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비록 당초 목적이던 오우거는 잡지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10층에 내려간 의미는 충분했다.
수입을 모두 정산한 후 카일은 호크에게 돈 주머니를 주며 말했다.
“술과 고기를 사 와라. 모자라면 혼난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주인님. 야, 몇 명 따라와.”
“오오, 좋지.”
“바비큐다. 바비큐.”
부하들은 신이 나서 호크와 함께 술과 고기를 사러 시장으로 향했다.
그사이에 카일과 측근 노예들은 먼저 집으로 돌아와서 장비를 벗고 목욕탕에서 묵은 때를 씻어냈다.
* * *
“자, 이번에도 모두들 수고 많았다. 오늘은 모두 먹고 마시고 푹 쉬어라.”
“예. 주인님.”
“감사합니다. 주인님.”
뒤뜰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바비큐 파티가 벌어졌다.
“크으으, 내가 이 맛에 살지.”
“진짜 던전 나올 때는 이 순간만 생각나는 것 같아.”
“노예들 중에서 이렇게 술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놈들은 우리밖에 없을 거야.”
카일은 돈을 많이 버는 만큼 평소에도 노예들의 의식주에 쩨쩨하게 굴지는 않았다. 특히 훈련과 회복만큼 식사에서 단백질 섭취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노예들의 식단에는 항상 고기가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 던전에서 나왔을 때 열어 주는 바비큐 파티는 역시 각별했다.
숯불을 피우고 거기에 바로 구워 먹는 고기와 실컷 마실 수 있는 술 때문이다.
실컷 술과 고기를 즐기고 있으면 카일은 여기서 포상금을 더해준다.
“일단 너희들은 일인당 100골드씩이다. 각각의 계좌에 넣어 주마.”
“예. 주인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좋은 일에 뜻깊게 쓰겠습니다. 주인님.”
참고로 카일은 지난 1년 동안 돈을 많이 벌면서 은행에 계좌를 만들었다.
이 세계의 은행은 콧대가 높다.
최하 1,000골드의 예금을 가지고 와야 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고객에 추천까지 받아야만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카일의 경우 상인들 사이에서 투자가로 이름을 날리고 돈을 많이 벌기 시작하면서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일단 계좌를 만들 수 있게 되자 카일은 자기 이름으로 계좌를 분산시켜서 그것을 측근 노예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아무래도 수십 골드에서 100골드 단위의 돈을 한 번에 움직이려면 은행을 통하 는게 쉬웠다.
그리고 부하들에게는…….
“1인당 4골드씩이다. 전부 해서 40골드니까 받아 가라.”
“예. 감사합니다. 주인님.”
부하들의 대표로 호크가 카일에게 돈주머니를 받으며 기뻐했다.
“오오오, 4골드다!”
“한동안은 실컷 쓰겠는데?”
“진짜 우리 주인님이 최고야.”
노예들은 각각 포상금을 받고 기분 좋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카일에게 팔리기 전에는 평생 돈을 만져본 적 없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돈을 가지고 소비하는 그 순간에는 노예인 자신들도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후에는 돈을 몹시 좋아하기 시작했다.
주는 돈의 대부분은 술이나 여자에 사용하는 모양이지만 카일은 뭐라고 하지 않았다. 돈을 준 이상 그걸 어떻게 사용하던 그건 자기들 마음이었다.
그보다 카일은 다음을 생각해야 했다.
“다음 던전에 들어가는 건 20일 후다. 그때까지 내가 지시하는 준비를 다 해놓고 장비를 준비해야 해.”
“예. 주인님.”
“뭐든지 해내겠습니다.”
“그래. 우선 발레리아하고 검은 바람은 애들의 훈련을 봐주고, 장비도 살펴 줘. 10층에서 하이 오크를 상대하면서 부서진 곳이 있을지 모르니 확실하게 체크하고 교체가 필요하면 행크의 대장간에 주문해 놔.”
“알겠습니다. 주인님.”
“꼼꼼하게 살피겠습니다.”
