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카일은 측근들을 모아서 회의를 열었다.
“…그런 이유로 이제 본격적인 던전 탐색을 위해서 인력을 충원하고 활동 지역도 더 밑으로 옮길 생각이다.”
카일은 우선 모험가로서 한 발 더 앞으로 나가기로 했다는 자기 결심을 밝혔다.
“주인님이 그러시기로 했다면 저는 그저 따를 뿐입니다.”
“저도요. 주인님. 어디까지라도 무조건 따르겠어요.”
“마찬가지예요.”
“저 역시 동의합니다.”
검은 바람을 필두로 해서 아리시아, 레이나, 발레리아까지 모두가 카일의 결정에 동의했다.
그들 역시 카일이 이런 결정을 할 순간이 온다고 생각했기에 매일같이 필사적으로 수련에 매진했던 것이다.
“우선 인재의 충원 말인데, 다른 걸 다 떠나서 사람을 늘릴 생각이다.”
“사람을 늘린다면 얼마나요?”
“지금 밑에 애들이 열 명이니… 구십 명 정도는 더 늘릴 생각이다.”
“총원이 딱 백 명 이군요. 이유가 있습니까?”
“길드에 보고했을 때 클랜으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최소 인원이 100인이었지.”
“아, 그렇군요.”
카일은 이제 자신의 클랜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미 그러기 위한 다음 준비를 시작했다.
“클랜이 되면 바이에른 내부에서 살기는 힘들 거다. 백 명이 넘는 무장 단체가 도시 내부에 머물고 있으면 이런저런 규제가 너무 귀찮아.”
“그렇죠. 그래서 대부분의 클랜은 도시 외각에 작은 시설이나 기지를 만들어 두고 상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 역시 찰스 씨에게 말해서 부동산을 알아봤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클랜이 사용하던 본부 시설이 하나 남아 있다고 하더군. 지금은 바이에른 시에 영속된 토지와 건물인데 내일 한 번 가서 살펴볼 생각이다.”
“주인님. 그럼 이 집에서는 나가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그건 좀…….”
“아쉽네요.”
“추억이 많이 쌓인 공간인데…….”
아리시아와 발레리아, 그리고 레이나가 굉장히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
이 집에서는 여러 가지 추억이 있었다.
카일 역시 처음으로 마련한 보금자리이기도 했고 각별한 애착은 있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이대로 임대 연장, 아니 그냥 매입을 해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집을 사려고도 해봤는데 상대방이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더군.”
“예? 어째서요?”
레이나가 깜짝 놀라서 반문하자 카일이 피식 웃음 말했다.
“원래 이 집은 유령이 저주를 내렸다는 이상한 누명이 씌워져 있었거든.”
“유령? 그런 게 있었다고요?”
레이나가 깜짝 놀라서 반문했지만 카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 없어. 레이스 같은 언데드 몬스터도 아니고 있을 리가 없잖아? 그냥 그런 누명이 있었다는 것뿐이야. 어쨌든 덕분에 몹시 싸게 구할 수 있었지. 하지만 이제 그 누명도 풀린 모양이고, 상대 쪽에서도 정상적인 매물이 된 물건을 비싸게 팔고 싶은 모양이야.”
“그 정상적인 가격에 구입하면 안 되는 건가요?”
레이나의 말에 카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매입하려면 최소 7,000골드를 지불하라고 하더군.”
“7,000골드?! 그렇게나요?”
이 도시의 시세를 고려할 때 이 건물의 적정 가치는 4,000골드 정도면 충분했다. 그걸 7,000골드로 뻥튀긴 것은 상대가 카일을 호구 취급하거나 아니면 팔 생각이 없다는 말이었다.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는 게 현명하겠지.”
그래서 카일은 과감하게 이사를 결심한 것이다.
임대 기간은 아직 꽤 남아 있지만 클랜 본부를 짓는다고 생각했을 때 건축, 혹은 수리에 필요한 기간까지 생각하면 지금부터 물건을 살펴보고 부지를 매입해야 했다.
카일이 결심을 굳힌 듯하자 측근 노예들도 따라서 마음을 굳혔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주인님의 결정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라는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다. 항상 성공하는 리더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신뢰감이었다.
* * *
다음 날.
“어서 오십시오. 카일 님.”
카일에게 나타난 것은 마차를 타고 등장한 찰리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 이렇게 잊지 않고 다시 찾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와의 거래 이후 카일 님이 승승장구 하고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몹시 기뻤습니다.”
