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퍽! 퍼억!
“퀴이이익!”
“쿠웨엑!”
오크 두 마리가 멱따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놈들을 죽인 것은 아리시아가 발사한 두 발의 화살이었다.
쓰러지는 오크들을 보고 아리시아는 속으로 감탄했다.
‘대단해. 내가 혼자서 오크를 잡다니…….’
예전에 쓰던 목궁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살상력이었다.
전에는 정통으로 맞춰도 오크의 질긴 가죽에 막혀서 손가락 두 마디 정도를 파고드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손바닥 한 뼘만큼 깊숙하게 화살이 들어갔다. 검은 바람이나 카일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아리시아 혼자서 오크에게 결정타를 나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능력인 시간 가속으로 인해서 화살의 속도도 더 빨라졌다.
이제 열 걸음 밖에 있는 오크들이라면 두세 마리 정도는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장한 것은 아리시아만이 아니었다.
“흐으읍!”
콰직! 퍼어억!
“퀴이익!”
“꾸웨에엑!”
몸을 거대화시킨 검은 바람은 무기도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오크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원래도 상당한 거구의 검은 바람이었지만 거대화 능력을 사용하자 거의 2미터에 가까운 거구가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사이즈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몸놀림은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봐. 내 말대로지.”
“예. 정말 신기하군요.”
카일의 말에 검은 바람은 자기 몸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옷을 입고 있는 상태로 몸을 거대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갑옷은 어디 한 군데 뜯어지지 않았다. 이제 능력이 제법 성장해서 눈에 띌 정도로 몸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옷까지 같이 커지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걸까요?”
“자세한 원리는 잘 모르지만 거대화 능력은 물질이 아니라 질량이라는 개념에 간섭하는 능력이라고 알고 있다.”
“예?”
“물질 자체가 늘어난다면 한 번 늘어난 물질이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물질적인 분자 구조를 바꾸거나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연구에 의하면 초능력의 근간은 인간이 우주를 인식하는 개념의 구조에 개입하는 것이라는 이론이 있었다. 즉, 이것은 실물을… 듣고 있냐?”
“죄송합니다. 주인님.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검은 바람은 경전을 읽히고 있는 황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나도 다 모르는데.’
카일도 전문가는 아니다.
그냥 전생에서 세계 정부 소속의 과학자들이 초능력을 연구하면서 하던 말들을 옆에서 주워들은 정도였다.
다만, 그런 실험에 자주 참여했었기 때문에 다양한 능력의 종류와 특성은 많이 알고 있었다.
“뭐, 한마디로 말하면 신기한 능력이라는 거다.”
“예. 이해했습니다.”
‘그걸로 만족한다면 뭐…….’
어쨌든 장비를 업그레이드 한 덕분에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는 더 강해졌다.
물론 카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실 가장 비싼 장비로 바꾼 것은 카일이었다.
특수 처리한 트롤 가죽으로 만든 갑옷.
그 강한 탄력과 질긴 강도로 인해서 어지간한 공격은 맞아도 거의 아프지 않았다. 조금 전에도 오크의 맨주먹에 정통으로 몸통을 맞아 봤지만 충격은 거의 없었다.
“참격에도 강하지만 그 이상으로 타격에 더 강하군. 이 정도라면 7층의 트롤을 만나도 몇 번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좋군요. 그렇다면, 이제 7층으로 내려가 보시겠습니까?”
“글쎄, 어떻게 할까?”
카일은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번 탐사의 목적은 6층에서 새로운 장비의 성능을 시험해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움직이다 보니 카일의 앞에는 7층으로 내려가는 입구가 보였다.
“일단 온 김에 맛이나 한 번 볼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 주인님의 생각에 따를게요.”
7층을 본격적으로 탐사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한 번 내려가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체험 해 보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온 김에 한 번 가보자.”
“예. 주인님.”
그렇게 다소 즉흥적이지만 카일의 파티가 7층에 진입했다.
던전 7층.
여기서 나오는 몬스터는 오크, 오크 워리어, 고블린 워리어, 그리고 대표적으로 트롤이 있다.
이 중에서 오크와 고블린 워리어의 수준은 6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오크는 열 마리 이상이 뭉쳐서 다니기 시작하고, 고블린 워리어도 여기서는 다섯에서 열 마리까지 뭉쳐서 행동한다.
6층의 고블린 워리어가 고블린 라이더들을 이끌고 대장 노릇을 하며 다니는 것에 비하면 여기서는 그냥 평범하게 비슷한 수준을 맞춰서 다니는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오크 워리어도 나온다.
오크의 상위종으로 보통의 오크 네 다섯 마리 정도는 혼자서 거뜬하게 상대하는 놈들로 상당히 강력하다.
오크 워리어는 자신들끼리 두 셋이 뭉쳐서 다니거나 혹은 일반 오크를 수십 마리 이끌고 다녔다.
이렇게 제법 강력한 몬스터들이 굳이 무리로 뭉쳐서 행동하는 것은 이들이 7층의 상태계에서 먹이 사슬의 하위권에 있기 때문이다.
7층의 몬스터들의 정점에 군림하는 몬스터는 바로 트롤이다.
