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카일을 두 달 동안 던전에 열다섯 번이나 들어갔고 그때마다 최소한 트롤을 세 마리에서 네 마리씩 잡아서 가지고 올라왔다.
한 번 내려가면 최소한 120골드 이상의 수익이 올렸고 이것은 4인 파티가 올리는 수익으로는 실로 경이적이었다.
더구나 탐색 기간조차 짧았다.
길어야 사흘, 짧으면 이틀.
심지어 당일치기로 갔다 온 적도 있었다.
단 네 명이서 어지간한 소형 클랜이 활동하는 것만큼이나 경이적인 수익을 올리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주목을 끌었다.
이렇게 이상한 사태가 계속되자 결국은 모험가 길드에서 손을 뻗어 왔다.
“모험가 카일. 길드의 명령이다. 지금 당장 모험가 길드에 출두하기를 바란다.”
카일의 집으로 찾아온 모험가 길드의 직원은 수십 명의 병력을 대동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힘으로 끌고 가겠다는 거군.’
카일은 그런 길드의 조치에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해서 차분하게 대응했다.
“알겠습니다. 옷만 좀 갈아입고 나올 테니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30분주겠다.”
“감사합니다.”
카일은 안으로 들어가서 최대한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중요한 회담을 할 때는 옷차림도 중요한 법이지.’
옷을 갈아입은 카일은 1층으로 내려가 걱정하는 노예들을 보고 검은 바람에게 말했다.
“검은 바람, 나는 길드에 갔다 오겠다. 내가 없는 동안 집은 네가 지켜라.”
“괜찮으시겠습니까? 주인님.”
“그래. 모두 예상했던 일이다.”
“주인님이 그러신다면 저희는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카일은 모험가 길드의 직원을 따라서 길드 본부로 향했다.
* * *
모험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카일이지만 사실 모험가 길드에 찾아온 적은 손에 꼽을 만큼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처음에 모험가로 등록할 때와 그 후에 노예들을 모험가로 등록 할 때 정도뿐이었다.
모험가 길드에 찾아왔을 때도 접수처의 직원과 사무적인 일처리만 할 뿐 다른 볼일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위층으로 따라와라.”
카일은 길드 직원의 안내에 따라서 길드의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카일을 안내한 직원이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지부장님. 데리고 왔습니다.”
“들어와.”
그리고 문이 열리고 카일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옆머리에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장년의 남자가 카일을 맞이했다.
“어서 오게. 내가 바이에른 모험가 길드의 지부장을 맡고 있는 게리우스 헌트일세.”
“카일입니다.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이 남자가 바로 바이에른의 모험가 길드의 총책임자인 지부장인 것이다.
‘간부를 만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부장이 직접 나설 줄은 몰랐군.’
“자리에 앉지.”
“감사합니다.”
카일은 그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고 지부장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뭔가 마시겠나?”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보다 저를 호출하신 용건을 듣고 싶습니다.”
“하하하. 성격이 급한 친구군.”
지부장은 여전히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 여유는 그가 카일보다 압도적으로 강자이기에 가질 수 있는 여유였다.
사회적 지위와 가문의 배경, 거기다 본연의 실력까지 모두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우선 바이에른의 모든 모험가들을 총괄하는 모험가 길드의 지부장이다.
그가 지니고 있는 권력은 대형 클랜의 크랜장들을 뛰어넘는다고 봐야 한다.
거기다 그의 이름에 붙어 있는 헌트라는 성.
이 성은 모험가 길드의 간부들 사이에서 많이 보이는 성이다.
아주 오래전에 모험가 길드를 창설한 전설적인 영웅 슈트라인 헌트의 성으로 지금도 모험가 길드의 상위 간부들 사이에서는 절반 이상이 헌트라는 성을 사용하고 있다.
게리우스 헌트는 그 헌트 가문의 일원이다.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헌트라는 성 자체가 서러브레드나 다름없는 엘리트의 표식이었다.
거기다 본연의 실력도 그렇다.
아무리 헌트라는 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본연의 실력이 부족하면 간부는 될 수 없다.
게리우스 헌트는 젊은 시절 모험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확고한 실적을 다수 남긴 우수한 모험가이기도 했다.
그 개인의 강함은 최소한 익스퍼트 상급이라는 설이 있었다.
