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상대편도 카일의 파티의 존재를 알아챘다.
“정지! 더 이상 다가오면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겠다!”
그쪽에서는 먼저 날카롭게 외쳤다.
아무래도 파티가 피해를 입은 상황이라서 그런 걸까? 반응에 날이 서있었다.
카일은 레이나를 흘깃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경계심은 느껴지지만 악의는 느껴지지 않아요. 인간 사냥꾼은 아닐 거예요.”
“그래. 그렇군.”
레이나의 텔레파시 능력이 개화한 이후 인간 사냥꾼을 구별하는 것은 굉장히 쉬워진 카일이었다.
상대방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안다면 이쪽에서는 더 과감하게 다가갈 수 있다.
“나는 파티장을 맡고 있는 카일이라고 한다. 혹시 부상을 입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가?”
“너희가 알 바 아니다. 다가오면 공격하겠다. 이미 경고는 했다.”
보통은 이러면 물러나야 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우리파티에는 성직자가 있다. 부상의 치료를 원한다면 그녀를 보내서 도움을 줄 수 있다.”
“…….”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부상자를 치료해야 하는 상황과 상대방을 믿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듯했다.
그런 이들을 위해서 카일이 말했다.
“우리가 의심 된다면 성직자와 호위 한 명만을 먼저 보내겠다. 그녀에게 부상을 치료받고 나면 우리에 대한 의심을 접어라.”
그러자 상대편에서 말했다.
“진짜 성직자가 있다면 호의를 받아들이겠다.”
“그렇게 하지. 레이나. 발레리아.”
“예. 주인님.
“갔다 오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먼저 출발해서 상대편 파티에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 후.
“주인님. 이제 오셔도 됩니다.”
발레리아의 목소리가 들렸고 카일은 파티를 이끌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합류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레이나가 다섯 명의 부상자들을 신성력으로 치료해 주고 있었다.
그들은 척 봐도 상당한 부상을 입었는데 레이나의 치료 덕분에 목숨에 위험은 없을 듯했다.
“카일이다.”
“로치라고 하…오. 도와 주셔서 감사하오.”
상대편이 말을 높였다. 아무래도 은혜를 입은 입장이다 보니 막 대하기는 좀 어려운 모양이다.
카일도 거기에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법이죠.”
“던전에서 그러긴 참 어려운데 말이오.”
로치라고 불린 남자는 등에 도끼날 부분이 꽤 커다란 할버드를 지참하고 있는 전사였는데 척 봐도 실력이 제법으로 보였다.
‘하긴 10층까지 내려왔을 정도면 실력에는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카일은 그에게 말했다.
“실례지만 척 봐도 사고를 당한 듯싶은데, 뭐한테 이렇게 당한 겁니까?”
“그게 후우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다가 말을 이었다.
“은혜를 입은 마당에 숨기는 것도 좀 그렇지. 사실은 오크 샤먼을 상대했소.”
“오크 샤먼? 오우거가 아니고요?”
카일의 말에 로치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오우거라니? 그런 놈을 만났다면 죽었을 거요.”
“여기는 10층이지 않습니까? 오우거가 활동하는 층인데요?”
“알죠. 그러니까 무조건 피해 다녀야죠.”
로치의 말을 듣고 카일은 생각했다.
‘오우거를 피해 다닐 거면 왜 10층에 내려왔지?’
카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로치 역시 카일을 보며 생각했다.
‘오우거라니, 간도 크군.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건가?’
두 파티장의 생각의 차이는 서로 모험가로서 활동하는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카일은 철저한 사전 조사와 준비를 통해서 안전을 우선해서 던전을 탐색한다. 하지만 상당수의 모험가들은 조사보다는 경험을 우선시 하고 안전보다는 대박을 선호한다.
‘목숨을 아끼지 말아야 돈을 벌지.’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고 다니는 게 90%의 모험가들이다. 카일은 처음부터 검은 바람과 철저하리만치 안전제일 주의로 던전을 공략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로치는 10층에 내려와서 활동은 하되 오우거라는 재앙급 몬스터는 철저하게 피해서 활동하자는 유형의 모험가였다.
