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46화 (46/215)

46화

다음 날.

아침 여섯 시가 되자마자 검은 바람이 노예들을 깨웠다.

“이 새끼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직 쳐자고 있어? 죽고 싶냐? 아앙!”

검은 바람의 호통에 노예들은 허겁지겁 침대에서 일어났다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푹신한 침대에서 푹 자고 있던 노예들로서는 마른하늘의 날벼락과 같았다.

“1분 준다! 전부 옷 갈아입고 뒤뜰로 집합한다. 늦으면 연대책임으로 체벌이 있을 테니 그리 알도록!”

그리고 검은 바람은 먼저 쌩하니 뒤뜰로 나가버렸다.

노예들은 허겁지겁 움직였다

“1분이라니 말도 안 돼.”

“이건, 이건 생트집이야.”

“제길, 빨리 서둘러. 빨리!”

노예들은 욕을 하면서도 빨리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늦어. 이 게으름뱅이들아! 다시 쳐자다가 왔냐?”

다급하게 준비를 마치고 나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검은 바람의 호통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하, 하지만 1분은 너무…….”

“닥쳐!”

검은 바람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오늘 검은 바람이 카일에게 받은 지시는 딱 하나였다.

“어제가 얼마나 행복한 하루였는지 절실하게 깨닫게 해줘라.”

검은 바람은 그 명령을 지킬 자신이 있었다.

“지금부터 훈련에 들어간다. 하지만 네놈들은 육체의 훈련 이전에 게으르고 나태한 정신 상태부터 먼저 훈련 한다. 전부 죽을 각오 하도록!”

“…….”

“대답은 이 새끼들아?”

“예… 예……. 교관님.”

“알겠습니다. 교관님.”

“대답 통일 안 해? 이 개 같은 새끼들아!”

검은 바람은 진짜 어제를 천국처럼 느끼게 해줄 생각이었다.

오늘을 지옥으로 만들어서 말이다.

“하나!”

“하나아아아…….”

“…아아아…….”

“둘.”

“두우우울…….”

“으으으으… 우우울…….”

검은 바람의 구령에 노예들은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의 어깨 위에는 수련용으로 특별히 준비해 놓은 사람 몸통 많나 통나무가 올려져 있었다.

“똑바로 안 해? 고작 아침 훈련 가지고 왜들 엄살이야?”

“똑바로 하겠습니다.”

“대답이 작다. 똑바로 안 해?”

“똑바로 하겠습니다아아아아!”

“다시 하나!”

“하나아아아아!”

검은 바람은 투란에 있을 때 어린 전사들을 교육시키던 경험을 살려 노예들을 육체적인 한계까지 내몰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좋은 훈련이라는 것은 받는 사람이 시키는 사람에게 진심 어린 살기를 품을 때까지 몰아붙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 * *

2층에 있는 카일의 방.

거기서 누군가가 뒤뜰에서 벌어지고 있는 훈련을 보고 말했다.

“저래도 괜찮을까요?”

“괜찮아. 검은 바람이 알아서 잘하겠지.”

그것은 아리시아였다.

그녀는 부드러운 가운을 입고 있었고 그 가운의 안에는 태어난 모습 그대로의 상태였다.

어젯밤도 카일과 잠자리를 함께 하면서 사랑과 총애를 듬뿍 받은 것이다.

카일은 햇살이 비치는 아리시아를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아름다운 여인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맨살을 겹치고 격정적인 행위에 몰두했었다는 사실에 뿌듯한 성취감을 느꼈다.

자리에서 일어난 카일은 아리시아를 뒤에서 끌어안고 창문으로 훈련 광경을 내려다봤다.

“열심히들 하는군.”

“예. 그런데 오라버니가 너무 심하게 하는 것 아닌가요? 저를 가르칠 때는 저렇게 욕을 하면서 가르치지 않으셨는데…….”

“그건 어쩔 수 없지. 상황도 환경도 그리고 사람까지 모두 다르니 말이야.”

일대일로 가르치는 것과 한 명이 다수를 가르치는 것은 난이도가 다르다. 열 명을 지도하면서 일일이 세심하게 다정하게 지도해 주는 것은 검은 바람이라고 해도 불가능 하다.

‘차라리 열 명을 때려눕히라고 하는 게 더 쉽겠지.’

그리고 아리시아는 검은 바람이 욕하면서 몰아붙일 필요도 없었다.

카일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고 오히려 검은 바람이 중간에 만류하지 않으면 손가락에 뼈가 드러날 때까지 활시위를 당기고 또 당겼던 그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 노예들은 다르다.

노예로 태어나서 노예로 자라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멍청한 멍청하고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 뼛속 깊이 각인된 이들이다.

노예라고 하면 부지런하고 뭐든 열심히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 노예는 게으르다.