실제로 그를 마주한 카일은 그가 얼마큼 강한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게리우스 헌트는 이제 오러 유저 초급에 막 들어선 카일이 힘을 재보기에는 너무나 높은 수준의 강함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게리우스가 카일에게 말했다.
“좋아.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바로 용건을 꺼내지. 이미 짐작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근 자네가 범상치 않은 수익을 올리고 있더군.”
“조금 괜찮은 수준일 뿐입니다”
“조금? 하하하. 자네가 트롤을 하도 많이 잡아서 7층의 다른 모험가들이 트롤을 잡는 횟수가 7할 이하로 떨어졌다고 하던데?”
“…….”
“심지어 연금술 길드에서는 자네가 하도 많은 트롤의 가죽을 납품해서 이제 매입가를 낮춰야 할 지경이 되었다고 하더군.”
“…….”
카일이 지난 두 달 동안 잡은 트롤의 숫자는 50마리를 넘는다. 이건 4인조 파티가 잡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숫자였다.
게리우스는 카일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뭔가 새로운 탐색 방법이라도 찾아냈나?”
카일은 조금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예. 획기적일 정도로 우수한 방법을 찾아냈죠. 덕분에 최근 짭짤한 수익을 올린 것은 사실입니다.”
“흠, 그렇군. 그렇다면 그 방법이 뭔지 한 번 알려줄 수 있겠나?”
게리우스의 말에 카일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힘들여서 찾아낸 노하우를 그냥 공개하란 말씀이신가요?”
“후후후. 그래서는 곤란하지. 물론 자네의 노하우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길드 차원에서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겠네.”
“그렇습니까?”
언뜻 듣기로는 공평해 보이는 제안이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우선 ‘노하우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이라는 말 자체가 걸렸다.
그 판단을 누가 하겠는가?
당연히 카일의 눈앞에 있는 게리우스다.
그가 멋대로 판단하고, 그가 멋대로 결정한다.
기껏 노하우를 들어 놓고 ‘별 것 아니군. 별로 가치 있는 정보는 아니야.’ 라고 말한다면 그걸로 끝이다.
게리우스의 판단에 딴지를 걸 정도의 힘은 카일에게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기껏 대가를 준다고 해도 돈 몇 푼으로 끝낼 가능성이 크다.
카일의 입장에서는 그래서는 곤란했다.
솔직히 돈을 원한다면 지금 하는 것처럼 카일이 계속 트롤을 잡는 편이 금전적으로 더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카일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다면 노하우를 안 가르쳐 주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다.
‘다만… 그렇게 하면 돈이나 이익이 문제가 아니겠지.’
만약 그렇게 할 시에는 카일의 목숨이 문제다.
막대한 이득을 혼자서 독점할 수 있는 건 힘이 있는 강자들뿐이다. 아직 카일은 사회적인 강자라고 할 수 없었고 자신을 지킬 힘이 없다.
길드나 대형 클랜이 카일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뺏기 위해서 뒤로 손을 쓴다면?
그때는 카일의 목숨은 바람 앞의 촛불일 뿐이다. 그러니 여기서 카일이 선택해야 할 것은 하나뿐이다.
‘노하우를 공개하되,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야 해.’
어차피 빼앗길 거라면 차라리 비싼 값에 팔아야 하는 것이다.
그게 카일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아직은 말이다.
마음을 굳힌 카일은 지부장을 보고 말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가 특별하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호오? 어떻게 말인가?”
“지금 이 상황이죠.”
“……?”
“일개 모험가일 뿐인 제가 게리우스 지부장님과 일대일로 독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 자체가 제가 얼마나 파격적인 혁신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합니다.”
“하하하하! 말을 잘 하는군.”
게리우스는 한바탕 웃어버렸다
카일의 말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만약 부정한다면 자신은 별것도 아닌 일에 모험가를 호출한 멍청이가 되지 않는가?
“그래. 모험가는 과정보다 결과로 말하는 법이지. 자네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는 분명 특별한 가치가 있어. 내가 인정하지.”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그 노하우를…….”
“그래서 먼저 대가를 받고 싶은데, 두 가지 정도의 부탁만 들어 주신다면 노하우를 공개하겠습니다.”
