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90화 (90/215)

90화

시간 감속.

아리시아가 최근 눈을 뜬 능력이며 이 능력으로 그녀가 목표한 물체의 시간을 최대 절반까지 느리게 가게 할 수 있었다.

“크으으…어어…어어……!”

오우거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변에 당황했지만 괴성조차 느리게 나왔다.

이것이야말로 카일이 숨겨 둔 비장의 한 수.

아리시아의 시간 감속 능력이었다.

원래 초능력은 자신의 내부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외부의 사물에 작용시키는 게 훨씬 더 힘들다.

간단히 예를 들면 발레리아가 자신을 무겁게 하거나 가볍게 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그 대상을 외부로 정하면 쉽지 않았다.

부단한 노력과 타고난 센스가 필요했다.

전생의 세계 정부에서는 초능력을 외부의 사물이나 생명체에 작용시키는 능력을 조작계라고 했다.

카일은 애당초 발레리아나 아리시아의 능력이 거기까지 개화할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어려운 일을 아리시아가 해낸 것이다.

카일이 매일같이 싸이코 키네시스 컨트롤을 연습하는 걸 보더니 자신의 능력도 비슷하게 활용하기 위해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리시아는 외부의 대상에게 자신이 초능력을 적용시키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카일의 파티에 조작계 초능력자가 탄생한 것이다.

그런 그녀의 능력 덕분에 오우거의 움직임이 느려졌고 카일은 그 때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다.’

카일은 손끝을 떠난 단검 두 자루가 빠르게 날아갔다.

두 자루의 단검은 그대로 날아가서 뱀처럼 오우거의 주변을 선회했고 거기에 딸린 와이어는 오우거의 몸을 칭칭 휘감았다.

와이어가 오우거의 몸을 어느 정도 휘감고 구속했을 무렵.

“크으으읏…….”

아리시아의 능력도 한계치에 도달했다.

“하아, 하아아…….”

아리시아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눈의 흰자위는 붉게 충혈됐고,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초능력을 한계까지 사용했다는 증거였다.

“아리시아. 이제 됐어. 뒤로 물러나.”

“괜…찮아요. 주인님. 제가 지켜…….”

아리시아는 그 와중에도 카일을 두고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떨리는 손으로 활을 잡으려고 하며 카일의 곁에서 싸우려고 했다.

‘빨리 처리해야겠군.’

그 모습에 카일은 와이어를 이용한 오우거의 구속을 더 단단하고 복잡하게 했다.

피이잉!

오우거의 전신을 휘감은 특수 와이어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오우거의 전신을 구속했다.

“크워어어어어어어!”

오우거는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거칠게 몸부림치며 날뛰었지만 그럴수록 와이어는 더 복잡하게 역이고 꼬이며 오우거를 구속했다.

그 모습을 보며 카일은 미소 지었다.

“됐다. 충분히 통하는군.”

연금술사 길드에서 만들어낸 와이어는 오우거의 괴력으로도 쉽게 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한 가닥 두 가닥 정도라면 끊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신을 칭칭 감고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특수 와이어는 저 가공할 만한 괴수조차도 구속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카일은 여분의 와이어를 꺼내서 다시 한번 오우거에게 날렸고 다시 한번 놈의 전신을 꽁꽁 묶었다.

쿵!

팔과 다리를 서로 엉키게 묶어서 마침내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된 놈은 기어코 지면에 쓰러졌다.

“검은 바람. 끝내버려.”

“예. 주인님.”

그리고 쓰러진 오우거에게 검은 바람의 일격이 날아갔다.

“하아아아압!”

콰지직

검은 바람의 대도는 쓰러진 오우거의 목을 3분의 1정도 파고들었다.

이건 치명타였다.

“크워어어어어어!”

하나, 그 일격으로도 놈의 목은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고 놈은 으르렁거리며 검은 바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경악할 만큼 질기군.”

검은 바람은 자신이 가한 혼신의 일격에도 버티는 오우거의 질긴 가죽과 단단한 근육에 감탄했다.

“그대로 잡고 있어!”

검은 바람에게 외친 발레리아가 달려왔다.

그녀는 어느새 회복했는지 빠른 몸놀림으로 달려와서 쓰러져 있는 오우거의 몸을 박차고 힘껏 위로 점프했다.

중력을 0.2배로 가감시킨 그녀는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떨어질 때는…….

“일곱 배!”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치로 중력을 가중시키며 떨어졌다.

