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흑…….”
“크흠…….”
카일은 자기 뒤를 슬쩍 돌아봤다. 거기에는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를 바라봤다.
그 둘은 시선을 돌리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레이나의 얘기가 이 둘의 감수성을 자극한 모양이다.
‘그렇게 슬픈가? 아니면 이런 사연을 들어도 눈물이 나지 않는 내가 이기적인 걸까?’
카일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아원을 이어받았다고 하셨는데? 어째서 스스로 노예가 되실 생각을 하신 겁니까?”
카일의 말에 레이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돈이… 100골드가 필요했습니다.”
“100골드요?”
“예. 왜냐하면……·.”
레이나는 다시 얘기를 이어갔다.
* * *
고아원을 이어받고 레이나는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잡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돌봤다.
조금이라도 정신없이 움직이는 게 원장 수녀의 죽음을 잊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 빈민가의 악질 사채업자들이 찾아왔다. 이미 죽은 원장이 자신들에게 돈을 빌렸다고 말이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지. 안 그래?”
원금에 이자를 더한 그 금액은 무려…….
“…100골드, 라고요?”
“맞아. 이것도 많이 사정 봐준 거야.”
“그런 큰돈을 빌렸을 리가 없어요.”
100골드는 고아원에서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큰돈이었다.
이 고아원은 생전에 원장이 약초를 팔아서 얻는 돈과 고아원을 졸업하고 성인이 된 아이들이 보내주는 약간의 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렇게 큰돈을 빌린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사채업자들은 사인이 되어 있는 서류를 내밀면서 강제로 밀어붙였다.
“뭐야? 지금 우리를 의심하는 거야? 엉?”
“여기 서류가 있잖아? 서류가?”
“억울하면 경비대라도 불러 봐. 어디 불러 보라고!”
사채업자들은 거칠게 나오면서 주변의 집기를 내려치고 아이들을 위협했다.
“으아앙!”
“뭐야? 애 새끼가 왜 재수 없게 울고 지랄이야?”
사채업자 하나가 우는 아이를 위협했다
“그만두세요.”
레이나는 재빨리 아이와 사채업자의 사이로 달려가서 아이를 감쌌다. 하지만 그 와중에 그만 그녀의 로브의 후드가 벗겨지고 말았다.
“에엑?”
“뭐야? 이거 신벌 병이잖아?”
“우웩! 토 나와!”
사채업자들은 문드러진 그녀의 피부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레이나는 수치심에 얼굴이 확 붉어졌지만 뭐라고 대꾸 한 마디 못했다.
그런 그녀 대신 나선 것은 나이가 조금 굵은 토미라는 아이였다.
“우리 선생님한테 그러지 마요!”
“뭐? 이런 어린놈이 싸가지 없게.”
사채업자의 커다란 손이 아이의 뺨에 작렬했다.
짜아악!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그대로 토미는 쓰러졌고 레이나는 기겁했다.
“토미!”
달려가서 쓰러진 토미를 살펴보니 입안이 다 찢어져 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사채업자들에게 말했다.
“이러지 마시고 가세요. 안 그러면 경비대를 부를 겁니다.”
“뭐? 어디 불러. 불러 보라고.”
“신벌 병에 걸린 인간도 아닌 괴물 말을 누가 믿을까? 응?”
“…….”
레이나는 분함에 눈물이 왈칵 나왔다.
그런 레이나에게 사채업자들이 더 험악하게 말했다.
“어이구, 억울해? 괴물이 억울하기까지 해?”
“더 억울한 게 뭔지 보여줄까? 얘들아, 다 부셔라.”
“예. 형님!”
사채업자들은 그렇게 고아원의 집기를 부수고 한참을 난동을 부리며 아이들과 레이나를 윽박질렀다.
“그만둬요! 그러지 마요……!”
레이나는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사채업자들의 폭력이 돌아올 뿐이었다.
“으아아앙!”
“우리 선생님 때리지 마요!”
아이들도 울고불고 매달렸지만 사채업자와 그 부하들은 용서가 없었다.
놈들은 부술 만큼 다 부수고 고아원을 엉망으로 만든 다음 말했다.
“이봐, 괴물. 이 꼴을 당하기 싫으면 돈을 갚아. 안 그러면 고아원의 부지와 건물을 넘기든가?”
마지막에 진짜 본심을 드러낸 사채업자였다.
이런 가난한 고아원에 돈이 없다는 것 정도는 놈들도 안다.
