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오우거에게는 독이 통하지 않는다.
이건 상식이다.
만약 독이 통한다면 먹잇감에 진한 걸로 타서 편하게 사냥할 수 있었겠지만 연금술사 길드에서도 그런 독은 없다고 했다.
사실 있었다면 누가 써도 진작에 썼을 것이다.
그래서 카일은 다른 생각을 했다.
놈에게 독이 통하지 않아도 미각은 존재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 괴롭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
매운 맛이라는 건 사실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카일은 연금술 길드에 의뢰해서 최대한 맵고 또 매운 소스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 의뢰를 받은 연금술 길드 또한 오우거에게 이게 통할지 말지가 궁금하다고 말하면서 연구 의욕을 불태웠다.
그렇게 오우거를 사냥하겠다는 일념을 불태우는 카일과 지적 호기심을 불태우는 연금술 길드가 합심하여, 그야말로 사람이 입술을 대기만 해도 기절할 정도로 매운 소스를 만들어졌다.
완성된 소스를 카일은 핵불닭볶음 소스라고 불렀다.
사실 이게 먹힐지 말지는 카일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크워어어어, 크워어엉!”
쾅! 콰쾅! 콰아앙!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오우거를 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잘 먹히네.”
그런 카일의 말을 들은 걸까?
몸부림치던 오우거는 카일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크워어어어어어!”
이상하게도 말은 안 통하는데도 마치 ‘네가 이랬냐? XX 새끼야.’ 같은 말이 들리는 듯 했다.
“그렇게 욕할 것까지야. 그런데 맞아. 내가 했어. 맛있지?”
“크워어어어어어어어엉!”
오우거는 단숨에 카일을 찢어 죽이고자 달려들었다.
“히이익!”
“오… 온다.”
“으어어어어.”
부하들은 훈련받은 대로 방패를 잡고는 있었지만 모두 공포를 못 이기고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차피 이들이 오우거의 돌진을 막아낼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어딜 감히!”
오우거의 측면에서 최대치로 몸을 거대화 한 검은 바람이 튀어나왔다.
콰아아앙!
“크워어어엉!”
검은 바람의 대도가 오우거에게 작렬했고, 오우거는 그 짧은 순간에도 몽둥이를 들어서 막았다.
검은 바람은 오우거하고 비슷한 사이즈까지 거대화했지만 단칼에 놈을 처리하지는 못했다
“제법이군. 이걸 막아 내다니.”
검은 바람은 거대화한 상태로 오우거와 대치했다.
오우거는 갑자기 자신과 비슷한 덩치의 무언가가 나타나니 깜짝 놀란 듯했다.
“크워어어어.”
그리고 위협을 하기 위해서 크게 소리치는 오우거에게 검은 바람이 손가락을 까딱하며 말했다.
“시끄럽고 와라.”
“크하아아아앙!
오우거는 거칠게 달려들며 몽둥이를 휘둘렀고 검은 바람은 그 공격을 막았다.
콰아아아앙.
주르르륵.
“큭…….”
놀랍게도 오우거의 일격에 거대화한 검은 바람이 뒤로 주르륵 밀려나다. 그러면서 손목이 저린지 급하게 검을 바꿔서 잡기까지 했다.
그런 검은 바람에게 오우거가 계속해서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쾅! 쾅쾅! 콰아앙!
‘무슨 힘이…….’
검은 바람은 그 공격을 막아 냈지만 연신 뒤로 밀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내심 크게 놀랐다.
자신의 신체 사이즈가 오우거와 비슷한 수준이니 이 정도면 혼자서도 오우거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이즈가 비슷하니 파워에서 밀릴 리는 없고, 그렇다면 기술에서 우위에 있는 자신이 더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우선 덩치가 비슷해 졌다고 하지만 오우거는 검은 바람보다 파워에서 제법 큰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근육의 질 자체가 다른 걸까?
놈의 파워는 같은 사이즈가 되었다고 해도 인간과는 규격을 달리했다. 아마도 검은 바람이 지금보다 한 사이즈 이상 몸을 키워야 파워에서 대등함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기술면에서조차 검은 바람이 크게 우위에 있는 건 아니었다.
