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격분한 파티원들 사이에 오웬이 나타났다.
“뭣들 하고 있냐?”
“파티장님. 우리 말 좀 들어 보세요.”
“세상에 저쪽 파티에 보이는 여자 세 명 있죠? 예쁘고 귀엽고 섹시한 여자. 세 명.”
“그 세 명이 전부 노예래요. 수녀님까지 포함해서 전부요.”
그 말에 오웬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고 있다. 저쪽 파티는 모두 카일이라는 파티장이 거느리고 있는 노예라고 하더라.”
“전부요?”
“그래. 가끔 있잖아? 노예나 가신들을 데리고 파티를 꾸려서 모험가로 활동하는 사람들.”
“그건 그렇지만…….”
“저게 다 노예?”
“와아… 돈이 얼마나 든 거야?”
오웬의 파티원들도 모험가로서 경력이 있는 몸들이다.
열 명의 짐꾼 노예들은 몰라도 검은 바람이나 발레리아가 심상치 않은 실력자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척 봐도 익스퍼트 중급 이상으로 보이는 저 두 명을 노예로 구입하려면 못해도 10만 골드 가까운 돈이 들 것이다.
아리시아라는 노예는 실력은 잘 모르겠지만 저 미모만 해도 역시 10,000골드는 넘을 것 같았다.
게다가 신관 노예라니?
그건 진짜 드물다. 드문 만큼 가격이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 귀한 집 자식이랍니까?”
“글쎄, 그건 모르지. 다만 내일부터 9층 입구까지 우리하고 같이 행동하기로 했다.”
“예? 어째서요?”
“거래를 했지.”
시간을 조금 전으로 돌려서 다시 카일과 오웬의 대화로 돌아가 보자.
카일과 오웬은 서로 대화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목적지에 관해서 얘기를 했다.
“파티에 수녀가 있다면 목적지는 9층이겠군.”
“예. 맞습니다.”
“좋지. 나도 파티만 있다면 9층에 있고 싶은데 그게 아니라서 말이야.”
“오웬 씨는 몇 층까지 내려가시나요.”
“일단 가볍게 10층에서 좀 돌다 오려고 한다.”
‘10층을 가볍게 돌아? 이 사람 내 생각보다 더 실력자인가?’
카일은 이 순간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 카일의 목적지가 9층이긴 하지만 내일 출발해서 바로 하루만에 8층을 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은 없었다.
8층의 몬스터가 두려운 건 아니다.
8층에 출몰하는 몬스터의 수준이 7층보다 좀 더 높기는 하지만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라면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길을 모른단 말이야.’
길드에서 판매하는 던전의 지도는 7층까지였다.
이 이상은 정보를 비공개로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구해 보려고 지부장에게까지 도움을 청해 봤지만 거절당했다.
7층 이하의 정보는 있다고 하지만 외부로 판매하는 것은 금지라고 했다. 왜냐하면 7층 이하의 정보는 대형 클랜들이 열심히 탐색해서 얻어낸 정보들이었고 그걸 길드에서 함부로 공개한다면 클랜이 목숨 걸고 얻어낸 정보의 유리함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랜이 길드와 이런저런 협상을 해서 던전의 지형 정보를 판매하는 건 7층까지로 제한한 것이다.
그 대신 귀띔으로 들은 유일한 말은 지금 있는 입구가 9층으로 내려가는 입구와 가장 가깝다는 말이었다. 그건 7층의 정보이니 전해 줄 수 있다고 말하며 지부장이 몰래 알려준 정보였다.
그래서 원래 같으면 카일은 내일부터 입구에 내려가서 최대한 넓은 범위를 꾸준하게 탐색하면서 9층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으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기 눈앞에 9층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아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한 번 찔러 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
카일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웬 씨,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8층에서 9층으로 내려가는 길을 아십니까?”
“당연히 알지.”
“그럼 혹시 가르쳐 주실 수 있을 까요?”
“당연히 안 되지.”
“…….”
장난기 섞인 오웬의 말에 카일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오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자네도 그냥 찔러본 셈이겠지만 포기해. 던전 안에서의 정보는 함부로 공개하는 게 아니야.”
“대가를 지불한다면 어떻습니까?”
“대가에 따라서는 가능하지? 그런데 뭘로 지불할 건가?”
“돈은… 충분하시겠죠?”
“그래도 있으면 좋지. 한 50,000골드 정도라면 8층의 지형 정보를 판매할 수도 있네.”
그냥 안 팔겠다는 말이다.
“…….”
