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하이 오크와의 첫 번째 전투 결과.
우선은 지금 이 멤버로 10층의 하이 오크를 상대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검은 바람이나 발레리아가 하이 오크에게 먹힐 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새삼 확인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약간 불안했던 것은 부하들이었다.
던전에 제법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과연 10층의 주력 몬스터인 하이 오크를 상대로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좀 있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발레리아가 생각보다 훈련을 더 잘 시켰다.
개개인의 실력은 아직 멀었지만 단합이 잘 되어 있었고 단체로 움직이면서 명령을 철저하게 수행했다. 숙련된 전사라고 하기는 좀 부족해도 숙련된 병사라고 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10층의 하이 오크가 저층의 오크와 다른 것은 강함과 지능만이 아니었다.
고생을 많이 시키는 만큼 보상도 두둑하게 챙겨 주었다.
“마석이 중급이 열 개에 상급 마석도 하나 나왔습니다.”
“좋군. 잘 챙겨 둬.”
“예. 주인님.”
하이 오크는 마석을 주는 것도 달랐다.
일단 나왔다고 하면 대부분 중급이었고 발레리아가 직접 처리한 녀석은 상급 마석을 주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최상급 마석을 주는 놈들도 있다고 했었다.
“한동안 이 근처에서 오크들을 대상으로 사냥을 한다.”
“예. 주인님.”
그날 카일의 파티는 두 번 더 오크 무리와 조우했고 놈들을 모두 전멸시켰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 나서 카일의 파티는 적절한 장소를 찾아서 캠프를 차렸다.
10층부터는 벽이 없고 시야가 넓기 때문에 좀처럼 안전한 장소를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최대한 잘 드러나지 않는 장소를 찾아서 캠프를 만들었다.
“식사는 간편식으로 하고, 불은 하나만 피운다.”
“예. 주인님.”
그리고 일행은 간편식을 나눠서 먹었는데 그건 검은색의 작은 막대기 같은 것이었다.
“여기 있어.”
“아, 고마워.”
부하들은 그 간편식을 받아서 맛있게 먹었다.
“난 가끔 던전 밖에서도 이걸 먹고 싶더라.”
“적어도 건량보다는 훨씬 맛있지.”
“그러니까 말이야.”
참고로 지금 이들이 먹고 있는 간편 식량을 초코바였다.
반년쯤 전에 바이에른에 초콜릿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초콜릿은 질이 썩 좋지 않아서 귀족들의 다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였고, 그 대신 약제로 사용되고 있었다.
카일은 그것을 보고 자신이 투자하는 상단을 통해서 말했다. 설탕을 좀 섞고 땅콩이나 호두 같은 견과류를 섞어서 고체화 시켜 보라고 말이다.
그리고 모험가들에게 던전에서 소비할 수 있는 비상식으로 판매하라고 말이다.
그렇게 조언을 해주고 투자를 했다.
그 결과 카일은 다섯 배가 넘는 투자 수익을 올렸다.
이제 뻑뻑하고 목이 막히는 건량은 없어지다시피 했고 카일이 만들어 낸 초코바가 간편식으로 애용되었다.
사실 맛도 맛이지만 실제로 먹어본 모험가들은 알 수 있었다. 그냥 건량보다는 초코바가 훨씬 더 몸에 많은 에너지를 준다는 것을 말이다.
‘대박 나는 게 당연한 사업이었지.’
카일은 자기 몫의 초코바를 먹으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불침번을 두 명 남기고 일행은 잠이 들었다.
카일은 로브로 몸을 감은 상태로 잠을 청했고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컹컹컹! 컹컹! 컹컹!
카일의 귓가에 스노우가 격렬하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카일과 측근 노예들이 벌떡 일어났다.
“뭐야? 무슨?”
“적이다! 전원 기상!”
아리시아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일행은 모두 빠르게 일어났다.
아리시아는 가장 먼저 일어나서는 활을 들고 한쪽으로 화살을 쐈다.
“꾸웨에엑!”
오크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수십 마리의 오크들이 한꺼번에 달려왔다.
“취익! 취이익!”
