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53화 (53/215)

53화

“합!”

쿠우웅!

발레리아가 힘차게 지면에 발을 디뎠다.

“호오오…….”

지면에 그녀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힐 정도로 깊게 파였다.

오러를 거의 쓰지 않고 오직 신체 노력만으로 만들어 낸 족적에 발레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주인님. 이건 정말 훌륭합니다. 중갑 기사로서 가벼운 체중이 저의 오랜 고민 거리였는데 이걸 응용하면 한 방에 해결될 것 같습니다.”

발레리아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하자 카일은 쓰게 웃었다.

“보통 여자들은 그 반대되는 고민을 하는데 말이지.”

체중이 무거워지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발레리아를 보니 신기한 카일이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발레리아의 능력은 중량을 늘리는 능력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은 고작 그런 것이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가볍게도 가능하니까요. 이건 행군할 때 좋겠군요.”

발레리아가 능력을 전환하자 이번에는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그녀가 아주 사뿐사뿐하게 무게감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상태로 공중으로 점프해서 연속으로 세 바퀴의 공중 돌기를 하고 지면에 착지하면서도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멋져. 중갑을 입었는데 흡사 발가벗고 움직이는 것처럼 가벼운 느낌이라니…….”

그녀는 자신의 능력에 진심으로 매료된 듯했다.

무게를 자유자재로 늘렸다 줄였다 하는 그녀의 능력.

“중력 조작이 바로 그런 거야. 이제 좀 알겠어?”

그건 바로 중력 조작이었다.

처음 그녀의 능력이 뭔지 깨달았을 때 카일은 입을 쩍 벌리고 감탄했었다.

‘대박이군. 이러려고 각성에 시간이 오래 걸렸던 건가?’

중력 조작은 전투에 대한 활용도로는 최상급의 능력 중에 하나였다.

사실 처음에 발레리아가 능력을 사용했을 때는 체중을 무겁게 하는 능력인줄 알았다.

여자로서는 재앙과 같은 능력이었지만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무게를 활용해서 싸우는 그녀에게는 유용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던전에 들어가서 좀 더 파헤쳐 보니 발레리아의 능력은 중력을 조작하는 능력이었다.

이 능력의 전투에 대한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자신의 무게를 가볍게 하거나, 무겁게 할 수도 있고, 적을 중력장에 가둬서 납작하게 압사시킬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중력의 방향성을 왜곡시키고 그 힘을 압축해서 적에게 대포처럼 발사할 수도 있다.

중력포라고 부르는 기술로 그 파괴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발레리아는 그런 카일의 설명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마검사가 된 기분이군요.”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라. 사실, 중력을 다루는 마법은 최종적으로…….”

“최종적으로 뭔가요? 주인님.”

“…최종적으로 어디까지 진화할지 아무도 모르거든.”

카일은 말을 얼버무렸다.

“그렇군요. 실로 대단한 힘입니다.”

발레리아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자신의 새로운 능력에 감탄하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타인에게 내려 줄 수 있는 카일의 대단함도 새삼 알게 되었다.

카일은 그런 그녀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괜한 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사실 중력계 능력은 다소 위험한 능력이기도 했다.

전생의 지구에서는 중력계 능력자가 그 능력을 극한까지 진화시키면 지구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었다.

중력장의 범위를 최대치로 왜곡시켜서 블랙홀을 만들고 그 상태에서 일정 이상의 사이즈로 블랙홀을 키워 낸다면 지구가 붕괴할 수도 있었다.

‘설마 그 정도로 진화하지는 않겠지.’

괜한 말을 해서 발레리아를 겁줄 생각은 없었다.

지금 그녀의 능력을 자신이나 적의 무게를 어느 정도 조절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이것만 잘 활용해도 그녀의 특기인 방패술과 플레이트 메일을 이용한 공격력은 더 올라갈 것이다.

“이제 문제는 나로군.”

발레이아의 초능력 코어가 활성화된 이상 카일은 새로운 노예를 구입할 수 있다.

그럴 마음만 먹으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숨을 죽이고 지내기로 마음먹었는데 여기서 다른 노예를 구입해서 초능력을 각성시켜도 될까?

‘될 리가 없지.’

바이에른에 폐기장은 한두 곳 더 있지만 카일은 이제 그곳으로 찾아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폐기장 주인도 카일을 경계할 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최근 카일이 폐기장 하나를 통째로 전소시켜 버린 것을 알고 경계할 것이 뻔했다.

