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열흘 후.
카일은 처음에 오크와 웨어 울프가 전쟁을 벌인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그 일대를 꼼꼼하게 탐색하며 사냥을 했다.
이미 한 번의 대규모 전투가 있었던 후였기 때문인지 몬스터는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았지만 카일은 신중하게 주변을 탐색했다.
특히 스노우를 가장 앞에 세워서 수상한 낌새에 반응을 하는지 않는지 꼼꼼하게 관찰했다.
우수한 탐색견으로 훈련받은 스노우는 훈련받은 체취 말고 처음 보는 체취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오우거의 체취를 담은 부산물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특별한 체취가 느껴지면 알아서 기민한 반응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킁… 킁킁.
꾸준하게 스노우의 행동을 관찰한 보람이 있었다.
카일의 예상대로 스노우가 지면의 한 부분에 냄새를 집요하게 맡으면서 이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뭔가 찾은 것 같니?”
컹컹.
카일은 뒤편의 파티원을 보고 지시했다
“스노우가 이끄는 대로 이동한다. 모두 주변을 경계하며 발걸음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따라와라.”
“예. 주인님.”
그리고 카일은 스노우의 목줄을 느슨하게 잡고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얼마간 이동하니 스노우가 찾은 체취의 정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뭐야? 웨어 울프잖아?”
“사체 같은데?”
“사체라도 웨어 울프는 웨어 울프지.”
스노우가 찾아 낸 것은 웨어 울프였다.
죽은 지 며칠 정도 지난 것 같은 웨어 울프의 사체를 본 카일도 처음에는 실망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검은 바람. 여기를 좀 봐라.”
카일이 말한 것은 웨어 울프의 사체였다.
갈대숲에 가려져 있어서 잘 몰랐는데 자세히 보면 놈의 사체에는 하반신이 없었다. 양팔은 뒤틀려 있었고 몸도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뭉개져 있었다.
이 잔혹한 현장은 오크나 같은 웨어 울프가 만들었다고는 생각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웨어 울프보다 훨씬 커다란 무언가가 강제로 짓밟고 뭉개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맞는 것 같지?”
“예. 맞는 것 같습니다.”
유목 민족 출신인 검은 바람 역시 웨어 울프의 시체를 보더니 확신했다.
“이건 틀림없는 오우거의 소행입니다.”
“역시……. 사체는 언제 적 것으로 보이나?”
“최소 3일에서 5일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오우거는 아직 이 근방에 있을까?”
“그건… 확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놈이 사냥을 마치고 거처를 옮겼을 확률과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며 어슬렁거릴 확률은 반 정도라고 봅니다.”
“그래. 그렇군.”
반 정도의 확률이라면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맨땅에 헤딩하듯이 계속 탐색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좋아. 여기쯤에서 판을 벌린다.”
카일은 결심을 굳히고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 * *
좀 뜬금없는 애기지만… 카일은 이미 충분히 성공한 모험가다.
무일푼이나 다름없이 바이에른에 도착해서 하나의 파티를 거느리고 그 파티를 10층까지 이끌었으며, 재정적으로도 튼튼한 토대를 갖추고 길드의 지부장이나 대형 클랜에 연줄도 가지고 있다.
현대의 지구로 치면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중소기업 중에서도 대기업에 탄탄한 하청 라인을 가지고 있는 강소기업의 CEO정도는 되는 위치에 올라왔다.
단, 카일의 목표가 그 정도로 납득하지 못 하기에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지 않는 것뿐이지 보통 모험가가 되기 위해서 바이에른에 찾아오는 젊은이들 입장에서 보면 카일은 대성공을 거둔 룰모델일 것이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이렇게 성공을 거둔 모험가가 아니면 오우거 사냥 따위는 꿈에도 꾸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많은 모험가들이 하지 않는 오우거 사냥이었기 때문에 그 방법도 사실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특별한 방법도 아닌데도 말이다.
“주인님. 이렇게 하면 됩니까?”
“그래. 이왕이면 양념도 발라서 구워. 맛있는 냄새가 더 멀리까지 퍼지도록.”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부하들은 평소 던전에서 상용하던 작은 모닥불이 아니라 꽤 거대한 불을 피우고 그 위에 돼지고기와 새끼 양 고기를 덩어리째 굽고 있었다.
때아닌 바비큐 파티?
아니다. 이게 오우거를 유인하는 방법이다.
대형종 몬스터가 대부분 그렇듯이 오우거 역시 식사량이 막대하다. 놈들은 한 끼에 오크 열 마리 정도는 거뜬하게 먹어치운다.
하지만 이놈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오크인 것은 아니다.
오크는 지하 10층에서 가장 흔한 먹잇감이니 많이 먹는 편이긴 하지만 놈은 평범하게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대형 클랜의 마법사가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오우거는 의외로 대형 몬스터 치고는 미식가라고 한다.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미식가라기보다는 악식가에 가깝다.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생고기는 물론이고 다 썩어가는 고기도 얼마든지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하지만 오우거는 예외라고 한다.
물론 배가 고프면 가리지 않고 다 먹어치우지만 먹잇감이 풍부할 경우에는 맛있는 부분만 먹어 치운다고 한다.
실제 사례로 예를 들면 놈이 오크 부락을 습격해서 아직 살이 야들야들한 새끼 오크들만 먹어치우고 남은 것들은 그냥 죽이기만 하고 입도 대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오우거는 맛을 가리는 몬스터라는 말이다.
그리고 오우거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인간들이 맛있게 먹기 위해서 품종을 개량하고 도축과정에도 공을 들인 육류들이 가장 잘 먹혔다.
그것도 그냥 날고기보다는 구운 고기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단순히 구운 고기에 한술 더 떠, 카일은 전생의 기억을 살려서 양파와 설탕을 이용해서 달달한 양념을 준비해 와서 그걸 고기에 뿌려서 굽기 시작했다.