공격을 받고 밀리는 와중에 검은 바람 역시 그냥 당하지 않고 사이사이에 검을 뻗었다. 하지만 검은 바람의 공격이 닿기도 전에 오우거는 재빨리 몸을 움직이며 그 공격을 피했다.
이건 기술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회피하고 본능적으로 후려치는 단순한 공격과 방어다.
‘순발력이 완전히 미쳤군. 마치 고양잇과 맹수를 상대하는 것 같아.’
결국 오우거의 신체 스펙이 검은 바람보다 압도적으로 위이기 때문에 기술의 차이마저도 상쇄되는 것이다.
아니, 기술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검은 바람이 전력을 다해서 버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오우거 역시 마냥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크워어어어어엉!”
쾅쾅쾅쾅!
놈은 누가 봐도 격분한 모습으로 지면을 밟고 난동을 피우며 성질을 부렸다. 그러면서도 자기 입에 계속 손을 붙였다 땠다 하는 걸 봐서는…….
“주인님의 작전이 제대로 먹힌 모양이군. 이놈아 많이 맵냐?”
“크허어어엉엉!”
‘그걸 말이라고 하냐?!’라고 외치는 것처럼 오우거는 다시 검은 바람에게 달려들었다.
확실히 카일의 작전은 효과가 있었다.
오우거는 검은 바람과의 전투와 입안이 타들어가는 매운맛의 고통과 싸우면서 이중고를 겪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검은 바람은 오우거를 혼자서 잡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은 나도 멀었군.’
검은 바람은 아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카일이 부여해 준 초능력을 풀로 활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우거를 혼자서 잡을 수 없었다.
“발레리아!”
그러니, 동료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언제 부르나 했지.”
갈대숲 한쪽에 낮은 자세로 기척을 죽이고 있던 발레리아는 한걸음에 오우거에게 달려갔다.
검은 바람과 오우거의 전투는 그 야말로 대괴수들의 격전 같았지만 그런 전투에 끼어드는 그녀의 질주에는 한 점의 공포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플래이트 메일을 입었지만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그녀는 지금 자신의 중력을 평소의 0.2 정도로 가감시키고 있었다. 덕분에 가볍고 빠른 속도로 질주할 수 있었다.
발레리아가 오우거에게 거의 도달한 순간.
“중력… 다섯 배!”
콰아앙!
그녀는 자신의 중량을 급격하게 늘리면서 방패를 앞장 세워서 오우거의 정강이에 차지를 넣었다.
“크워어어어엉!”
오우거는 정강이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격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반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인간이 돌격했을 뿐인데 느껴지는 고통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크으으으… 워어어어!”
오우거는 자신에게 고통을 안긴 발레리아를 향해서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단 한 걸음의 백스텝으로 훌쩍 멀어졌다.
뛰는 순간 다시 자신의 중력을 0.2배로 가감시켜서 몸을 가볍게한 것이다.
움직일 때는 가볍게, 공격하는 순간에는 무겁게.
고속으로 이뤄지는 공방 속에서 이렇게 정밀한 중력 조작을 익히기까지 발레리아는 무던히도 노력을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노력은 보상받고 있다.
백스텝으로 거리를 벌렸던 그녀는 다시 빠르게 오우거의 복부까지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하아압!”
콰아아앙!
“크워어어어어어!”
쿠웅!
체중이 10분의 1도 되지 않는 발레리아의 돌격이었지만 오우거는 미처 버티지 못하고 뒤로 풀썩 쓰러졌다.
그 순간을 노리고 검은 바람의 태도가 바람을 가르며 오우거에게 날아갔다.
“끝이다!”
자세가 무너진 틈을 노리고 날린 회심의 일격.
검은 바람은 승리를 확신했다.
퍼어어억!
하지만 목을 노리고 날아간 검은 바람의 일격을 오우거는 팔을 들어서 막았다.
참격을 팔로 막는다는 것이 웃기는 일이었지만 오우거의 질긴 가죽과 단단한 근육은 그걸 가능하게 했다.
“이 무슨…….”
“크워어어어어어!”
뻐어어억!
순간 검은 바람의 복부에 오우거의 발길질이 작렬했다.
“크으으…….”
