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복귀를 결정하고 지상으로 복귀하는데 걸린 시간은 이틀이었다.
이제까지 하루 만에 복귀를 했던 카일이지만 9층부터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최단 거리로 전투를 피하면서 움직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틀 정도의 시간을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지상에 도착하니 그때는 마침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점심시간이었다.
“으으으… 도착했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태양이냐?”
“반갑습니다. 태양 님…….”
부하들은 지상에 도착하자 감개가 무량하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고, 발레리아는 그런 부하들을 단속했다.
“흐트러진 모습 보이지 마라.”
“예. 교관님.”
부하들이 다시 자세를 바로하고 카일은 길드의 직원과 마석을 정산했다.
와르르르르―
“많기도 많군.”
이전과 확연하게 다른 마석의 수확량에 길드 직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 성직자를 대동하고 9층을 쓸었습니다. 제법 쏠쏠하더군요.”
“과연, 그럼 있을 법한 일이지. 9층이 성직자들에게 상성이 워낙 좋거든. 듀라한만 없으면 거기서 혼자 다녀도 될 거야.”
“정말 그랬습니다. 덕분에 재미를 좀 봤죠.”
길드 직원은 카일과 잡답을 하면서 마석을 정산해 줬다.
“최하급 마석과 하급 마석이 많군. 그리고 중급 마석 75개, 상급 마석 13개, 최상급 마석도 3개를 가져왔군.”
“듀라한 중에 가끔 최상급을 주는 놈들이 있더군요.”
최상급 마석은 하나에 10골드나 한다. 규격이 정해진 마석 중에서는 가장 비싼 것이다.
최상급 이상의 결정도를 지니고 있는 마석도 있기는 있는데 그걸 등급 외 마석이라고 한다. 보통 던전 11층까지는 가서 거물을 잡아야 나오는 마석이라고 알려져 있고 아직은 카일과 관련 없는 일이다.
길드 직원은 마석을 다 정산하더니 말했다.
“다 해서 108골드 14실버 나왔네.”
“감사합니다.”
순수한 마석의 수입으로는 신기록 달성이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더니 하급 마석도 쌓이니까 무시 못 하겠는걸?’
108골드 중에 50골드 정도는 최하급과 하급 마석을 팔아서 얻은 금액이었다.
9층에서 레이스와 스켈레톤은 부산물을 주지 않는 대신 마석은 짭짤하게 토해냈고 그 덕에 높은 수익을 올린 것이다.
“너무 많으니 세 개로 나눠서 담아 주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카일은 수익을 정산한 후 부하들에게 돈 꾸러미를 들게 하고 던전을 나왔다.
그리고 바로 이동한 곳은 행크의 대장간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에 오셨군요. 카일 님.”
“그렇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걸 가지고 왔는데…….”
카일이 가져온 것은 듀라한을 죽이고 얻어온 검 열네 자루였다.
“호오오… 이거 참 좋은걸 가지고 오셨군요.”
대장간의 점원은 한눈에 듀라한의 검을 알아봤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바이에른 던전의 9층 명물이 아닌가?
여기서 이걸 몰라본다면 장사 접어야 했다.
“매입할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점원은 특수한 시약을 가지고 와서 듀라한의 검에 떨어트렸다. 무색의 투명했던 약품은 듀라한의 검에 닿자 옅은 보랏빛으로 변했다.
“틀림없는 진품이군요.”
“당연하지요. 설마 저를 의심하시는 건…….”
“하하하. 그럴 리가요. 하지만 저는 일개 점원일 뿐이니 정해진 절차를 잘 준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해합니다.”
사실 듀라한의 검은 바이에른의 던전에서 종종 나오는 물건이니 만큼 가짜도 많았다. 아무리 단골이라고 해도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는 말이다.
“모두 열네 자루니 한 자루에 50골드씩 쳐서 총 700골드면 어떨까요?”
“700골드라……. 생각보다 싸군요.”
마석이 있고 거기다 오고 가면서 챙긴 트롤의 가죽도 세 장 있지만 듀라한의 검이 생각보다 저렴했다.