진짜 목적은 부지와 건물이었다.
“그런……. 이게 없으면 아이들은 어쩌란 말인가요?”
“그걸 우리가 알게 뭐야? 억울하면 돈 갚던가?”
“그… 그런 억지를…….”
“한 달이야. 딱 한 달만 기다릴 테니 돈 가져오든가 고아원 비우든가 둘 중에 하나를 해.”
* * *
사채업자가 떠난 뒤, 레이나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경비대에 신고도 해봤지만 그들은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나병에 걸린 레이나를 괴물 취급하는 것은 그들도 같았다.
그나마 고아원의 아이들 이름으로 신고 접수는 했지만 그것뿐. 어떤 대응도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신고 사실을 알고 찾아온 사채업자들이 다시 한번 깽판을 놨을 뿐이다.
결국, 고아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돈이 필요했다.
레이나는 최선을 다해서 돈을 마련하려고 해봤지만 무리였다.
나병에 걸린 그녀는 일자리 하나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제는 토미가 소매치기를 하다가 죽을 뻔한 위기까지 겪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레이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을 노예로 팔려고 한 것이다.
“그래 봤자. 그것도 실패였지만요.”
그렇게 레이나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자신의 사정을 설명했다.
카일의 뒤편에서는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가 연민에 찬 눈으로 레이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아리시아가 입을 열었다.
“주, 주인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쉿.”
카일은 일단 아리시아를 조용히 시켰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충분히 예상이 갔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 카일도 그것과 같은 일을 할 생각이었다.
레이나를 도와줄 생각이었다.
카일은 충분히 그럴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단, 카일이 레이나를 돕는 이유는 그녀의 사연이 불쌍해서가 아니었다.
‘신성력을 지니고 있던 수녀. 거기다 스스로를 노예로 팔려고까지 했어.’
원래의 목적이었던 해적 노예보다 훨씬 더 우수한 조건이었다.
단, 카일이라고 해도 그녀의 처지를 악용해서 자신과 종속 계약을 맺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있었다.
그래서 카일은 말했다
“레이나 씨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예. 말씀하시죠.”
“만약 제가 100골드를 준다면 제 노예가 되어 주겠습니까?”
그 말에 레이나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게 정말… 인가요?”
“예. 단, 제 노예가 된다는 것은 제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걸 잘 생각하고 대답해 주십시오.”
카일의 말에 레이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하겠습니다.”
“잘 생각하고 대답하라고 했을 텐데요? 굳이 오늘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저 역시 아무런 생각 없이 스스로 노예 상인의 가게로 찾아갔던 것은 아닙니다.”
이미 각오는 다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녀에게는 설령 무슨 심한 짓을 당한다고 해도 고아원을 살릴 수만 있다면 모두 감수할 수 있다는 각오가 있었다.
“좋아. 그렇다면…….”
카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노예 시장으로 가죠.”
* * *
노예 계약에 필요한 종속 마법 스크롤은 외부로 함부로 반출되지 않는다. 워낙 강력한 효과를 지니고 있으며 무엇보다 악용당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노예 상인들 중에서도 종속 마법의 스크롤의 취급을 허가 받은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다행이 여기 칸테나에는 그런 가게들이 제법 있었다. 잡혀 온 해적들을 바로 노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필요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카일은 정식으로 공증인을 세우고 노예 계약서를 작성했다.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서명자 본인 레이나는 100골드의 현금을 천사의 고아원에 기부하는 조건으로 자신을 모험가 카일의 노예로 헌납하며 그의 모든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양쪽 모두 맞습니까?”
“맞습니다.”
“맞아요.”
카일과 레이나는 둘 다 동의했다.
“뭐, 내 알 바 아니니까…….”
노예 상인은 신벌 병 환자를 노예로 사는 카일이 전혀 이해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더 따지고 들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계약을 주선해 주고 수수료만 받으면 될 뿐이었다.
“그럼 계약을 진행하겠습니다.”
순간 스크롤이 찢어지고 빛이 카일과 레이나를 감쌌다. 종속 마법이 작동하며 둘 사이에 주종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다 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카일은 바로 노예 상인에게 수수료를 지불했다.
그리고 레이나를 보고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레이나.”
“제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카일 씨… 아니, 주인님.”
말실수를 하는 그녀를 보고 카일은 피식 웃었다.
“그럼 우선, 고아원에 갈까? 약속대로 100골드를 지불해야지.”
