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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36화 (36/215)

36화

지하의 욕실.

대련으로 땀과 먼지를 뒤집어 쓴 발레리아는 다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리시아는 그런 발레리아의 목욕 시중을 들고 있었다.

“물 온도는 괜찮으세요?”

“응. 괜찮다. 그보다 이렇게 할 필요 없다. 우리는 같은 노예가 아닌가?”

“아니에요. 그래도 발레리아 씨는 그렇게 훌륭한 기사님이신데…….”

“지금 나는 기사가 아니다. 아리시아 그대와 같은 노예일 뿐.”

“하지만 발레리아 씨의 강함은 주인님에게 큰 힘이 될 거에요. 저 따위보다 훨씬 더…….”

자신도 모르게 아리시아의 본심이 흘러나왔다.

“…….”

발레리아는 그런 아리시아의 말에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이럴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아리시아는 발레리아의 등에 물을 부어주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세요. 검은 바람 오라버니와 대등하게 싸우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트롤도 혼자서 잡는 오라버니인데.”

“흠, 그 투란족의 남자는 제법 대단한 실력이더군. 사실 실전이었으면 내가 졌을지도 모른다.”

“그런가요?”

“그래. 경지로 나누자면 익스퍼트 중급을 넘어서 상급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더군.”

검은 바람의 실력에는 발레리아도 제법 놀랐다.

과거 크로노 왕국의 기사단에 있을 때도 그녀는 동년배의 기사들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었다. 그녀보다 뛰어난 기사들 대부분은 그녀보다 10년 이상 더 수련을 한 베테랑들이었다.

‘나와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데 그 실력이라니. 천재라는 건 그런 거겠지.’

사실 그녀는 검은 바람의 나이가 일흔을 훌쩍 넘었다는 것을 모르기에 이런 착각을 하는 것이다.

어쨌든 아리시아는 발레리아가 부러웠다.

‘자신도 발레리아만큼 강하다면 카일에게 더 많은 힘이 되어 줄 텐데…….’ 같은 아쉬움이 계속 들었다. 게다가 발레리아에게 뒤처지는 건 전투 능력만이 아닌 것 같았다.

물을 부어서 거품을 씻어내면서 드러난 발레리아의 몸의 곡선을 보고 아리시아는 감탄했다

“아름다워요. 발레리아 씨.”

“응? 아아… 그 무슨.”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아리시아의 감탄에 발레리아는 창피한지 당황했다.

“아름답다니? 나는 그냥… 뭐, 그냥저냥한 정도지. 진짜 아름다운 아리시아 그대지 않나?”

“아니에요. 발레리아 씨가 훨씬 더 아름다워요. 저보다 몸매도 좋고, 키도 늘씬하게 크고…….”

사실 발레리아에게는 아리시아에게는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 치고는 커다란 170센티미터의 신장, 큰 신장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고 무엇을 입혀도 그림이 될 정도로 환상적인 황금 비율의 몸매를 하고 있었다. 거기다 카일의 능력으로 육체가 완벽한 상태로 재구성되면서 피부는 잡티 하나 없는 백옥 같은 피부로 돌아가 있었다.

노예가 되고 잎은 상처는 물론이고, 기사 시절에 입었던 자잘한 상처까지 완전히 없어져서 마치 아기 피부와 같은 보들보들함에 있었다.

거기에 진한 적갈색의 머리카락과 당당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목구비까지…….

아리시아가 청순하고 가련한 백합 같은 이미지였다면 발레리아는 활짝 피어난 장미와 같은 화려함이 있었다.

“너무 아름다워요. 발레리아 씨. 몸매가 조각 같아요.”

“하하… 그게 좀 어색하네.”

발레리아는 눈앞에 있는 거울에 자신을 바라봤다. 사실 그녀도 자신이 과거보다 더 아름다워졌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었다.

‘대단한 능력이야. 주군… 아니, 주인님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능력을 지니고 계신 거지?’

그녀도 눈이 있다면 자신이 아름다워졌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다. 다만 그녀에게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여기사 치고 아름다운 외모라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노예가 되고 겪었던 일들은…….

콰직.

“발레리아 씨?”

