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조건을 많이 달기는 했지만 이건 카일의 입장에서 무조건 이득이었다.
이 세계의 권력자나 거물을 상대로 사방이 꽉꽉 막혀서 도저히 탈출구가 없을 때. 한 번 정도는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황금 열쇠가 생긴 것이다.
바이에른 모험가 길드의 지부장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거물?
그런 건 바이에른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다 단 한 번이라고 선을 그어 두기는 했지만 이 한 번을 사용하기 전에는 길드장과 카일 사이에 끈이 생긴 것이다. 가늘고 희미한 이 끈을 잘 키우고 관리하면 언젠가 굵고 튼튼한 동아줄이 될 수도 있다.
‘좋아. 이제 충분해.’
클랜 창설권과 길드 지부장과의 연결 고리.
카일은 몇 마디 말을 통해서 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커다란 이득을 취했다.
“자, 그럼 제가 최근 얻은 수익의 비밀을 밝혀 드리겠습니다. 미리 말씀 드리자면 정말 깜짝 놀랄 것입니다.”
“일단 들어보지.”
“제 비결은…….”
카일은 자신이 사냥개인 스노우를 강아지 시절부터 사서 정성껏 훈련시키고 던전에 투입하기까지의 과정을 숨김없이 설명했다.
괜히 숨겼다가 나중에 책잡히는 수도 있으니 훈련 과정까지 모두 가감 없이 공개한 것이다.
“개의 후각을 이용한 탐색……. 그렇군. 그런 건 생각도 못 했어.”
“트롤의 채취뿐만 아니라 수원도 찾아내고 다른 몬스터들의 접근도 먼저 알아채고 경고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호오오… 그게 정말인가?”
“예. 여차하면 던전에서 직접 증명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좋군. 한 번 가보도록 하지. 지금 당장 갈 수 있겠나?”
“준비만 하신다면요.”
“좋아. 그럼 내일 바로 준비하지. 이쪽의 멤버는 내가 고를 테니 자네는 그 개만 데리고 따라오게.”
“예. 알겠습니다.”
* * *
지부장과 약속한 날이 되고, 카일은 지부장과 그의 측근들과 함께 던전의 7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스노우를 활용해서 트롤을 찾는 모습을 실제 보여 주었다.
스노우는 이제 익숙해져서 7층에 들어오고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바로 트롤을 찾아냈다.
“크워어어어!”
“이런, 진짜잖아?”
“말도 안 돼. 벌써?”
“허어어? 이럴 수가?”
지부장이 데리고 온 모험가들은 모두 일류의 강자들이라서 그런지 트롤을 잡는 것에는 아무런 무리도 없었다.
그들은 대신 트롤은 단시간에 찾아내는 스노우의 탐색 능력이 크게 감탄했다.
그 후에도 카일은 스노우를 이용해서 세 시간 안에 두 마리의 트롤을 추가로 찾아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처음에 한 마리가 우연일 수도 있으니 연속으로 성공 시켜서 확실한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대단하군.”
지부장은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어떻습니까? 더 찾아볼까요?”
“아니, 이제 충분하네. 위로 올라가 보도록 하지.”
카일은 지부장과 함께 던전 위로 올라갔다.
왕복에만 10시간이 넘는 이동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당일치기 던전 행으로 세 마리나 되는 트롤을 잡은 것이다.
“과연, 획기적이라고 자랑할 만하군.”
이쯤 되니 지부장도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트롤을 탐색해 내는 스노우의 능력은 틀림없는 진짜였다.
숙련된 인간 탐색꾼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빠르게 트롤을 찾아냈다.
“더 시험해 볼 것도 없군. 올라가지.”
지상으로 올라간 후.
지부장은 은근한 목소리로 카일에게 말했다.
“혹시 그 스노우라는 개를 나한테 팔 생각은 없나?”
“스노우를 말입니까?”
“그래. 가격은 섭섭지 않게 쳐주지. 5,000골드 어떤가?”
게리우스 지부장의 말에 카일은 순간 혹했다.
10골드에 산 강아지를 5,000골드에 산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카일은 잠깐의 고민 없이 답했다.
“죄송합니다. 아마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가?”
