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그렇게 해서 저쪽과 같이 다니게 됐다. 그런데 반응이 왜들 이래?”
카일은 파티원들에게 오웬과 함께 행동한다는 것을 알렸다
어렵게 넓은 범위를 탐색할 것 없이 바로 9층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 파티원들도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표정들이 어쩐지 애매했다.
정확히 말하면 여자 파티원들 세 명의 표정이 애매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카일은 몰랐다.
자신이 오웬과 대화하고 있는 사이 세 명의 여자들이 귀찮을 정도로 남자들에게 구애받았다는 것을 말이다
처음에는 노예라는 것을 알고 물러났지만 그들은 다시 다가와서 말했다.
“주인이 허가만 하면 연애는 상관없는 것 아닌가요?”
“아니면 제가 돈을 모아서 당신을 되사겠습니다.”
“상관없습니다. 한눈에 반했어요.”
등등의 말을 하며 그녀들에게 끈덕지게 달라붙은 것이다.
물론 아무도 넘어가지는 않았다.
모두 카일에게 큰 은혜를 느끼고 있었고 남은 평생을 카일에게 충성하기로 맹세했으니 말이다.
특히 아리시아는 카일 이외의 남자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댄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
‘그럴 바에는 다시 몸에 불을 지르겠어.’
파티 간에 싸움을 할 수는 없으니 일단 좋은 말로 달래고 거절했지만 어쨌든 굉장히 끈질기고 피곤했다.
하지만 여기서 카일이 동행을 결정했는데 자신들이 싫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녀들은 바로 표정을 관리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요. 아무 문제없어요.”
“저는 주인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저도요.”
그녀들의 대답에 카일은 뭔가 찝찝했지만 그래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뭐, 별일이야 있으려고.’
라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내려가는 동안은 저쪽에서 길잡이를 하고 몬스터도 처리한다고 했으니 우리가 싸울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혹시나 하는 나서야 할 사태가 벌어지면 조절을 해라. 무슨 말들인지 알겠지?”
카일이 말하는 건 눈에 띌 수 있는 초능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말이다.
특히 검은 바람이나 아리시아의 능력의 경우 이제 제법 눈에 확 뜨인다.
몸이 두 배 이상 커질 수 있는 검은 바람이나,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속도로 가속하는 아리시아의 경우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명심하겠습니다. 주인님.”
다음 날.
불침번이 많아서인지 일행은 푹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간단하게 아침을 건량으로 해결하고 8층으로 출발했다.
“자, 출발한다. 피터 앞장서서 길을 열고 제이크, 후미를 경비해라.”
“예. 파티장님.”
“알겠습니다. 파티장님.”
오웬은 갑자기 불어난 무리를 능숙하게 데리고 8층으로 진입했다.
“숨 쉬기도 찝찝하네. 공기 중에 비린내가 나.”
“이거 어떤 의미로는 4층보다 더 불쾌한데?”
“그런 것 같아. 이제 4층은 레이나 수녀님이 계시니까 별것 아니잖아?”
“그렇지.”
던전의 8층은 한마디로 말하면 굉장히 불쾌한 환경이었다.
습기가 축축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옷이 몸에 달라붙었다. 발밑을 조심해서 걷지 않으면 무릎까지 차있는 웅덩이에 옷을 다 적시기 일쑤였다.
“으읏.”
“조심해!”
오웬의 파티는 이런 8층을 익숙하게 이동했지만 이게 익숙하지 않은 카일의 파티원들은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꽤 애를 먹고 있었다.
“뭣들 하는 거냐?”
“똑바로 못해?”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가 부하들을 다그치면서 최대한 전열을 가다듬었지만 그래도 이동 속도가 느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카일은 오웬에게 가서 직접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애들이 8층에는 처음 와봐서 이동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런데 자네 파티원들 중에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는 실력이 너무 떨어지는군. 정말 9층에 데리고 가도 되겠나?”
“전투보다는 짐꾼과 불침번 등의 잡일이 주목적입니다. 머릿수도 중요하니까요.”
“하긴, 그거야 그렇지.”
오웬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다른 사람의 파티 구성에 일일이 지적하면서 참견할 정도로 그는 오지랖이 넓지는 않았다.
다소 느리기는 했지만 일행은 순조롭게 8층을 이동했다.
“정지.”
앞장서서 이동하던 도적 한 명이 일행을 정지시켰다. 그리고 그는 옆에 있던 주먹만 한 돌을 하나를 주워서 앞으로 집어 던졌다.
덥석!
그러자 옆의 평평한 지면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확 튀어 올라와서 돌멩이가 있는 곳을 덮쳤다.
그것은 늪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자이언트 프로그였다.