“취익 취익.”
기습을 하려다 들킨 놈들은 미친 듯이 돌격해 왔다. 거기에 발레리아가 달려가며 부하들에게 외쳤다.
“전열 갖춰! 빨리!”
그리고 그녀는 달려오는 오크들의 한복판에 뛰어들어서 날뛰기 시작했다.
“퀴이익 퀴익!”
“취이익!”
오크들은 그런 발레리아의 공격에 멈칫하더니 우선 그녀를 감싸서 포위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버티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 모습은 마치 호랑이 한 마리가 늑대들 사이에서 분투하는 모습 같았다.
아무리 그녀가 강해도 수십 마리의 하이 오크에게 포위당해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오오오오오!”
하나, 다행히도 그녀에게는 동료가 있었다.
콰쾅!
한쪽에서 폭음과 함께 거대화 된 검은 바람이 오크들을 치고 들어왔다.
발레리아를 포위 공격하던 오크들은 검은 바람의 개입에 포위망이 흐트러졌다.
“전진! 속보로 전진!”
카일의 명령과 함께 부하들도 방패로 벽을 만들고 척척 걸어왔다. 그 벽의 뒤에서는 아리시아가 화살이 떨어지도록 계속 속사를 했고, 레이나는 그 옆에서 화살이 떨어지지 않도록 보조해 줬다.
“취익! 취이익! 취익 취익!”
오크들 중에서도 지휘관급이 있는지 뭔가 명령이 떨어지고 놈들이 대응하기 시작했다.
반은 갈라져서 전진해오는 부하들에게 달려들었고 나머지 반은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를 상대했다.
“저놈이군.”
카일은 그 순간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아리시아! 저놈한테 집중적으로 퍼부어.”
“예, 주인님!”
카일의 지시를 받은 아리시아는 지휘관 오크에게 화살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 화살은 지휘관 오크에게 닿지 않았다.
놈이 손에 들려 있는 창을 풍차처럼 휘두르자 아리시아의 화살이 다 튕겨져 나간 것이다.
“호오… 저놈 봐라?”
아리시아가 쏘는 화살의 속도는 사실상 총알이나 다름없는데 그걸 다 막아 냈다.
카일이 알기로 그럴 수 있는 건 파티 안에서는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뜻하는 것은 저 오크가 익스퍼트급의 강함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였다.
“취이익!”
그놈은 분노를 터트리며 카일이 있는 곳을 향해서 돌격해 왔다.
놈도 카일이 지휘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똑똑한 놈이군. 나만 잡으면 된다고 느낀 건가?”
검은 바람이나 발레리아를 보니 아직 포위망 속에서 분전을 하고 있었다.
카일은 피식 웃으면서 검을 뽑고 방패를 팔목에 찼다.
“저놈이 오면 포위망을 열어라. 내가 상대한다.”
“예. 주인님.”
그리고 놈이 돌격해온 순간 벽을 쌓고 있던 부하들이 좌우로 싹 갈라졌다. 그리고 카일은 그 갈라진 틈 사이로 달려가서 놈을 향해서 마주 공격했다.
“하압!”
“취이익!”
콰아아앙!
카일의 대도와 놈의 창날이 중간에 격돌했다.
“취이익.”
지휘관 오크가 두 걸음 이상 물러났다.
카일은 그런 오크에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네가 익스퍼트급 전사 오크지? 어디 실력 좀 보자.”
카일의 말은 못 알아들은 오크지만 그게 도발이라는 것은 알아먹은 모양이다.
“취이이익!”
놈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카일과 놈은 정면으로 격돌했다.
카앙! 캉!
카일과 하이 오크 전사의 무기가 강렬하게 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카일이 상대하고 있는 하이 오크족의 전사는 척 봐도 범상치 않은 실력자였지만 카일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흡!”
카카카카카…….
“취이익.”
오히려 카일은 힘으로 우위를 보며 상대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검을 붙이고 힘으로 밀어내는 카일의 공격에 상대는 버티지 못하고 뒤로 계속 물러나기만 했다.
그러다 상대방의 중심이 무너진 순간…….