오우거의 발자국만 보여도 당장 활동을 접고 위로 올라갈 정도였다.
그는 그저 안정적으로 오크 부족 주변을 돌면서 오크들을 사냥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다만, 그 중에서도 오크 샤먼이 직접 나온 게 불행이었다.
“오크 샤먼이 그렇게 강합니까?”
“강하죠. 인간으로 치면 4서클 마법사 정도는 되니까. 그리고 더 골치 아픈 건 이놈이 움직이면 전사 오크들도 때 거리로 따라서 움직인다는 거요.”
“아아아… 그렇군요.”
“우리 파티는 원래 스무 명이 넘는 파티였소. 하지만 오크 샤먼이 이끌고 온 오크 무리에 포위당해서 그만…….”
로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무 명이 넘는 파티원들 중에서 다섯 명만 살아남았다. 그중에는 핵심 전력이었던 마법사와 익스퍼트급 전사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건 이미 지상에 복귀한다고 해도 파티의 해산은 정해진 기정사실이었다.
아니 그보다 이 전력으로 지상에 복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때 로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카일 씨 혹시 괜찮으시다면…….”
“말씀하시죠.”
“저희를 지상으로 인도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여차하면 5층, 아니 7층까지만 이라도 좋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가죠.”
로치는 무사히 지상으로 후퇴하기 위해서 딜을 시도했다. 카일이 그들을 인도해 준다면 좋고,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빌고 빌어서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한 물자라도 좀 인도받고 싶었다.
그런 로치에게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면…….
‘잘됐군. 어차피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말이야.’
카일은 이미 지상으로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로치의 파티에게서 오우거의 정보를 얻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여기 더 머물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공짜로는 곤란하지.’
“정식으로 호위 의뢰를 하신다면 얼마를 지불하시겠습니까?”
“지상까지 데려다 주신다면 100골드를 드리죠.”
어차피 가는 길인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가 지상까지 인도해 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며칠 정도 더 탐색을 하려고 했지만 사나흘 정도 먼저 올라가는 건 괜찮겠죠.”
“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카일 씨.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카일은 로치와 그의 동료 다섯 명을 데리고 지상으로 귀환했다.
귀환하는 길.
지상이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이제 일행도 긴장이 많이 풀렸다.
그리고 길이 편해진 만큼 카일은 로치와 편하게 대화를 하며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얻으려고 했다.
“암컷 오크를 이용해서 유인 섬멸이라. 하이 오크들에게 그런 습성이 있었군요.”
“오크들은 암컷을 귀중하게 여기니까요. 외부에 잘 다니지는 않지만 외부에 나왔을 때 생포하면 오크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게 할 수 있죠.”
“호오, 그렇군요.”
로치 역시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카일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래 봐야 정말로 중요한 정보는 당연히 비밀로 부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카일이 원하는 것은 10층에서 오우거를 사냥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놈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카일의 고민을 듣고 로치는 처음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진짜 오우거를 잡을 생각이오?”
“물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랜 기간 준비를 해왔습니다.”
“아니, 파티의 전력이 제법 충실한 건 알겠지만 그래도 오우거라니……. 그건 걸어 다니는 재앙이라고 불리는 놈이오.”
“하지만 10층에서 활동하다 보면 언젠가는 부딪힐 놈이기도 하죠.”
“그거야…….”
“그렇다면 피해 다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차라리 처음부터 목표로 넣는 게 좋죠.”
로치는 카일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일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정작 10층에 내려와서 한 달 가까이 탐색을 했는데 찾을 수가 없군요.”
“당연하죠. 한 달 탐색해서 오우거와 만날 수 있었다면 저희 파티는 애당초 10층에 내려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로치의 파티는 10층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면 오우거는 만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활동한 파티였다.
“제 개인적으로는 파티 전력이 두 배로 증강되기 전에는 오우거와는 상종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괴물…….”
몸서리치는 로치에게 카일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로치 씨는 오우거를 실제로 본 적은 있는 겁니까? 꼭 직접 보신 것처럼 말씀 하시는군요.”
