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아리시아가 도망가는 둘을 잡고 이제 남은 것은 검은 바람이 상대하는 오크 하나뿐이었다..
“취익 취익!”
놈은 동료의 죽음에도 굴하지 않고 전의를 불태우며 용감하게 검은 바람에게 달려들었다. 그 투지는 좋았지만… 유감스럽게도 결과는 따라주지 않았다.
“무모하군.”
콰직!
검은 바람이 좀 전보다 강한 일격을 내리쳤고 놈은 그 공격을 막으려고 무기를 위로 들었지만 검은 바람의 일격은 놈을 무기까지 포함해서 반토막 내버렸다.
전투가 끝나고 몸을 원래대로 되돌린 검은 바람은 자기가 토막 낸 오크의 시체를 보고 말했다.
“그래도 제법이었다.”
한차례 전투가 끝나고, 카일은 레이나를 불렀다.
“레이나, 부상자를 치료해 줘. 그리고 호크.”
“예. 주인님.”
“10층에서 안이하게 방심하지 마라. 여기는 넓어서 이런 기습이 또 있을 수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두 번은 없다. 오크에게서 마석을 회수해라.”
“예. 주인님.”
호크에게도 따로 지시를 내린 카일은 자기 곁으로 돌아온 검은 바람에게 말했다.
“하이 오크라는 놈을 직접 상대해 보니 어떻던가?”
“일반 오크보다는 확실하게 강했습니다. 힘도 강했고, 기술에도 본능에 휘둘리기보다는 나름 수련의 흔적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
“그렇군. 하긴 말만 안 통하지 지능 자체는 상당히 높다고 했으니…….”
“맞는 말인 듯합니다. 제가 상대한 오크는 우리 쪽으로 따지면 호크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이었지만 어쩌면 소문으로 들은 익스퍼트급 오크가 있을 지도 모르겠군요.”
“기뻐 보이는구나.”
“죄송합니다.”
부정은 하지 않는 검은 바람이었다. 카일은 피식 웃으면서 그런 검은 바람에게 말했다.
“뭐, 상관없지. 아무리 강해도 너보다 강한 오크는 없을 거라고 믿는다.”
“그 믿음에 반드시 부응하겠습니다. 주인님.”
현장을 정리한 후.
카일은 다시 파티를 이끌고 오크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아리시아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주인님. 여기 이상한 게 있어요.”
그것은 돌로 재단 같은 것을 만들어 두고 그 위에 해골을 쌓아 두고 있는 물건이었다.
“이건 오크족이 만든 거다.”
“오크가 이런 것도 만드나요?”
“하이 오크들은 만든다고 하더군. 그리고 이걸 만든다는 것은 그 부족에 샤먼 오크가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샤먼 오크, 그건 인간으로 치면 마법사라고 했죠?”
“그래. 차이는 좀 있지만 최소한 2서클에서 4서클 정도의 마법사로 생각하면 된다고 하더군.”
카일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이건 꽤 위험한 존재다.
4서클 마법사가 사용하는 마법은 익스퍼트 이외의 인간이라면 수십 명을 동시에 불태워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카일은 재단을 신중하게 살펴보더니 말했다.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재단이다. 여기서부터는 신중하게 탐색한다. 레이나.”
“예. 주인님.”
“오크 샤먼은 높은 수준의 지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인간처럼 사고를 한다면 네 능력으로 존재를 찾을 수도 있을 거야. 집중력을 유지해라.”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레이나의 텔레파시 능력은 주변에 있는 인간의 사고를 읽을 수 있다.
다만 몬스터의 경우 워낙 단세포라서 그런지 그 사고를 읽을 수 없었지만 샤먼 오크 정도 되면 혹시 모르는 일이다.
일행은 신중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자신들이 하이 오크의 부락의 영역권 안에 들어와 있음을 자각하고 있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찾아냈다. 무언가를 사냥하고 돌아가는 듯한 한 무리의 오크들을 말이다.
숫자는 척 봐도 스물 이상.
놈들이 짊어지고 있는 것은 고블린과 코볼트 따위의 몬스터였다.
‘저놈들은 사냥조인 모양이군.’
부족 단위의 무리 생활을 하는 하이 오크들은 여러 가지로 역할을 나눠서 수행한다.
경비, 순찰, 사냥 등등.
