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건방진 여유부터 없애 줘야겠군. 아리시아.”
“예. 주인님.”
카일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리시아의 화살이 줄지어서 날아갔다.
티티티티티티팅!
순식간에 날아간 화살이 웨어 울프에게 닿기 직전, 놈들은 순간적인 폭발력으로 지면을 박차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파파팟.
아리시아의 화살은 모두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아리시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칫…….”
그녀는 다음 화살 통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다시 발사되는 화살.
이번에는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일까?
놈들은 얼굴을 팔로 가리고 화살비를 그냥 몸으로 때우며 돌파하려고 했다.
보통은 저렇게만 해도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퍼퍼퍼퍼퍽!
“크워어어어엉?”
“크하아앙?”
하지만 화살에 맞은 놈들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가 앞으로 치고 나갔다.
“가자.”
“박살 내주지.”
두 사람은 웨어 울프를 한 마리씩 맡아서 상대하기 시작했다.
“크허어엉!”
“크하앙!”
웨어 울프는 손톱을 새워서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를 상대하고 있었다.
쾅! 콰앙! 쾅쾅쾅!
굉음이 울리고 불꽃이 튀었다.
사납게 휘두르는 웨어 울프의 손톱에는 오러도 뭣도 없었지만 검은 바람이나 발레리아의 공격을 잘 막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언뜻 팽팽하게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가 웨어 울프를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아직 초능력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웨어 울프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건 두 사람이 그동안 초능력뿐만 아니라 본연의 실력도 예전보다 더 늘었다는 말이다.
“합!”
콰아앙!
“카하앙!”
이 상황에서 초능력까지 전투에 동원하면 무게추는 한쪽으로 확 기울어 버린다.
발레리아가 자신의 무게를 무겁게 하며 강한 숄더 차지를 한 방 먹이자 거구의 웨어 울프가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브로드 소드가 빠르게 참격의 섬광을 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서걱, 서걱, 서걱.
팔, 다리, 목의 순서대로 정확하게 휘둘러진 그녀의 참격은 웨어 울프를 순식간에 침묵시켰다
단말마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웨어 울프의 시체를 보고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시간 끌 여유가 없어서 말이지.”
그리고 그녀는 바로 웨어 울프 한 마리를 상대로 수비적인 전투를 하고 있는 카일에게 달려갔다.
지금의 카일이라면 웨어 울프라고 해도 마냥 지지는 않겠지만 역시 위험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빠르게 가세하기 위해서 승부를 서두른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미처 카일에게 닿기도 전이었다.
콰아앙!
“감히 어디서 발톱을 들이대는 거냐? 앙?”
어느새 자기 몫의 웨어 울프를 처리하고 달려온 검은 바람이 의기양양하게 외치고 있었다.
두 배 이상 거대화된 신체를 보아하니 검은 바람 역시 발레리아와 같은 생각으로 빠르게 처리를 한 후 지원을 온 모양이다.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가 지원으로 붙자 카일은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난 빠져도 되겠지?”
“예. 제가 처리…….”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검은 바람에게 뒤쳐져서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발레리아는 자기가 먼저 웨어 울프에게 달려들었다.
“잠깐, 발레리아. 그건 내 거야?!”
“그런 게 어디 있나? 먼저 치면 임자지.”
“쳇… 어쩔 수 없군.”
둘은 서로 경쟁하듯이 웨어 울프에게 달려들었고 순식간에 그 놈만 불쌍하게 되었다.
“카아아아아앙!!”
사납게 날뛰면서 발톱을 휘두르는 놈이었지만 그건 광기보다는 발악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가 작정하고 다구리를 놓기 시작하자 당하는 웨어 울프가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가죽은 비싸. 가능하면 뭉개지 마.”
“나도 알고 있다.”
결국 두 사람의 공격에 웨어 울프는 사지가 잘려서 쓰러진 후에야 깔끔하게 목이 잘릴 수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너희들에게는 웨어 울프도 크게 위협은 되지 못하는군.”
