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연금술사 길드.
그곳에서 카일은 평소 팔던 것처럼 트롤의 가격을 정산하려고 했다.
“하하하. 이걸 다 팔겠다고요?”
“예.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니, 없죠. 없기는 한데…….”
연금술 길드의 직원은 카일이 가지고온 트롤의 가죽을 보고 돈벼락을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총 스물네 장의 가죽. 그리고 트롤의 간은 스물세 개입니다.”
“응? 왜 간은 하나 적죠? 전투 중에 파손되었나요?”
“뭐… 비슷한 겁니다.”
카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간 중에 하나는 카일이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스노우가 씹어 먹어버렸다. 해체한 간을 옆에 놔두고 잠깐 한눈을 파는데 스노우가 사고를 친 것이다.
트롤의 간 하나가 10골드짜리인 것을 생각하면 참 비싼 간식을 준 셈이다.
“가죽은 모두 상태가 좋아 보이는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정산해 드리죠. 가죽 스물네 장, 간 스물세 개, 그러니까 다 해서… 710골드입니다. 최근 트롤의 시세가 조금 떨어졌지만 카일 님에게는 특별히 제 가격으로 사드리죠.”
사실 트롤의 시세 자체가 떨어진 이유 자체가 카일이 너무 많은 물량을 풀어서이다.
바꿔 말하면 그렇게 많은 물량을 가져오는 카일과 좋은 관계를 유지 하는 건 연금술 길드의 입장에서도 이득이라는 말이다.
“감사합니다.”
카일은 정산을 마치고 받은 묵직한 금화 꾸러미를 검은 바람에게 넘겨주고 밖으로 나왔다.
‘부산물로 얻은 수익이 710골드에 마석으로 얻은 수익이 78골드 20실버, 다 해서 788골드 20실버군.’
진짜 대박이었다.
스노우의 탐색 능력과 신입들이 일꾼으로서 일한 대가가 합쳐져 어마어마한 대박이 난 것이다.
카일은 아리시아에게 말했다
“아리시아.”
“예. 주인님.”
“애들 몇몇 데리고 가서 고기와 술 좀 사와. 밖에서 구워 먹을 수 있는 바비큐 도구도 포함해서.”
“예. 얼마나 사오면 될까요?”
카일은 즉석에서 10골드를 꺼내 주며 말했다.
“그만큼 다.”
“이… 이만큼요?”
아무리 그래도 한 끼 식사로 쓰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 아닐까 싶었지만 카일은 과감하게 대가를 지불했다.
‘쓸 때는 제대로 써야지.’
“괜찮으니까 사와.”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아리시아는 노예들 중에 다섯 명을 데리고 시장으로 향했다. 카일이 말하는 대로 10골드씩 바비큐용 장비와 고기를 사려면 짐이 꽤 클 것이다.
몇 시간 후, 항상 고난과 눈물과 비명이 난무하던 카일의 집의 뒤뜰에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그릴 위에서 각종 고기가 익어 갔고, 술은 통째로 가득 쌓여 있었다.
카일은 모두를 향해서 말했다.
“지난 열흘 동안 모두들 수고 많았다. 아무 사고도 없이 던전행을 잘 수행해 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그 포상으로 오늘은 실컷 먹고 마셔라. 내일까지 훈련은 쉰다.”
“와아아아아아!”
“감사합니다. 주인님.”
“주인님 만세!”
노예들은 카일의 말에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다.
그리고 그들은 걸신들린 것처럼 술과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맛있다. 이건 무슨 고기지?”
“이렇게 맛있는 고기는 처음 먹어 봐. 진짜 맛있어.”
“부드럽고 야들야들하고 야, 너 이거 사는데 같이 갔지. 이건 무슨 고기야.”
“새끼 양의 갈비라고 했었지 아마.”
“이게… 와아아. 나 처음 먹어 봐.”
“술 좀 더 갖다 줘.”
신입 노예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왁자지껄하게 고기와 술을 즐겼다.
“평소 하던 것처럼 가게로 안 가길 잘했군.”
“그러게 말이죠. 주인님의 혜안에 다시 한번 놀랄 뿐입니다.”
신입 노예들과 달리 카일과 다른 세 명의 간부들은 따로 테이블을 차려서 앉았다.