처음에 부딪혔던 놈들이 순찰조고, 지금 보이는 놈들은 아마도 사냥을 하고 부족으로 돌아가는 길인 사냥조로 보였다.
“바람 방향도 좋고,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친다.”
카일이 지시를 내리자 일행인 짐을 풀고 대형을 갖췄다
부하들이 타워 실드로 벽을 쌓고 그 안에 카일과 아리시아 레이나가 들어온다.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는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아리시아, 먼저 시작해.”
“예. 주인님.”
아리시아는 활을 당겨서 화살을 쐈다.
티티티티팅!
가볍게 쏘는 것 같았지만 그녀의 손끝에서 수십 발의 화살이 날아갔다.
혼자서도 궁수 열 명의 몫은 충분히 하는 아리시아였다.
그렇게 날아간 화살은 오크들에게 쏟아졌고 놈들은 비명을 질렀다.
“뀌이이익! 퀴익!”
“쿠웨에엑!”
오크들은 사냥감을 집어 던지고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놈들 중에 몇몇이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취익! 치이익!”
“취익. 취익. 취익.”
놈들은 무기를 들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분노를 터트리며 달려왔다.
“다행이군. 도망가지 않을 생각인가 봐.”
“좀 전의 놈들과는 많이 다르군요.”
“아마도, 순찰이 목적인 놈들과 사냥이 목적인 놈들의 역할이 다르다는 거겠지.”
오크들은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아리시아가 쏜 화살을 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몇 놈은 쓰러졌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오크들은 터프하게 버티고 있었다.
“아리시아, 계속 견제해.”
“예. 주인님.”
아리시아는 부지런히 화살을 쏘면서 오크들을 공격했다.
퍽! 퍼퍽! 퍼억!
“쿠웨에엑.”
“뀌이익!”
그녀가 쏘는 화살은 적중률도 좋아서 오크들의 얼굴을 정확하게 맞추고 있었다.
가죽이 얇은 안면에 화살을 맞은 오크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달려왔다. 그리고 개중에 한 놈은 아리시아의 화살을 피하거나 방패로 막아 내는 놈도 있었다.
다른 오크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놈이었는데 그 놈을 보고 발레리아가 외쳤다.
“저건 내가 맡는다. 전원 방패 대열을 유지해라.”
“예. 교관님.”
그리고 오크들이 도착한 순간 양쪽이 격돌했다.
콰앙! 쾅!
“취이익! 취익!”
“크윽……….”
“전부 버텨!”
오크들이 거칠게 부딪혔지만 방패를 겹쳐서 벽을 쌓고 있는 부하들은 그런 오크들의 공격을 용케 버텨냈다.
부하들의 실력으로 하이 오크와 일대일로 버틸 수 있는 인물은 없다. 그나마 가장 강한 호크도 일대일로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발레리아는 이들을 단체로 훈련시켰다.
방패를 겹치고 전원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서 벽을 만들자 하이 오크들의 거친 공격에도 진형을 유지하고 버틸 수 있었다.
부채꼴로 늘어서서 방패로 벽을 쌓고 버티는 부하들의 전열은 흔들리기는 해도 절대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이 이렇게 악물고 버텨준다면 공격에는 믿음직한 간부들이 있었다.
“검은 바람, 발레리아.”
“옛!”
카일의 명령을 받은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가 벽의 좌우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단숨에 오크들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간다!”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가 작정하고 날뛰자 오크들은 전면의 벽을 부수는 것에 집중하지 못했다.
벽을 향한 공격이 약해지자 카일이 다시 명령했다
“전진한다. 적을 압박하라.”
“옛!”
카일의 명령에 방패로 벽을 만들고 있던 병사들이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며 적을 압박했다
“퀴이익!”
“꾸웨에엑!”
오크들은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된 상황에 허둥거리며 밀리기 시작했다.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를 감당하지도 못해서 쩔쩔매는 와중에 병사들이 방패로 벽을 만들며 전진하며 압박을 주자 크게 허둥거리는 것이다.
그리고 카일은 레이나에게 지시를 내렸다.
“레이나, 스트랭스 걸어 줘.”
“자애와 조화의 여신 레테시여, 용기가 필요한 전사에게 그대의 축복을 내리소서. 스트랭스!”
