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69화 (69/215)

69화

이동하는 동안 카일은 오웬에게 허락을 구해서 아리시아를 선두의 바로 옆에 설 수 있게 했다. 사실상 오웬의 파티에 있는 도적에게서 약간의 노하우를 배워 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자 오웬은 약간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하지만 선두가 두 명이면 좀 그렇지 않나? 이동 속도도 느려질 것 같고… 피터, 너도 번거롭지?”

돌려서 말하고 있지만 오웬은 싫다는 뜻으로 거절하고 있었다.

“난 괜찮아요. 완전 환영입니다. 자, 아가씨, 이쪽으로 오시죠.”

남탕 파티에서 개고생하고 있던 도적 피터는 아리시아가 자기 옆에 온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파티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묵살해 버린 것이다

심지어 다른 파티원들도 별반 다를 것 없었다.

“크으으… 부럽다.”

“제길, 도적을 했어야 했어. 도적을…….”

“나는 왜 마법사 따위를 했을까?”

오히려 그들은 피터라는 도적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이런 뇌가 대가리가 아니라 하반신에 달린 새끼들을 봤나.’

오웬은 그런 자기 부하들을 보고 탄식했지만 어쩌겠는가? 본능은 솔직한 것이었다.

“자, 저기 보이시죠? 저렇게 늪이 있으면 무조건 의심하고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아시겠죠?”

“예. 그런데 늪이 있는 건 멀리서 어떻게 아시죠?”

“어두워도 지면에 굴곡이 없고 평평한 곳이 보이면 거기는 늪입니다. 뭐, 좀 지나다 보면 지형을 외우게 될 겁니다. 8층은 보통 넓게 탐색하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층이니까요.”

“과연 그렇군요. 역시 유능한 경력자 분은 다르시네요.”

“하하하하하! 무슨 그런 말씀을…….”

피터라는 도적은 경험이 풍부한 도적이었지만 도적 출신 중에는 드물게도 세상 물정 모르는 모쏠이기도 했다.

아리시아 정도의 미녀가 칭찬 한 마디만 해줘도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여기서 오른쪽으로 돌면 대규모 습지가 있습니다. 지나가는 길이지만 리저드맨이 자주 나오는 곳이니 주의해 주세요.”

“예. 아… 잠시만요. 지도에 기록해 놓을게요.”

“예. 횃불은 이리 주십시오. 제가 들어 드리겠습니다. 짐도 들어 드리죠.”

아니 그냥 자기가 알아서 손바닥 위에 올라갔다.

“크흠… 크흠…….”

오웬은 그런 부하가 못 마땅한지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줬다.

“…….”

물론 상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크흠, 크흠, 크흐흠……!”

결국 오웬은 더 크고 노골적으로 눈치를 줬다.

“파티장, 왜 자꾸 헛기침 하고 그래요. 목 아파요? 물줄까요?”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따위였다.

오웬은 주먹을 불끈 쥐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뒤졌어.”

카일은 옆에서 그 말을 들었지만 애써 못 들은 척 했다.

반나절 후.

“도착했다. 여기가 9층으로 내려가는 입구다.”

“그렇군요.”

원래 같으면 며칠을 헤맬 각오를 하고 수색하려고 했던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오웬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우리는 먼저 내려가지. 루트가 겹칠 수도 있으니 한 시간 후에 내려오게.”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신 점 감사합니다.”

“뭐, 피차간의 거래였는데. 강아지 건은 지상으로 올라가거든 내가 사람을 보내지.”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오웬의 파티는 먼저 9층으로 내려갔다. 던전에서 보기 드물게 합동으로 움직인 파티였지만 서로 간에 이득이 되는 좋은 만남이었다.

“그럼 아리시아 양. 다음에 탐색에 관해서 궁금한 게 있거든 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십시오. 제 연락처는 기억하시죠?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예.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피터 씨.”

“꼭 연락해야 돼요. 꼭. 연락 안 오면 제가 찾아…….”

“가자고 이 미친놈아.”

“왜 이렇게 질척거려.”

“딱 봐도 너 싫다고 하잖아? 그냥 포기해.”

“앗, 놔 이 새끼들아. 아직 작별 인사가……. 아리시아 양!”

