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헉… 헉…….”
“뛰어. 빨리 뛰라고!”
“뛰고 있어! 이 망할 자식아! 우리 마법사가 너희처럼 체력밖에 없는 줄 알아?”
그들은 5인조 파티로 전사 셋, 마법사 하나. 도적 하나의 표준적인 구조의 파티였다.
나름 경험도 있고 실력도 있는 그들은 최근 들어서 사냥터를 7층으로 옮겼다.
그들이 사냥터를 옮긴 이유는 그들의 파티에 있는 마법사가 최근 4서클로 경지가 올랐기 때문이다.
4서클의 마법사가 사용하는 마법은 트롤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즉, 이제 그들은 7층으로 내려가서 트롤을 사냥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을 손에 넣은 것이다.
사실 다른 멤버들의 전력이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다. 그저 마법사의 공격력이 약간 올랐을 뿐.
하지만 트롤을 사냥할 수 있다는 유혹 앞에서 이들은 결국 7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처음 원정 때 트롤을 두 마리나 잡고 상당히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그 맛을 한 번 보고 나니 다시 7층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들도 자신들의 실력에 7층이 버겁다는 자각은 하고 있었다.
‘조금 무리해도 괜찮아.’
‘수입이 이렇게 짭짤한데.’
‘점점 익숙해지겠지.’
그러나 돈의 유혹 앞에서 점점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 했고 결국 무리를 거듭했다.
이것은 실수다.
던전에서 무리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도박이나 마찬가지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트롤 한 마리를 잡고 그놈을 해체하려고 하는데 다른 트롤이 또 한 마리 나타난 것이다.
“엇?”
“어째서?”
그 갑작스런 상황에 그들은 크게 당황했다.
트롤은 단독으로 생활하지만 번식기에는 암수가 함께 다니기도 한다.
그리고 이때 한쪽이 죽으면 다른 한쪽은 굉장히 크게 분노한다.
“크워어어어어어!”
갑작스럽게 등장한 새로운 트롤은 자신의 짝이 죽었음을 알고 어마어마하게 분노했다.
순식간에 휘둘러진 일격에 미처 준비할 틈도 없던 전사에게 작렬했다.
콰지직!“
전위에서 창으로 트롤은 견제해야 하는 핵심 파티원이 트롤의 돌도끼에 으깨져 버렸다
“알!”
“제길. 모두 전투 준… 크억!”
“으아아앗!”
동료의 죽음에 다른 파티원들은 패닉에 빠졌다. 그들은 미처 전열을 정비하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공격을 피해서 흩어졌다. 가장 중요한 마법사는 마법을 캐스팅 할 시간을 벌어줄 동료가 쓰러지자 한 발 먼저 도망가며 외쳤다
“모두 도망가!”
파티장의 지시도 떨어지기 전에 핵심 전력인 마법사가 도망갔다.
이 시점에서 승산은 사라진 것이다.
“제길, 후퇴!”
“달려!”
결국 그들은 짐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도망갔다.
“크워어어엉!”
트롤은 흉포한 괴성을 지르며 그런 모험가들을 추격했다. 자신의 짝을 죽인 인간들을 결코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심장이 터져라 달렸지만 트롤과의 거리는 점점 좁혀져 갔다.
‘제길, 이대로는 안 돼.’
결국 그들 중에 커다란 방패를 든 전사 한 명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제길, 너희들 먼저 가.”
“챈들러. 뭘 어쩌려고?”
“내가 막을게. 너희들은 도망가!”
“안 돼! 돌아와!”
“이쪽이다. 이 녹색 괴물 새끼야!”
챈들러라는 모험가는 동료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트롤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숏 소드에 커다란 타워 실드를 장비 하고 있었는데 그걸로 트롤을 막아 보려고 하는 듯 했다.
“크오오오오!”
트롤이 내려친 돌도끼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인간을 힘껏 내리쳤다.
콰아앙!
트롤의 돌도끼는 챈들러의 바로 옆에 있는 바닥을 찍을 뿐이었다.
챈들러라는 모험가의 방패술이 꽤 괜찮은 수준이었다.
자신에게 떨어지는 공격을 정면으로 막지 않고 비스듬하게 방패의 경사면으로 흘려 막으면서 트롤의 공격을 옆으로 떨어트렸다.
원래는 그가 방패로 막아 내고 지금은 죽어버린 알이라는 창전사가 창으로 견제하며 시간을 끄는 것이 이 파티원에서 트롤을 상대하는 핵심 전략이었다.