이 세계에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노력을 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다.

돈, 명예, 권력 등등.

목표야 다양하겠지만 동기부여가 되어야 노력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노예들은 다르다.

종속 마법이 묶여서 오로지 주인에 의해서 사용되는 도구로만 살아가는 노예들에게 노력은 허무하다 못해 무의미한 행위였다. 그저 매를 맞지 않을 정도로 주인이 시키는 일만 수행 하는 게 현명한 것이지 필요 이상의 노력을 해봐야 노예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

그렇다 보니 노예들이 게을러지는 것은 당연했다.

카일은 아무리 노예라고 해도 자기 밑에 있는 이상 그렇게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과 대가의 가치를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한 번 정도 세상에 태어난 사실 자체를 후회할 정도로 치열하게 굴러 보는 게 좋다.

‘그게 바로 내 지론이지.’

물론 검은 바람도 그런 카일의 지론에 적극 동감했다. 그래서 저렇게 노예들을 처참할 정도로 굴리는 것이고 말이다.

“똑바로 안 해? 한 놈이라도 통나무 떨어트리면 전원 처음부터다!”

“히익……!”

“으으으으읏!”

구슬땀을 흘리며 노력(?)하는 노예들을 보고 카일을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아침 수련 후.

열 명의 노예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검은 바람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노예들을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은 첫날이니 아침 훈련은 이 정도로만 해주겠다. 오후 훈련부터는 제대로 할 테니 각오하도록.”

그 말에 노예들은 영혼이 육신을 가출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적당히 한 거라고?’

‘제대로 하면 어떤 걸 시키려는 거지?’

‘광산에서 일할 때보다 훨씬 빡세다.’

‘차라리 죽여줘.’

물론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아직 만나고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입으로 불만을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검은 바람은 제대로 군기를 잡은 것이다.

“거기 너하고 너.”

“예. 교…관님.”

“부르셨습니까, 교관님?”

검은 바람은 두 명을 지목해서 말했다.

“오늘의 식사 당번은 너희 둘이다. 먼저 씻고 나서 식사를 준비하도록.”

“예? 예. 저기 하지만…….”

“하지만?”

“아… 그게, 저희는 요리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게 그…….”

“그럼 굶던가?”

“…….”

검은 바람은 그냥 쿨하게 굶으라고 했다. 그런 뒤 할 말을 잃은 둘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요리를 안 하면 너희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다 굶겠군. 나는 굳이 말리지 않겠다. 사람이 밥 굶을 자유 정도는 줘야지.”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노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굶는 것이다. 맞는 것 이상으로 고통스럽고 힘들기 때문이다.

검은 바람은 차분하게 둘에게 말했다.

“따라와라 사용해도 되는 식재료를 가르쳐 주지.”

카일은 이 신입 노예들을 군인처럼 키우려고 했다. 그리고 군인이라는 것은 자고로 뭐든지 할 수 있어야 했다.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의 의식주를 모두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했다. 언제까지 아리시아가 열 명의 음식을 모두 만들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식사 당번으로 지명된 노예들은 최선을 다해서 요리를 만들었다.

재료는 나쁘지 않았다.

검은 바람이 그들에게 준 식재료는 신선한 야채와 훈제 돼지고기, 그리고 호밀 빵과 우유도 있었다.

이렇듯 재료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게 뭐야?”

“야, 너희들…….”

“설마 이걸 요리라고 한 거냐?”

고기와 야채는 소금을 잔뜩 넣어서 볶았는지 짠맛이 가득했고 빵은 살짝 굽는다는 게 다 타버렸다.

그나마 멀쩡한 건 우유 정도였다.

“시끄러. 먹기나 해.”

“싫으면 굶던가?”

식사 당번인 두 명은 얼굴에 되레 화를 냈다. 힘든 훈련을 거치고 기껏 먹을 걸 만들어 줬는데 불평이나 들어줄 기분은 아니었다.

다른 노예들도 굶을 수는 없었다.

사실 평소에는 이것보다 더 심한 것도 먹었고 굶을 때도 많았다. 다만 어제의 맛있는 식사를 생각하니 상대적으로 불만이 있었을 뿐이다.

식사가 끝나고 검은 바람은 그들에게 수면 시간을 주었다.

“오후 한 시까지는 취침 시간이다. 오후 훈련을 위해서 체력을 회복 하도록.”

“예. 교관님.”

노예들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노예는 최대한 부려 먹는 것이 상식인데 낮잠을 자게 하다니?

보통은 있을 수 없는 호사였다.

‘잘됐다.’

‘푹 자야지.’

그들은 역시 이번 주인은 좋은 주인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했다.

오후 한 시 일 분까지는 말이다.

“야 이 새끼들아! 똑바로 안 해!”