‘어떻게 할까? 사람들의 주목이 가라앉을 때까지 좀 기다릴까? 아니, 아니야. 그건 좋지 않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를 상황 속에서 무한정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좋지 않다.

전생과 달리 카일의 능력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초능력자들의 숫자에 한계가 있는 지금, 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좋지 않다.

결국 카일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어쩔 수 없지.”

그날 밤.

카일은 자신의 노예들 중에서도 간부인 세 명을 불러서 말했다.

“잠시 외부에 갔다 오려고 한다.”

“외부에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왜……?”

이유를 물어보는 세 사람에게 카일이 말했다

“알다시피 최근 발레리아가 각성했다.”

세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 인해서 나는 새로운 노예를 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바이에른에서는 지금 내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다.”

그것은 세 명도 알고 있었다.

최근 카일은 바이에른에서 여러 가지로 주목받고 있었다.

소규모 파티를 꾸려서 던전에서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모험가로 주목 받다가 최근 폐기장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더 주목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개를 이용해서 트롤을 탐색하는 방법을 개발한 것도 카일이라고 소문이 났다.

‘사실 마지막 하나는 내가 스스로 퍼트린 것이지만 말이야.’

폐기장 주인이 카일을 노린 이유로 카일은 자신의 트롤 탐색법에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 설명에 당위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좀 더 사실을 공개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카일은 과감하게 개를 이용한 트롤 탐색 방법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어차피 언제까지고 독점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이미 길드의 지부장을 통해서 알게 모르게 퍼지기 시작한 정보였고, 차라리 정보의 희소가치가 조금이라도 있을 때 공개하는 게 파급 효과가 더 컸다.

그렇기에 최소한 카일에게 폐기 노예를 부활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만은 무조건 숨겨야 했다.

그렇게 자신의 사정을 설명한 카일은 세 사람에게 말했다.

“하지만 내 능력을 계속 놀려 두는 것은 좋지 않다. 가장 효과적으로 전력을 증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이 방법인 이상 새로운 노예를 들이려고 한다.”

카일의 말에 검은 바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주인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 목적지는 어디로 정하신 겁니까?”

“베르나도 왕국의 칸테나 항구 도시로 가볼 생각이다.”

“칸테나……. 주인님. 해적을 구입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것도 고려 중이다.”

“진심이십니까? 주인님.”

“그래. 만약 너희들이 반대한다고 해도 내 의견은 변하지 않는다.”

카일은 단호하게 자기 의견을 몰아붙였다.

물론 세 명은 반대하지 않았다.

카일이 하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믿고 따르기로 마음먹은 이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무언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주인님답지 않으셔.’

‘이번 사건이 주인님의 마음에 변화를 만든 건가?’

‘마음이 더 단단해지는 것은 나쁜 변화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쩐지 카일의 변화에 마음이 쓰였다.

카일은 그런 세 명에게 통보하듯이 말했다.

“가는 길에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를 데리고 가겠다. 내가 없는 동안 발레리아는 신입들을 잘 교육시키고 있도록 해라.”

“예. 주인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주인님.”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발레리아는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주인님. 그러시다면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뭐지?”

“저하고 신입들에게 용병길드의 가입을 허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용병길드? 어째서?”

“주인님이 없는 동안 노예 신분인 저희들은 던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신입들의 훈련 강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음, 그래서? 용병길드에 가입하면 뭐가 달라지지?”

“용병 길드에 가입하면 도시 외곽지역에 몬스터 토벌 임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던전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도 신입들에게 실전을 겸한 훈련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좋군. 바로 내일 당장 진행하자.”

하는 김에 발레리아뿐만 아니라 카일 자신과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가입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모험가들 중에 7할 이상은 용병 활동도 겸하면서 활동한다. 서로 하는 일이 비슷하다 보니 양다리를 걸친다고 해도 별 지장은 없는 것이다.

‘언젠가 해야 할 일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해두자.’

* * *

“후우우우…….”

카일은 거사를 마치고 아리시아의 몸 위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아리시아는 땀에 젖은 몸으로 그런 카일을 끌어안아 주며 사랑스럽게 말했다.

“귀여워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인님.”

“내가 고맙지.”

카일은 아리시아의 옆에 누워서 그녀의 머리에 팔베개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끌어안고 자연스럽게 잠을 청하려던 때였다.

“주인님. 혹시 제가 몇 마디 말씀드려도 불쾌하지 않으실까요?”

드물게도 아리시아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카일은 감으려던 눈을 뜨고 그녀에게 말했다

“얼마든지 말해도 돼. 왜?”

“주인님. 이번에 노예를 사러 칸테나까지 가신다고 하신 말씀 말인데…….”