게리우스 지부장의 표정에는 섭섭한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어지간히도 스노우가 욕심났던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녀석을 5,000골드에 팔면 분명 지부장님이 화를 내실 겁니다.”
“뭐? 내가? 어째서?”
지부장은 결코 그럴 일은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카일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이 녀석의 목줄을 한 번 잡아 보시겠습니까?”
“그러지.”
지부장은 순순히 스노우의 목줄을 잡았다. 그리고 카일은 서서히 그 상태로 스노우와 멀어져갔다. 그러자 스노우는 멀어져 가는 카일을 따라가고 싶어서 안달을 내기 시작했다.
낑… 끼이잉…….
“어, 잠깐……. 이 녀석아. 얌전히 있어. 앗!”
지부장은 스노우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윽고 손을 뻗어서 제압하려고 하니 스노우는 지부장의 손을 물려고 했다.
물론 거기에 물릴 지부장은 아니었지만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날 따르지 않는군.”
“개는 충성심이 강한 생물이니까요. 한 번 주인을 정하면 좀처럼 바꾸지 않죠.”
카일은 다시 다가와서 스노우의 목줄을 잡고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었다. 게리우스 지부장의 손길을 거부하던 것과 달리 스노우는 카일의 손길에는 몸을 뒤집으면서 애교까지 부렸다.
“보시다시피 이 녀석은 저하고 제 파티원이 아니면 거의 따르지 않습니다. 제가 지부장님에게 이 녀석을 팔아 봤자 제 구실을 할 리가 없죠. 오히려 5,000골드만 날리는 꼴이 될 겁니다.”
“그래. 그런 것 같군.”
게리우스 지부장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지부장에게 카일이 말했다.
“저라면 직접 강아지를 구해서 훈련시키는 것을 권해 드리겠습니다.”
“직접말인가?”
“예. 자신에게만 충성을 바치는 훌륭한 탐색견을 키우려면 강아지 때부터 직접 훈련을 시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훈련을 위한 노하우는 모두 전해 드리겠습니다.”
“음, 그렇군. 직접이라……. 그것도 나쁘지 않아.”
게리우스 지부장은 자신이 직접 강아지를 구해서 훈련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가능하시다면 스노우와 같은 품종인 화이트 울프종. 그리고 암컷을 권해 드립니다.”
“왜 암컷이지? 자네 개는 수컷이지 않나?”
“예. 하지만 암컷을 구매하시면 나중에 성견이 되었을 때 스노우와 교배를 해서 새끼를 낳을 수 있지 않습니까?”
“아아… 과연!”
“아무래도 명견의 핏줄을 타고난 새끼들이 명견으로서의 소질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법이죠.”
“그렇군. 일리가 있어.”
‘그리고 당신이 키우는 개와 내 개가 새끼를 낳으면 필연적으로 나하고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질 테고 말이야.’
그런 핑계로 자주 만남을 가지다 보면 결국 두 사람의 인연도 더 단단해지는 법이다.
“암컷이라. 좋군. 스노우는 어디서 샀다고 했지?”
“귀족들이 이용하는 쇼핑 거리의 펫 숍입니다.”
“알았네.”
카일은 멀어지는 게리우스 지부장의 뒷모습을 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걸로 다 해결됐군.”
카일은 다 계획이 있었다.
모험가 길드에서의 일이 모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자 뜬눈으로 기다리고 있던 노예들이 카일을 반겼다
“주인님. 다녀오셨어요.”
“가셨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당하셨다면…….”
카일은 자신을 걱정해 주는 세 사람에게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모두 잘 풀렸다.”
카일의 말에 세 사람의 표정에서는 일제히 안도감이 보였다. 카일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해주마. 그 전에 지금 당장 구입해야 할 것이 있다.”
“예? 그게 뭡니까?”
“노예를 구입할 것이다. 최소한 열 명 정도는 구입해야겠지.”
힘은 충분히 비축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덩치를 불릴 준비를 해야 할 때다.
* * *
보통 카일이 노예를 구입할 때는 폐기장으로 갔다. 그곳은 카일의 입장에서는 흙 속의 보석이 묻혀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일반적인 노예를 구입 할 수 있는 노예 시장이었다.