뚱한 표정을 하고 있는 카일에게 오웬이 말했다.
“아니면 저기 있는 자네 노예들 중에 한 명을 넘겨준다면 생각해 볼 수도 있지.”
“그건 거절합니다.”
카일에게 노예는 절대 양도나 판매의 대상이 아니다. 한 번 사들이면 죽을 때까지 책임질 수밖에 없다. 그건 검은 바람을 비롯한 간부는 물론이고 짐꾼으로 사들인 열 명의 노예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왜냐하면 저 녀석들도 내 특수 능력을 다 알고 있거든.’
검은 바람이 거대화해서 싸운다거나 아리시아의 몸놀림이 갑자기 가속화되는 것을 이미 몇 차례고 봤다.
당연히 함구령은 내렸지만 저 노예들도 카일이 뭔가 신기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정보를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노예의 양도는 절대 금지였다.
“뭔가 다른 것으로는 불가능할까요?”
“다른 것이라고 해도 말이지…….‘
오웬은 카일에게 별로 원하는 게 없었다.
소규모 파티를 이끌고 있는 카일과 대형 클랜에 소속되어 자신이 파티를 이끌고 10층에서 활동이 가능한 실력자인 오웬. 둘 사이에는 모험가로서 제법 큰 차이가 있었다.
거래에 대한 내용으로 생각에 잠기던 그때였다. 카일의 곁으로 스노우가 다가와서 놀아 달라는 듯이 낑낑거렸다.
낑낑… 끼잉.
“스노우, 방해하지 마. 저쪽으로 가 있어.”
우우웅…….
스노우는 풀이 좀 죽은 것 같았지만 얌전히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허어, 똑똑한 녀석이군.”
“훈련받았으니까요.”
“최근 개를 데리고 던전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은 들었지. 우리가 던전에 내려간 사이 생긴 유행이더군.”
“그렇죠. 7층에서 트롤은 탐색하기에 편리합니다.”
“그렇다고 하더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쓸모가 많아서 우리 클랜에서도 본격적으로 탐색견의 육성을 고려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 나오고 있어.”
“그렇군요.”
“흐음, 자네 개는 훈련을 상당히 잘 시켰군. 누가 훈련을 시켰나?”
“제가 직접 했습니다.”
“직접? 강아지 때부터 훈련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저 녀석 지금 몇 살이지?”
“이제… 대략 10개월 정도 되었군요.”
“10개월, 자네 상당히 일찍 탐색견 육성에 뛰어들었군. 좋은 시기에 재미 좀 봤겠어?”
그 말에 카일은 웃으면서 말했다.
“재미는 톡톡히 봤죠. 탐색견을 도입한 건 제가 원조입니다.”
“뭐? 진짜로?”
“예. 뭣 하면 길드의 지부장님에게 물어보십시오. 제 이름을 대면 아실 겁니다.”
카일은 은근슬쩍 지부장과의 인연이 있음을 어필했다.
“호오오… 자네가 말이지.”
“예.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스노우, 이리 와.”
카일은 어쩐지 이게 통할 것 같았다. 그래서 스노우를 불러서 말했다.
“앉아.”
스노우는 카일의 명령대로 착실하게 앉았다. 그리고 카일은 연달아서 명령을 내렸다.
“손, 반대 손, 엎드려. 뒤집어.”
카일이 지시를 내리는 대로 착실하게 따르는 스노우의 모습을 오웬은 흥미롭게 바라봤다.
카일은 간식을 꺼내더니 스노우의 앞에 놔두고 말했다
“기다려.”
스노우는 입맛을 다시며 간식을 뚫어지게 바라봤지만 카일의 명령에 복종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먹어.”
명령이 떨어지자 스노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맛있게 간식을 먹었다.
“잘했다.”
카일은 스노우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며 오웬에게 말했다.
“어떻습니까? 제법이죠.”
“흐음, 그렇군. 역시 원조는 다르다는 건가?”
오웬은 스노우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감탄했다.
그동안 클랜에서도 탐색견을 도입하고자 결정해서 여러 방면으로 다양한 견종의 사냥견을 구입하고 훈련을 시켜 봤다. 하지만 지금의 스노우처럼 명령을 척척 알아듣고 복종하는 개는 없었다.
오웬은 그런 스노우를 보더니 말했다.
“이 녀석을 나한테 주지 않겠나? 그럼 9층으로 내려가는 길을 안내해 주지.”
드디어 카일이 기다렸던 답이 나왔다. 하지만 카일은 그런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이 녀석을 주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겁니다.”