검은 바람은 배 속이 뒤집어지는 듯한 충격과 함께 뒤로 멀찍하게 물러났다. 단 한 방일 뿐이었지만 카일과 함께 던전에 들어오고 나서 이 정도 대미지를 입은 것은 처음이었다.
‘제길, 만만치 않군. 역시 오우거다, 이건가?’
발레리아가 그런 검은 바람에게 외쳤다.
“괜찮나, 검은 바람?”
“난 괜찮… 조심해!”
검은 바람이 경고를 하자 발레리아는 황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의 몸뚱어리만큼 거대한 바위가 바로 앞까지 날아오는 광경이었다.
“큭…….”
콰아앙!
버틸까? 피할까?
순간 판단을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발레리아의 신체는 평소 익숙하게 단련했던 방향으로 움직였다.
방패를 굳건하게 들고 날아오는 바위를 막아 낸 것이다.
보통의 기사라면 온 몸이 으깨져 죽었겠지만 발레리아는 완벽한 자세로 충격을 분산시키며 바위를 막아 냈다.
“크워어어어어어!”
이어지는 오우거의 맹공.
놈은 손에 잡히는 바위라는 바위는 다 뽑아서 집어 던지고 있었다. 발레리아는 그 바위의 맹폭을 꿋꿋하게 서서 버텼지만, 그 때문에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놈!”
오우거가 집어 던지는 바위의 폭격이 멈춘 것은 검은 바람이 다시 오우거를 공격하기 시작하고 나서였다.
“크워어어어어!”
“어디 끝장을 보자!”
오우거는 다시 흉포하게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검은 바람 역시 이를 악물고 맞섰다.
그 사이에 발레리아는 몸을 추스르고 뒤로 물러났다.
“크으윽… 레이나, 부탁해.”
“예. 자애와 조화의 여신 레테시여 당신의 손길로 상처 입은 이를 보살펴 주십시오. 힐.”
레이나의 손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와서 발레리아를 회복시켰다.
레이나가 발레리아를 회복시키는 동안 아리시아와 카일이 다가와서 곁을 지키며 말했다
“상황은 어때? 할 수 있겠나?”
“생각보다 만만치 않습니다. 솔직히 저 정도의 괴물인지는 몰랐습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 둘이 달라붙으면 별 작전 없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초능력을 전투에 활용하는 이 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카일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둘이 붙어도 호각, 혹은 그 이하라니…….
‘괴물은 괴물이군.’
결국 놈을 잡기 위해서는 당초 준비했던 작전을 시행해야 했다.
“내가 나서겠다. 와이어로 놈을 구속할 테니 그 틈을 노려.”
카일이 앞으로 나서려고 하자 아리시아가 나섰다.
“주인님. 제가 돕겠습니다.”
“그래. 그건 할 수 있겠지?”
“예. 주인님.”
“좋아 가자.”
아리시아는 카일과 함께 보조를 맞춰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쾅! 콰앙! 퍼엉!
검은 바람과 오우거의 전투는 그야말로 대괴수의 격전과 같았다.
솔직히 카일이 저기에 검을 들고 끼어들었다가는 3초도 못 버티고 산산조각 나버릴 것이다.
그러니 카일은 저 위험천만한 곳에 끼지 않는다.
그 대신 와이어가 달린 단검을 던져서 오우거의 행동을 구속할 뿐이다.
그것에만 목표를 집중하고 있었다.
이미 와이어의 강도는 확인했고 오크 전사가 상대이긴 하지만 실전에서의 컨트롤 연습도 마쳤다.
다만, 유일한 문제점이라면 기회가 한 번 뿐이라는 것과 날뛰고 있는 오우거의 몸놀림이 너무 거칠고 빠르다는 것이었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게 아리시아였다.
어느 정도 접근한 후 카일이 말했다.
“이 정도 거리가 한계군. 어때? 할 수 있겠어.”
“예. 해보겠어요.”
아리시아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끌 필요는 없어. 한순간이면 된다.”
“예. 주인님.”
그리고 아리시아는 양 손을 오우거가 있는 방향으로 뻗어서 정신을 집중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반드시 주인님에게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아리시아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오우거에게 집중했다.
“흐으읍!”
그러자 순간 오우거의 몸놀림이 눈에 뜨게 느려졌다.
눈으로 좇기도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몸놀림이 절반 이하로 갑자기 느려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