원래 전투 시에 원활하게 스위치를 바꾸면서 조종할 수 있는 건 0.2에서 다섯 배 정도까지였다. 하지만 혼신의 일격으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라면 최대 일곱 배까지 중력을 무겁게 할 수도 있었다.

“하아아압!”

콰드드드득!

오러가 서려 있는 그녀의 브로드 소드가 오우거의 목을 파고들었다.

뼈가 으깨지고 근육의 섬유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고 그녀의 브로드 소드는 그대로 오우거의 질긴 목을 완벽하게 절단했다.

쿠우웅.

거대한 오우거의 목이 지면에 떨어졌다.

그리고 검은 목이 떨어진 머리도 지면에 털썩 쓰러졌고, 그 순간 부하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해냈다!”

“우오오오오오!”

그것은 실로 짜릿한 성공의 순간이었다.

* * *

오우거 사냥 성공.

그 후에는 당연히 오우거를 해체해야 했다.

오우거는 전신에는 돈 될 만한 물건이 가득했다.

대표적으로 오우거의 가죽을 갑옷으로 만들면 무게는 가볍지만 강철 갑옷 이상의 방어력과 마법에 대한 저항력도 올려준다. 그리고 오우거의 힘줄은 그 강인한 탄성과 강도로 인해서 공성병기의 시위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 밖에도 오우거의 안구와 심장 등등 여러 가지 부위 전부가 마법사나 연금술사 등에게 열렬히 환영받는 연구재료다.

카일의 파티는 알뜰하게 오우거의 전신을 해체해서 최대한 챙겼다.

가죽을 벗길 때는 검은 바람이나 발레리아가 검에 오러를 사용해 가면 직접 벗겨야 할 정도로 오우거의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은 꽤 힘든 일이었다.

부하들이 그렇게 오우거를 처리하는 과정 동안 카일은 아리시아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어지럽다거나, 속이 뒤집어질 것 같다거나, 갑자기 졸린다거나 하지는 않아?”

“예, 주인님. 이제 괜찮아요. 레이나 씨가 모두 치료해 줬는걸요.”

“그래도 뇌의 대미지는 무시할 수 없어. 혹시라도 이상한 것이 있다면 말해. 명령이야.”

“괜…찮지만 조금 머리가 띵하기는 해요.”

“역시 뇌에 대미지가 있었군.”

카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우거의 몸에 와이어를 구속하기 위해서 아리시아는 초능력을 한계까지… 아니, 한계 너머까지 사용했다.

눈에 실핏줄이 터져서 피눈물이 새어나올 정도로 힘을 쓴 그녀를 보고 카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오래 잡고 있을 필요는 없었어. 그냥 2~3초 정도면 충분해.”

“죄송해요. 주인님. 혹시나 몰라서…….”

“그 혹시 하는 사태에 대비해서는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가 있어. 누가 너한테 이런 무리를 하라고 했어?”

카일이 엄하게 나무라자 아리시아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저는, 주인님에게 도움이 되고자… 그래서…….”

그녀의 손등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자 카일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이런, 너무 심했나?’

아리시아가 무리를 해서 뇌에 대미지를 입은 것이 속상했다. 이미 그녀는 카일에게 그냥 노예가 아니라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꾸중을 했는데 그게 정도가 지나쳤던 모양이다.

“크흠, 울지 마라.”

“주인님. 죄송해요. 이제 다음에는 안 그럴게요.”

“그래. 알면 됐어.”

카일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상냥하게 위로했다. 그러자 아리시아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카일에게 살며시 안겼다.

“야. 저기 저…….”

“보지 마. 보면 속 쓰리다.”

“그래도 그… 아니, 보지 말자…….”

카일과 아리시아가 하는 행동을 보고 부하들은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자신들의 손에 안 닿는 열매라는 건 알고 있다. 아니, 그보다 아리시아를 함부로 넘봤다가는 죽는 것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저렇게 던전 안에서 애틋한 모습을 연출하니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카일은 아리시아를 달래서 울음을 그치게 한 후에 말했다.

“그래도 네 덕분에 오우거를 잡았다. 뭔가 상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라. 어지간한 건 다 들어 주마.”

카일은 뭐든지 다 들어 주마 같은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지간’이라는 단어에 대한 포용 범위는 상당히 넓었기 때문에 아리시아가 원하는 건 진짜 거의 다 들어줄 의향이 있었다. 돈으로 따지면 1,000골드 수준의 지출가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카일의 성향을 알고 있는 아리시아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정말요?”

