 시간에 어여쁜 메이드들이 일하는 곳에 가서 지켜보거나 말을 걸며 수작을 부리기도 했다. 메이드들은 거기에 냉담하게 반응했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이들도 있었다.
사실 메이드들이 자신들의 음식을 만들어 주고 빨래를 해주고 하면서 힘든 일을 다 해주니 어느 정도 자기들이 윗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도 들었던 것이다.
“힘들어 보이는데 좀 도와줄까?”
“됐습니다. 그보다 일하는 중이니 다른 곳으로 가주시죠.”
“헤헤헤, 그러지 말고~”
말을 하는 2기생은 눈앞의 메이드의 하얗고 늘씬한 다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빨래가 워낙 많아서 모아서 밟아서 빨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메이드들이 치마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리고 맨발로 밟아야 했다.
음흉한 눈길이 자기 다리에 닿자 메이드는 입술을 꽉 깨물고 말했다.
“계속 끈질기게 나오면 1기생 교관님들에게 말하겠습니다.”
그러자 수작을 부리던 2기생은 움찔하더니 물러났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1기생들에게 거스르다가 걸리면 진짜 뒤지기 직전까지 맞는 수가 있었다.
보통 노예가 노예에게 심각한 폭행을 저지르면 주인이 제지하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그러지 않았다.
죽지만 않으면 레이나라는 수녀가 나타나서 치료를 해주고 다시 훈련에 임해야 했다.
“에이, 얼굴은 예쁜데 너무 쌀쌀맞군.”
“뭐라고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2기생은 적당히 얼버무리고 그냥 물러났다.
2기생들이 세탁실을 떠나고 메이드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진짜 짜증나 죽겠어.”
“어디서 저런 진상이…….”
“아주 미치겠어. 백 명분의 뒤치다꺼리만 해도 죽겠는데 별의별 것들이 시비야.”
사실 지금 시기에 가장 고생하고 있는 건 메이드들이었다.
원래는 저택의 가사 관리를 위해서 뽑은 메이드들인데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다른 노예들의 뒤치다꺼리도 모두 다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노동 강도가 굉장히 심해서 힘들어서 팔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그 못난 것들이 툭하면 일하는데 다가와서 수작까지 부리니 하루하루 혈압이 팍팍 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좀 참아. 앞으로 조금만 더 하면 된다고 하잖아?”
“후우우… 그래. 그랬지?”
“시간 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메이드들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대량의 빨래를 발로 밟았다.
퍽퍽퍽퍽퍽퍽―
빨래를 밟는 행동에는 감정이 꽤 많이 실려 있었다.
* * *
2기생들은 꿈에도 몰랐겠지만 그들이 훈련을 대강 하거나 빠진 행동을 하면 그 모든 과정은 카일에게 보고되고 있었다.
“메이드에게 끈질기게 개수작 부리는 놈들이 열 넷, 훈련 중에 꾀부리는 놈들은 열에 여덟은 된다, 이거지?”
“예. 주인님. 어떻게 할까요? 죽일까요?”
검은 바람은 꽤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상당히 살 만한가 보군.”
반면 카일은 화가 나지는 않았다. 왜냐면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이미 예상했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은 앉으면 눕고 싶어지고 누우면 자고 싶은 법이지. 그래도 이 정도면 슬슬 괜찮겠지?”
“어떻게 합니까? 죽일까요?”
“아니, 예정대로 진행한다. 2단계를 좀 더 빠르게 진행해.”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카일은 검은 바람을 보내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태만하게 시간을 보낸 사람은 항상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는 법이지.”
* * *
다음 날, 훈련을 위해서 모두가 연병장에 모였다.
그런 와중에 1기생들은 2기생들 중에 몇 명을 지목했다.
“너, 너, 그리고 너하고 너 앞으로 나와라.”
지목받은 2기생들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시키는 대로 나왔다.
‘뭐지? 무슨 일이야?’
‘젠장, 어째 싸한데…….’
1기생들이 지목해서 빼낸 인물들은 딱 스무 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훈련에 태만하고 휴식 시간에 메이드들에게 가서 성희롱을 하거나 했던 이들이었다.
부대장인 호크가 그들의 앞에 나와서 말했다.
“오늘부터 너희들은 훈련을 받지 않는다.”
“예?”
“어… 그게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부대장님!”
훈련을 안 받는다는 말에 그들은 덮어 놓고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하는 법이다.
“앞으로 너희들은 모험가 훈련생이 아니고 클랜의 잡무를 담당하는 일꾼으로 부려진다. 공식적인 신분은 훈련생보다 아래에 있으니 그들에게 함부로 말을 걸지 말도록 하라.”
“예? 그게 무슨…….”
“저기. 교관님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혹시 저희가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그들로서는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갑자기 신분이 한 단계 더 내려간 것이다.
노예라고 해도, 아니 오히려 노예이기에 내부의 서열에는 더 민감한 법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 같은 신분이었는데 갑자기 자신들이 바닥 중에서도 더 깊은 바닥이 되었다.
이걸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부대장님. 왜 그러십니까? 저희가 뭘 잘못했습니까?”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저희들이 훈련도 얼마나 열심히 했는…….”
변명하는 놈들을 보고 호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닥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