카일은 게리우스 지부장의 말을 자르면서 자신이 받고 싶은 대가를 언급했다.
그런 카일이 말에 이제까지 귀엽게 웃어넘겼던 지부장의 미간에 골이 생겼다.
“혹시 자네 내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푼돈이나 던져 주고 말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도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게 돈은 아니라서 길드장님에게 다른 것을 받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무례한 요구를 했습니다. 불쾌하시다면 사과드립니다.”
자신의 입장을 낮추는 동시에 은근슬쩍 사과까지 덧붙이니 게리우스 길드장도 더 몰아붙이기는 좀 뭐했다.
“크흠, 돈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그 말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나?”
“예. 최근 벌이가 좋았으니까요.”
카일이 최근 두 달 동안 벌어들인 수익은 어마어마했다.
자신이 말 따라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고, 열다섯 번이나 던전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한 번에 최소 120골드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그렇게 해서 최근 두 달 동안 카일이 올린 수입의 총합은 2,000골드를 넘어서고 있었다. 카일은 이 돈을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 착실하게 모아 두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카일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다.
“좋아. 그럼 뭘 원하나? 일단 자네의 요구부터 들어 보지.”
“예. 제가 원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클랜 창설의 권리입니다”
“클랜? 자네 클랜을 가지고 싶나?”
“예. 제가 알기로 모험가가 클랜을 창설하기 위해서는 길드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아무나 클랜 창설을 허가해 주면 용병들처럼 중구난방으로 모여서 패싸움하고 다니기 딱 좋거든. 그러니 클랜 창설을 허가해 주는 경우는 확고한 실적과 강함이 증명된 일류 모험가들뿐일세.”
“지금 당장 제가 일류 모험가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반드시 좋은 성과를 발휘해 보이겠습니다. 그러니 그때를 대비해서 클랜 창설을 허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좋은 성과라는 말은 너무 막연하게 들리는군. 뚜렷한 기준이 필요해.”
“10층까지 도달해 보이겠습니다. 그때에 제가 클랜을 창설할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어떻습니까?”
카일의 말에 지부장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
“10층이라……. 아슬아슬하군.”
보통 클랜들이 활동하는 영역은 10층에서 13층 정도다.
그보다 밑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대형 클랜 정도다. 얼마 전에 카일이 인상적으로 봤던 스톰 클랜의 경우 최근 몇 년 동안 15층을 공략중이다.
어쨌든 10층 정도면 클랜이라고 할 만한 자격은 있다는 말이다.
“좋아. 그렇게 하지. 자네가 10층까지 돌파 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춘다면 클랜 창설을 허가해 주겠네.”
“감사합니다.”
“두 번째 부탁은 뭔가?”
“두 번째는 지부장님의 힘입니다.”
“…뭐?”
“저는 바이에른에 자리를 잡고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신출내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뒷배도 없고, 배경도 없죠. 그러니 지부장님이 제 뒷배가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보통 그런 부탁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나? 비싼 술이나 뇌물이 들어 있는 장식품 같은걸 선물로 주며 은근힌 말하는 게 아니라?”
“그걸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카일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딱히 저를 불법적으로 지원해 달라거나 무조건 편애해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다른 권력자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노려지는 일이 생기면 한 번 정도는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
지부장이 망설이는 듯하자 카일이 말했다.
“물론 그때의 판단은 온전히 지부장님에게 맡기겠습니다. 잘못이 저에게 있다거나 상대방이 너무 거물이라서 나서기 껄끄럽다고 생각하신다면 제 도움을 묵살하셔도 괜찮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카일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간절한 눈빛으로 지부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제가 억울한 상황이고 상대방이 지부장님의 입장에서 별것 아닌 피라미라면 한 번 정도는 저에게 지부장님의 이름으로 도움을 베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카일의 장황한 말을 다 들은 지부장은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건이 굉장히 많이 달린 도움이군 그래.”
“결코 지부장님에게 폐가 될 일은 하지 않겠다는 제 의지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휴우우우…….”
카일의 간절함에 결국 지부장은 양손을 들고 말했다.
“좋아. 자네가 말한 대로 자네 쪽에 잘못이 있지 않거나, 상대가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거물이 아니라면 한 번 정도는 내가 자네를 지켜 주지.”
“감사합니다.”
‘됐다.’
카일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