경매에 붙여지는 고가의 노예부터 농장이나 공사현장에 써먹을 수 있는 건장한 남자 노예.
가정에서 가사 도우미로 써먹을 수 있는 중년의 여성 노예까지 다양한 노예들이 판매되는 곳이다.
검은 바람을 데리고 그곳에 찾아간 카일이 말했다.
“던전에서 짐꾼으로 사용할 노예를 보고 싶다.”
“아, 그렇다면 될 수 있는 한 건강한 노예가 좋겠군요. 이쪽으로 오시죠.”
노예시장의 점원은 카일을 한쪽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건장한 체격의 젊은 남자 노예들이 족쇄를 달고 묶여 있었다.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군.’
폐기장보다는 상태가 나았지만 여기도 노예들의 처지가 비참한 것은 똑같았다.
카일은 가능한 너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여기에 온건 어디까지나 필요한 노예를 구입하기 위해서다.
“짐꾼이라면 몇 명이나 필요 하십니까?”
“최소한 열 명 정도는 필요하다.”
“그렇군요. 던전에서 활동할 정도면 그래도 어느 정도 싸울 줄 아는 노예가 좋겠군요. 바로 구입이 가능한 하급의 전투 노예들도 있습니다만…….”
“얼마지?”
“1인당 150골드입니다. 열 명이나 사신다면 120골드까지 깎아 드리죠.”
전투능력이 있는 노예는 그 값어치가 상당했다.
‘무리군.’
카일의 파티에 지금 부족한 건 인력이지 전투력이 아니었다. 1,000골드가 넘는 돈으로 하급의 전투 노예를 구입할 필요는 없었다.
“짐꾼 정도면 충분하다. 짐꾼 노예들은 얼마지?”
“예. 보통 10골드부터 시작해서 상태가 좋은 노예들은 50골드까지 합니다.”
“그쪽을 좀 보고 싶군.”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카일은 노예 시장의 점원의 안내를 받아서 한쪽에 모여 있는 노예들에게 바라봤다.
“여기 있는 노예들이 손님께서 찾으시는 노예들입니다. 모두 건강하고 병든 곳도 없습니다.”
“흠…….”
카일의 앞에 있는 노예들은 십 대 후반부터 삼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노예들이었다.
각양각색의 인종의 노예들은 카일의 눈이 마주치자 모두 고개를 숙였다
‘봐도 잘 모르겠군.’
카일은 뒤편에 있는 검은 바람에게 말했다.
“검은 바람, 건강한 사람으로 열 명 정도 골라 봐라.”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검은 바람은 우선 노예시장의 점원에게 말했다.
“주인님은 범죄 이력이 있는 노예들을 싫어하오. 그런 이들은 배제해 주겠소?”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점원은 절반 정도 되는 노예들을 제외했다.
“남은 이들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노예로 태어나서 쭉 노예로 자란 이들이오. 순종적이고 몸도 튼튼하지.”
“알겠소.”
그리고 검은 바람은 남은 노예들을 천천히 살폈다. 체격이나 피부의 상태 등을 확인한 검은 바람은 그중에서 건장한 남자 열 명을 골라냈다.
“너. 그리고 너. 너하고 너도 와라.”
검은 바람의 지명을 받은 노예들은 순순히 앞으로 나왔다.
“주인님. 다 골랐습니다.”
“좋아. 이 노예들을 구입하겠소. 다 해서 얼마지?”
“예. 어디 보자……. 특히 좋은 놈들을 고르셨군요. 가격도 조금 나갈 것 같습니다. 어디 보자…….”
그는 노예들의 목줄에 걸려 있는 가격표를 확인하고 수를 더하더니 말했다.
“다 해서 320골드입니다. 특별히 300골드까지 깎아 드리죠.”
“250골드 어떻소?”
“그건 좀 곤란하군요..”
“이번이 첫 거래지. 앞으로도 지속적인 거래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소.”
“…280골드. 이 이상은 제 권한이 아닙니다.”
“좋소. 그 가격에 사지. 종속 마법을 인계해 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카일은 건장한 노예 열 명을 280골드에 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