황소만 한 크기의 거대한 개구리인 놈은 움직이는 건 뭐든지 집어삼켜 버리는 놈의 습성이 있다. 피터라는 도적은 그것을 이용해서 놈의 존재를 드러내게 만든 것이다.
“역시 있었군.”
“빨리 처리하고 가자.”
오웬의 파티원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그 개구리를 공격했다.
꾸웨에에엑! 꾸웨에에에엑!
놈은 마치 발정기의 두꺼비 같은 소리로 울었다. 그러곤 자신을 공격하는 인간을 보더니 독을 뱉어냈다.
“쳇, 귀찮게시리…….”
“물러나. 독은 소모품이니까 한 번 쓰면 못 써.”
“나도 알아.”
그 말대로 개구리는 한 번 독을 뿜어내더니 그 후에는 같은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 대신에 몸을 크게 움츠리더니 그대로 한 번에 뛰어서 적을 집어삼키려고 했다.
“왔다!”
그러나 오웬의 파티원은 자이언트 프로그가 그렇게 움직일 것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그대로 뛰어온 놈에게 일격을 날렸다
촤아악!
자이언트 프로그를 그대로 반토막 내버리는 깔끔한 일격. 그렇게 일격에 적을 처리한 전사의 롱 소드에는 오러가 서려 있었다.
‘익스퍼트? 검은 바람만큼 선명하지는 않지만 익스퍼트였던가?’
카일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오웬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놀라면 곤란하지. 우리 파티에는 익스퍼트만 해도 다섯 명은 있거든.”
“다섯 명이나 말입니까?”
“그 정도는 되어야 10층에서 활동할 수 있지.”
익스퍼트 다섯에 마법사, 거기다 자이언트 프로그를 발견한 도적도 상당히 노련해 보였다.
‘과연, 이게 대형 클랜의 수준이라는 건가?’
카일도 모험가로서 제법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위에는 위가 있었다. 그야말로 노는 물이 다르다는 느낌.
카일은 이들을 보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배울 수 있는 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자이언트 프로그라는 놈이 숨어 있는 건 어떻게 아는 겁니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어. 전신을 숨기고 있는 놈들이지만 늪 밖으로 두 눈을 빼고 있지. 동그란 무언가가 늪에 튀어나와 있다 싶으면 저놈들이 있는 거지.”
“그렇군요. 굉장히 쉽게 잡았는데 혹시 비결이라도 있나요?”
“비결이랄까… 처음에 기습만 안 당하면 사실 위험한 놈은 아니야. 트롤하고 비슷한 수준? 뭐, 독은 당하면 좀 위험하지만 자네 파티에는 수녀가 있으니 괜찮겠군.”
“해독이 가능한 독인가 보군요?”
“그렇지. 참고로 저 독은 가끔 연금술사 길드에서 팔리는 물건이기도 해. 그렇게 고가는 아니지만 말이야.”
“과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카일은 이번 기회에 자신이 몰랐던 정보를 얻어 내기 위해서 말을 걸었다.
아무리 검은 바람이나 발레리아가 실력이 좋다고 해도 만에 하나의 사태라는 것이 있다. 실제로 저 자이언트 프로그의 기습은 모르는 상태로 당했다면 꽤 위험했을 것이다.
일행이 지나갈 때 갑자기 급습을 한다면 파티원 중에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특히 전투 능력이 없는 레이나 같은 경우가 위험하다.
‘주의해 둬야지. 소노우에게 저 개구리의 냄새도 기억나게 해 놔야겠어.’
카일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스노우가 맹렬하게 짖었다.
컹! 컹컹!
“어? 스노우. 왜 이러니. 진정하렴.”
임시로 목줄을 잡고 있던 레이나가 당황하며 달랬지만 스노우는 계속해서 맹렬하게 짖었다.
“크워어어어어!”
스노우가 짖는 방향에선 피부에 진흙이 잔뜩 묻은 트롤이 맹렬하게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호오오… 이거 진짜군.”
오웬은 트롤이 달려오는 건 신경도 쓰지 않고 스노우를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트롤을 찾아낸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잘 맞출 줄은 몰았어.”
“예. 그렇죠. 그런데 저 트롤은…….”
“아, 괜찮아. 애들이 알아서 정리하겠지.”
오웬은 트롤에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오웬의 파티원들은 딱히 리더의 지시도 내리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빠르게 끝내자. 빠르게.”
“알아. 내가 먼저 제이크가 두 번째, 마무리는 론이 한다.”
“좋아.”
오웬의 파티원 중에 전사 세 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달려오는 트롤을 향해서 그 셋은 일직선으로 열을 맞춰서 마주 달렸다.
‘뭘 하려는 거지?’
카일은 그 모습을 차분하게 관찰했다.