찰리는 이전에 행크의 대장간에서 소개받았던 부동산 업자다. 지금 살고 이는 집도 이 남자를 통해서 계약을 했었다. 하지만 그건 이미 꽤 오래전의 일이고 그 후에는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찰리는 그런 카일의 소문을 이미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카일이 탐색견을 최초로 도입했다거나 그 후에 9층까지 진출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거나 하는 정보는 이미 비밀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몇 년 전에 딱 한번 거래를 한 상대를 기억하고 있을 리 없다.
찰리가 카일을 기억하는 이유는 뻔했다.
“이번에 바레스 상단의 사업에 투자하신 것도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운이 좀 좋았을 뿐입니다.”
바이에른의 상인들에게 카일은 현명한 투자자로 많이 유명하다.
카일이 본격적으로 사업에 투자를 하고 수익을 올리는 것을 보고 다른 이들도 비슷한 형식으로 투자를 했고 돈을 벌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한 가지 모르는 게 있었다.
사업에 투자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은 실패를 해서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사업에 투자한 사람들 중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돈을 날렸다.
그냥 사업이 실패해서 손해를 봤다면 모를까?
아애 사기꾼에게 속아서 거금을 통째로 날리고 파산한 이들도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오직 카일만이 계속해서 수익을 냈다.
열 번을 투자하면 그 중에 아홉 번은 성공을 하고 아홉 중에 둘이나 셋 정도는 두 배가 넘는 수익률을 냈다.
그러다 보니 바이에른의 상인들 사이에서 카일은 상당한 유명인이 된 것이다.
개중에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자기 돈을 카일에게 맡기고 투자를 운용해 달라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지만 거절했다.
‘내가 펀드 매니저냐?’
카일은 아직 스스로를 모험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돈을 아무리 벌어도 스스로 지킬 힘이 없어서 여기저기 휘둘리며 돈을 뜯기는 상인 신세는 사양이었다.
“마차를 준비했습니다. 여기 타시죠.”
“감사합니다.”
기분 탓인지 대응도 예전보다 훨씬 더 정중해졌다. 평범한 여행 마차보다 훨씬 고급스런 마차에 올라탄 카일은 목적지로 향했다.
바이에른의 외성벽을 나가서 마차로 한 시간을 이동한 결과.
“여기가 목적지입니다.”
“그렇군요.”
마차에서 내린 카일의 눈에 보인 것은 형체만 남아 있고 다 쓰러져가고 있는 건물 몇 개와 잡초가 무성한 연병장, 그리고 다 썩어서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지는 울타리가 있었다.
“이게 매물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언제부터 폐허도 매물로 취급하셨나요?”
“하하하. 방치하고 시간이 좀 지나긴 했죠. 그래도 생각보다 좋은 물건입니다. 일단 부지가 넓고, 예전에 오백 명 규모의 클랜이 자리를 잡은 적도 있었기에 기반 시설도 남아 있죠. 상하수도 공사 설비도 남아 있습니다.”
“그걸 쓸 수 있나요?”
“수리를 하면 가능합니다.”
결국 싹 다 고쳐서 써야 한다는 말이다.
“일단 좀 둘러보죠. 너희들도 살펴봐.”
“예. 주인님.”
카일의 말에 측근 노예들도 각자의 시선으로 이 부지를 둘러봤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본 그들은 말했다.
“주인님. 일단 부지는 넓습니다. 연병장도 커서 백 명 이상도 동시에 굴릴… 아니, 훈련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지 안에 남아 있는 건물은 총 다섯 채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두 개 정도는 다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할 정도입니다.”
“주인님.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제법 규모가 큰 숲이 있어요. 몬스터의 습격에 대비하려면 울타리는 좀 불안하네요. 성벽까지는 아니라도 최대한 목책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측근 노예들의 보고를 받은 카일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그렇다고 하는군요.”
“하하하, 뭐, 단점이 좀 있기는 하죠. 그래도 참 싸게 나온 매물입니다. 이 넓은 부지가 50,000골드밖에 안 하죠.”
“제가 보기에 이걸 다 고치려면 그것도 50,000골드 정도는 들 것 같군요.”
“으음, 혹시 다른 매물도 한 번 둘러보시겠습니까?”
“추천할 만한 물건이 더 있나요?”
“물론이죠. 추천할 만한 물건이 몇 개인가 더 있습니다.”
“그럼 일단 둘러보도록 하죠.”
매물이 여러 개 있는데 굳이 처음에 본 물건을 바로 선택할 필요는 없었다.
카일은 그날 하루 종일 마차를 타고 매물을 돌아봤다.