그녀가 축복을 내리자 앞에 있는 병사들에게 성스러운 빛이 스며들었다. 그러자 병사들은 자기 몸에 힘이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스트랭스는 인간의 근력을 두 배 가까이 증강시켜 주는 축복이다.
원래 레이나가 모르던 기도문이었지만 지난 1년 동안 던전 탐색에 필요하다고 느낀 그녀가 새롭게 배운 것이었다.
부하들은 이제 하이 오크들에게 밀리지 않고 앞으로 강하게 밀치기 시작했다.
“하압!”
“취이익!”
텅! 터엉!
여기저기서 방패로 오크를 강하게 밀치는 소리가 들렸고 오크들 중에 자세가 안 좋은 놈들은 그 공격에 휘청 거리며 쓰러지기도 했다.
그리고 쓰러진 오크들에게는 병사들의 칼날이 떨어졌다.
푹! 푸우욱!
“퀴이이익!”
쓰러진 놈에게 두 세 개의 숏 소드에 동시에 찔린 오크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갔다.
원래 스무 마리가 넘는 오크무리가 빠르게 줄어 갔다.
처음에 아리시아의 화살에 다섯이 넘게 쓰러지고, 발레리아와 검은 바람이 이미 열이 넘는 오크들을 처리했고 병사들도 착실하게 협공을 하며 남은 오크들을 압도했다.
수적 우위가 바뀌자 병사들은 방패를 두셋이 모여서 오크 한 마리를 포위하면서 오크를 착실하게 처리했다.
격돌하고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스무 마리가 넘는 오크들이 대부분 전멸한 것이다.
남은 것은 딱 한 마리였다.
발레리아와 대치하고 있는 덩치가 큰 오크였다.
“저게 이 무리의 대장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 좀 전에 아리시아의 화살을 피해 내던 녀석이지?”
“예. 그렇습니다.”
다른 오크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더 커다란 그놈은 발레리아와 일대일로 대치를 해서 용감하게 싸우고 있었다.
“쿠위이이익!”
“고작 이거냐? 좀 더 실력을 발휘해 봐라.”
용감하다고 해서 실력 차이를 넘을 수는 없다.
발레리아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상대 오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마음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목숨을 끊어 버릴 수 있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몰아붙이고만 있었다.
마치 실력을 보려는 것처럼 말이다.
“취이익. 취익!”
몰리고 몰린 오크는 뒤로 물러나서 몸을 웅크리고 힘을 모으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놈의 온 몸에서 붉은색의 증기 같은 것을 뿜어냈다.
“기어2?”
“예? 뭐라고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카일은 그 오크의 모습을 보고 잠깐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저 붉은 연기는 일정 경지에 이른 오크들이 보이는 투기의 일종이었다.
“퀴이이이이이익!”
그 오크는 온 힘을 다해서 발레리아를 향해서 강력한 공격을 가했다.
“와라.”
발레리아는 물러나지 않고 제자리에서 그 공격을 받아 냈다.
콰아앙!
양쪽이 격돌했고, 발레리아를 공격했던 오크는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서서히 쓰러졌다.
“퀴이이이…….”
어느새 놈의 몸통은 발레리아의 공격에 반토막이 나있었다.
너무 순식간의 일격이라서 카일은 미처 상황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럴 때면 카일이 하는 말이 있다.
“검은 바람?”
“예. 격돌하는 순간 발레리아가 공격을 위로 쳐 올리고 양손이 올라가서 자세가 흐트러진 놈의 허리를 수평으로 갈라서 베었습니다.”
“그렇군.”
카일의 눈에 안 보여도 검은 바람이 착실하게 보고 해설을 해주었다.
발레리아의 특기인 선 수비 후 공격으로 반토막이 난 오크인 것이다.
그녀가 검의 피를 닦고 돌아오자 카일이 말했다.
“상대해본 소감은 어때?”
“생각보다 제법이었습니다.”
“저게 소문으로 듣던 익스퍼트 급의 오크 전사였을까?”
카일의 말에 발레리아는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상대해본 오크 중에서는 가장 강했지만 익스퍼트에 비견될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상한 투기 같은 것도 보여 줬는데?”
“예. 하지만 능숙하게 사용하기보다는 억지로 쥐어짜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렇군.”
카일은 진지하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강제로 쥐어짰든 말았든 그런 힘을 사용 할 수 있다는 건 경계의 대상이다.
‘마음 한 구석에 염두에 둬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