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70화 (70/215)

70화

듀라한과 마주한 순간 카일은 객관적인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난 못 이겨.’

절대 못 이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아직은 말이다.

온 몸을 찌릿찌릿하게 자극하는 듀라한의 살기는 트롤이나 오크 같은 몬스터들에게는 느낄 수 없는 예리함이 있었다.

‘마치 검은 바람이나 발레리아 같은 실력자를 적으로 마주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듀라한은 머리를 들고 있는 손을 높게 들어 올렸다.

“우워어어어어어어!”

놈이 거칠게 포효를 했고 허공에서 수십 마리의 레이스가 나타났다.

“히히히히히히!”

자신보다 격이 낮은 언데드를 소환할 수 있는 사령술이다.

이게 듀라한이 까다로운 이유 중 하나다.

본인 자체도 강력한데 수십 마리의 레이스까지 소환해서 공격을 하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홀리 랜드!”

하지만 파티에 성직자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레이나의 손에서 퍼져나간 성스러운 빛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날아오던 레이스를 뜨거운 물에 닿은 솜사탕 마냥 녹여버렸다

“잘했어. 레이나.”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으으으으… 워어어어어!”

“저쪽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레이나의 말대로다.

홀리 랜드의 성스러운 빛이 닿은 순간 듀라한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했었다.

놈은 순간 몸을 움찔하며 잠시 물러나기는 했지만 그렇게 큰 대미지를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성질을 터트리며 거칠게 달려왔다.

“검은 바람, 발레리아. 앞으로 나가라.”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

카일은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 발레리아와 검은 바람을 둘 다 앞으로 보냈다.

“아리시아, 너는 대기. 부하들과 함께 레이나의 곁을 지키고 있어.”

“예. 주인님.”

아리시아는 활에 화살을 메기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었다. 유감이지만 시간 가속으로 활을 빠르게는 할 수 있어도 강력하게는 할 수 없다. 아직 그녀의 실력으로는 듀라한에게 화살을 박아 넣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앞으로 나간 발레리아는 방패를 단단하게 고정하고 듀라한과 격돌했다.

“흡!”

“그워어어어!”

콰아앙!

듀라한의 검과 발레리아의 방패가 격돌한 순간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듀라한의 검에는 검은색의 기운이 일렁거리고 있었는데, 그 일격을 막은 발레리아가 한걸음 뒤로 물러나야 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쯧, 제법이군.”

“그워어어어어!”

듀라한은 다시 흉포하게 괴성을 지르며 그녀를 공격했고 그녀는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면서 듀라한의 공격을 받아냈다.

콰앙! 쾅! 콰아앙! 쾅!

듀라한의 검에 서려 있는 검은색 기운은 오러가 아니다. 언데드 특유의 마력으로 오러를 단절하는 아다만티움은 오히려 저 기운은 더 증폭시켰다. 그 위력은 절대 기사들의 오러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발레리아는 그 공격을 몇 번이고 버티고 막아섰지만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어느 정도 뒤로 밀리고 있는 그 순간.

“이놈!”

검은 바람이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크어어어어!”

콰앙!

놈의 검과 검은 바람의 대도가 격돌했고 그 자리에서 둘은 검을 마주하고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이놈, 날려 주마.”

검은 바람의 근육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고 그대로 뒤로 듀라한을 힘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어어어어!”

그러나 뒤로 밀리던 듀라한의 머리에서 무언가 붉은 흉광(兇光)이 솟구치더니 갑자기 검은 바람의 몸이 멈칫했다.

일순간이지만 검은 바람의 시선이 멍하게 풀어졌다.

“그어어어…….”

그 순간을 노리고 듀라한은 검을 들어서 검은 바람의 심장을 찌르려고 했다.

“검은 바람!”

카일이 황급하게 외쳐서 경고를 했다.

“큭…….”

검은 바람은 눈을 뜨며 빠르게 몸을 틀었다.

촤아아악!

듀라한의 공격은 검은 바람의 한쪽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큭… 이놈이 간교한 요술을…….”

“환영술도 쓴다고 했잖아? 정신 차려.”

