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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32화 (32/215)

32화

카일이 거래를 받아들이고 일행은 서둘러 움직였다. 우선 이 자리에 쓰러져 있는 트롤의 사체부터 정리했다.

갑옷으로 쓸 수 있는 트롤의 가죽을 벗기고, 간장을 빼서 방수 주머니에 담았다.

이 주머니는 제스터 쪽에서 가지고 있던 것인데 그들은 기꺼이 빌려 주었다. 사실 트롤의 가죽을 벗기는 작업도 이들이 도와준 덕분에 빨리 끝났다.

카일의 파티만으로 작업했으면 한 시간은 넘게 걸릴 일이었지만 그들의 도움을 받으니 15분 만에 끝났다.

“이제 이동하지. 앞장서서 안내해라.”

“예. 카일 씨.”

트롤을 해체하고 나서 제스터 파티는 앞장서서 카일을 안내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해체하다 만 트롤의 시체 한 구와 형체도 찾기 힘들 정도로 짓뭉개진 동료가 있었다.

“알, 이 멍청한 자식…….”

제스터는 동료가 생전에 쓰던 무기인 창을 챙기고 유품도 챙길 수 있을 만큼 챙겼다.

카일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 유품은 어떻게 할 거지?”

“알의 가족에게 돌려줄 겁니다. 최소한 그렇게는 해야죠.”

“그래. 그렇군.”

시체는 따로 챙기지 않았다.

던전 안은 시체를 일일이 챙길 정도로 여유가 많은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잘 있어라. 알.”

“편히 쉬어라.”

그저 동료들이 짧게 작별의 말을 할 뿐이었다.

동료를 향한 애도를 마친 그들은 바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자, 이쪽도 서둘러서 해체하죠.”

“하다가 가서 금방 끝나겠네.”

“제프, 이쪽 좀 잡아 줘.”

제스터와 그의 동료들은 다른 한쪽의 트롤의 시체도 빠르게 해체를 시작했다.

가죽을 갈무리하고 간장을 챙기고 나니 그 부피가 상당했다.

카일은 제스터를 향해서 말했다.

“지상까지 옮기는 걸 도와준다면 트롤을 처분하고 나온 돈의 10%를 주지. 도와주겠나?”

“물론입니다.”

제스터는 크게 고마워하며 말했다.

실패뿐인 원정에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챙길 수 있다면 감지덕지였다.

제스터의 파티원 네 명까지 합류해서 총 일곱 명이 된 카일의 파티는 지상으로 이동했다.

반나절을 꼬박 걸어서 지상에 도착한 후.

“후우우…….”

“어떻게 살아서 왔군.”

제스터의 파티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환의 기쁨을 채 다 누리기도 전에 잔잔했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깨졌다.

짜아악!

경쾌하게 누군가의 따귀를 때리는 소리가 났다.

카일이 고개를 돌려 보니 거기에는 로라라는 마법사가 파티장인 제스터의 뺨을 올려붙이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너 감히 4서클 마법사인 나한테 그 따위로 말하고 무사할 것 같아?”

지상으로 돌아오자 로라가 제스터에게 분노를 터트린 것이다.

‘아까전의 일을 앙심으로 품고 있었나?’

카일은 자신의 일이 아니니 일단 한 발 물러나서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있어서 너희들이 그동안 트롤을 잡을 수 있었던 거야. 4서클 마법사인 내가 너희들 같은 3류 파티에… 악!”

짜아악!

있는 대로 히스테리를 부리던 로라의 뺨이 돌아갔다.

제스터가 한 일이다.

제스터는 그대로 로라의 멱살을 잡아당기곤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법사가 어디 귀족인줄 알아? 목숨 걸고 적을 막아서는 동료를 당연히 버려도 되는 줄 아느냐고?”

“이… 이거 놔. 놓고 말해……!”

“챈들러가 목숨 걸고 트롤을 막을 때 너, 뭐라고 했어? 내버려두고 도망가자고 했지? 그게 동료가 할 말이냐?”

“그 상황에서는 그게 당연하… 꺄악!”

제스터는 그대로 로라를 거칠게 밀쳐냈다. 로라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었다. 제스터는 그런 로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파티에서 꺼져라. 계속 내 앞에서 알짱거리면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거다.”

“누… 누가 이런 삼류 파티에 있고 싶은 줄 알아? 나는 4서클 마법사라고. 4서클.”

“…….”

“너희 같은 삼류 아니라도 내 실력을 원하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어.”

“그럼 거기로 꺼져. 나는 너 같은 쓰레기 년하고 같이 있고 싶지 않아.”

“뭐…뭐가 어째? 제스터, 네가 감히…….”

핑!

어디선가 날아온 단검이 로라의 뺨을 스치고 날카로운 칼날 하나가 지나갔다.

제프라는 이름의 도적이 한 짓이었다.

제프는 한 손에 다른 단검을 던졌다 받았다 하면서 로라를 노려보고 말했다.

