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무사 귀환.
그리고 대박.
10층 원정의 결과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이렇다.
오우거의 잔해를 가지고 던전 입구에 나왔을 때부터 카일은 주목받았다.
“이건… 오우거?”
“맞습니다.”
“설마, 이 멤버로 잡은 건가? 스무 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맞습니다. 10층까지 내려가서 잡았죠.”
카일이 태연하게 설명했지만 던전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길드 직원들은 카일을 괴물 보듯이 바라봤다.
“자네 파티에는 무슨 소드 마스터라도 있나?”
“그렇지는 않지만 제법 든든한 부하들이 있어서 잡을 수 있었습니다.”
카일은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외적으로 실력을 어느 정도 드러낼 수 있는 두 사람이었기에 저 둘을 앞세워서 설명한 것이다.
“아니, 저 둘이 아무리 강해도 오우거는……. 설마 저 둘이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이기라도 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아?”
“뭐, 자세한 상황은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희 쪽에는 레테 여신을 모시는 수녀도 있고, 꺼림칙한 짓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보증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건 알지. 그러니까 의심하는 건 아니야. 이건 그러니까…….”
“마석을 정산해 주시겠습니까? 길드 지부장님에게 따로 보고해야 할 일도 있어서 오늘은 좀 바쁘군요.”
카일의 말에 길드의 직원들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카일의 말하는 대로 마석을 정산했다.
“최하급 마석이 219개, 하급이 55개, 중급이 1,058개……. 어디 오크 부락이라도 털었나?”
“운이 좀 따랐을 뿐입니다.”
오크 샤먼과 웨어 울프의 전쟁으로 어부지리를 본 덕분에 중급과 상급의 마석을 더 많이 가져 올 수 있었다.
“으음… 그래. 뭐, 내 알바가 아니긴 하지. 그리고 상급 마석이 212개, 최상급도 19개나 있군.”
“다해서 얼마죠?”
“잠시만 기다려 보게. 어디 보자.”
그는 주판을 튀기면 빠르게 계산을 했다.
“다 해서 643골드 54실버네.”
다시 한번 신기록이었다.
이전에 10층을 공략했을 때 마석 수입이 467골드였는데 그걸 꽤 많이 넘어서 버린 것이다.
‘이래서 인생의 절반은 운빨이라는 걸까?’
오크 샤먼과 웨어 울프의 전쟁 덕분에 수입이 늘어난 행운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아, 그리고 깜빡 했는데 오우거를 잡고 등급 외 마석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것 비슷한 것도 나왔고요.”
카일은 오우거에게서 나온 등급 외 마석을 꺼내고 또 은근슬쩍 오크 샤먼에게서 나온 이상한 보석도 꺼냈다.
길드의 직원은 등급 외 마석은 한눈에 알아봤지만 오크 샤먼에게서 나온 보석은 알아보지 못했다.
“이건 뭔지 모르겠군. 어디서 나온 건가?”
“출처는 비밀입니다. 하지만 이건 마석이 아닌가요?”
“잠시 이리 줘 보게.”
길드 직원은 카일에게서 받은 보석을 어떤 장치에 집어넣고 기다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군. 그냥 보석 아닌가?”
“몬스터가 가지고 있었는데 말입니까?”
“그놈들이라고 반짝이는 걸 싫어할 이유는 없지.”
“뭐, 그건 그렇죠.”
‘그렇다고 가슴에 박아 넣을 이유는 더욱더 없겠지만 말이야.’
카일은 이 보석이 오크 샤먼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는 사실은 숨겼다.
길드 직원은 별 흥미가 없다는 듯이 보석을 건네주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보석 같군. 뭐, 정 의심된다면 마탑의 지부에 가져가 보기라도 하게. 거기 사람들은 혹시 뭔지 알지도 모르지.”
“조언 감사합니다.”
카일은 그 정체불명의 보석을 챙겼고, 길드 직원은 등급 외 마석을 가져와서 조금 전의 장치에 다시 넣었다.
마치 전자레인지를 연상하게 하는 그 상자에 마석을 넣고 두껑을 닿자, 등급 외 마석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던 그 장치가 선명하게 빛을 내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이게 뭡니까?”
“길드에서 사용하는 마석의 결정도 측정기지. 어디 보자… 이건… 결정도가 상당하군. 2,340 에네르 나왔네.”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죠?”
“230골드.”
그 정도면 충분히 흡족한 금액이었다.
등급 외 마석까지 모두 정산한 결과 마석을 정산한 수입은 총 873골드 54실버였다.
이제 남은 것은 부산물의 처분뿐이다..
“발레리아.”