아리시는 말을 꺼내기를 몹시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굳히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꼭 그래야 할까요? 칸테나에서 굳이 해적 출신의 노예를 구입해서까지 전력을 증강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 까요?”

그녀의 말에 카일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싫으니?”

“싫다기보다는……. 이제까지 주인님은 범죄자나 극악한 악당들을 노예로 구입하지 않으셨잖아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으신 것은 주인님의 신념이 아니었던가요?”

아리시아의 말에 카일은 그녀의 백옥같이 하얀 피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솔직히 범죄자들을 구입해서 그 인생에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건 그리 내키지 않아.”

“그러시다면 왜?”

“하지만 내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효율이 좋은 기회를 마다할 수는 없어. 칸테나에서 팔리는 해적들 중에 상당수는 한때 강자였지만 전투로 몸이 망가지고 헐값에 팔리는 이들인 경우가 많아. 그들을 살 수 있다면 강력한 전력이 될 거야.”

“굳이 강력한 전력이 필요한가요? 지금 주인님은 이미 충분히 많은 힘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아리시아의 말이 맞다.

지금 카일은 모험가 중에서는 나름 성공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돈도 꽤 벌었고 기반도 나름 갖추고 있다.

사실 카일 정도의 성공을 거두기도 전에 던전에서 목숨을 다하는 모험가들이 태반인 걸 생각하면 지금 카일의 위치는 꽤 나쁘지 않았다.

카일도 자신이 행복한 인생이라는 목표로 착실하게 순항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위기를 겪으면서 카일은 깨달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지금 품 안에 있는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폐기장의 주인이 카일을 상대로 언감생심 그딴 마음을 먹은 것 자체가 카일이 만만하게 넘볼 수 있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카일이 다소 과격하게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서 폐기장을 전소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길드의 지부장이라는 힘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결국 카일은 깨달았다.

자신에게는 아직 힘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름 성공했다고 해봐야 그 나름이라는 말은 상당히 초라하고 빈약한 변명에 불과했다. 진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언제든지 등 터질 수 있는 새우 정도로밖에 안 보일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행복을 손에 넣어 봐야 뭐 할까?

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한숨만 불어도 언제든지 꺼져버릴 그런 촛불 같은 행복이 과연 진짜 행복일까?

카일은 싫었다.

또다시 누군가에게 억눌리고 굴복당하는 인생은 사절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힘이 필요했다.

더 강함 힘이 필요했고, 그 힘으로 자신을 지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적이든 산적이든 간에 강력한 노예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카일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아리시아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약해 보이지 않을까?’

자신이 힘이 없어서 불안하다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싫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싫었지만 아리시아에게는 특히 더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못난 모습은 말이다.

신중함은 좋지만 때때로 사람은 장고 끝에 악수를 두기도 하는 법이다.

지금의 카일이 바로 그랬다.

“이미 결정된 사항이야. 그냥 그렇게 알아.”

카일은 주인으로서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서 아리시아의 의견을 묵살했다.

“…예. 주인님.”

그런 카일의 압박에 아리시아는 순간 섭섭한 듯했지만 이내 카일에게 순종했다.

‘그래. 나 따위가 주인님에게 조언이라니. 너무 건방졌어.’

오히려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나무랐다.

카일에게 섭섭한 감정을 가지느니 자기 자신을 비하하고 자학하는 게 그녀는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녀에게 카일은 절대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리시아…….’

카일은 카일대로 그런 아리시아의 모습을 보기 싫었다.

그동안 함께 무수한 밤을 지내면서 이제 아리시아의 감정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음을 숨기기 위해서 억지를 부린 것은 자신인데 오히려 아리시아가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카일은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못마땅했다.

그래서 당장 그 감정을 덮어버리기로 했다.

“이리 와. 아리시아.”

카일은 아리시아를 당겨서 키스 했다. 그리고 서서히 손을 움직여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더니 어느새 다시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탔다.

“주인님. 갑자기… 으음…….”

아리시아는 자신을 안는 카일의 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카일은 아리시아의 서서히 움직이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그냥 나만 따라오면 돼.”

반쯤은 억지로 반쯤은 오기로 아리시아를 납득시키면서 그녀를 안았다.

둘은 다시 서로를 꼭 끌어안으며 격렬하게 사랑을 나눴다. 하지만 서로 마음을 열지 않고 그저 살만 맞댔기 때문일까?

어쩐지 그날의 잠자리는 두 사람이 함께 보냈던 무수한 밤중에서 가장 뒷맛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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