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카일의 명령을 받은 부하들은 망설일 것이 없었다.
카일의 신병도 확보했겠고, 빈민가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폐기장에서 다소 소란이 일어난다고 해도 경비대가 오려면 한참 걸릴 것이다.
중요한 건 딱 하나다.
“폐기장의 주인을 잡아라.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예. 주인님.”
폐기장의 주인.
카일의 능력을 알고 있는 그 놈은 반드시 잡아야 했다. 최악의 경우 놈을 잡지 못한다면 카일은 그동안 바이에른에서 만들어 놓은 기반을 다 포기하고 다른 도시로 이주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악의 경우고 여기서는 반드시 폐기장의 주인을 잡아야 했다.
다행히도 폐기장은 빈민가의 깊숙한 곳에 있었고 출입구도 하나밖에 없었다.
카일은 지시를 내려서 입구를 단단하게 지키게 하고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에게 폐기장을 샅샅이 뒤지게 했다.
“주인님. 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폐기장의 양아치들을 다 처리한 후 폐기장을 샅샅이 뒤져도 폐기장의 주인 놈은 보이지 않았다.
“입구는 확실히 지켰나?”
“예. 신입들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아서 아리시아까지 입구를 지키게 했습니다.”
“…….”
‘놈이 아리시아의 청각을 속여서까지 몰래 탈주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렇다고 다른 루트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이 폐기장은 일단 노예들을 가둬 놓고 관리하는 곳이다.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가 되어 있어서 하나 밖에 없는 입구를 막는다면 다른 곳을 통해서 도망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했다.
‘생각해 보자. 내가 만약 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카일은 차분하게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봤다.
만약 자신이 폐기장의 주인이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말이다.
‘도망갈 수 없는 위기 속에서 선택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 이판사판으로 싸울 생각이 아니라면……’
“숨는 건가?”
“숨다니, 여기서 말입니까?”
“그게 유일한 방법이지. 스노우는 데리고 왔다고 했지?”
“예. 주인님.”
“좋아. 이리 데리고 와라.”
폐기장의 주인 놈이 숨어 있다면 찾을 자신이 있는 카일이었다.
* * *
‘제길, 어쩌다 이런 일이…….’
폐기장의 주인은 초조함을 이기지 못해서 자기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치밀하게 함정을 파서 카일을 사로잡았다. 이제 남은 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폐기 노예를 부활시키는 방법을 알아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습격이라니.
다 잡은 사냥감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카일이 이런 식으로 반격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뭔가 외부와 연락할 방법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노예들한테 사전에 명령을 내려 놨나? 부하 놈들이 매수당해서 배신한 건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는 폐기장의 주인이었지만 그중에서 노예들이 자발적으로 주인을 구하기 위해서 찾아온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만큼 검은 바람들이 보여준 행동은 노예의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아직 안 늦었어. 일단 몸을 숨기고 다시 시작하자. 우선 카일 그놈의 능력을 세상에 공개해 버리는 거야. 그렇게 하면 그놈도…….’
폐기장의 주인이 그렇게 카일에게 복수할 수 있는 계획을 상상하고 있을 때였다.
컹컹! 컹!
폐기장 주인이 숨어 있는 공간의 바깥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설마…….’
불길한 느낌이 든 폐기장의 주인은 손으로 입을 막고 움츠려 들었다.
‘설마하니 여기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폐기장의 주인이 숨어 있는 곳은 가장 폐기장 안에서도 가장 은밀한 쓰레기 더미 사이에 있는 지하 공간이었다.
혹시나 하는 사태에 대비해서 몰래 만들어 두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곳이다.
그런데 설마 여기를…….
그때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님. 쓰레기와 흙을 거둬 내니 판자문이 있습니다.”
“부셔버려.”
“예. 주인님.”
그리고 위에서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폐기장의 주인이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 보였다
“찾았군.”
“으… 으으으…….”
폐기장의 주인은 카일을 보더니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고 카일은 놈에게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남길 말은 없나?”
“사, 살려 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없나 보군.”
카일은 검은 바람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 그러자 검은 바람이 태도를 높게 들어 올렸다.
“안, 안 돼에에!”
콰직!
그 단발마가 유언이라면 유언이었다.
“주인님. 이제 어떻게 할 까요?”
폐기장의 주인을 죽인 검은 바람이 말했다. 카일은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살피면서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봐라. 이걸 좀 살펴봐야겠군.”
카일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폐기장 주인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장부였다. 장부에는 노예들의 매입처와 판매처 등등이 모두 기록, 폐기 후의 노예들을 처분하는 업자들에 대한 기록 등등 이 폐기장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카일은 그걸 살펴본 후 말했다.
“나를 완전히 노리고 있었군.”
놈의 장부에는 카일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 옆에는 요주의 인물이라는 메모와 함께 포획 후 신문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노예들의 신상에 대한 정보를 알아봤는데 지금 폐기장에 카일이 탐을 낼 만한 노예는 없었다.
마법사라고 소개했던 여자 노예 역시 그냥 평범하게 늙은 노파에 불과했다.
노파는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고 혀를 자른 것도 아마 괜한 말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 폐기장의 주인이 잘랐을 가능성이 컸다.
거기다 지금 폐기장에 있는 노예들도 전원 범죄자 출신 노예들로 카일이 구원해 주고 싶은 노예는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쨌든 간단하게 풀 수 있겠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폐기장을 다 태워라.”
“예? 주인님. 그래서는 크게 소란이 일어나고 맙니다.”
“상관없다. 어차피 숨길 생각은 없으니까.”
카일은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카일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능력에 대한 비밀의 유지다.
지금 철장 안에 가둬져 있는 폐기 노예들이 카일이나 폐기장의 주인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이상 정보는 묻어 둬야 했다.