“예. 주인님.”
“하이 오크와 웨어 울프에게서 나온 부산물을 행크의 대장간으로 가서 처분해라. 내가 없어도 잘 할 수 있겠지?”
“예. 물론입니다.”
발레리아는 상재가 있었고 행크의 대장간은 이미 카일과 오랜 거래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등쳐 먹지는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수녀인 레이나까지 대동시키면 완벽했다. 아무리 상인이 돈에 눈이 먼다고 해도 성직자를 상대할 때는 한 수 굽히고 들어가기 마련이니 말이다.
“오우거의 부산물은 내가 직접 처분하지.”
“어디로 갈까요? 주인님.”
오우거의 부산물을 처분할 수 있는 루트는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 연금술 길드와 마탑의 지부다.
그중에서 카일이 선택한 곳은…….
“연금술 길드로 가자.”
이미 연금술 길드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그쪽을 우선시하기로 한 것이다.
* * *
“어서 오시오. 오오오… 성공한 모양이군.”
“예. 준비한 게 잘 먹히더군요.”
카일이 연금술 길드에 들어가자 익숙한 연금술사가 나와서 카일을 반갑게 맞이했다.
사실 카일은 이 남자의 이름도 몰랐지만 그는 카일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특제 캡사이신 소스가 잘 먹히던가? 오우거의 반응은 어떻던가? 효과는 얼마나 가던가? 그 밖에 특이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나?‘
그는 카일의 의뢰를 받아서 핵불닭볶음 소스를 직접 개발한 인물이기도 했다.
핵불닭볶음 소스를 개발한 그때부터 그는 오매불망 카일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매운맛을 응축시킨 소스를 오우거에게 먹인다는 발상은 누구도 해본 적이 없었고 그 결과가 사뭇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다 설명드리겠습니다. 우선 앉죠.”
“그래. 앉아서 설명하게 차라도 한잔 가져오도록 하지.”
카일은 그와 마주 앉아서 오우거를 통한 실험 결과를 모두 알려줬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매운 맛에 격통을 느끼고 발광했다고?”
“예. 효과 자체는 꽤 있었습니다. 다만 그게 오우거의 전투력을 크게 약화시킨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저런 저런, 그건 좀 유감이군.”
“예. 하지만 도발의 효과로는 탁월한 듯했습니다. 무엇보다 전투력의 약화가 크지 않다고 해도 분명 영향을 끼치는 건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렇군. 다음에는 쓴맛이나 떫은맛 성분을 농축시켜서 시험해 볼까?”
“의외로 짠맛이 먹힐지도 모릅니다. 생물에 따라서는 염분이 독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호오오… 그거 좋군. 그럼 어떻게 맛의 농도를 고농축시키느냐가 관건인데…….”
“액상 상태로 한계가 있다면 겔(Gel) 상태로 만드는 건 어떨까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검은 바람은 속으로 생각했다.
‘불쌍한 오우거 같으니라고.’
역시 가장 사악한 건 인간인 모양이다.
한창 대화에 열중하던 연금술사가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부산물을 처분해야겠군.”
“예. 그렇습니다. 좋은 가격으로 쳐주십시오.”
“당연하지. 어디 보자.”
연금술사 길드에서는 오우거의 부산물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말했다.
“상태는 최상이군. 아주 잘 잡았어.”
“공을 좀 들였습니다.”
“가죽에 힘줄, 그리고 심장도 상태가 좋군. 다 해서…….”
잠시 생각하던 연금술사가 말했다.
“다 해서 550골드 어떤가?”
오우거 한 마리의 부산물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몹시 높았다. 카일이 미리 알아보기로는 한 마리당 나오는 부산물의 상태가 좋으면 500골드 정도 된다고 했다.
그러니 550골드라면 실제로 상대가 꽤 후하게 가치를 매겨준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 가격에 넘기죠.”
“잘됐군. 그런데 머리도 가지고 왔나?”
“예. 박제를 만들까 합니다.”
“좋군. 흐음, 그런데 박제를 만들 거면 혀는 필요 없지 않나?”
“혀 말입니까? 예. 필요는 없지만…….”
“오우거의 미각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어서 그런데 나에게 넘겨주지 않겠나? 20골드로 쳐주지.”
카일로서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알겠습니다. 넘겨 드리죠.”
“하하하. 고맙군. 오우거에게 매운맛을 이용한 공격이 통한다는 걸 알았으니 그쪽을 자세히 연구하면 오우거를 무력화시키거나 죽일 수 있는 독도 만들 수 있을지 몰라.”
아무래도 연구자로서의 호기심이 제대로 부채질된 듯했다.