“형님이 꺼지라고 하잖아? 귀먹었어? 쓰레기 년아.”

“너, 너, 너……. 이 빈민가 출신 쓰레기가……!”

“이 이상 개소리 지껄이면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네 말대로 나는 내일이 아쉽지 않은 빈민가 출신의 쓰레기거든?”

“…….”

로라는 이를 갈면서 동료였던 이들을 한 차례 노려보더니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비켜. 비키라고!”

그렇게 로라가 떠나버리자 제스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별로 상관없어. 그보다 마석부터 정산하지. 아까부터 길드 직원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서 말이야.”

“예. 죄송합니다.”

던전 안에서 모험가들 간에 벌어지를 트러블은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던전 밖에서 모험가가 사고를 치면 길드는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잘못하면 길드의 관리 책임 능력이 의심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조금 전에 제프라는 도적이 단검을 던졌을 때는 길드 직원들의 시선이 꽤 험악해졌다.

“주의하도록 해. 다음은 없다.”

실제로 모험가 길드의 직원은 제스터의 마석을 정산해 주면서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예. 모쪼록 주의시키겠습니다.”

제스터는 파티원 대신 고개를 숙이면서 길드 직원에게 사과했다.

마석 정산을 마친 후.

“트롤의 시체를 처분하고 싶은데 어디 추천할 만한 곳이 있나?”

“저희는 평소에 연금술사 길드에 처분했습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좋아.”

카일은 제스터 일행을 따라서 트롤의 가죽과 간을 가지고 연금술사 길드로 들어갔다.

이 세계에서 연금술은 꽤 실용적인 학문이다.

실제로 금을 만들지는 않지만 각종 금속이나 약품을 다루는 것에 능숙하며 제약, 화학, 가공 등등 꽤 여러 가지 분야에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다.

덕분에 길드는 상당히 거대했고 돈도 많은 단체였다.

“어서 오십시오. 원재료 판매가 목적이신가요?”

“예. 트롤 두 마리 분량의 부산물입니다.”

“테이블에 올려 주십시오. 바로 감정해 드리겠습니다.”

길드의 직원의 말에 제스터는 가지고 온 가죽과 간을 올렸다.

그러자 점원은 신중하게 물건을 감정했다.

“흐으음…….”

점원은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물건의 상태를 감정했다.

이런 건 상처가 적으면 적을수록 상등품이었다.

마침내 물건을 다 살펴본 점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간은 둘 다 깨끗하고 신선하네요. 피도 많이 안 흘렸고, 둘 다 최상품으로 분류하겠습니다. 하지만 가죽은 둘 중에 하나에 자잘한 상처가 꽤 많군요. 하나는 상급, 하나는 중급으로 치겠습니다.”

“다 해서 얼마죠?”

“간 두개는 20골드, 가죽은 30골드로 어떤가요?”

제스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적절하군요.”

“바로 정산해 드리겠습니다.”

제스터는 길드 직원에게 50골드를 받으며 생각했다.

‘이것도 마지막이구나.’

트롤을 잡고 나서부터 정말 벌이가 많이 좋아졌다. 개인적으로 지고 있던 빚도 갚을 수 있었고 동료들의 생활도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이제는 무리일 것이다.

동료 중에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떠났다.

5년 동안 모험가로 생활하면서 착실하게 꾸렸던 파티가 이렇게 풍비박산됐다.

모험가 전체를 보면 파티가 해체되는 것은 흔하디흔한 일이지만 당사자인 제스터의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자신이 지난 5년의 노력이 한 방에 무너진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그는 트롤을 처분하고 받은 보수를 카일에게 주었다.

카일은 돈 주머니를 받으면서 말했다.

“약속을 잘 지키는군.”

“실력은 평범할지 몰라도 신용만큼은 철저하게 지켜왔습니다.”

“그렇군.”

카일은 돈주머니에서 5골드를 꺼내서 돌려주었다. 사전에 약속했던 운반료 10%였다.

“나도 신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이다.”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고 받겠습니다.”

제스터는 돈을 받아서 챙겼다.

그리고 그는 카일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괜찮으시다면 식사나 술이라도 같이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왜지?”

“드릴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자리를 옮기시죠.”

“그래…….”

카일은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이 담담하게 반응했다.

“오늘은 시간이 좀 애매하군. 내일 점심쯤에 길드 앞에서 보는 게 어때?”

“예. 좋습니다.”

카일은 일단 만남을 내일로 미뤘다.

오늘 만날 수도 있었지만 굳이 내일로 하루를 늦춘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둘 다 어떻게 생각해?”

카일은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에게 의견을 구했다. 오늘 만났던 제스터라는 인물을 영입하는 것에 관해서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주인님은 그들이 파티를 합치자고 제의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카일이 보기에 저쪽에서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분명 오늘 만나서 하고자 한 말도 앞으로 같은 파티로 활동하는 것에 관해서겠지.’

제스터와 그 동료들은 그 동안 7층에서 사냥을 했지만 이번에 동료를 둘이나 잃으면서 더 이상 7층에서 사냥하는 것이 불가능 해졌다.