“아아… 미안. 조금 흥분했군.”

발레리아는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물통을 악력으로 부셔버렸다. 사과하는 그녀였지만 굳은 표정과 가늘게 떨리는 어깨를 보면서 아리시아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았다.

‘힘들었겠지.’

노예의 사정은 같은 노예가 잘 아는 법이다.

거기다 발레리아는 매독이라는 성병에 걸릴 정도로 오랜 기간 매음굴에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아름다움이 마냥 좋지는 않을 수도 있었다.

아리시아 본인만 해도…….

‘아니, 아니야. 잊어버리자.’

아리시아는 카일에게 안기기 전에 남자에게 안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리시아라고 끔찍한 경험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끔찍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 전에 자기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그때 그 남자에게 범해질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아리시아는 발레리아를 안아 주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이제 괜찮으니 안심하세요.”

“아리시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이건 그냥 저기… 아직 몸이 회복된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

변명하는 발레리아에게 아리시아가 말했다.

“발레리아 씨, 오늘은…….”

* * *

카일은 자기 방에 누워서 책을 읽고 있었다.

최근 들어서 삶에 여유가 생기면서 몇 가지 취미를 가질 수 있었는데 그중에 독서가 가장 유용했다.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면서 지식과 교양을 쌓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책을 좀 읽고 있을 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카일은 책을 접으며 말했다.

“들어와.”

카일에게는 익숙한 일과였다.

이제 문이 열리고 예쁘게 꾸민 아리시아가 다가올 것이다. 그녀와 함께 하는 밤의 대부분은 그녀를 안는 황홀한 시간으로 연결되었다. 카일에게 아리시아는 아무리 안아도 질리지 않는 최고의 여자였다.

하지만 굳이 잠자리가 목적이 아니라고 해도 둘은 잠자리를 함께했다. 그저 함께 누워서 체온을 공유하기만 해도 카일은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이제 그녀가 없으면 이제 잠자리가 허전할 정도였다.

“크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문을 열고 아름다운 여자가 들어온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리시아가 아니라 발레리아였다.

아리시아에게 빌렸는지 하늘거리는 핑크색의 네글리제를 입고 얼굴에는 옅은 화장까지 하고 온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그냥 문안 인사를 하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었다.

카일은 그녀를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아름답군.”

“주군, 아니 주인님까지 그런…….”

발레리아는 그런 칭찬이 익숙하지 않은지 괜히 머리를 손가락으로 비비꼬며 부끄러워했다.

“빈말이 아니야. 정말 아름다워. 그런데…….”

카일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이 시간에 이런 차림으로 오면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겠지?”

“…….”

발레리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결심을 굳힌 듯이 말했다.

“제 몸도 마음도 영혼의 한 조각까지 모든 것은 주인님의 소유물입니다. 부디 주인님이 원하시는 대로…….”

어렵게 말을 꺼내는 발레리아의 모습을 보고 카일은 피식 웃었다.

그녀의 진심 어린 충성심은 잘 봤다.

그리고 카일은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강제로 안길 필요는 없다.”

“예?”

“네가 안기지 않는다고 해서 너를 차별하거나 밀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약속하지.”

“진심이십니까?”

“그래.”

카일의 말에 발레리아는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깜짝 놀란 그녀는 카일의 눈을 바라봤다.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는 카일의 눈을 보고 그녀는 깨달았다.

‘진심이셔.’

발레리아는 그런 카일의 모습에 진심으로 놀랐다.

발레리아가 노예로 떨어지고 난 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남자들의 성욕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 모든 순간이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었지만 종속 마법으로 인해서 자살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버텨야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잊지 못하는 것은 과거 동료라고 믿었던 기사단의 동료들이 자신을 노리고 찾아왔을 때였다.

백작가의 영애이자 촉망받던 여기사였던 그녀가 성노예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은 과거의 동료들.

아니 동료라고 믿었던 쓰레기들이 그녀를 찾아와서 조롱했다.

“호오오. 정말이군. 천하의 발레리아 드 스콧이 이렇게 되었군.”

“평소 오만하기로는 하늘을 찌를 듯하던 년이 이 꼴이 될 줄은 몰랐겠지.”