피터는 동료들에게 목덜미를 잡혀서 질질 끌려가며 사라졌다.

“거참… 모험가는 돈을 많이 벌고 여자들에게도 나름 인기 있는 직업 아니었나?”

특히 스톰 클랜 같은 대형 클랜에 소속될 정도로 이름난 모험가들이라면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법했다.

사실 카일의 말대로다.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편이다.

특히 술집의 아가씨들이라던가, 화류계의 여자들에게 모험가는 인기 있는 상대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직업의 특성상 돈을 굉장히 잘 쓰기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서로 마음이 맞아서 실제로 살림을 차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어디나 예외는 있는 법.

오웬이 이끄는 파티는 파티장까지 포함해서 전원 남자, 심지어 전원 모쏠이다.

왜 이런 조합으로 파티를 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들만 모여서 파티를 꾸리는 건 어떤 의미로 기적과 같은 확률이었다.

“뭔가 안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 그런 느낌이 들었어.”

검은 바람과 카일은 오웬의 파티원들을 동정했다.

* * *

“좋아. 한 시간 지났다. 내려가자.”

“예. 주인님.”

카일은 파티원을 이끌고 9층으로 내려갔다.

드디어 목적지인 9층에 도착한 것이다.

“딱 봐도 음산하네.”

“그러게 말이야. 으스스하고 좀 추운데?”

그렇게 도착한 9층은 언데드 몬스터가 나오는 층답게 확실히 분위기가 으스스했다.

4층처럼 코를 찌르는 사취 같은 것은 없었다.

여기에 나오는 몬스터는 언데드 중에서도 제법 수준이 높은 몬스터들이었기 때문이다.

“레이나를 중심에 두고 이동한다.”

“예. 주인님.”

카일의 지시에 따라 파티는 본격적으로 9층 탐색에 들어갔다.

몇 시간 후.

카일은 황당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건, 참…….”

적지 않게 당황한 것 같은 카일에게 검은 바람이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도 예상 하셨습니까?‘

“예상은 했지.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그렇군요. 사실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전에 있던 파티에는 신관이 없었기에…….”

카일이 이렇게 황당해하고 있는 것은 9층의 난이도 때문이었다.

9층의 몬스터가 강력해도 일행에는 신관인 레이나가 있으니 활동 가능할 것이라는 계산으로 카일은 9층에 내려왔다.

그런데 말이다. 그 예상은 틀렸다.

“주인님 또 와요. 다시 정화할게요.”

“그래 부탁해.”

“자애와 조화의 여신 레테이시여. 그대의 종이 바라니 그대의 기적을 이 자리에 펼쳐 주소서. 홀리 랜드!”

레이나가 기도를 하고 정화를 펼치자 팟! 하고 빛이 났다. 그리고 저 멀리서 히히히히― 기분 나쁜 웃음소리와 함께 날아오던 레이스 무리는 그대로 녹아버렸다.

9층의 레이나는 거의 치트 캐릭터였다.

처음에 나타났던 것은 스켈레톤이었다.

하얀 백골을 달그락거리면서 움직이는 이 해골 병사는 원래 같으면 꽤 강적이다.

순수한 전투력은 오크보다 떨어지지만 이미 죽음의 영역에 발을 담구고 있는 이 해골 병사는 두려움은 고사하고 고통도 없었다. 약점인 머리가 부서지지 전에는 절대 물러나지 않고 기계적으로 눈앞에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공격한다.

“발레리아. 앞으로! 검은 바람 대기. 레이나는 정화 축복을 펼쳐.”

카일은 즉시 지시를 내렸고 일행은 명령대로 움직였다.

“자애와 조화의 여신 레테이시여. 그대의 종이 바라니 그대의 기적을 이 자리에 펼쳐 주소서.”

레이나는 기도를 마치고 은은하게 빛나는 신성력을 성구인 로자리오에 모았다.

“정화 언제든 가능합니다.”

그때 스켈레톤 병사들은 거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좋아. 지금 펼쳐!”

“옛. 홀리 랜드!”

레이나를 중심으로 성스러운 빛이 환하게 밝혀졌다. 어둡고 음산한 던전을 밝히는 그녀의 빛이 스켈레톤에게 닿는 순간…….