“예. 모두 주인님 덕분입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검은 바람이 조심스럽게 카일에게 말했다.
“웨어 울프와 일대일은 자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안 된다 이건가?”
“그건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주인님은 우리 파티의 리더이자 우리들의 주인님입니다. 위험을 최대한 배제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검은 바람이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카일이 웨어 울프를 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은 바람의 말은 카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설령 카일의 분노를 산다고 해도 그 안전이 우선이기에 검은 바람이 충심으로 한 조언이었다.
“네 판단이 그렇다면 맞는 말이겠지. 가능하면 그렇게 하마.”
카일은 순순히 검은 바람의 충언을 받아들였다.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기는 했지만 그 전에 검은 바람의 충성심을 믿었다.
솔직히 카일은 검은 바람이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눈다고 해도 화를 내기보다는 무슨 이유에서 그러는 것인지를 생각해 볼 것이다. 카일의 안에서 검은 바람에 대한 신뢰는 그 정도로 굳건했다.
‘그리고 내가 나서지 않아도 저 둘이라면 충분히 웨어 울프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고 말이야.’
그렇게 카일이 말하고 있을 때 호크가 부하들과 함께 오크의 마석을 수거해 왔다.
“주인님. 중급이 하나에 상급이 둘이나 나왔습니다.”
“괜찮군. 가죽과 발톱도 챙겨라.”
“예, 주인님.”
웨어 울프의 가죽은 상당히 고가에 거래되는 물건이다. 질기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은색 털을 두르고 있기 때문에 방어구보다는 귀족들의 망토나 목도리, 장갑 같은 것으로 인기가 많은 소재였다.
발톱 역시 단단하면서도 아름다운 재질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장식품의 소재로서 인기가 많았다.
지구로 치면 코끼리의 상아나 코뿔소의 뿔과 같은 식으로 취급 받는 재료였다.
마석보다 더 많은 돈이 되기 때문에 모험가들은 반드시 챙기는 부산물이기도 했다.
뒤처리를 하고 카일은 다시 파티를 이끌고 이동했다.
목적지인 하이 오크 부락까지 이동을 하려면 아직 한참 더 걸어가야 했다.
‘생각보다 시간을 더 허비했어. 뭐, 생각보다 수월하게 웨어 울프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은 희소식이었지만.’
이제 진짜로 10층에서 오우거만 잡을 수 있다면 큰 무리 없이 10층을 사냥할 수 있는 전력을 갖췄다는 증명되는 것이다.
* * *
15일 후.
카일은 그 동안 하이 오크 부락을 돌면서 오크들을 사냥했고 가끔 나오는 웨어 울프도 짭짤한 수입을 안겨 주었다.
9층은 마석을 많이 주되 자잘한 마석들을 많이 줬다면, 10층의 하이 오크와 웨어 울프는 마석을 제법 많이 주면서도 굵직한 마석을 줬다. 최소 중급을 주고 상급이나 최상급도 이따금씩 나왔다.
마석의 예상 수입은 9층에서 레이나의 신성력으로 언데드 잡몹을 쓸어 담고 있을 때보다 확실하게 많았다.
이렇게 일이 잘 풀리고 있었지만 문제는…….
“안 나오는군.”
오우거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크 부락 주변을 돌면서 활동하다 보면 오우거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던 카일이었지만, 한 달 가까이 10층에서 활동을 해도 오우거와 조우할 수는 없었다.
아직 식량과 도구의 여유는 충분했지만 이제 슬슬 귀환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주인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아직 20일 정도는 던전에서 더 머물러도 괜찮을 겁니다.”
“맞아요. 그 정도 장비는 충분해요.”
측근 노예들은 카일에게 던전에 더 머물러도 된다고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지.’