눈높이를 낮춰서 6층이나 5층에서 활동하겠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이미 7층에서 버는 돈 맛을 안 그들이 수준을 낮춰서 5,6층에서 활동하는 것은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계속 7층에서 활동하기를 원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력을 증강 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카일과 파티를 합치고 싶은 것이다.

아리시아는 조금 생각하다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주인님의 뜻에 따르겠어요.”

“검은 바람 너는?”

“그들과 합류하는 것이 주인님에게 무슨 이득이 되는가 생각 중입니다.”

“일단 인원수가 늘어나면 챙길 수 있는 트롤의 부산물의 양이 많아진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득을 충분해.”

지금 카일의 파티로는 7층에서 트롤을 잡는다고 해도 두 마리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그 이상을 잡아 봤자 가죽의 부피가 상당하기 때문에 지상으로 옮기기 힘들어질 뿐이다.

하지만 인원수가 늘어나면 얘기는 달라진다.

“거기다 그들은 7층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으니 나름 실력들은 있는 편일 거야. 경험과 능력을 고려하면 영입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지불해야 할 대가를 생각했을 때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그 부분은 협상을 해봐야겠지.”

보통 모험가의 수익 분배는 머릿수대로 공평하게 나눈다.

하지만 그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실력과 입장에 따라서 누군가가 더 많은 몫을 받기도 한다.

“수익 분배를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7 대 3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그 정도면 카일이 생각하기에는 적당한 비율이었다.

“과연 그들이 그 조건을 받아들일까요?”

“그럼 안 하면 그만이다. 다만…….”

카일은 조금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이었다.

“좀 아까운 인물들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의리가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런 이들이라면 믿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이것만 해도 카일에게 있어서 큰 진보다.

종속 계약으로 엮인 노예가 아니라 평범하게 다른 사람을 믿어 보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말이다.

전생에는 오로지 정부의 도구로 이용당하다 죽고 이번 생에는 귀족의 서자로 태어나서 하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런 카일이 처음으로 타인을 믿어 보려고 하는 것이다.

“확실히, 의리는 있는 인물들로 보였습니다.”

“그것 하나만 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한 번 같이 다녀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님의 뜻이 그렇다면 저는 따르겠습니다.”

“저도요.”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가 동의하자 카일도 마음을 굳혔다.

‘내일 만나서 본격적으로 얘기를 해 보자.’

* * *

약속한 다음 날이 되었다. 카일은 모험가 길드 앞에서 제스터와 만났다.

카일은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를 데리고 나왔고 제스터 역시 두 명의 동료를 데리고 왔다.

“오셨군요. 카일 씨.”

“앉지.”

양쪽 모두 자리에 앉았고 제스터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정식으로 소개하죠. 제스터입니다. 경력은 5년이고 이쪽은 챈들러와 제프. 둘 다 제 동생 같은 녀석들입니다.”

“챈들러입니다. 방패 전사입니다.”

“제프다. 도적이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이가 챈들러였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건들거리며 인사하는 게 제프였다.

제프라는 남자의 표정에는 노골적으로 불만의 감정이 드러나 보였다.

제스터는 재빨리 나서서 그걸 제프를 변호했다.

“이 녀석은 성격이 좀 험한 편입니다. 하지만 실력은 확실하고, 동료를 배신하는 짓은 절대 안 합니다.”

그 말에 카일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카일이다. 여기는 전사인 검은 바람과 궁수인 아리시아. 둘 다 내 노예들이지만 무례한 태도는 접어주기 바란다.”

“명심하죠.”

그리고 양쪽은 자리에 앉아서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우선, 짐작하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파티의 병합을 권하고 싶습니다.”

“…….”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만큼 카일은 동요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카일에게 제스터는 자신들의 장점을 열변을 토하며 어필했다.

“저희 파티는 이번 사고가 있기 전에는 무난하게 7층에서 트롤을 사냥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제프는 트롤의 흔적을 찾아서 추적하는 것에 능숙하고 챈들러도 트롤을 상대로 일대일로 대치해서 버텨낼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한 방패 전사입니다. 사실 이 친구는 원래 용병단 출신이었는데 친구인 제프를 따라서 제 파티에 들어온 인물이죠. 어디 가서 이 정도 방패술을 가진 모험가를 찾기는 힘들 겁니다.”

“당신은?”

“예? 아아… 저 말입니까?”

“당신 실력을 알고 싶다.”

그 말에 제스터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경지만 놓고 보면 유저 최상급으로 챈들러하고 같은 수준입니다. 하지만 모험가로서의 경력은 제가 더 높아서 파티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

유저 최상급이면 익스퍼트를 바로 목전에 두고 있는 경지다.

단, 그 경지에 이른다고 모두가 익스퍼트가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백 명에 아흔아홉 명 정도는 유저 최상급에서 평생을 답보하다 끝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노력 없이 도달하는 단계는 아니지.’

카일은 그들의 강함과 노력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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