“잘못… 크어어억!”

“전부 연대 책임이다. 처음부터 다시!”

“교, 교관님… 이건……?”

“변명까지 해? 아주 이 새끼들이! 전부 횟수 두 배로 증가다!”

푹 쉬게 한 후 검은 바람은 다시 지옥 훈련을 시작했고, 그 훈련 내용은 아침 운동이 귀엽다고 생각될 정도로 가혹했다.

‘지… 지옥이야. 여기는 지옥이야.’

‘제발 그만…….’

‘차라리 광산으로 다시 보내 줘.’

하루에 몇 번이고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노예들이었다.

* * *

첫날을 시작으로 사흘 동안 검은 바람은 신입 노예들을 도맡아서 가르치면서 철저하게 체력 훈련을 시켰다.

그동안 카일은 아리시아와 발레리아를 데리고 던전에 들어갔고 검은 바람은 사흘 동안 오로지 신입 노예들의 육체와 정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오늘.

“오셨습니까? 주인님.”

“그래. 잘 다녀왔다.”

풀 파티가 아니라 검은 바람이 빠진 상태였지만 카일은 사흘 동안 던전의 5층에 내려가 있었다.

검은 바람이 신입들을 훈련시킬 수 있게 집중하도록 집을 잠깐 비워 준 것이다.

“성과는 어때?”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최소한 막 데리고 왔을 때에 비하면 훨씬 나아지긴 했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어.”

그날 밤.

“하아아… 하아아…….”

‘아름답군.’

카일은 자신의 앞에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침대에 누워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숨 막히게 아름다운 여인.

바로 발레리아였다.

방금 전에 서로 뼈가 바스라질 것처럼 격렬하게 살을 맞대고 쾌감에 취해 서로를 갈구했다.

그렇게 카일은 욕정을 다 풀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무방비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시 그녀를 탐하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피어났다.

이대로 그녀의 위에 다시 올라타서 자신의 손이 닿는 대로 그녀의 하얀 피부를 탐하고, 그녀가 다시 감미로운 목소리로 울게 하고 싶었다.

발레리아는 남자에게 그런 욕심을 들게 하는 여자였다.

그런 카일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발레리아는 숨을 조금 고르다가 매혹적인 미소를 머금고 카일에게 말했다.

“더 귀여워해 주실 건가요?”

도발적으로 유혹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진짜 그러고 싶었다.

던전에서 며칠 동안 싸였던 욕구를 모두 그녀에게 폭발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발레리아는 계속해서 카일을 자극시켰다.

“일단 조금 쉬고.”

“후후후.”

카일은 발레리아에게 물을 한 잔을 떠주면서 말했다.

“그런데 괜찮겠어? 내일부터 네 차례인데?”

“예. 혹시 걱정되시나요?”

“당연하지. 네가 강한 거야 알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일이잖아?”

“검은 바람이 한 일을 제가 못 할까 봐요?”

“좀 다르지. 검은 바람은 생긴 것부터가 딱 역할에 적절하지만 너는…….”

카일은 발레리아를 위아래로 내리훑었다.

하얀 피부와 거기에 대조되는 선명한 적발, 아름다운 얼굴에 신의 손길이 닿은 게 분명하다 생각할 정도로 완벽한 몸매까지…….

“솔직히 만만하게 보일 수도 있어.”

아름다운 여자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는 좀 부족했다.

“사실 저도 알아요.”

발레리아가 자신의 말에 수긍하자 카일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여차하면 계속 검은 바람에게 맡기는 방법도 있기는 있는데?”

“아니요. 저도 하고 싶어요. 검은 바람만 고생시킬 수는 없죠. 그리고…….”

“그리고?”

“후후후. 사실 저는 그런 거 잘 해요. 기사로 있을 때도 병사들 조련은 종종 했거든요.”

카일은 발레리아의 몸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한테 지도받을 수 있었다면 병사들도 행운이었겠어?”

“글쎄요? 걔들이 그렇게 생각했을지는 모르겠네요. 거의 악마처럼 굴었거든요.”

“……?”

발레리아는 카일의 품에 안겨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제가 이렇게 귀엽고 순종적인 것은 오직 주인님과 단 둘이 있을 때뿐이랍니다.”

그 말에 카일의 이성이 다시 날아가 버렸다.

“어……? 주인님, 더하실… 아…….”

“미안, 좀 참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참으실 필요 없어요.”

“내일 훈련에 지장 생기지 않을 정도로만 할게.”

“밤…새도록 해도 지장 같은 건 안… 흐윽……!”

“그럼 됐어.”

카일은 다시 발레리아에게 파묻혀 갔다.

그리고 진짜로 아침 햇살이 뜰 때까지 카일의 침실에서는 열락에 신음하는 발레리아의 목소리가 계속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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