계획은 한 달 동안 10층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물자가 남아도는 것은 어디까지나 만에 하나를 위해서 여분을 더 챙긴 결과일 뿐이지 탐색 기간을 더 늘려도 된다는 말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측근들은 몰라도 일반 부하들은 한눈에 봐도 지치고 힘든 기색이 뚜렷하게 보였다.
한 달 가까이 던전의 10층에서 하나하나는 자신보다 강한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면서 던전을 탐색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지금 저 부하들이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는 건 아직까지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현실과 앞으로 며칠이면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희망 때문이다. 여기서 탐색 기간을 더 늘린다고 하면 부하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질건 뻔했다.
‘아무리 노예라고 해도 그건 아니지.’
여러 가지로 생각해도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아니, 기존의 계획대로 행동한다. 지상으로 복귀하도록 하자.”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
카일이 결정을 내리자 측근 노예들도 그 뜻에 따랐다.
10층에서도 제법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상황이기 때문에 복귀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움직여야 할 것이다.
“자, 던전 위로 복귀한다. 모두 물자와 전리품을 챙겨라.”
“예, 교관님!”
“돌아간다. 돌아가.”
“후후후후…….”
“야, 너무 좋아하지 마. 교관님이 뭐라고 한다.”
“아……. 크흠.”
부하들은 필사적으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역시 좋아하는 티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짐을 모두 챙기고 카일의 파티는 9층으로 올라가는 입구까지 이동하기 시작했다.
원래 올라왔던 길로 가려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다른 입구를 찾아서 이동했다. 위치를 모른다면 모를까 오웬에게 받은 지도에 정확한 위치가 적혀 있으니 상관없었다.
그렇게 이동하는 도중 가장 먼저 스노우가 격렬하게 짖으며 일행에게 경고를 했다.
컹! 컹컹컹!
스노우가 이렇게 짖을 때는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상황을 알려준 것은 뜻밖에도 레이나였다.
“주인님. 주변에 사람, 혹은 지적 생명체가 있는 것 같아요.”
“지적 생명체?”
“예. 다른 모험가이거나 주인님이 말씀하신 오크 샤면일 수도 있어요.”
“그렇군. 아리시아.”
“바로 찾아보겠습니다.”
아리시아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나무를 보더니 검은 바람에게 말했다.
“오라버니.”
“자, 뛰어라.”
검은 바람이 양손을 받쳐서 발판을 만들었고 아리시아는 그 손을 발고 훌쩍 뛰어서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는 품안에서 작은 간이 망원경을 꺼내서 주변을 살폈다.
참고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작은 접이식 망원경도 카일이 아이디어를 제압한 사업 아이템이었다.
이 접이식 망원경은 모험가보다는 용병들 사이에서 더 대박을 쳤다고 했다.
결국 돈을 번 건 카일이었지만 말이다.
망원경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아리시아가 말했다.
“주인님. 모험가가 보입니다. 그런데, 행색이 상당히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어떻게 이상하단 말인데?”
“부상자가 다수 보이고 장비도 대부분 잃어버린 듯합니다. 아무래도 모험에 실패한 듯합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카일은 생각했다.
사실 던전에서 다른 모험가가 죽든 말든 그건 서로 알바 아니었다. 게다가 원래 던전에서 모험가끼리의 만남 자체를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10층까지 내려온 모험가가 엉망으로 당했단 말이지?’
카일이 보기에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기 능력이 안 되면서도 욕심을 부려서 당한 모험가이거나. 혹은 실력에 자신이 있었지만 10층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몬스터의 기습을 당해서 패주한 상태.
그리고 후자일 경우 그 대상은 높은 확률로 오우거일 확률이 컸다.
카일은 혹시 몰라서 아리시아에게 말했다.
“숫자는?”
“다섯입니다.”
“그 정도라면 괜찮겠군. 접선해 본다. 방향을 안내해 줘. 아리시아.”
“예. 주인님.”
카일은 오우거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그들과 접선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