뻐어억!
카일의 발차기가 오크 전사의 몸통에 정통으로 작렬했다.
“쿠웨이익!”
오크 전사는 돼지가 멱 따일 때와 비슷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뒹굴었다.
몇 바퀴를 데굴데굴 구르고 놈이 일어났을 때 이미 다른 오크들은 모두 정리된 상태였다.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가 사납게 날뛰면서 오크들을 다 정리했고 남은 것은 이미 리더격인 전사 한 마리뿐이었다.
“취익. 취익 취익.”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대강 ‘빌어먹을 기습만 성공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같은 걸로 해석하면 되는 거냐?”
카일의 말에 오크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취이익!”
네놈만큼은 죽여버리겠다.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한 목소리였다.
“와라.”
카일은 그런 놈을 상대로 다시 무기를 들고 마주했다.
콰아앙!
다시 한번 이어지는 격돌.
하지만 이번에는 놈이 카일에게 힘으로 밀리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어느새 놈의 몸에서는 붉은색의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취익. 취익 취익.”
“침 튀기지 마!”
카일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놈을 밀어냈다.
카일의 대도와 놈의 창이 다시 부딪혔는데 이번에는 카일이 힘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놈의 창날에서는 붉은색의 오러 비슷한 기운이 일렁거렸는데 그건 놈이 인간으로 치면 익스퍼트와 동급의 강함을 지니고 있는 강자라는 상징이었다.
“역시 맞았군.”
카일은 그 붉은 빛을 보면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아직 익스퍼트에 오르지 못한 카일은 검에서 오러를 뿜어낼 수 없다. 다만 카일의 검은 오러가 서려 있는 오크의 맹공을 거뜬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카일이 사용하고 있는 태도는 아다만티움의 함량이 30%를 넘는 명품 태도였다.
듀라한이 익스퍼트급의 전사와 전투를 벌이면서도 검에 흠이 가지 않는 것처럼 아다만티움의 강도는 경이적이다.
아직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카일 오러를 거뜬하게 받아 낼 수 있는 것도 그 아다만티움의 단단한 경도와 오러의 전도율을 차단해주는 아다만티움의 성질 때문이다.
보통 이런 아다만티움의 방어적인 성질을 살리기 위해서 방패나 갑옷에 많이 사용하는데, 카일은 이것을 무기에까지 사용했다.
아직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신이 상대의 오러를 쳐내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러를 차단해주는 장비와 신체능력만은 익스퍼트급 이상으로 끌어올려 주는 초능력. 이 두 가지 능력 덕분에 카일은 익스퍼트급 오크 전사와도 맞설 수 있었다.
‘하나, 장비 빨에 기댄다고 해도 기본 실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건가?’
미묘하기는 하지만 검을 섞으면 섞을수록 놈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피지컬의 스펙이 대등하면 결국 기술과 경험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더 뛰어난 것은 카일이 아니라 전사 오크였다.
순수하게 전사로서의 경지가 놈이 더 높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대로 가면 카일이 질 것은 뻔했다. 하지만 카일이 쉽게 패하는 모습을 가만 볼 이들이 아니었다.
“멈춰.”
카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의 대상은 뒤편에서 오크를 공격하려고 했던 아리시아였다.
아리시아는 카일의 명령에 활을 내려놨고 카일은 대기 중인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에게도 말했다.
“끝까지 지켜봐라. 정말 위험할 때가 아니면 나서지 마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카일의 명령에 세 사람은 일단 기다렸다.
단,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는 거리에서 무기를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지간히 못 믿는 모양이군. 아니면 그냥 만에 하나를 생각하는 건가?’
카일은 쓰게 웃었다.
어쨌든, 측근에게 나서지 말라고 한 것은 이놈에게 한 가지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이다.
‘오우거하고 싸우기 전에 한 번 정도는 시험해 보고 싶었는데 이 정도 거물이면 나쁘지 않지.’
“미안하지만 이제 끝내자.”
그렇게 말한 카일은 뒤로 백스텝을 밟아서 거리를 벌리며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앞으로 던졌다.
카일이 준비한 비장의 한 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