아리시아가 고기를 구웠고 네 명은 익숙한 분위기로 맥주잔을 들고 고기를 먹었다.
원래 던전에서 나오면 술.
이건 카일이 정한 암묵적인 포상이었다.
그런데 열 명이나 되는 신입 노예들을 다 데리고 가게에 들어갔다가는 폐가 될 것 같았고, 잘못하면 다른 손님들과 시비가 붙을 수도 있었다.
만의 하나의 상황에 대비하여 아예 눈치 보지 않고 먹고 마실 수 있는 집의 뒤뜰로 온 것이다.
“그래도 내일 훈련까지 쉬게 하시는 것은 좀 너무 풀어 주는 게 아닌가 합니다. 주인님.”
“발레리아의 말이 맞습니다. 주인님. 훈련은 예정대로 시키는 게 어떠실지…….”
발레리아와 검은 바람의 말에 카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루 정도는 쉬게 해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는 날도 있어야지. 워라밸은 중요한 거야.”
‘스트레스? 워라밸?’
‘그게 뭐지?’
검은 바람이나 발레리아가 보기에 카일은 종종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다만 그 동안의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은 이렇게 카일이 주장을 관철할 때는 항상 그럴 듯한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둘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순순히 카일의 말에 따랐다.
카일은 술과 고기를 먹으면서 셋에게 말했다.
“고생에는 보상이 따라와야 하는 법이지. 그건 너희들도 예외는 아니다.”
“저희는 별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주인님. 그저 주인님이 시키신 일을 충실하게 수행했을 뿐입니다.”
“저도 보상 같은 건 필요 없어요. 그저 주인님이 귀여워만 해주셔도…….”
세 명의 노예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카일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이 세 명이 자신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니 이들의 환심이나 충성을 사기 위해서 포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포상을 주는 건 저기 왁자지껄하게 술을 마시며 놀고 있는 신입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일단 받아라. 이게 너희들 몫의 보상이다.”
카일이 그들에게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돈이었다.
그것도 1인당 30골드씩의 거금을 포상으로 내려준 것이다.
“주… 주인님.”
“이건 너무 많습니다.”
“맞아요. 저희는 딱히 이런 거 없어도…….”
세 명은 어지간히 놀란 것 같았다.
30골드라니? 노예에게 포상으로 돈을 내려주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용돈 정도의 개념이었다.
기껏해야 신발 하나, 식사 한 끼 정도 살 수 있는 그런 금액 말이다.
그러나 카일이 그들에게 준 보상은 너무 많았다.
30골드는 좀 아껴서 쓰면 평민 4인 가족이 1년은 살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받아라. 무조건. 이건 명령이야.”
카일은 거부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결국 세 사람은 돈을 받았고 카일은 그들에게 말했다.
“필요한 생필품이나 도구 등을 내가 사준다고 해도 역시 본인에게 돈이 없으면 아쉬울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돈은 순전히 너희들 자신의 것이니 좋을 대로 사용해도 좋다.”
“주인님…….”
“감사합니다.”
세 사람은 적지 않게 감동한 것 같았다.
그들도 카일이 자신들을 아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아낀다고 해도 자신들은 노예가 아닌가?
단 돈 1쿠퍼도 주지 않고 죽으라고 명령하면 죽어야 하는 노예들이다.
그런 자신들에게 카일은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더 좋은 대우를 해주고,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고… 이제는 보상으로 돈까지 주었다.
이건 신분만 노예일 뿐 사실상 가신이나 다름없는 대우였다.
‘주인님을 만난 것이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었던 게 분명하군.’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주군이 저를 아끼고 배려해 주신 이 모든 순간들을…….’
‘주인님 저는, 저는…….’
세 사람이 감격에 젖어 있는 동안 카일은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신입 노예들을 보고 말했다.
“너희들도 제 몫을 하게 된다면 포상금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열심힌 훈련하고 하루 빨리 제 몫을 하는 전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라.”
그 말에 신입 노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옛, 주인님!”
“옛, 주인님!”
절도 있게 한 목소리로 외치는 대답을 들으면서 카일은 속으로 생각했다.
‘군기는 잡혔네.’
* * *
카일의 삶은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궤도에 올랐다.
한 번 던전에 들어갈 때마다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많은 수익을 올렸다.