“흡!”
우선 한 명의 전사가 앞으로 나서면서 트롤과 격돌했다.
콰앙!
그의 바스타드 소드와 트롤의 돌도끼가 정면으로 부딪혔다. 그리고 양쪽이 모두 주춤하며 충격을 상쇄하고 있는 동안 뒤에서 기다리던 남자가 지면을 스치듯이 앞으로 나아가더니 그대로 트롤의 다리를 일격에 잘랐다.
“하압!”
촤아악!
“크워어어어!”
트롤은 비명을 지르며 다리가 잘려서 지면에 쓰러졌다.
“마무리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열에 서 있던 전사는 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배틀 엑스를 휘둘러서 그대로 트롤의 목을 날렸다.
‘오오오…….’
딱, 3합이었다.
공격을 막고, 다리를 잘라 주저앉히고, 머리를 날려버리는 마무리까지. 완벽한 역할 분담으로 딱 세 번 만에 트롤을 처리했다.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도 트롤을 쉽게 잡아내기는 했지만 둘이 팀워크를 맞춰서 트롤을 잡아도 보통 10 합 정도는 걸렸다.
트롤의 정면에서 발레리아가 시간을 끄는 사이 검은 바람이 뒤로 돌아가고, 발레리아가 하체를 공격하면 그 틈에 머리를 날리는 게 둘의 필승 패턴이었고 이 패턴으로 트롤을 빠르게 잡아왔었지만 이들은 훨씬 더 빠른 패턴으로 트롤을 사냥했다.
“제법인걸?”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초반에 내가 막고, 검은 바람 네가 하체를 공격한다면, 음, 놈의 머리가 내 검이 닿는 곳까지 내려올 테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앞으로 트롤은 저 패턴으로 잡는 게 좋겠어.”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도 이 모습에 자극을 받았는지 자신들끼리 속삭이며 전략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행은 순조롭게 8층을 이동했다.
비록 이동 속도는 늦었지만 특별한 장애는 없었다. 그리고 이동하면서 카일은 8층의 특색을 알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기습하는 놈들이 많군요.”
“그런 편이지. 늪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모험가들 발견하면 기습하는 패턴이 대부분이야.”
자이언트 프로그는 그 거대한 몸을 늪에 숨기고 있다가 습격했고, 중간에 나타난 리저드맨 무리도 늪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일행을 공격했다. 오웬의 파티를 이끄는 도적이 사전에 모두 위치를 알아채서 위험한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사전에 잘 탐색할 수만 있다면 크게 위험하지는 않아. 탐색이 무엇보다 중요한 층이지.”
“그렇군요.”
카일은 고심했다.
이제까지 탐색은 스노우에 의지해서 해왔지만 과연 스노우의 후각이 늪 속에 숨어 있는 몬스터를 상대로 스노우의 후각이 통할까?
스노우는 익숙한 트롤의 채취에는 반응했지만 자이언트 프로그나 리저드맨에게는 반응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표적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지만 냄새 자체를 맡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몸의 대부분을 늪 속에 숨기고 있는 몬스터를 후각으로 찾아내는 것은 힘들 테니 말이다.
‘귀찮게 됐는걸…….’
이번에는 오웨의 파티에 노련한 도적이 이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이동해야 할까? 당장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만 해도 걱정이 되었다.
“주인님. 저쪽의 늪에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카일의 옆에 다가온 아리시아가 말했다. 그러자 선두에서 파티를 이끌고 있는 도적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늪에서 공기 방울이 올라와서 늪이 살짝 튀는 걸 봤어요.”
“어두운 던전에서 용케 봤군.”
도적은 아리시아를 칭찬했고 아리시아는 카일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어떤가요?”
“응? 아아… 훌륭해.”
“헤헤헤.”
카일이 칭찬을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아리시아는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아리시아는 청력뿐만 아니라 시력도 좋았지.’
스노우가 오기 전에는 아리시아가 은연중에 탐색과 경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두운 던전에서 카일이나 검은 바람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 다가오는 몬스터를 발견하고 먼저 알려줬던 그녀였다.
카일은 아리시아에게 말했다.
“늪에 숨어 있는 몬스터를 찾을 수 있겠어?”
“저 피터라는 사처럼 빠르게는 무리지만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에 카일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앞으로 8층에서 탐색은 아리시아에게 맡길게. 속도는 느려도 되니까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서 파티를 이끌어 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인님.”
아리시아는 그저 카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는 표정이었다.
“하아아아…….”
“서럽다. 서러워.”
“제길, 이럴 때는 진탕 마셔야 되는데.”
그리고 그런 아리시아의 모습이 오웬의 파티의 사기를 팍팍 떨어트리고 있었다.
뭐, 카일하고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