“감사합니다. 주인님.”
공증인까지 세운 이상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카일이 범죄자가 된다. 그러니 카일은 깔끔하게 돈을 지불할 생각이었다.
‘다만, 그 돈이 사채업자들 주머니에 들어가게 놔둘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 * *
천사의 고아원.
레이나가 모든 것을 바쳐서 지키려고 하는 이곳은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마지막 희망과 같은 곳이었다.
고아원이 또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고아원은 제대로 된 고아원이 아니었다. 원장이 원생을 학대하는 곳이 부지기수였고 더 심한 경우 아이들을 노예로 팔아서 수입을 올리는 곳도 있었다.
이 세계에서 고아라는 것은 장래의 범죄자, 혹은 장래의 노예라고 여겨질 것처럼 힘든 처지였다.
정말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봐주는 제대로 된 고아원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 천사의 고아원이 그런 예외 중 하나였다.
“선생님!”
“선생님, 오셨어요?”
“선생님, 선생님! 이제 안 아파요?”
레이나가 찾아가자 아이들은 진심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레이나를 반겨 주었다.
레이나는 그런 아이들의 마중을 웃으며 화답했다.
“선생님은 괜찮단다. 모두 착하게 잘 기다리고 있었니?”
“예. 선생님!”
“선생님. 제가 쓴 글씨 좀 봐주세요!”
“저는 그림 그렸어요.”
아이들의 그저 해맑은 모습에 레이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런 아이들을 대했다.
카일은 한 발자국 떨어져서 그런 레이나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이들 중에 호기심이 넘치는 아이들이 그런 카일에게 다가왔다
“아저씨는 누구에요?”
그런 아이의 말에 레이나는 순간 크게 고민하는 듯 했다.
여기서 카일이 자신의 주인이라는 것을 밝히면 그녀가 노예가 된 것도 밝혀야 했다. 스스로 각오를 하고 노예로 자신을 팔았지만 아이들에게 그 사실을 전하는 건 역시 힘들었다.
하지만 이내 입술을 깨물고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이분은…….”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말하려고 하는 순간, 카일이 아이를 들어 올리면서 먼저 말했다.
“나는 너희 원장 선생님 친구란다.”
그 말에 레이나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고 카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애들이 알 필요는 없지.’
그런 카일의 마음이 정해진 걸까?
레이나는 깊게 머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친구예요. 그럼 아저씨도 우리 하고 같이 살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지. 그보다 정정할 게 있는데, 나는 아저씨가 아니란다.”
“아저씨 아니면 뭐야?”
“오빠라고 해보렴.”
“으으음……. 싫어!”
“이 녀석이…….”
“헤헤헤. 싫지롱~ 아저씨라고 할 거지롱~”
아이는 재빨리 카일의 품에서 빠져나가 도망가며 카일을 놀렸다.
원래 이 나이 때 애들은 어린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시키는 대로 안 하고 청개구리처럼 행동하는 법이다. 그게 정상이다.
다만, 쓰레기 같은 어른들 중에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놈들이 있는 법이다.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다들 조용히 못해?”
바로 이놈들처럼 말이다.
평화로운 고아원에 나타난 것은 사채업자와 그놈이 끌고 온 양아치 부하들이었다.
놈들은 고아원에 나타나자마자 험악한 표정과 큰 목소리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던 중 카일을 보더니 순간 움찔했다.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카일의 존재는 놈들에게 경계의 대상이었다.
사채업자는 카일을 보더니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크흠… 댁은 누구요?”
“나? 나는…….”
카일은 잠시 주변에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지?”
“지나가던 사람? 그런데 여기는 왜……?”
“뭐, 어쩌라고. 무슨 불만 있어? 상대해 줄까?”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놈은 카일이 강하게 나오자 한 걸음 물러났다.
‘상관없겠지?’
그래도 직접 이 고아원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 않으니 굳이 적대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놈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 시작했다.
“어이, 괴물. 돈은 어떻게 됐어?”
인간쓰레기라는 역할 말이다.
레이나는 겁먹은 아이들을 뒤로 보내더니 한 걸음 앞으로 나와서 사채업자에게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여기 준비했어요. 이제 이걸 받고 물러나 주세요.”
“뭐?”
“돈을 준비 했다고?”
놈은 레이나가 돈주머니를 내밀자 오히려 당황했다.
아마도 당연히 레이나가 돈을 준비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