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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58화 (58/215)

58화

카일은 일단 자신의 숙소로 자리를 옮겼다.

여관 주인은 카일이 나병 환자를 데리고 오자 기겁을 했지만 돈을 얼마 쥐어주고 검은 바람으로 압박을 하자 일단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카일은 그녀와 자리를 마주 하고 대화를 시도했다.

“어제는 제 소개도 안 했군요. 카일입니다. 바이에른에서 모험가를 하고 있습니다.”

“레이나라고 합니다. 자애와 조화의 여신 레테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녀의 소개에 카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종이었다고 말하는 건 이제 수녀가 아니라는 겁니까?”

“자격을 잃었으니까요. 나병에 걸리고 나서 점점 신성력이 약해져 가더니 이제는…….”

“없어졌다는 말이군요.”

카일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이제 저에게는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어째서일까요? 그렇게 믿음을 다했는데…….”

“…….”

신의 뜻 같은 건 카일도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전생에 평생을 억압 받으면서 살았던 카일이 가장 원하는 삶은 자유로운 삶이지 누군가가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삶이 아니다.

설령 그게 전지전능하고 위대한 존재라고 해도 그런 건 사양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관이라는 사람들은 나하고 정반대되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지. 신의 뜻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뭐든지 다 하는 사람들이니 말이야.’

카일은 그 부분은 넘어가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스스로를 자매하려고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째서 그런 거죠?”

“…….”

“말씀하기 싫다면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가 도울 방법이 없군요.”

카일의 말에 레이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돈이… 필요했습니다.”

“무슨 용도로 말씀이십니까?”

“고아원의 빚을 갚기 위해서 필요한 돈입니다. 어제 당신이 봤던 토미라는 아이도 고아원의 빚을 갚고자 하는 마음에 소매치기를 했던 겁니다. 물론 잘못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요.”

“그렇군요. 그런데, 한때 신을 모시는 수녀였던 당신이 어째서 그렇게 고아원을 위해서 봉사하는 건가요?”

“그 고아원이 제 인생을 구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사정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카일의 말에 레이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 *

레이나는 어린 시절부터 신전에서 자랐다.

갓난아기였던 그녀를 신전에서 거둬서 키웠고 그녀는 신전의 보호 아래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신전에서 자란 아이는 보통 신전에 소속되는 진로를 선택하게 된다.

신관, 수녀, 팔라딘, 몽크 등등.

자신의 자질에 따라서 다른 진로를 선택하게 되지만 대부분 신전에 얽매인 삶을 사는 것은 똑같다.

레이나 역시 그랬다.

그녀는 자라서 수녀가 되었다.

그 결과에 별 불만은 없었다.

신전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이렇게 될 거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신성력으로 사람들을 돕는 것은 그녀에게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녀의 신성력은 상당해서 17세에 중급 수녀의 직위를 받을 정도로 훌륭한 성장을 거뒀다.

이대로 계속 성장하면 최고위 수녀가 될 수도 있다고 기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는 신전에서 골칫거리로 취급 받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금을 받지 않고 치료를 해주기도 했고, 길에서 난폭한 행위를 일삼는 귀족에게 맞서서 시민들을 지켜준 적도 있었다.

[나는 세상 모든 이들의 어머니이며 너희들은 모두 형제이자 자매이니라. 그러니 너희들은 모든 이들을 가족처럼 아끼며 사랑하라. ]

자애와 조화의 여신 레테의 말씀으로 성경에 나오는 구절 중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고 믿고 따르는 구절이었다.

그녀는 그 구절대로 행동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지만 그런 그녀의 언행은 신전의 고위층의 미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상을 무기 삼아서 신전의 권위와 질서를 어지럽히는 버릇없는 수녀.

그게 신전 고위층에게 찍힌 그녀의 이미지였다.

신전에서는 그녀에게 빈민가에 봉사 명령을 내렸다.

당시 빈민가에는 나병이 유행하고 있었음에도, 그 누구도 그곳에 가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가고자 희망하지 않는 그곳으로 신전이 그녀를 보낸 이유는 간단했다.

‘어디 네가 말하는 이상이라는 것이 현실의 벽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느껴봐라.’

신전에서는 그녀가 겁먹고 애원하며 자신이 잘못했다고 빌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레이나는 그러지 않았다.

