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9층에서 활동이 가능한 전력을 갖추고 길드 지부장과 스톰 클랜의 중간 관리자쯤 되는 파티장 오웬을 배경으로 만들기도 했다.
여기까지 활동을 성공했으면 사실 모험가로서는 이미 충분히 성공했다고 할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카일이 자신의 부하들을 모아 두고 말했다.
“한동안은 평범한 활동에 전념한다.”
“평범한 활동 말입니까?”
“그래. 9층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달에 두 번 정도 던전에 들어가겠다. 그 외의 시간은 훈련과 휴식을 반복한다.”
“저는 무조건 주인님의 뜻에 따르겠어요.”
“저는 찬성입니다.”
“저도요.”
여성진은 모두 찬성했다. 그리고 검은 바람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한동안이라면 얼마 정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선은 레이나의 초능력이 각성할 때까지로 하자.”
“알겠습니다. 저 역시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파티의 활동 방침을 정한 카일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동안 너무 눈에 띄었어. 한동안은 숨을 죽이고 힘을 축적해야지.’
대륙력 524년 2월의 일이었다.
* * *
모험가로 데뷔하고 2년.
카일은 그 동안 모험가로서 꾸준하게 발전하는 모습만을 보여 왔다.
처음에 13골드 80실버를 손에 쥐고 맨손으로 바이에른에 상경한 16세의 애송이는 어느새 9층에서 활동하는 파티의 파티장이 되었다. 고작 2년 만에 이 정도로 발전한 것은 모험가로서 고속 출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카일은 아직 만족할 수 없었다.
스톰 클랜의 본부를 직접 방문해 보고 깨달았다. 아직 자신은 한참 멀었다는 것을 말이다.
군사 요새를 방불케 하는 스톰 클랜의 본부와 그들의 숨겨진 힘은 어지간한 군벌 귀족과도 전쟁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것이었다.
그런 대형 클랜에서 보기에 카일이 이룩한 힘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훅 불면 꺼져버리는 촛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전생에서 이미 세계 정부라는 거대한 힘에 절망해 본 카일은 절대 지금의 위치에 안주할 수 없었다.
더 강해지고, 더 크 힘을 손에 넣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은 내실을 다져야 했다.
카일은 종이를 꺼내서 자신의 목표를 정리해 봤다.
“우선 초능력을 더 강화해야겠지. 내 비장의 수니까……. 그리고 돈과 사람도 더 모아야 하고, 또…….”
정리해 보니 해야 할 일은 크게 세 가지였다.
1. 초능력의 강화
2. 돈과 인력의 충원
3. 주요한 인재의 충원
힘을 더 모으기 위해서 지금 카일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들이었다.
초능력의 강화는 그 동안 너무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카일의 초능력을 두 가지다.
염동력과 능력자 각성.
그중에서도 염동력은 사실 여러 방면으로 이용이 가능한 힘이지만 카일은 오로지 자신이 내부 신체에 작용시키는 힘, 즉 신체 강화에만 사용하고 있었다.
원래 염동력은 크게 내부에 작용하는 힘과 외부에 작용하는 힘이 있다.
카일은 전생하고 나서 눈에 띄는 것을 두려워해서 오직 내부에 작용하는 신체 강화만 주력했고, 외부의 물체에 작용하는 염동력은 거의 수련하지 않았다.
신체 강화 능력이야 겉으로 표가 나지 않지만 물체를 직접 움직이는 싸이코 키네시스는 바로 표가 나니 수련을 등한시한 것이다.
“어디…….”
카일은 동전 하나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거기에 정신을 집중했다.
동전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떠올랐다.
“후우우우…….”
카일은 심호흡을 하고 그걸 바로 옆에 있는 물잔으로 천천히 옮겼다.
따랑!
동전은 컵의 모서리에 부딪히더니 거대로 땅에 떨어져 버렸다.
그 모습에 카일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형편없군.”
전생에는 순수하게 염동력으로도 200킬로그램 정도의 바위는 움직일 수 있었는데 말이다.