카일이 뒤에서 경고하는 말을 듣고 검은 바람은 이를 악물었다.

“감히 주인님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게 하다니…….”

그리고 검은 바람은 대도를 양손에 잡고 거칠게 휘둘렀다.

“으오오오오오오!”

“그워어어어어어!”

쾅! 콰왕! 쾅! 쾅! 콰지직―!

둘은 격렬하게 충돌했고 검은 바람과 듀라한의 공방은 사방으로 불꽃을 튀기며 격렬하게 부딪혔다

‘거의 호각인가?’

카일은 새삼 듀라한의 강함에 감탄했다.

검은 바람을 노예로 들이고 나서 그가 한 상대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많은 공격을 시도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거의 일격 아니면 이격으로 상대를 정리하는 검은 바람이었지만 듀라한과는 이미 10 합이 넘도록 격렬한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저 듀라한은 사령술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무력만 놓고 봐도 검은 바람과 호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가 유리하지.”

카일이 이 말을 하는 동시에 발레리아가 듀라한의 뒤를 점하고 공격했다.

검은 바람과 듀라한이 호각인 이상 거기에 발레리아가 더해지면 승기가 이쪽에 기우는 건 당연했다.

“하아압!”

배후에서 휘둘러진 일격.

기사가 하기에는 다소 비겁할 수도 있는 공격이지만 상대가 몬스터라면 괜찮다.

“크아앙!

콰앙!

무엇보다 상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을 휘둘러서 그 공격을 막아낼 정도의 강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발레리아의 기습을 막아 내기 위해서 검을 뒤로 휘두른 그 순간의 빈틈을 정면에서 대치하고 있는 검은 바람이 놓칠 리가 없었다.

“죽어랏!”

검은 바람의 강력한 일격이 듀라한을 쪼개려고 했다.

듀라한은 그마저도 몸을 비틀어서 최대한 피했지만 그 순간 놈의 한쪽 팔이 잘렸다.

서걱.

검을 들고 있는 쪽의 팔이 잘린 놈은 당황하면 떨어진 검이 있는 팔을 주워서 붙이려고 했지만 그걸 두고 볼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가 아니다.

“이놈.”

“끝장이다.”

둘의 검은 용서 없이 듀라한의 전신에 떨어졌다.

몸통과 어깨를 절단하고 최종적으로 땅에 떨어진 듀라한의 머리에 발레리아가 검으로 찔렀다.

“크아아아아아!”

그렇게 듀라한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최후를 맞이했다.

놈이 쓰러지자 그 자리에서 언데드의 육체와 갑옷은 연기가 되어 쓰러지고 남은 것은 마석과 놈이 사용하던 검은색 검뿐이었다.

듀라한을 잡고 나온 마석은 상급의 것이었지만 사실 진짜배기는 이 검이었다. 아다만티움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지상으로 가져가면 고가에 팔 수 있었다.

전리품을 회수하며 검은 바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애먹이는군.”

“그러게 말이야. 상처는 괜찮나?”

“별것 아니야. 그래도 환영술이라고 했나? 좀 거추장스럽군.”

짧은 순간이었지만 검은 바람은 자신이 꿈속에 있는 것 같은 몽롱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카일의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고 하지만 너무 안이하게 봤다.

어느새 다가온 카일은 두 사람을 보고 말했다.

“둘 다 부상은?”

“없습니다.”

“저도 경상입니다.”

“레이나, 치료해 줘.”

“예. 주인님.”

카일의 지시에 레이나는 바로 검은 바람의 부상을 치료해 줬다.

“레테 여신이시여 당신의 손길로 상처 입은 이를 보살펴 주십시오. 힐.”

레이나의 손에서 빛이 나면서 검은 바람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갔다.

“다행이 심각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렇군. 하지만…….”

카일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검은 바람, 네가 부상을 입다니…….”

그러자 검은 바람이 바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주인님.”

“질책하는 게 아니다. 그 만큼 9층의 난이도가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지.”

카일에게 검은 바람은 그냥 노예가 아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 동료였고 검을 지도해주는 스승이었다.