“여신의 뜻을 행하는데 어떻게 망설임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대답한 그녀는 빈민가로 향했다. 오히려 나병 환자들을 두려워해서 웅크리고 있는 다른 신관들을 꾸짖으며 말이다.

그녀의 상관이었던 신관들은 대노했다.

겉으로 표는 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빈민가에 도착한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환자들을 돌봤다.

나병에는 신성력도 듣지 않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아직 병에 걸리지 않은 이들을 격리하고 병에 걸린 이들을 간호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치료했다. 몸이 힘들고 점점 피곤함에 지쳐갔지만 그래도 그녀의 신념은 굽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노력이 불러온 것은 잔인한 결과였다.

“이럴 수가…….”

자신의 손에 피부가 문드러지기 시작한 것을 보고 레이나는 절망했다.

여신의 뜻에 따라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그분의 말씀을 실천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신벌 병이라고 불리는 나병에 걸린 것이다.

신전은 이때다 싶어서 그녀를 공격했다.

“보라. 신전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규율을 어기는 이에게 내려진 신벌을!”

“아니, 이건 아니에요. 이건…….”

그녀는 자신은 결코 여신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소용없었다.

세간에서 나병은 신벌 병이라고 불렀고, 신관이나 수녀가 이 병에 걸렸을 때의 처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추방이다! 다시는 신전의 문턱을 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그녀는 추방당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존경받고 성스러운 존재였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보기만 해도 눈살을 찌푸리는 나병 환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알게 되었다.

세상이 약자에게 얼마나 가혹한지를 말이다.

신벌 병에 걸린 레이나의 인생은 실로 비참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을 섬기는 수녀로서 주변에서 공경과 존경을 받아 왔던 그녀였지만 이제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멸시와 폭력이었다.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와.”

“썩 꺼져! 우리 애한테 옮기면 어쩔 거야?”

“다시는 오지 마. 또 오면 태워 죽일 테다.”

모멸의 연속이었다.

세상 모든 이들은 그녀를 경멸했고, 그런 그녀에게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고 마실 물이 없어서 흙탕물을 마셔야 했다.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조차 고통이었지만 신을 모시는 그녀의 윤리관에 자살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 속에 집어 던져진 그녀는 하루하루 증오와 멸시의 칼날을 온몸으로 받으며 깎여 나가고 있었다.

“우리 가게 쓰레기 뒤지지 말라고 했잖아?”

“잘못했어요. 제발… 아악……!”

가게의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던 그녀는 잔인하게 폭행을 당했다.

떨어지는 몽둥이질에 머리를 감싸고 애원하는 그녀에게 음식점의 주인은 계속해서 폭행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 쓰러지고 나서야 그 잔인한 폭행은 멈췄다.

“퉤. 재수 없는 것. 죽으려면 다른데 가서 죽어.”

“…….”

‘차라리 이대로…….’

모든 것을 놔버리면 편해질까 싶은 마음에 그녀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삶에 대한 의지를 잃었던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차가운 멸시가 가득했던 곳이 아닌, 낯선 곳에 눕혀져 있었다.

“어, 깼다!”

“누나 괜찮아요?”

“정신이 들어요?”

그녀가 정신을 차린 곳은 빈민가에 있는 고아원이었고, 그녀를 둘러싼 것은 그 고아원의 아이들이었다.

“여기는… 읏?!”

그녀는 자신의 로브가 벗겨져 있는 것을 보고 황급하게 얼굴을 가렸다.

몸이 이렇게 되고 나서 가장 철저하게 든 습관이 얼굴을 숨기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귀엽다, 예쁘다 칭찬의 말만 들어왔던 레이나였지만, 얼굴의 피부가 문드러진 지금 그녀가 얼굴을 보일 때마다 돌아온 건 혐오와 폭력뿐이었다.

“괜찮아요. 우리는 신경 안 써요.”

“맞아요. 원장 선생님이 아픈 사람한테 나쁘게 대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아이들은 그런 그녀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태연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진심이 보였다.

“일어나신 모양이군요.”

아이들의 낯선 따뜻함 속에 있을 때,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고령의 노파로 낡기는 했지만 수녀복을 입고 있었다.

“당신은…….”

“이 고아원의 원장입니다. 몸은 좀 괜찮은 모양이군요. 식사는 하실 수 있겠어요?”