‘알 없이 얼마나 버틸까? 하긴 어차피 여기서 나가도 나는 인생 종치는 거였지?’
챈들러는 이를 악물고 외쳤다
“모두 도망가!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꺼지라고!”
그의 외침에 다른 파티원들은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지 망설였다
“챈들러. 제길…….”
“제스터, 우리도 합류하자.”
“하지만 제프…….”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
“제길. 좋다. 가자!”
남은 파티원 중에 제스터라 불린 전사와 제프라고 불린 도적은 이를 악물고 트롤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미쳤어? 뭐하는 짓이야. 이 새끼들아!”
하지만 마법사는 생각이 다른 듯 했다.
“로라. 너도 도와줘. 챈들러를 저대로 둘 수는 없어.”
“안 돼. 도망가야지. 살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냐?”
“로라!”
“빨리 따라와. 던전 밖까지 나를 보호해 달라고! 그게 너희들 일이잖아?”
로라라고 불린 마법사는 붉은색의 멋스러운 망토를 걸친 여자 마법사는 굉장히 히스테릭하게 외치고 있었다. 아마 혼자서 도망갈 수 있다면 도망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다.
여기 7층에서 지상까지 가는 길은 마법사 혼자서 이동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을 말이다.
마법사는 전사들이 붙어서 보호해 주지 않으면 전투력이 많이 떨어지는 법이다.
결국 혼자 도망갈 수도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는 그녀는 히스테릭하게 외쳤다.
“이 멍청이들아. 빨리 튀자고. 어차피 쟤는 글렀어. 살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어?”
그때 그녀의 콧잔등을 스치고 무언가가 지나갔다.
퍽!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화살은 정확하게 날아가서 트롤의 얼굴에 맞았다.
“크르르르.”
트롤은 자신의 얼굴로 날아온 화살에 눈살을 찌푸리며 으르렁 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순간 몇 발의 화살이 더 날아왔다.
퍼퍼퍼퍽!
트롤은 급하게 팔을 들어서 얼굴을 가렸다.
덕분에 추가로 날아온 화살은 대부분 놈의 팔에 박혔지만 한 발은 목에 맞기도 했다.
“크워어어어!”
보통의 몬스터라면 목에 화살이 박히면 치명상이다. 하지만 재생능력을 지니고 있는 트롤에게는 성질을 건드리는 아픔일 뿐이었다.
놈은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살기를 뿜었다. 그리고 그쪽에서 튀어나온 것은 탄탄한 근육질의 검은 머리의 투란족.
“비켜!”
전사, 검은 바람이었다.
검은 바람은 다른 모험가들을 제치고 돌진하더니 그대로 트롤에게 정면으로 돌격했다.
“흡!”
“크워어어!”
콰아앙!
트롤의 돌도끼와 검은 바람의 태도가 서로 부딪혔다. 그리고 그 격돌의 결과 놀랍게도 트롤은 크게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뒤로 두 걸음이나 물러나 버린 것이다.
놈은 그게 오히려 성질을 자극했는지 크게 울부짖었다
“크워어어어엉!”
던전에 쩌렁쩌렁하게 메아리치는 트롤의 포효에 검은 바람은 오히려 이를 드러내고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와라.”
검은 바람의 입장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벌이는 전투다운 전투였다.
이제까지 나왔던 오크나 고블린들의 경우 상위종이라고 해도 검은 바람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오크 워리어 조차도 검은 바람의 공격을 두세 번 버티는 게 고작이었으니 말이다.
검은 바람에게 있어서 주인인 카일과 아리시아를 지키는 것이 까다롭다 뿐이지 몬스터 자체가 제대로 된 적수가 된 적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눈앞에 있는 트롤은 오랜만에 검은 바람의 전투적 갈증을 채워 줄 수 있는 상대였다.
“하아압!”
쾅! 뻐어억! 콰직!
베고, 차고, 부수고…….
검은 바람은 태도만 휘둘러서 싸우는 게 아니라 주먹과 발차기까지 동원해서 트롤은 무지막지하게 몰아붙였다.
자신보다 두 배는 더 거대한 대형종 몬스터와 싸우면서도 검은 바람은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뭐지? 저 괴물은……?”
“세상에 트롤을 혼자서…….”
제스터와 그 동료들은 검은 바람이 일방적으로 트롤을 몰아붙이는 것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자신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투력이었다.
“크워어어어!”