“한입으로 두 말은 안 해.”

“그, 그럼… 그렇다면…….”

아리시아는 카일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가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집에 돌아가면 저를 가장 먼저 귀여워해 주세요.”

“…그게 소원이야?”

“예. 아… 그리고 가능하면, 하루 정도 제가 주인님을 독점하고 싶어요. 저하고 하루 종일 침대에서 그냥 주인님과 단 둘이서 보내고 싶어요.”

“…진짜 그거면 돼? 다른 건 필요 없어. 돈이라던가? 아니면 보석이나 옷 같은 선물도 괜찮은데?”

“아니요. 괜찮아요. 제가 원하는 건 주인님과 하루를 보내는 거예요.”

그 모습에 카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건 오히려 내가 바라는 바지. 알았다. 돌아가면 하루, 아니 일주일 정도는 너하고만 있을게.”

“정말요? 일주일이나?”

“그래. 괜찮지?”

“예. 물론이죠.”

카일은 아리시아의 환한 미소를 보고 피식 웃으며 일어났다. 오우거의 부산물을 갈무리하는 현장을 감독하고 심장에서 나오는 마석도 체크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뒤에 남은 아리시아는……

“주인님을 독점……. 일주일이나 독점……. 하아아… 주인님과 단 둘이… 하아아, 하아아…….”

아리시아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마치 상상만 해도 흥분된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그녀의 표정에는 기쁨을 넘어서 극한의 유열에 도취된 듯한 광신도의 모습마저 보였다.

‘일주일이나 있으면 뭘 하지? 아침부터 밤까지 침대에서 벗어나지 말자고 해볼까? 그저 계속… 세상에 주인님과 나 단 둘밖에 없는 것처럼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카일이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오우거의 해체 작업은 그것만 해도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가죽이며 근육, 심지어 내장까지 질긴 놈이고 덩치가 덩치도 크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허투루 할 수도 없는 것이 전신이 돈이라고 할 정도로 오우거의 부산물은 비싼 물건이기 때문이다.

가죽을 다 벗기고 시장을 가른 후 검은 바람이 말했다.

“주인님. 마석이 나왔습니다.”

“그래. 상태는?”

“그게… 최상급을 넘을 듯합니다.”

“오? 그래? 그럼 등급 외 마석인가?”

“예. 그렇게 보입니다.”

그리고 검은 바람은 직접 마석을 도려내서 카일에게 가져왔다.

탁구공만 한 크기의 마석을 보고 카일은 감탄했다

“크군. 광채도 더 선명해.”

카일은 마석의 무게를 손으로 가늠해 봤다. 마치 금 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묵직했다. 실제 가치는 같은 무게의 금을 뛰어 넘을 수도 있었다.

“이 정도면 얼마나 할까?”

“정확한 가치는 감정을 해봐야 알겠지만 등급 외 마석은 기본적으로 100골드는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최상급이 10골드였지? 등급 하나를 넘으면 그렇게까지 높아지는 건가?”

“결정도에 따라서는 마석 하나에 10,000골드가 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10.000골드? 뭘 잡으면 그런 게 나오는 거야?”

“히드라를 잡았다고 하더군요.”

히드라는 드래곤에 맞먹는 거대한 체구에 잘려도 금방 재생하는 아홉 개의 머리에서 쉬지 않고 독을 뿜어 내는 놈이다.

세상 밖에 등장했을 경우 소국 하나를 멸망시켰다는 기록도 있는 천재지변급 몬스터다.

“그건 아직 먼 세상의 얘기군.”

“그렇죠. 하지만 이것도 제법 귀중한 보물입니다.”

“그래. 그렇지. 마석이 나왔으면 이제 다 정리했나?”

“예. 그리고 혹시 몰라서 머리를 통째로 챙겼습니다. 가지고 가시겠습니까?”

“머리를? 그걸 어디다 쓰게?”

“박제로 만들어서 머리를 트로피로 장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만들고 보관을 해도 좋고 팔아도 제법 비싸게 취급받는 물건입니다.”

“그럼 그건 보관하도록 하자. 첫 기념물인데 트로피로 삼으면 좋겠어.”

“예. 그럼 이것도 보관하겠습니다.”

그렇게 오우거의 전리품까지 모두 챙긴 후.

“좋아. 지상으로 귀환한다.”

“예. 주인님.”

카일은 부하들과 함께 당당하게 지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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