겉으로 말한 것은 없지만 검은 바람이 보여 주는 헌신적인 충성에 카일은 반드시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 검은 바람이나 발레리아가 죽을 것 같은 상황이 온다면 9층 공략 따위 접어버리는 편이 낫다.

카일의 표정을 본 검은 바람은 그런 카일의 생각을 눈치채고 한 발 먼저 빠르게 나섰다.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검은 바람 나는…….”

“빈말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제가 조금 방심한 것도 있고 여유를 부린 것도 있습니다. 제가 전력을 다한다면 듀라한 정도는 혼자서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고집 부리지 마라. 환영술에 걸려서 죽을 뻔 했지 않나?”

“다시는 그런 빈틈은…….”

“저기 주인님.”

어느새 검은 바람의 상처를 다 치료한 레이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말했다.

“왜 그러지.”

“환영술이라면 제가 어느 정도 막아 줄 수 있어요.”

“응? 진짜?”

“예. 간단하게 약식으로 각성의 세례를 내리면 정신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 방법이 있었단 말이야? 그럼 왜, 진작 얘기를 안 했어.”

“죄송합니다. 저도 미처 생각을 못 했어요. 꽤 오래전에 배운 축복인데 쓸 일이 없어서 좀처럼 안 쓰다 보니…….”

각성의 세례는 정신계 공격에 대해서 유효한 방어 수단이지만 바꿔 말하면 정신계 공격을 받을 일이 없다면 쓸 일도 없다는 말이다. 멀쩡한 인간에게 써봐야 기껏해야 철야할 때 일시적으로 졸음을 쫒아내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다.

수녀로서는 유능하지만 던전의 모험가로서는 경력이 전무한 레이나가 미처 생각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 몰랐다면 어쩔 수 없지.”

“죄송해요.”

“괜찮다. 그럼 그 각성의 세례라는 건 효과가 얼마나 가는 거지?”

“짧으면 30분 정도고 길면 한 시간 이상은 갈 거예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검은 바람의 말에 카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럼 다음에는 각성의 세례를 받고 준비해 보자.”

“예. 주인님.”

시행착오를 거치며 카일의 파티는 다음 전투에 준비했다.

몇 시간 후.

카일의 파티는 다시 한번 듀라한 한 마리를 만났다. 그러자 레이나가 재빨리 기도를 외웠다.

“여신 레테시여. 그대의 손길을 바라는 종이 원하오니 부디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강건함을 내려 주소서. 웨이크 업!”

그러자 그녀를 중심으로 빛의 파문이 번져갔고 카일을 비롯한 일행은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카일에게 이건 꽤 익숙한 느낌이었다.

‘고카페인 음료를 마시고 난 후의 각성 효과 같은걸?’

“그어어어어어!”

그리고 듀라한이 다시 레이스를 소환해서 공격하자 레이나도 빠르게 기도문을 외웠다.

“홀리 랜드!”

다시 빛이 퍼지고 그 빛은 레이스를 녹였다.

“다 했어요. 주인님.”

“좋아. 이제 쉬고 있어.”

레이나의 다소 지친 표정을 보고 카일은 그녀를 후방으로 돌렸다.

신의 힘을 빌려서 기적을 행사하는 성직자들의 축복은 마법사의 마법이나 기사의 오러보다는 소모가 적다.

하지만 결코 소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신의 힘을 끌어와서 실현시키는 과정에 소모되는 것은 인간의 정신력과 영혼인 것이다.

레이나는 제법 큰 기도를 두 번이나 연속으로 했고 이렇게 되면 잠시 쉬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애쓴 만큼의 효과는 충분했다.

“그어어어어!”

듀라한은 화가 나서 혼자서 달려들었고 카일의 파티에서는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가 함께…….

“발레리아. 잠시 뒤로 물러나게.”

아니, 검은 바람이 혼자서 앞으로 나섰다.

“괜찮겠나?”

“괜찮으니 물러나 있어.”

검은 바람은 걱정하는 발레리아를 뒤로 물리고 홀로 앞으로 나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