폐기장 처리에 대한 생각을 하던 중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지금 폐기장에 있는 노예들이 전부 극악한 범죄자 출신이라는 것에 말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고 해도 카일이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음에 짐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소란이 일어나는 것은 별문제 없다.
이미 소란이 꽤 크게 일어난 상태다.
아무리 빈민가라고 해도 이래서는 은밀하게 뒤처리를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른 방식으로 푸는 게 좋다.
“폐기장을 불태워 버리고 모험가 길드에 연락해라. 길드 소속의 모험가가 폐기장에 억류되었다가 간신히 탈출했다고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검은 바람은 카일의 지시를 빠르게 지켰다.
‘과연, 그런 거군.’
그 역시 카일이 문제를 어떻게 풀려고 하는지 눈치를 챘다.
빈민가에서 일어난 폐기장 전소 사건.
그에 대한 소문은 바이에른에 금방 퍼졌다.
소문의 주인공인 카일이 최근 바이에른에 이름을 조금 알리기 시작한 모험가였기 때문에 사람들, 특히 모험가 길드에서는 더욱더 주목했다.
세간에 알려진 사건의 진상은 이랬다.
카일이라는 모험가가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것을 시기한 폐기장의 주인은 카일을 납치해서 그 수익의 비밀이 뭔지 밝히려고 했다.
방심하고 있던 카일은 폐기장에서 납치를 당해서 곤혹을 치렀지만 기지를 발휘해서 탈출하고 자신의 노예들을 이끌고 반격했다.
폐기장의 주인은 죽었고 그 과정에서 폐기장은 전소되었다.
그것이 세상에 밝혀진 진실이었다.
어느 정도의 사실에 몇 가지 거짓이 더해진 진상이었지만 세상이 납득하기에는 충분했다.
모험가 길드에서는 감히 빈민가의 폐기장 주인 따위가 모험가를 공격해서 납치했다는 사실에 분노했고 피해자인 카일을 변호했다.
다만, 바이에른 도시의 치안을 관리하는 경비대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살인과 방화로 번진 사건이었다.
카일을 보고 피해자이니 ‘당신은 무죄.’라고 일방적으로 면죄부를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도시의 치안을 관리하는 그들의 면이 서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카일을 정식 재판으로 넘겨서 단죄하려고 했다. 하지만 모험가 길드는 자신들의 길드원을 죄인도 아닌데 구금하는 건 불가능 하다고 변호했다.
꽤 복잡한 상황 속에서 모험가 길드는 적극적으로 카일을 변호했다.
모험가 카일은 피해자다.
경비대에 사건을 신고한 것도 모험가인 카일이며 당시 그의 몸에는 폭행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폐기장의 주인은 원래 범죄자 출신이며 현장에서는 다수의 수배자와 범죄 경력을 지닌 도적들의 시체가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폐기장 주인의 장부가 세상에 공개되고, 그 안에 적힌 외국의 해적들과 밀무역을 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모험가 길드는 그 외의 여러 가지 유리한 정황을 가지고 경비대를 설득했다.
그리고 그 결과.
“벌금 1,000골드일세.”
게리우스 지부장이 직접 카일을 찾아와서 한 말이었다.
벌금 1,000골드.
이게 카일에게 내려진 형벌이었다.
카일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식 재판까지 가지 않은 것은 모두 지부장님 덕분입니다.”
“별것 아니었네. 사실 벌금도 좀 깎아 보려고 했지만 경비대장이 워낙 빡빡하게 나와서 말이야.”
“생각보다 강경했나 보군요.”
“다른 걸 다 떠나서 불을 지른 게 컸네. 도시의 다른 지역으로 옮겼으면 어쨌을 거냐고 따지고 나오는데… 어쩔 수가 없더군.”
“제가 저지른 일입니다. 충분히 감수하죠.”
벌금을 크게 맞기는 했지만 지금 카일의 재정 상황이라면 감당할 수 있었다.
그보다 이번 일로 얻은 교훈이 더 컸다.
‘방심은 금물이야. 나는 아직 약자다.’
작은 성공에 만족해서 방심했던 결과 목숨까지 위험할 뻔했다.
카일은 이제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벌금은 이달 중으로 시청으로 지불하게. 그럼 가지.”
“여러 가지로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부장님.”
“뭘, 이런 경우를 위해서 있는 게 길드 아닌가?”
사실 그렇다고 해도 길드의 지부장이 직접 나서서 변호까지 해줬던 것은 그동안 카일이 지부장과 개인적으로 연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만약 카일이 평범한 모험가라면 몇 년 정도는 감옥에 들어가 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일이 끝났고 카일은 한동안 비교적 조용하게 몸을 숙이고 있기로 했다. 사람들의 주목이 자신에게 쏠려 있을 때 함부로 행동하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벌금을 내서 깔끔하게 뒤처리를 한 뒤에는 한동안 몸을 숨기고 있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주… 주인님, 이건.”
“가만히 있어. 집중하고.”
발레리아의 초능력 코어가 활성화되었다. 이걸로 카일이 새로운 노예를 들일 수 있는 환경이 생겨버린 것이다.
한동안은 죽은 듯이 숨어 지내려고 했던 카일이지만 이렇게 되면 얘기가 또 달라졌다.
사실 그동안 발레리아는 이렇게 생각했다.
‘굳이 초능력이라는 것이 필요한가?’
검은 바람이나 아리시아가 능력을 다루는 것을 봤을 때 신기하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굳이 저런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실력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 실력을 갈고 닦음으로 인해서 더 강해질 수 있다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마음속으로는 초능력이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그런 그녀가 각성한 초능력은 대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