“꽤 오래전에 내가 미스릴이 함유된 도끼를 가져왔을 때 매입가격은 150골드였지 않소? 같은 삼대 금속인데 반도 안 되는 건 좀 그렇군요.”
카일의 말에 점원은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죠. 하지만 바이에른에서 아다만티움은 그 출처가 정해져 있는 물건입니다. 희귀하기는 하지만 9층을 탐색하면 반드시 나오는 물건이죠.”
“으음. 그거야…….”
“거기다 최근 스톰 클랜이 복귀하면서 상당한 양의 물건을 가지고 왔습니다. 데스나이트의 검도 풀렸죠. 그래서 시세가 내려간 꽤 상태입니다. 예전 같으면 한 자루에 70골드는 했을 겁니다.”
듣고 보니 납득 할 수 있는 설명이긴 했다. 행크의 대장간 직원은 계속 침을 튀기며 카일에게 설명했다.
“사실 예전에 카일 님이 가져오신 미스릴 함유 도끼가 너무 특수한 경우였습니다.”
“그런가요?”
“예. 그걸 어떻게 고블린 따위가 가지고 있었는지 아직도 의문입니다. 정말이지 이 도시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한 저이지만 그 정도 대박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희귀한 경우였습니다.”
한마디로 예전에 카일이 너무 운이 좋았던 것이라는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 가격에 거래하죠.”
“감사합니다.”
카일은 듀라한의 검을 매각하고 연금술사 길드에 들어가서 트롤의 부산물도 넘겼다.
모든 마석과 부산물을 매각한 결과.
마석으로 얻은 수입이 108골드 14실버.
트롤의 가죽과 간으로 얻은 수입이 90골드.
듀라한의 검으로 얻은 수입이 무려 700골드.
총수입이 898골드 14실버가 나왔다.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군. 한숨 돌릴 수 있겠어.’
카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이에른에 복귀하고 나서 돈을 쓰기만 하고 제대로 벌지는 못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요 몇 달간 유일하게 파티의 최대 수입원이 스노우가 암캐들과 교배하면서 받은 돈이었을 정도다.
사실 그게 꽤 짭짤하긴 했다.
한 달에 20골드 이상은 벌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카일이 데리고 있는 식구의 수를 생각하면 스노우가 암캐들 위에 올라타서 힘쓰는 것만 가지고 생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열다섯 명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생활비와 거주지의 비용은 물론이고 세금도 내야 했다.
노예를 소지하는 것에 제한은 없지만 그래도 소지하는 노예의 숫자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보유세는 더 높아진다.
카일이 검은 바람 한 명을 데리고 있을 때의 보유세는 1골드였지만 열네 명으로 늘어난 지금은 보유세만 30골드가 넘는다. 그렇게 많은 돈이 나가는 만큼 돈도 많이 벌어야 했다.
그리고 이번 던전은 카일의 재정 상황을 풍요롭게 하기에 충분했다.
“모두들 수고 했다. 집에 돌아가서 파티를 하자.”
“와아아아아!”
“감사합니다. 주인님.”
“잘 먹겠습니다! 주인님!”
부하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그들은 경험상 알고 있었다. 카일이 이럴 때 쩨쩨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 * *
“하아아아… 좋군.”
카일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고 묵은 때와 피로를 씻어내고 있었다.
역시 던전에서 나온 후의 목욕은 좋았다.
특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생각하면 이건 호사를 넘어서 천국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 온도는 적당하신가요? 주인님.”
“안마해 드릴게요. 주인님.”
“주인님. 저기… 등을 밀어 드리겠습니다.”
아리시아, 발레리아 그리고 아직 부끄러워하는 레이나까지. 세 명의 여인들이 카일과 함께 욕탕에 들어왔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파티원이 일을 마치고 지상에 올라왔고, 이제 몸을 씻으려고 하는데 노예인 부하들은 당연히 카일이 먼저 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일도 그럴 생각이긴 했는데 자기가 씻고, 또 남자 노예들이 씻고, 마지막으로 여자 노예들이 씻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시간도 오래 걸리니 그냥 한 번에 해버리자는 생각으로 남자는 모두 같이 씻으려고 했다.