앞으로는 외부의 물체를 움직이는 싸이코 키네시스도 어느 정도 수련을 해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성 능력을 진화시켜야 해. 어떻게 해서든.”
이건 카일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다.
전생에 카일은 하루에도 수십 명의 초능력자를 각성시킬 수도 있었다.
물론 세계 정부에서 미친 듯이 갈구니까 그렇게 한 것이고, 그때마다 토할 것처럼 힘들었지만 그래도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직 하루에 한 명의 각성자만 관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하루에 잠들기 전에 한 번 정도만 말이다.
사실 이건 카일의 실수다.
초능력 트레이닝은 근력 트레이닝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한계까지 사용하면 할수록 능력은 더 빠르게 성장한다.
그런데 카일은 외부의 시선을 조심한다는 명분과 전생과 달리 세게 정부의 억압이 없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진행하고 있었다.
근력 트레이닝으로 비교하면 매일 같이 들어서 익숙해진 무게를 계속 같은 횟수로 들면서 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는 빠른 효과를 보기 힘들다.
더 무겁게, 더 많이, 더 힘들게 해야 조금씩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법이다.
그날 저녁, 카일은 레이나의 코어를 한 시간 넘게 활성화시켰다.
“주인님. 어째서 이렇게 오래…….”
“가만히 있어.”
카일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레이나의 이마에서 손을 때지 않았다.
‘빌어먹을……. 오랜만에 하니까 개빡세군.’
전생에 카일은 그만하고 싶어도 그만할 자유가 없었다.
“계속해라. KA―98746번.”
“누가 쉬라고 했나? KA―98746번.”
“일어났나. KA―98746번, 오늘의 할당량은 어제보다 두 배 더 많다. 실패하면 페널티를 부과하겠다.”
그렇게 혹독한 환경 속에서 죽기 직전까지 능력을 혹사해야 했다. 어쩌면 그 기억이 너무 끔찍해서 초능력을 성장시키는 것에 소극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외부의 시선을 주의해야 한다는 명분을 핑계 삼아서 말이다.
하지만 이제 결심을 굳혔고 오랜만에 초능력을 한계치에 가깝게 사용하니, 뇌가 녹아버릴 것 같은 고통에 감싸였다.
주르륵.
“어머. 주인님. 피 나요, 피! 코에서 피가… 눈에서도……!”
“크으윽…….‘
결국 카일은 한계까지 능력을 사용하고 난 후에 쓰러졌다.
다행인 것은 카일의 눈앞에 있는 레이나가 성직자라는 것이다.
“레테 여신이시여 당신의 손길로 상처 입은 이를 보살펴 주십시오. 힐.”
그녀의 손에서 은은하게 빛이 남녀서 카일의 머리를 쓰다듬자 피가 멎고 고통도 좀 덜해졌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괜찮을 거야. 아마도 뇌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모세 혈관들이 파열한 거겠지.”
전생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겪은 일이다
KA―98746일 적 카일은 과부하가 걸린다고 해서 능력을 쓰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는 메디컬 박스에 집어넣은 후 지혈만 되면 다시 현장이 투입되었어야만 했었다.
그때에 비해서 지금은 낫다. 레이나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그녀가 해주는 힐을 받으면서 편히 쉴 수 있으니 말이다.
“너무 무리하신 것 아닌가요?”
“무리…해야지. 무리도 할 때는, 해야 돼…….”
“…….”
“모두 미래를 위해서야. 지금은 그냥 날 믿고 따라와 다오.”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리고 레이나는 카일에게 말했다.
“제가 뭔가 할 수 있는 건 없나요?”
“지금처럼 치료해 줘. 그럼 난 레이나 가슴을 만질게.”
“주인님…….”
카일의 장난에 얼굴을 붉히는 레이나였다.
“농담이야, 농담.”
장난식으로 말하는 카일이었지만 레이나도 알았다. 이게 자신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한 배려라는 것을 말이다.