트롤은 자신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다가 괴성을 지르며 돌도끼를 휘둘렀다.
거대한 돌도끼를 가로로 휘둘러서 검은 바람을 뒤로 물러나게 하려고 하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검은 바람은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파고들면서 위로 점프했다.
후우우웅!
트롤의 돌도끼는 묵직한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고 검은 바람은 자신의 태도를 양손으로 거꾸로 잡았다.
“하압!”
푸우욱!
검은 바람의 키만큼 거대한 태도가 트롤의 두꺼운 가죽을 뚫고 몸통에 정면으로 박혔다.
“크워어어어!”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린 트롤은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트롤이라고 해도 심장이 관통당하는 것은 치명상이다.
“으… 오오오오오!”
촤아아아악!
검은 바람은 그대로 태도를 잡아서 위로 올려쳤다.
심장부터 트롤의 정수리까지 검은 바람의 태도가 깔끔하게 절단한 것이다.
그렇게 트롤의 몸을 반 이상 관통하고 나온 검은 바람의 태도에는 선명한 오러가 서려 있었다.
쿠우웅!
거대한 트롤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검은 바람은 검을 거두면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이군.’
그동안 자잘한 잔챙이들만 상대하다가 오랜만에 거물을 잡으니 뿌듯한 성취감이 들었다.
“끝났나?”
그때 한쪽에서 카일이 나타나며 말했다.
“예. 주인님.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잘했다.”
카일이 아리시아와 함께 등장하자 제스터 파티원들은 모두 이목을 집중했다.
‘주인님?’
‘그런 저 꼬맹이가 저 야만족 전사의 주인인가?’
‘3인조 파티로 용케 7층까지 내려왔군.’
카일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파티장은 누구지?”
나이는 어리지만 던전에서 다른 파티를 만났을 때는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는 카일이었다.
“아, 제가 파티장입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스터는 그런 카일에게 존댓말을 했다.
사실 여기서 두 사람의 상하 관계가 은근이 정해진 것이다.
도움을 준 카일과 도움을 받은 제스터.
숫자는 제스터쪽이 한 명 더 많지만 조금 전에 검은 바람이 보여준 힘을 생각하면 어느 쪽이 더 우위에 있는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제스터는 자기보다 어린 카일을 상대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갔다.
5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제스터는 잘 알고 있었다. 던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실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카일은 상대가 정중하게 나오자 조금은 부드럽게 말했다.
“상황이 어려워 보여서 개입했는데 혹시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아닙니다. 위기 상황이었는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카일은 이 시점에서 빠르게 생각했다.
도움을 준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할지 말이다. 하지만…….
‘전부 죽다 살아서 상거지꼴이군.’
카일은 이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저 트롤의 사체에 대한 권리는 우리가 주장해도 되겠나?”
결국 카일은 트롤 하나만 건져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자 한쪽에 있는 로라가 나섰다
“잠깐, 저건 원래 우리가 사냥하던 거라고?”
“…….”
카일이 그쪽을 흘깃 바라보자 제스터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닥쳐. 로라.”
“뭐? 지금 나한테 감히…….”
“닥치라고 했어. 더 지껄일 거면 너 혼자 지상으로 올라가.”
“…….”
제스터의 말에 로라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카일은 물론이고 같은 파티원들조차 그녀를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조금 전에 챈들러가 목숨을 걸고 트롤을 막을 때 그녀 혼자만 도망가자고 주장했었던 것을 모두 기억하는 것이다.
‘뭐야. 이 새끼들……. 그동안 트롤을 상대로 사냥 할 수 있었던 게 다 누구 덕분인데.’
그동안 4서클 마법사로서 파티 안에서 귀한 몸으로 대접받았던 로라는 이를 갈았다.
그런 로라를 냅두고 제스터는 카일을 향해서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트롤의 시체에 대한 권리는 당신에게 있습니다.”
“좋군. 그럼…….”
“저기, 괜찮다면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제스터는 카일에게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
“무슨 부탁이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동료의 유해가 있습니다. 시체까지는 아니라도 유품 정도는 회수하고 싶습니다. 부디 도와주시겠습니까?”
“나에게 지불할 보수는?”
모험가들 간에 부탁은 순수한 선의가 아리나 서로 주고받는 거래로 이뤄지는 법이다.
제스터는 예상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 자리에 가면 트롤이 한 마리 더 있습니다. 그것도 넘겨 드리죠.”
“좋아.”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