‘실제로 성과가 나온다면 10층에서 오우거를 사냥하기 수월해질 테지.’
볼일을 다 마치고 나올 무렵 카일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서 말했다.
“이번에 던전을 돌면서 이런 걸 주웠는데 뭔지 아시겠습니까?”
카일에 꺼내서 보여준 것은 오크 샤먼의 심장에 박혀 있던 정체불명의 보석이었다. 연금술사는 그걸 받아서 이리저리 살피다가 말했다.
“아니, 잘 모르겠군. 어디서 얻었나?”
“그냥. 좀 특이한 빛이 나서 주운 돌입니다.”
카일의 말에 연금술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는 잘 모르겠네. 본적 없는 특수한 광석이니 만약 판다고 하면 광물 샘플로서 1골드에 구입해 줄 생각은 있네만?”
그 말에 카일은 피식 웃었다
“그냥 가지고 있겠습니다. 색깔이 마음에 드니 장식품으로 삼도록 하죠.”
“그럼 그러게.”
카일능 그렇게 말하며 연금술사 길드를 나왔다.
연금술사도 모른다면 다음에는 마탑에나 가서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뭐,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하도록 하지.’
오우거의 부산물을 처분하고 나왔을 때 발레리아가 카일을 찾아왔다.
“주인님. 말씀하신대로 행크의 대장간에서 부산물을 다 처분하고 왔습니다.”
“잘했다. 얼마나 나왔지?”
“전부 다 해서 803골드를 받았습니다.”
“좋군. 잘했다.”
이번 원정에서 잡은 사냥감이 더 많아서일까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금이 나왔다.
‘어디 보자. 이렇게 되면 총 이익금이 얼마지?’
마석의 수입이 모두 합해서 873골드 54실버.
웨어 울프와 하이 오크에게서 나온 부산물의 수입이 803골드.
오우거를 처분하고 받은 부산물의 가격이 570골드.
모든 수입을 다 합치면 2,246골드 54실버다.
“이전 수입의 두 배를 가뿐하게 넘긴 건가?”
최근에 10층에 내려갔다 왔을 때 드디어 수입이 1,000골드를 넘겼다고 좋아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두 배를 사뿐하게 넘겨버린 것이다.
카일은 발레리아에게 말했다
“나는 잠시 들렸다 갈 곳이 있으니 너희들은 부하들을 데리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라. 아! 가는 길에 술과 고기는 무제한으로 사 놓고.”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
카일은 검은 바람에게 말해서 오우거의 머리를 들게 하고 따라오라고 했다.
“주인님.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모험가 길드. 지부장님을 만나야겠다.”
* * *
지부장을 만난 카일은 말보다 먼저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쿵!
“카일 자네…….”
“잡았습니다.”
카일이 지부장의 앞에 올려다 놓은 것은 오우거의 머리였다.
오우거의 머리를 잡아왔다는 것은 카일이 10층에서 활동해서 공적을 세웠다는 더할 나위 없는 증거였다.
카일은 예전에 지부장에게 말했다.
자신이 10층에 내려가서 활동할 수 있을 만큼의 전력을 갖춘다면…….
“약속대로 클랜 창설을 허가해 주십시오.”
클랜 창설을 허가해 준다고 말이다.
“…….”
지부장은 자신의 앞에 있는 오우거의 머리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카일, 자네 나이가 몇이지?”
“올해로 열아홉입니다.”
“열아홉……. 그 나이에 클랜장이라니.”
지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수많은 모험가들이 모여드는 이 바이에른에서도 십대의 클랜장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거부할 수도 없었다.
카일이 그동안 활동한 경력은 짧았지만 그 짧은 경력 동안 보통의 모험가들이 수십 년에 걸쳐도 할 수 없는 공적을 세웠다.
탐색견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고, 수많은 투자와 사업 아이템의 도입으로 바이에른의 상권 발달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거기다 이번에는 10층에서 오우거를 잡음으로 인해서 클랜을 만들기에 충분한 전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이만한 조건을 갖췄는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거부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미 약속을 했으니까.’
지부장은 쓰게 웃었다.
사실 카일에게 그 약속을 하면서도 카일이 10층에 내려가는 것은 10년은 지난 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이런 성과를 올릴 줄이야. 이제는 지부장이 약속을 지켜야 할 차례였다.
결국 지부장은 두 손 들었다.
“클랜 창설을 허락하지.”
“감사합니다.”
마침내 카일은 클랜을 창설할 수 있는 권리를 손에 넣었다.
바이에른에 모험가 길드가 생긴 이후 최연소 클랜장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