부하들의 장비와 조련은 이 둘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레이나하고 아리시아는 내일부터 나하고 같이 상단주들을 만날 거야. 특별히 뭘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내 뒤에 있어 줘.”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 주인님.”
상인들을 만날 때 수녀인 레이나를 대동하고 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돈 얘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신뢰인데 아무리 노예라고 해도 수녀를 데리고 있는 모습은 꽤 신뢰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리시아와 레이나의 미모는 그 자체로도 상대에게 우호적인 인상을 심어 주기 좋았다.
카일도 그걸 알기에 상담을 할 때는 레이나와 아리시아, 발레리아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뭐, 일하는 건 내일부터고, 오늘은 모두 푹 쉬어라.”
“예. 주인님.”
그제야 카일도 본격적으로 술을 좀 마셨다.
어쨌든, 던전의 10층을 성공적으로 사냥했고 1,000골드가 넘는 수입도 올렸다
그럼 하루쯤은 정신 줄 놓고 기뻐해도 되지 않겠는가?
카일은 오랜만에 자제하지 않고 실컷 마셨다.
* * *
다음 날 아침.
“으으으… 머리야……. 과음했나?”
카일은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괜찮으세요, 주인님?”
“물을 가져다 드릴까요?”
“제가 회복 마법을 걸어 드릴까요?”
카일의 한마디에 여자 세 명이 살뜰하게 대답하며 시중을 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카일을 바라보는 그녀들은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고 아름다운 나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카일은 그런 그녀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말했다.
“…어제 내가, 너희들을 다 불렀니?”
“예. 주인님.”
“모두 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저희들 전부 귀여워해 주셨어요.”
세 명은 얼굴을 붉히면서 카일에게 말했다.
카일은 한손으로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취했나 보군.’
중간부터 필름이 끊겨서 기억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안겨서 쾌락에 신음하며 애원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어렴풋이 기억났다.
“여기 물이요. 주인님.”
“고마워, 아리시아.”
카일은 아리시아가 주는 물을 마셨다. 차가운 물을 마시니 좀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러자 아리시아가 다가와서 말했다.
“좀 더 쉬시겠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은근히 다가와서 자신의 몸을 밀착시키는 아리시아였다. 그녀의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여체가 카일에게 기분 좋게 휘감겼다.
‘사람 시험에 들게 하는군.’
카일은 쓰게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여기서 그녀를 사랑해 주고 싶었지만 오늘은 할 일이 많다.
카일은 아리시아에게 가볍게 키스를 해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씻고 옷 갈아입자. 오늘은 우선 클랜 본부를 건설 현장부터 가봐야겠어.”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
“제가 목욕 시중을 들어 드릴게요.”
* * *
카일을 아리시아와 레이나를 데리고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발레리아는 검은 바람과 함께 부하들의 훈련과 장비 점검을 해야 했기에 따라오지 않았다.
이동하는 동안 카일이 말했다.
“도시 외각 지역으로 이사를 하면 마차가 필요하겠어. 한 대 사는 게 좋겠지?”
“아무래도 외각 지역에 살려면 하나 필요할 거예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시장에 적당한 마차의 가격을 알아볼까요?”
“그래. 그리고 말을 끌기 위한 말과 마부도 필요 하겠군. 뭐, 우리 클랜은 원래 목장 부지였으니 말을 키우기는 쉬울 거야.”
“발레리아 씨가 잘 알 것 같아요. 원래 기사는 말과 땔 수 없는 사이잖아요?”
“그것도 그렇군. 데려올 걸 그랬나?”
그런 대화를 하는 사이 카일과 일행은 한참 건설 중인 클랜 본부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카일에게 공사장의 인부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말했다.
“누구십니까? 여기는 공사 중인 부지라서 외부인은 들어오면 곤란합니다.”
“여기 공사를 의뢰한 사람이요. 믹 씨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 클라이언트시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잠시 후 카일의 앞에 믹이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카일 님. 어쩐 일로 현장을 찾아오셨습니까? 혹시 추가로 주문하실 일이라도 있습니까?”