찰리가 소개하는 물건들 대부분은 이미 없어진 용병단이나 클랜이 사용하던 근거지들이었다.
물건들 자체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거다!’ 싶은, 감이 오는 물건이 없었다.
“물건들 대부분이 수리가 필요하군요.”
“어쩔 수 없습니다. 대형 시설은 사람이 살지 않고 방치하면 빠르게 노쇠하거든요.”
“그렇군요.”
결국 수리비는 필수라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중에는 처음에 봤던 물건이 가장 쓸 만하긴 하네.’
“다음에 보여드릴 물건이 가장 마지막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부지는 수리비가 필요 없습니다.”
“호오? 그래요? 상태가 좋은가 보죠?”
“하하하. 그게 말이죠.”
찰리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고 현장에 도착한 카일은 이 매물에 왜 수리비가 필요 없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여기는 수리비 대신 건축비가 필요하겠군요.”
“예, 뭐… 그렇긴 하죠.”
마지막 매물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넓은 토지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평평한 초지 위에 작은 실개천 하나가 가로지르고 있었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물건은 아주 작은 오두막 하나뿐이었다.
“여기는 뭐죠?”
“원래는 말을 풀어서 키우던 목초지였다고 합니다. 최근 매물로 나왔죠.”
“과연 그렇군요.”
넓은 초지에 수량이 풍부해 보이는 실개천이 흐르는 것을 보니 말을 풀어서 키우기에는 확실히 딱이었다.
“이 매물의 장점은 무엇보다 넓은 토지입니다.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매물 중에 가장 넓습니다.”
“그래요. 어디부터 어디까지죠?”
“저기 개천이 시작하는 상류 지점부터 저기 박아 놓은 말뚝까지입니다.”
“호오… 넓기는 정말 넓군요.”
이제까지 봤던 매물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넓었다.
‘수원이 가까이 있으니 식수나 생활용수도 손쉽게 조달할 수 있을 테고…….’
카일은 이 매물이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다른 부지를 사도 수리비가 꽤 들어갈 텐데 그럴 거면 처음부터 건축비용을 들여서 0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너희들이 보기에는 어때?”
카일의 질문에 검은 바람이 말했다
“저는 최고입니다.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여기는 마치 제 고향이 생각나는 군요.”
검은 바람은 드넓은 초원지대에서 말을 달리던 남자였다.
비록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초원에 비할 바는 아닐지 몰라도 오랜만에 넓은 초지를 밟으니 기분이 들뜬 모양이다.
발레리아 역시 동의했다.
“수리비는 아무리 작게 잡아도 최소 견적이라는 게 필요하겠지만 여기서 처음부터 시작한다면 차라리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 겁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클랜을 만들고 사람의 규모가 커지는 것에 따라서 증축을 할 수도 있고, 지금 당장 들어가는 예산을 절감하려면 여기가 가장 좋을 것 같다.”
카일은 발레리아의 말에 격하게 동의했다.
안 그래도 카일 역시 그 점을 생각하고 있는 장점이었다.
‘요즘 생각하는 건데 발레리아는 이런 방면으로 재능이 있어.’
카일이 다른 상인들과 거래하는 현장에 검은 바람과 번갈아가며 호위로 데리고 다녔었다.
그리고 검은 바람과 달리 발레리아는 카일이 하는 말을 거의 다 이해하는 듯 했는데 언제 부터인가 자기 의견도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 자신도 몰랐겠지만 그녀는 상재(商材)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리시아와 레이나는…….
“저는 주인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저도요.”
둘은 부동산에 대한 판단 능력은 없어 보였다.
“뭐, 그럼 결정 난 것 같군. 찰리 씨.”
“예. 부르셨습니까?”
“이 매물을 사고 싶군요. 가격은 얼마인가요?”
“토지의 권리와 바이에른 시청에 지불해야 할 세금과 제 수수로까지 다 해서 15,000골드입니다.”
“그렇군요. 서류가 준비되는 대로 지불하죠.”
“크흠, 제 수수료 말인데 말입니다.”
찰리가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카일 님이 몇 마디 말만 해 주시면 저렴하게 혹은 아애 없애 드릴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이죠?”
“최근 제가 여윳돈이 생겼는데 좋은 투자처를 찾기가 어려워서 말이죠.”
“아…….”
찰리가 하려는 말이 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뭔가 좋은 정보가 있다면 알려주실 수 있을 까요?”
지난 1년 동안 카일에게 이럴 말을 하는 사람이 꽤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