“이제 좀 주제 파악을 하겠나?”

“앞으로도 종종 놀아 주러 올 테니 기다려라.”

그놈들은 여자의 몸으로 자신들보다 강한 발레리아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노예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들어서 그녀를 범하면서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패배감과 열등감을 해소했다.

놈들은 한때 자신들보다 더 강했던 발레리아를 조롱하고 범하며 기사로서 모욕하고 침을 뱉었다.

발레리아는 배신감과 굴욕감 속에서 치를 떨었다.

죽음보다 더한 치욕과 처참한 배신감 속에서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그렇게 저주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남자라는 존재 자체를 저주할 정도로 강한 증오심을 품었다.

고작 성욕 따위를 주체 못해서 옛 동료를 배신하고 고결한 기사도를 져버리는 쓰레기들.

그게 그녀가 알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카일은 그녀의 은인이고 그를 향한 감사의 감정도 진짜였지만, 한편으로는 그에게도 남자로서의 추악한 욕망이 있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사실 상관없었다.

카일이 자신에게 은인인 것과 별개로 그에게 완벽한 인간성과 도덕성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완벽한 주인을 바라기에는 그녀는 인생의 밑바닥을 너무 충분하게 겪었다.

거기다 이제 와서 자신의 몸뚱어리가 아깝다면 웃기는 일이다. 자신의 주인이자 은인인 카일이 원한다면 순수한 욕망의 대상으로 여겨져도 괜찮았다.

그런데, 카일은 자신에게 말했다.

싫으면 돌아가도 된다고, 설령 여자로서 몸을 바치지 않아도 아무런 질책도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발레리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 주인님은 제가… 아름답지 않으신가요?”

“아니, 너는 아름답다. 이건 진심이다.”

원래도 아름다운 그녀였지만 카일의 능력으로 신체가 재구성되면서 이제는 미의 종족인 엘프들도 빛이 바랠 정도로 아름다워졌다. 지금 그녀를 보고 아름답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 혹시 제가 창녀라서… 거리끼시는 겁니까? 더러운 여자라서…….”

발레리아의 말에 카일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지금 창녀가 어디 있지?”

“저, 저는… 주인님 저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여자는 고결한 기사이자 나의 충직한 심복인 발레리아 드 스콧이다. 누구라도 내 사람을 모독할 수는 없다.”

“…….”

순간 발레리아는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 저는 하지만 저는…….”

“과거는 상관없다.”

“…….”

“나는 지금의 너와 앞으로의 너의 모습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흐윽…….”

발레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아서 눈물을 흘렸다.

이럴 줄은 몰랐다.

설령 더러운 과거가 있다고 해도 자신은 강하게 일어설 수 있는 강한 여자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는 그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한 치욕과 상처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 상처를 처음으로 누군가가 보듬어주고 부정해준 이 순간 그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카일은 흐느껴 우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서 몸을 숙였다. 그러자 발레리아가 카일의 목을 팔로 감더니 그대로 자신의 입술을 겹쳐 왔다.

“흡.”

정열적인 키스가 이어지고 두 사람의 겹쳐진 입술 사이에는 뺨을 타고 흘러들어간 눈물이 뒤섞였다.

키스 후 발레리아가 카일을 바라보며 간절하게 말했다.

“제가 더럽지 않다면… 안아 주세요. 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 주세요.”

“…….”

카일도 이렇게까지 나오는 여자를 돌아가라고 할 수는 없었다.

카일은 그녀의 네글리제의 어깨끈을 옆으로 치웠다. 그러자 사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발레리아의 눈부신 나신이 드러났다.

“주인님…….”

발레리아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알몸은 수천 명의 남자에게 보여졌고 그녀는 이제 남자들에게 몸을 보이는 사실에 감흥조차 없었다.

그랬던 그녀지만 지금 이 순간은 너무나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 부끄러움 속에는 묘한 기대감과 설렘도 함께하고 있었다.

카일은 발레리아의 나신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탄식처럼 말했다.

“아름다워.”

“주인님, 어서…….”

카일은 그녀를 안아서 침대로 데리고 갔다.

이 아름다운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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