“글쎄요. 우선은 현장의 상황을 한번 둘러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아! 추가 주문도 있기는 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한번 현장을 둘러보고 말씀하시죠. 안 그래도 건물의 기초 공사는 거의 끝난 참입니다.”
믹은 카일을 데리고 건설 중인 현장을 소개했다
“여기가 카일 님이 말씀하신 건물입니다. 측근 노예 분들과 함께 거주하기에 적합한 건물로 지었고 말씀하신 대로 5층 건물에 방은 열 개. 서재와 회의실을 따로 빼두었고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로비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문하신 목욕탕은 지하에 지을 예정입니다.”
“잘됐군요. 가능하면 지금 집에 있는 설비는 빼지 말고 모두 넣어 주십시오.”
“예. 물론입니다. 스파 시설과 주방의 마도 화로까지 모두 꼼꼼하게 조사해서 들여놓겠습니다.”
카일과 측근 노예들이 직접 머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주문은 가능하면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있는 설비를 모두 넣을 것이었다. 그러면서 공간과 방은 더 늘려 달라는 주문이었는데 유능한 건축가인 믹은 카일의 그런 요구에 모두 부응하는 건물을 설계했다.
“이쪽은 일반 클랜원들의 숙소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군대의 숙소처럼 단체 생활이 가능한 공간으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도 따로 목욕탕과 세탁실을 지었고, 가까운 거리에 훈련을 위한 설비와 수도 시설도 설치할 예정입니다.”
“좋군요. 그리고 오면서 생각했는데 여기로 이사 오면 마차가 필요할 듯합니다. 그러니 마차와 말을 돌볼 수 있는 시설을 추가할 수 있을 까요?”
“마구간을 짓는 건 쉬운 일이죠. 하지만 이 지형의 장점을 살린다면 바로 앞에 방목장을 만들고 말을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말이라……. 그것도 나쁘지 않죠. 만약 부지를 만든다면 어느 정도 규모로 만들 수 있을 까요?”
“부지가 넓으니 200마리 이상의 말을 키울 수 있는 대형 목장도 가능할 겁니다.”
“일단 부지의 확보는 그렇게 해주세요. 혹시 그쪽 방면의 전문가를 알고 있습니까?”
“모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쪽 방면의 전문가는 저보다 찰리 씨가 더 잘 알죠.”
“과연, 부동산업자이니 그런 쪽으로 발이 넓겠군요. 조언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다른 조건은 또 없습니까?”
“가능하다면 헬스 시설… 그러니까, 운동 기구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게 뭐죠?”
“그게 어떤 거냐 하면…….”
카일은 현장을 둘러보고 몇 가지 시설의 추가에 대한 얘기까지 마친 후 현장을 떠났다.
“감사합니다. 카일 님. 덕분에 이런저런 영감을 많이 얻었습니다.”
“제가 뭘요. 별것도 아닌데.”
“아니죠. 역시 소비자의 니즈가 황금알이라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이 맞습니다. 황토로 돔 형태로 만들어서 그 안에 찜질방을 만들다니 그런 발상은 진짜 처음 들었습니다.”
“일단 가능한지만 확인하는 겁니다. 안 되면 굳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건 분명 새로운 스파 트렌드로 유행의 첨단을 달릴 겁니다.”
“뭐, 그러면 좋은 거죠.”
“부디 그 시설의 이름을 붙여 주시겠습니까?”
“황토 불가마 어떤가요?”
“불가마? 좋군요. 이름에 시설의 성격이 확 드러납니다. 아주 좋습니다!”
믹은 카일과의 대화에서 새로운 건축 아이템을 얻고 몹시 좋아했다.
“그럼 공사는 믹 씨만 믿고 맡기겠습니다.”
“저만 믿고 맡겨 주십시오. 이건 제 건축가 인생의 역작이 될 듯하군요.”
그렇게 카일은 의욕에 가득 차있는 믹을 놔두고 현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