‘세상에 당분을 싫어하는 동물은 없지.’
그렇게 던전에서는 달달한 양념이 뿌려진 통고기 구이가 맛있게 구워지고 있었다.
“쓰으읍…….”
“야, 침 흘리지 마.”
“아니, 그런데 맛있어 보이지 않냐?”
“그거야 뭐…….”
“솔직히 나도 한 입 먹고 싶다.”
“그건 그래.”
고기가 맛있게 구워지는 냄새에 직접 굽고 있는 부하들의 배가 꼬르륵거리고 있었다.
이대로 오우거가 나타나지 않으면 자기들이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같이 군기 빠진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침만 꼴깍꼴깍 삼키던 그때였다..
우직. 우지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한쪽에 있는 숲의 나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카일은 서둘러 외쳤다.
“전원 후퇴! 지정된 위치까지 달려!”
카일의 명령에 부하들은 굽던 고기를 놔두고 미친 듯이 달렸다.
“진짜다. 진짜 나왔어.”
“제길 튀어. 튀라고.”
부하들은 모두 목숨이 아까운지 미친 듯이 달렸다. 그리고 정해진 위치까지 가서 방패로 벽을 만들고 꽁꽁 뭉쳐서 대기했다.
사실 오우거를 상대로 이들이 방패를 겹쳐서 벽을 쌓아 봐야 의미는 없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심리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드디어 그것이 나타났다.
“크르르르르르…….”
신장은 5미터에서 7미터 사이.
짙은 황토색의 강인한 가죽과 움직일 때마다 꿈틀거리는 강철 같은 거대한 근육.
얼굴에 드러나 있는 흉포성은 트롤이나 오크가 귀여워 보일 정도로 강렬했다.
손에 들고 있는 나무 몽둥이는 건물의 기둥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거대했지만 놈의 손에 들려 있으니 딱 맞는 사이즈로 보였다.
살아 있는 재앙이라고 불리는 대형종 몬스터.
10층의 제왕 오우거였다.
‘생각보다 더 터프해 보이는 놈이군.’
카일은 오우거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머릿속으로 이런 형태일 것이라고 수도 없이 상상했고 도감의 그림도 봤다.
하지만 역시 실제로 살아서 움직이는 놈을 보니 그 박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런 놈은 코를 킁킁 거리더니 한쪽에서 지글지글 익고 있는 돼지고기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돼지 반 마리를 통째로 굽고 있는 고기였지만 놈의 손에 쥐어지니 그냥 고기 한 조각을 집은 것처럼 보였다.
놈은 망설임 없이 그 돼지고기를 한 입에 집어넣고 뼈째로 씹어 먹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엉!”
잘 먹던 놈이 갑자기 어마어마한 포효를 내질렀다.
“저게 뭐지?”
“뭐야? 뭐야? 왜 저래?”
“으으으으…….”
부하들은 놈의 포효에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오우거는 몹시 만족한 표정을 하고 다른 고기에 손을 가져갔다.
“양념 구이가 마음에 드나보군.”
아마 방금 전의 포효는 ‘맛있다!’ 정도의 반응인 모양이었다.
놈은 사방에 널려 있는 바비큐 고기에 손을 가져가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양고기, 돼지고기, 염소 고기 등등…….
이때를 위해서 지상에서 힘겹게 가지고 온 큰 고깃덩어리들이 놈의 입안에서 사라졌다.
“하아아… 잘 먹네.”
“돼지 반 마리가 두입에 없어졌어.”
“양고기는 아예 한입인데?”
부하들은 두려운 눈으로 그런 오우거를 바라봤다.
오우거의 식사 광경을 보아하니 신기하다기보다는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저 커다란 손과 입이면 인간인 자신들도 한 입 거리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들키면 어쩌지?”
“그, 글쎄?”
“바보들아 말하지 마.”
부하들은 잔뜩 쫄아서 목소리를 죽이고 움츠려 들어 있었다.
‘어차피 소용없을 텐데?’
카일이 보기에 오우거는 이미 여기에 인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인간 따위가 있든 없든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오랜만에 찾아온 미식의 찬스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먹이사슬의 최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는 절대 포식자인 오우거니까 이런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변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하게 말이다.
카일은 그런 놈을 보고 말했다.
“슬슬 걸릴 때가 됐는데?”
“주인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까 고기 중에 닭고기 통구이도 있었지?”
“예. 열 마리 정도 있었습니다.”
“그건 잘 안 구웠냐? 왜 안 먹지?”
“아, 아닙니다. 잘 구웠습니다. 그리고… 아! 이제 손을 가져가는군요.”
“그래?”
카일이 다시 오우거 쪽을 바라보니 놈은 통닭구이를 들어 올렸다
뱃속에 각종 양념을 꽉 채워서 오동통하게 구운 통닭이지만 놈의 손에 들리니 팝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놈은 통닭구이 열 마리를 한 손에 들고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마치 팝콘을 털어 넣듯이 말이다.
그 광경을 보고 카일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걸렸다.”
“예?”
“걸렸다니요?”
부하들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그때 통닭구이 팝콘을 먹은 오우거가 갑자기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양손을 입에 가져가더니 얼굴이 새빨개졌다.
“크… 크으으…….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새빨간 얼굴의 오우거는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포효를 내질렀다.
카일은 오우거가 하는 말은 못 알아듣지만 저 말이 무슨 뜻인지는 짐작이 갔다.
아마도 ‘매워.’라는 뜻일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냐, 연금술사 길드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캡사이신 농축액이.”
만든 연금술가 말하기를 독은 아니지만 사람이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 카일이 개인적으로는 핵불닭볶음 소스라고 부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