파사사삭

그 백골들은 과자 부스러기 마냥 바스라지고 말았다.

“…어?”

자신의 방패를 들고 전면에 나서서 자세를 잡고 있던 발레리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카일을 바라봤다.

“주인…님?”

“음… 이건 그러니까…….”

레이나의 정화가 이렇게 잘 먹힐 줄은 몰랐다.

카일은 괜히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마석이나 줍고 얼른 지나가자.”

“예. 주인님.”

카일의 체면을 생각해서인지 아리시아는 힘차게 대답하고 손수 마석을 주웠다.

그 후로도 9층을 탐색하며 상대한 언데드는 너무나 쉬웠다.

스켈레톤이 나타나도.

“자애와 조화의 여신 레테이시여…… 홀리 랜드!”

파사삭.

그보다 상위인 스켈레톤 워리어가 나타나도.

“자애와 조화의…… 홀리 랜드!”

역시 파사삭.

그렇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니 유령 형태의 몬스터인 레이스가 나타났다.

“히히히히히히!”

“키키키키키!”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인간에게 저주를 거는 유령형 몬스터 레이스.

카일은 이번에야 말로 강적이 나타났다고 정신을 바싹 차리고 지시를 내리고자 했다.

“홀리 랜드!”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레이스 무리는 그대로 사르륵 녹아 버렸다.

“…….”

카일은 레이나를 바라봤고 레이나는 쑥스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하지 말걸 그랬나요? 주인님의 지시는 안 떨어졌지만 그래도 될 것 같아서 해버렸어요.”

“아니, 잘했어.”

레이나의 신성력 하나만으로도 9층의 언데드 몬스터들은 말 그대로 녹이고 있었다.

그 결과 카일은 이제까지 던전에 들어오고 나서 했던 탐색 중에서 가장 편한 탐색을 하고 있었다.

소득도 제법이었다.

레이스나 스켈레톤이 주는 마석은 하급 아니면 최하급들이었지만 대신 마석을 주는 빈도가 높았다.

보통 오크의 경우 열 마리를 잡으면 세 마리 정도가 마석이 나왔지만 스켈레톤이나 레이스는 열 마리를 잡으면 여덟 마리는 마석이 나왔다.

마석의 질은 떨어져도 숫자는 확 올라간 것이다. 이것만 해도 상당한 수익이었다.

하지만 마석이나 한 꾸러미 챙겨가자고 9층까지 내려온 것은 아니다. 9층에서 진짜 대박을 터트리려면 역시 9층의 터줏대감 듀라한을 잡아야 했다.

“문제는 그 듀라한이 제법 만만치 않을 것 같단 말이지.”

카일의 고민은 듀라한의 위험성이다.

익스퍼트 수준의 검사라면 트롤은 무난하게 잡을 수 있다. 검은 바람이나 발레리아게 실제로 그렇게 했고 말이다.

하지만 듀라한의 경우 그런 익스퍼트급의 전사들도 심심치 않게 당한다는 말이 있다.

지부장을 통해서 길드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익스퍼트 상급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검사가 듀라한에게 당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순수한 무력만 따져도 익스퍼트 수준의 무력을 가지고 있으며 상위의 언데드 몬스터 답게 특유의 사령술과 환영술까지 다룬다. 거기에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말려들면 익스퍼트 상급의 모험가도 명을 달리 할 수 있는 몬스터. 그게 듀라한이었다.

물론 카일도 그걸 알면서 도박하는 심정으로 내려온 건 아니다.

승산은 충분했다.

‘만에 하나의 경우 검은 바람하고 발레리아가 다구리를 치면 이길 수는 있겠지.’

그런 계산을 하고 9층으로 내려온 것이다.

하지만 계산은 어디까지나 계산일 뿐.

실제로 듀라한과 마주쳤을 때 견적이 어떻게 나올지는 대봐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왔다.

“그어어어어…….”

그것은 검은색의 갑주를 입고 한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으며 자신의 머리를 반대편 손에 들고 있는 기사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손에 들려 있는 머리는 투구를 쓰고 있어서 얼굴 전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붉게 빛나는 두 눈의 흉측한 안광은 뚜렷하게 보였다.

“저게 듀라한이군.”

9층의 거물 듀라한의 등장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