처음에 신입 노예들을 데리고 들어간 후 두 달 동안 세 번 더 던전에 들어갔고, 그때마다 700~800골드의 수입을 올렸다. 두둑한 포상을 올리는 만큼 노예들에게 포상도 많이 해주었다.
신입 노예 중에 한 명이 오크를 상대로 일대일로 싸워서 이겼을 때는 그 포상으로 해당 노예에게 1골드의 포상금을 주기도 했다.
포상금을 받은 노예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고, 다른 신입 노예들은 그 노예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카일은 그런 이들의 눈빛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대응했다.
“너 이름이 뭐지?”
“예? 아… 저, 저 말입니까?”
이제까지 카일은 신입 노예들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이름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검은 바람들에게 훈련을 맡기는 이상 자신의 거리감을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카일이 처음으로 이름을 물어봤다. 그러자 오크를 이겼던 노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해다.
“초… 촉새입니다”
“촉새?”
“예. 그렇게 불렸습니다.”
노예들 중에는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지지 않고 있는 이들도 많다.
피부색이나 머리카락 색깔 따위로 흰둥이 검둥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하는 일이 마구간 지기면 말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촉새라는 이름도 호의로 지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카일은 그런 이에게 말해다.
“촉새라, 오크를 이길 정도면 당당한 전사인데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군.”
“…….”
“오늘부터 네 이름은 호크다.”
“……!”
노예, 아니 호크라고 이름이 붙여진 남자는 깜짝 놀랐다.
“싫은가?”
“아,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주인님.”
“좋아. 호크, 앞으로 네가 다른 동료들을 이끌어라. 네 직위는 분대장으로 임명하겠다.”
“…가, 감사합니다…….”
호크는 감격으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자신의 노력이 이런 형태로 돌아온 것이 꿈만 같았다.
그리고 던전에서 올라온 후.
“하압!”
“으아아아앗!”
“하나 더! 할 수 있어.”
신입 노예, 아니 이제 1분대의 대원이 된 그들은 더 가열차게 수련에 임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검은 바람이나 발레리아가 억지로 욕을 하면서 시켰던 수련이었지만 이제는 자발적으로 더 빡센 훈련을 원하고 있었다.
‘나도 호크처럼 이름을 받을 거야.’
‘나도 할 수 있어. 나도…….’
자신들과 같은 위치에 있던 인물이 아주 약간 더 앞서 나간 덕분에 포상을 받았다.
이제 이들은 노력의 가치를 깨달았고 그걸 위해서 스스로의 의지로 땀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게으르고 소극적이던 겁쟁이 노예들은 없었다.
모두 어엿한 모험가가 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일이 잘 풀리고 있는 카일이었지만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아직이군.’
발레리아의 코어를 관리해 주던 카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발레리아는 송구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가 부족해서…….”
“네 잘못이 아니다.”
카일의 고민.
그것은 발레리아의 초능력이 좀처럼 각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카일은 자기 능력을 꾸준하게 수련했다. 덕분에 염동력을 이용한 신체 강화 능력은 한 단계 더 강해지기도 했다. 검은 바람이 말하기를 이제 오러 유저 상급 정도는 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다른 능력과 다르게 각성 능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전생에 능력이 한창 좋을 때는 하루에도 몇 명씩이나 되는 인간을 각성시키기도 했는데 지금은 발레리아 한 명을 각성시키는 것에도 굉장히 애를 먹고 이었다.
심지어 발레리아의 각성 능력은 아리시아나 검은 바람의 경우보다 더 느렸다
앞의 두 사람은 반년 만에 능력을 각성했는데, 발레리아는 이미 반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각성의 조짐이 없었다.
발레리아의 능력이 각성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카일의 능력이 전생보다 많이 약해진 것.
두 번째는 발레리아에게 초능력자로서의 자질이 많이 부족한 것.
하지만 카일은 일부러 두 번째는 말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 부족만을 탓했다.
사실 초능력이 없어도 발레리아는 훌륭하게 활약을 해주고 있었다.
다만 그녀의 초능력이 각성하기 전에는 다른 노예를 각성시킬 수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폐기장에 가본 지도 제법 됐군.’
혹시 모르니 카일이 구입하기에 적합한 노예가 들어왔는지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