그날부터 카일은 매일 밤 한계까지 자신의 초능력을 사용하며 레이나의 코어를 활성화시켰다.
두 번째 계획 돈과 인력.
세상 어디를 가도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든든한 두 가지였다.
초능력 훈련을 다시 시작하는 동시에 카일은 이 두 가지에도 신경을 쓰기로 했다.
우선 돈.
이건 사실 지금도 충분히 벌고 있었다.
던전의 9층에 들어가서 일주일만 탐색을 하면 최하 700골드에서 900골드 정도는 벌었다. 게다가 보통의 모험가는 이걸 파티원들과 수익을 나눠야 하겠지만 카일의 경우 이 모든 수익이 자신의 것이었다.
물론 노예들의 장비와 의식주 일체를 모두 해결해야 하는 것도 카일의 몫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 따지고 보면 일반 모험가들과 파티를 맺고 활동하는 것보다는 훨씬 남는 장사였다.
이것만 해도 제법 큰 수익이었지만 카일은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모험가가 돈을 많이 버는 직종이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돈 하면 상인이지.’
카일은 오웬을 통해서 스톰 클랜이 직접 운영하거나 보호하는 상단과 접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에서 건실한 상단 하나를 통해서 오웬의 이름을 대고 약속을 잡았다.
약속 당일, 카일은 가장 깔끔해 보이는 옷을 입고 검은 바람만을 대동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마르크 상단의 상단주 마르크입니다.”
“감사합니다. 설마 상단주님을 직접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오웬 파티장님의 소개이니까요.”
마르크는 척 봐도 오만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마치 오웬의 소개가 아니면 너 같은 일개 모험가는 상대하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였다.
‘뭐, 그럴 만한 인물이긴 하지.’
그는 입고 있는 옷과 걸치고 있는 장신구까지 모두가 고급이었다. 그러나 고급스러우면서도 절대 천박해 보이지 않는 센스를 갖추고 있었다.
이 방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대형 상단의 상단주답게 자신이 재력가임을 과시하는 면면이 보였다.
가구는 모두 고급이었고, 벽에 걸려 있는 몬스터 박제는 희귀한 와이번 박제였다.
비서로 보이는 인물이 가져온 찻잔 역시 귀족들이 쓸 법한 고급품이었다.
‘역시 소문대로 제법이야.’
카일은 그 모든 모습을 평가하고 있었다.
마르크 상단은 여러 가지 물건을 취급하는 유통 상단이지만 그 중에서도 곡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단이다.
왕족부터 귀족, 평민, 노예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살려면 먹어야 한다. 그건 이 던전 도시 바이에른의 시민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이에른은 던전에서 나오는 마석을 수입원으로 해서 상업이 발달한 도시이지만 농업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근처에 약간의 농장이 있기는 했지만 그곳에서 나오는 소출로 바이에른 사람들을 먹이려면 하루에 일인당 밀 한 톨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이에른 영지의 식량 사정은 괜찮은 편이다.
돈만 내면 꽤 합리적인 가격으로 식사를 해결 할 수 있다. 대형 상단에서 꾸준하게 물자를 가져와서 바이에른에 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르크 상단은 바이에른에 유통되는 곡물의 40% 가량을 담당하고 있는 대형 상단이다.
이 거대한 도시인 인구 열 명중에 네 명은 마르크 상단에서 가져온 식량을 사 먹으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일은 이 점을 미리 충실하게 조사했었다.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최대한 건실한 상단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후, 오웬에게 부탁해서 무리한 부탁까지 하면서 이 상단주와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그게 마음에 안 들어서일까? 마르크라는 남자는 카일을 보고 오만하게 말했다.
“제가 좀 바쁜 이유로 10분 정도밖에 시간을 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용건은 짧게 말해 주시겠습니까?”
할 말 있으면 빨리 하고 꺼지라는 말이다.
아무리 오웬의 소개로 왔다고 해도 대형 상단의 상단주인 그가 일개 모험가를 극진하게 대접할 이유는 없었다.
보통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