“뭐? 어째서?”
오웬이 눈살을 찌푸리며 따졌지만 카일은 침착하게 말했다.
“이전에 길드의 지부장님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스노우를 달라고 말이죠. 하지만 포기한 이유는 개의 충성심 때문입니다.”
“충성심이라고?”
“예. 이 녀석은 어린 강아지 시절부터 제가 직접 식사를 챙겨주고 훈련을 시키면서 저를 주인이라고 인식하게 했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에게 준다고 해도 주인으로 인식하지 못할 겁니다.”
“자네가 없어도?”
“힘들 겁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나 이종족이 아니라 개이지 않습니까?”
“쯧, 그렇단 말이지.”
오웬은 아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그때 카일이 말했다.
“포기하시기는 좀 이르죠.”
“무슨 말인가?”
“지부장님에게도 비슷한 제안을 했을 때 제가 한 제안이 있습니다. 스노우를 주는 것은 힘들지만 같은 화이트 울프종의 암컷을 사서 키우면 고배가 가능할 거라고 말이죠. 그렇게 해서 우수한 강아지가 태어나면 그걸 직접 훈련시키라고 했죠.”
“흐음, 나에게도 같은 일을 하라는 건가? 너무 번거로운데?”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지부장님의 애견인 아우레나는 스노우와 교배를 했고 지금 임신 상태입니다.”
“…….”
“그때 제가 지부장님에게 말했죠. 강아지가 태어나면 그중에 한 마리는 저에게 달라고 말이죠.”
“과연, 무슨 말인지 알겠네. 그 강아지를 나에게 주겠다?”
“예. 그걸로 8층으로 내려가는 입구와 거래하는 것은 어떨까요?”
카일의 말에 오웬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부모견이 좋은 개라고 해서 강아지도 같은 명견일 수는 없지 않나?”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확률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시도해서 오웬 씨가 손해 볼 것은 없죠.”
“그래. 그건 그렇지.”
오웬이 카일에게 지불하는 대가.
그러니까 9층으로 내려가는 길목을 가르쳐 주는 것은 그렇게까지 큰 대가는 아니다. 돈이나 물자를 소모하는 것도 아니고, 카일도 시간을 들이면 자력으로 찾아낼 수 있는 정보다.
짧으면 사흘, 길어야 열흘 정도 8층을 헤매면서 탐색한다면 9층으로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카일의 입장에서는 그 열흘의 시간을 줄여 보기 위해서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다.
오웬의 경우 우수한 탐색견의 종자를 가져오면 클랜에 보고를 할 수 있다.
최근 던전에서 탐색견의 존재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고, 클랜 차원에서 간부들에게 좋은 개나 훈련 방법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알아 오라는 지시가 내려진 상태다.
즉, 여기서 카일에게서 강아지를 가져오고 훈련 방법을 배워 온다면 클랜에 보고할 수 있는 공적이 된다는 것이다.
‘던전에 최초로 도입된 탐색견의 새끼, 거기다 한쪽은 지부장의 애견이라면 클랜 입장에서도 주의 깊게 봐주겠지.’
스톰 클랜 정도의 거대한 조직이 되면 조직 내부에서도 공을 세우기 위한 공적이 치열한 법이다.
그냥 신출내기 모험가에게 9층으로 내려가는 길 하나 가르쳐 주고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무조건 이득이긴 하군. 좋다.’
오웬은 마음을 굳혔다.
“강아지를 나에게 준다면 훈련 방법도 공개해 줄 텐가?”
“물론입니다. 이미 지부장님에게도 가르쳐 드리기 위해서 써놓은 노트가 있습니다. 그걸 필사해서 드리죠.”
“좋군. 뭐든지 서면으로 작성되어 있으면 보고했을 때 보기가 좋은 법이지.”
“보고라고요?”
“아니, 별것 아니야. 어쨌든, 거래는 받아들이지. 여기는 던전이니 그저 구두 약속일 뿐이지만 자네를 믿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좋아. 믿겠네.”
사실 이건 오웬의 입장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기에 할 수 있는 구두 계약이었다.
만약 카일이 9층으로 내려가는 길만 알고 지상에 올라갔을 때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때는 오웬이 알아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이 바이에른에서 모험가로 살면서 스톰 클랜을 거스른다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
어쨌든 카일로서는 성공적으로 거래를 이끌어 낸 것이다
‘좋았어.’
그리고 카일은 문득 자기 발치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스노우를 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네가 진짜 복덩이다.”
커엉!
스노우도 주인이 자신을 칭찬해 주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