그러자 로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한창 기세가 좋았던 30대 초반쯤에 만난 적 있습니다. 그때 저는 다른 클랜에 소속 되서 제법 잘나가던 익스퍼트 중급의 전사였죠. 당시 나는 무서운 것도 없고 자신감이 넘쳤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잘나가지 않나요?”
“하하하. 그렇게 봐주니 고맙군요. 어쨌든 제가 오우거를 만난 건 그런 시기였습니다. 제가 있던 파티가 10층에서 11층으로 내려가느냐 마느냐 논쟁을 벌이던 시점에서 오우거를 만났죠.”
“졌습니까?”
“아니요. 이겼습니다. 이기긴… 이겼죠. 만약 오우거를 만나서 졌다면 제가 지금 이렇게 살아 있을 리가 없죠.”
“그렇다면 뭐가 문제입니까?”
카일의 말에 로치는 그때를 생각하고 한숨을 깊게 내쉬고 말했다.
“당시 제가 있던 클랜은 총 인원이 백 명이 넘었고, 그중에 익스퍼트급의 전사만 열 명이 넘었습니다. 마법사도 세 명이 있고 배틀 몽크도 두 명이 있었습니다.”
“…….”
그 정도면 상당히 충실한 전력이었다.
‘하긴 클랜이라는 간판을 달았을 정도니까 그 정도는 되겠지.’
로치는 그때를 회상하고 씁쓸한 표정을 하더니 말했다.
“그런 전력이 오우거와의 전투에서 전력의 3분의 2를 잃었습니다. 승리를 했고 오우거의 부산물로 막대한 돈도 벌었지만 클랜은 해체될 수밖에 없었죠.”
“아아…….”
결국 승리는 했지만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군요. 오우거는 익스퍼트급의 전사 열 명이 달라붙어야 한다고 얘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로치씨의 설명대로라면 당시 로치 씨가 속했던 클랜의 전력은 그 이상의 전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피해가 발생했습니까?”
“제가 보기에 익스퍼트 열 명 운운하는 건 헛소리입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말 장난이죠. 제 경험상 익스퍼트 열 명이 붙으면 오우거를 이길 가능성은 있을 겁니다. 다만, 그 승율은 50% 정도에 불과하며 설령 이긴다고 해도 익스퍼트 열 명은 대부분 죽어버릴 겁니다.”
“그렇군요.”
카일은 자신이 오우거를 생각보다 너무 얕잡아 봤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 로치의 설명을 감안하고 다시 전투를 상정해 봐도…….
‘이길 수 있다.’
안전제일 주의인 카일이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오우거 사냥에 대한 준비는 철저하게 되어 있었다.
놈의 위치를 찾기만 하면 충분히 가능했다.
“조언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10층에서 활동하는 이상 역시 오우거는 피할 수 없는 벽이죠. 어떻게 놈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뭐, 카일 씨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로치는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오우거를 탐색하지는 못해도 유인하는 방법은 있다고 들었습니다.”
“유인? 그게 뭡니까?”
“그건…….”
카일은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런 방법으로 유인 할 수 있다고요?”
“예.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대형 클랜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유인할 수 있다니.”
“어차피 몬스터니까요.”
“그건 그렇군요.”
오우거를 유인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그보다 사냥을 하는 방법으로서는 오히려 왕도에 가까웠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감사할 일인지 모르겠군요. 솔직히 무모한 도전을 말려야 하는데 말이죠.”
“나중에 결과로 알게 되겠죠. 무모했는지 아닌지는……. 아! 도착했군요.”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이동하는 사이 일행은 드디어 지상으로 올라왔다.
카일은 로치의 파티에게 100골드도 받고 서로 인사를 한 후에 헤어졌다.
저들의 파티가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움직여야지.”
비록 당초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10층의 던전 공략 자체는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수확 역시 상당했다.
마석의 수입이 462골드 26실버.
웨어 울프 42마리의 가죽이 210골드
웨어 울프의 발톱이 294골드.
그 외 기타 부산물을 처분한 가격이 55골드.
다 합쳐서 1,026골드 26실버에 달하는 수입을 올렸다.
한 달 가까이 들어갔다 나온 대가라고는 하지만 드디어 던전에서 올린 수입이 1,000골드를 넘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