“식사는…….”

그녀가 말할 것도 없이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대신 답을 해주었다.

나이가 지긋한 노파는 그런 그녀에게 수프를 내밀면서 말했다.

“먹어요. 젊은 사람이 먹어야 힘을 내지.”

그녀는 조심스럽게 수프를 받아서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왔다.

“…….”

오랜만에 입에 넣은 따뜻한 수프와 사람의 온기가 그녀의 감정을 북받쳐 오르게 했다. 노파는 그런 그녀를 다 안다는 듯이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 후 레이나는 한동안 그 고아원에 머물렀다.

고아원이 원장은 자애로운 사람이었고 아이들은 빈민가 출신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해맑았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과 인간의 온정.

하지만 그녀는 마음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어서 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자신의 몸에 있는 신벌 병이 옮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이들이나 상냥한 원장님에게 병을 옮기기라도 한다면, 그로 인해서 아이들을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 원장이 태연하게 말했다.

“있고 싶은 만큼 있어요. 나와 아이들도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으니까.”

“하지만 제 병은…….”

“나병은 신벌이 아니에요. 그리고 전염력도 그렇게 강하지 않죠. 위생 관념만 신경 쓰면 옮을 일은 없어요.”

“…….”

“신전에서 의료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면 당신도 알지 않나요?”

“하지만, 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왜 나병이 옮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노파는 레이나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우리는 당신을 두려워하지도 차별하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그거면 안 되나요?”

“흑…….”

레이나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 후로 그 고아원은 그녀에게 집이 되었다.

레이나는 고아원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간단한 잡일을 도와주고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러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면서 선생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고아원의 원장은 그런 그녀를 친딸처럼 따듯하게 감싸 주었다.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있던 그녀에게 있어서 그곳은 말 그대로 여신의 구원이었다.

고아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감에 따라 원장과도 많이 친해졌고, 그녀의 과거사도 알 수 있었다.

원래 원장은 촉망 받는 상급 수녀였지만 신전의 개혁을 추진하다가 위에서 찍혔다고 했다.

그 결과 그녀는 자발적으로 신전을 나왔고 중년의 나이에 시작한 고아원에서 빈민가의 아이들을 거둬서 수십 년째 돌보고 있었다.

항구 도시 칸테나는 많은 돈이 움직이는 곳인 만큼 도시의 그늘인 빈민가도 거칠었지만, 그녀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손에 닿는 아이들을 돌보고 구해 주고 있었다.

레이나는 그런 칸테나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비록 신전의 명부에서 이름이 제적되었다고 해도 그녀는 신전의 어떤 고위 신관보다 고고하고 훌륭해 보였다.

레이나는 그녀를 마음의 스승으로 삼고 진심으로 존경했다.

그러나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수명만큼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레이나가 오고 나서 1년도 되지 않아서 원장은 쓰러졌다.

아직 신성력이 있는 그녀이니 병이라면 스스로 고칠 수 있겠지만 노쇠로 인한 자연사는 어쩔 수가 없었다.

“원장 할머니…….”

“할머니… 죽지 마!”

“으아앙… 죽으면 안 돼……!”

쓰러진 원장을 둘러싸고 고아원 아이들은 울음보를 터트렸다. 항상 해맑게 웃고 활기차던 아이들이었지만 원장의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마치 어미를 잃어버린 새끼 고양이처럼 엉엉 우는 아이들 속에서 레이나는 주먹으로 치마를 꽉 움켜쥐었다.

마음을 풀어버리면 아이들보다 그녀 자신이 누구보다 더 크게 목 놓아서 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원장은 그런 레이나에게 다 안다는 듯이 자애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레이나…….”

“예. 원장님.”

“이 고아원을 맡아 줄 수 있나요?”

“…예.”

“미안해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거운 짐만 맡기는군요.”

“아니…에요. 원장님.”

“모두들… 울지 마렴. 앞으로 레이나 선생님을 나처럼 여기고, 모두… 행복하고 힘차게 살아가야 한다. 알겠지?”

그녀는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쓰다듬어 주고 마지막으로는 레이나의 손을 꼭 잡아 준 뒤 눈을 감았다.

“으아아아앙―!”

“원장 할머니이!”

“할머니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아이들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레이나도 결국 참고 참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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