그러자 남자 노예들이 오히려 난감해 했다.
카일이 보통 주인과 다르게 노예에게 많이 관대한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주인과 알몸으로 욕탕에 들어가는 것은 많이 무례하게 보일 수 있었다.
그래서 대신 나온 절충안이 바로 카일과 여자 노예들이 다 같이 씻고, 그 후에 검은 바람과 부하들이 한꺼번에 씻는 것이었다.
어차피 두 번에 나눠서 씻는 건 같으니까 이렇게 짠 것이다.
아리시아나 발레리아는 카일의 목욕 시중을 몇 번인가 들어 봐서 익숙했지만 레이나는 꽤 어색한지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레이나 씨, 주인님 머리를 감겨 주세요.”
“예? 아… 예, 알았어요.”
그래도 아리시아가 지시를 내리는 것에 싫다고 말을 하지 않고 착실하게 행동했다.
그녀는 얌전하게 카일의 앞에 서 카일의 머리를 정성껏 감겼다.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신선했던 걸까?
카일은 자연스럽게 레이나의 가슴에 손을 뻗었다.
“아… 주인님, 여기서는…….”
“안 돼? 만지고 싶은데.”
“안… 되지는, 않아요…….”
레이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잔뜩 붉혔지만 카일의 손길이 자신의 피부 위를 쓰다듬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주인님. 어떠세요? 시원하세요?”
“아아… 그래.”
“주인님. 여기는 제가 씻길게요.”
“거기는… 아 잠시만…….”
아리시아와 발레리아까지 합세한 그녀들의 목욕 시중은 그 이상의 것이 되어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건전한 휴식과 회복의 공간이었던 카일의 집 지하 욕실은 순식간에 기원전의 로마 목욕탕 수준으로 문란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이대로 셋이서……. 그런 거 부끄러워서 못하는데…….’
순진한 레이나는 그 모습에 얼굴을 붉히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뒤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슬슬 나갈까?”
다행히도 카일은 욕실에서 여자 노예 세 명과 일을 벌일 정도로 난잡하지는 않았다.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세 명 중에 두 명은 아쉬워했지만 그들은 목욕탕에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나왔다.
그 다음으로 검은 바람과 다른 노예들이 욕탕에 들어갔다 나왔고 잠시 후 카일의 집 뒤뜰에는 바비큐 파티가 준비되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와 통째로 사온 술.
던전을 갔다 술과 고기로 카일은 지친 부하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본인도 이런 분위기를 즐겼고 말이다.
카일은 술잔을 높이 들고 모두에게 말했다.
“모두들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어서 아무도 죽지 않고 성공적으로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다. 오늘은 모두들 마음껏 먹고 마셔라. 내일 훈련은 없다.”
“와아아아아아!”
“주인님 만세!”
부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술잔을 들이켰다.
던전을 나와서 바비큐 파티를 하는 김에 카일이 계획한 것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쿵!
“일인당 50골드씩이다. 받아 둬라.”
그건 바로 노예들에게 포상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원래 노예에게 포상금을 주는 주인은 어지간하면 없다. 하지만 카일은 자신의 노예들이 정말 유능하고 잘 해주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들에게 최소한의 성의는 표시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주어진 50골드에 검은 바람과 네 명은 난색을 표했다.
“주인님. 일전에 주신 돈도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맞아요. 이런 것은 주지 않으셔도 충분해요.”
“맞습니다. 주인님.”
“예. 저도 돈은 필요 없어요. 필요한 건 다 주인님이 챙겨 주시는 걸요.”
네 명은 한 목소리로 사양했지만 카일은 단호하게 말했다
“받아 둬. 이건 명령이야.”
이럴 때 강경하게 명령을 하면 일단 먹힌다는 점이 좋았다.
네 명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돈을 받았다.
‘흠, 그런데 전에 준 돈이 아직도 남았다고? 이건 좀 문제가 있군.’
돈은 써야 가치가 있는 법이다.
그냥 쌓아 두기만 하는 돈은 그냥 반짝이는 돌덩어리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