대형종 몬스터 중에서는 가장 약한 편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강력함에는 틀림없다.
2.5미터에서 3미터 정도의 거대한 체구에 단단한 독색의 가죽과 노란 피부. 손에 들고 다니는 몽둥이나 돌도끼는 그 거대한 체격의 파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성격은 흉포하고 잔인하며 사냥감을 잡으면 바로 죽이는 게 아니라 가지고 놀다가 죽이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트롤에게 잡혀 죽을 것 같으면 차라리 자살하고 말겠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7층에서 오크나 고블린이 뭉쳐서 다니는 것은 단독으로는 이 트롤이라는 몬스터를 도저히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위험하고 강력한 몬스터는 인간들에게는 인기 최고의 몬스터이기도 하다.
왜 트롤이 인간에게 인기가 있느냐?
그건 딱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돈이 되니까.’
카일이 입고 있는 갑옷이나 방패에 상용된 트롤의 가죽은 오크 가죽보다 훨씬 더 고가에 거래된다.
그리고 트롤의 간은 마법사나 연금술사들이 각종 시약을 만들기에 적합한 재료다. 게다가 마석도 최소한 중급 아니면 상급으로 주니까 상당히 짭짤한 몬스터인 것이다.
비록 거대한 체구에서 나오는 파워와 팔 하나가 떨어져도 다시 재생하는 맷집 등은 까다롭지만 그 까다로움을 감수하고서 사냥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돈 덩어리가 바로 트롤이다.
‘이왕 내려온 김에 트롤 한 마리 정도는 상대해 보고 싶군.’
카일도 이런 생각을 하며 7층 지역을 탐색했다.
“주인님. 앞에 몬스터 무리입니다.”
“소리를 봐서는 오크 같아요.”
둘의 보고에 카일이 바로 지시했다.
“아리시아 사거리에 들어오면 바로 공격해.”
“예. 주인님.”
카일의 지시를 받은 아리시아가 먼저 화살을 쐈다.
푸욱!
“꾸웨에엑!”
오크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아리시아는 서둘러서 연속으로 활을 쐈다.
퍽퍽퍽.
“쿠웨에엑!”
“꿔어어어!”
시간 가속의 능력 덕분에 아리시아의 화살은 연사력도 올라갔다.
오크들은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지만 아리시아의 화살에 미처 다가오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정말 많이 늘었는걸?’
한 방에 한 마리씩 정확하게 급소를 저격하는 아리시아의 솜씨에 카일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누가 그녀를 반년 전까지만 해도 철장 안에서 죽어가던 폐기 노예라고 생각할까?
다만, 아리시아의 화살이라고 해도 절명시킬 수 없는 상대가 있었다.
“취익! 취익!”
보통의 오크보다 훨씬 더 커다란 덩치에 검은색의 털이 빽빽하게 나 있는 저 오크가 바로 오크의 상위종 오크 워리어였다.
놈은 보통 오크와 달리 아리시아의 화살을 몸에 맞고도 씩씩 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더 질긴 가죽과 탄탄한 근육질이 치명상을 막은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치명상을 막았다 뿐이지 대미지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놈의 발치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강한 놈이군.”
검은 바람은 태도를 뽑아서 그런 오크 워리어를 마주했다.
“취이이익!”
오크 워리어는 괴성을 지르며 검은 바람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놈이 휘두르는 롱 소드가 검은 바람의 태도와 부딪혔다.
카아앙!
단 일격에 놈의 롱 소드가 부러졌다.
이어지는 이격이 놈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려고 했다.
퍼어억!
“호오오.”
하지만 오크 워리어는 자신의 굵은 팔을 위로 들어서 검은 바람의 공격을 막아 냈다.
검은 바람의 태도는 오크 워리어의 두꺼운 팔을 반 이상 파고들었지만 놈의 팔을 완전히 절단하지는 못했다.
검은 바람이 카일의 밑에 들어오고 나서 몬스터를 상대로 일격 이상을 소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뀌이이익!”
놈은 괴성을 지르며 그대로 검은 바람을 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검은 바람의 발차기가 먼저 놈의 가슴에 작렬했다.
퍼억!
“쿠웩!”
놈이 복부에 발차기를 맞고 나가떨어지자 검은 바람이 다시 검을 내리쳤다.
“어디 또 받아 봐라.”
좀 전과 똑같은 공격.
다만 이번에는 검은 바람의 태도에 은은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익스퍼트 이상의 경지에 들어간 사람만 쓸 수 있는 오러였다.
서걱!
단단한 오크 워리어의 몸뚱아리가 그대로 일격에 반토막이 났다.
“제법 까다로웠다.”
검은 바람이 검을 거두면서 말했다.
그런 검은 바람에게 카일이 다가와서 말했다.
“어때?”
“상당합니다. 이 정도면 고블린 워리어와는 비교가 안 되는 군요.”
“그놈은 너한테 일격이었지.”
“예. 하지만 오크 워리어의 경우 오러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몸을 양단하기 힘들었습니다.”
“…내가 일대일로 싸우면 어때?”
카일의 말에 검은 바람은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사실 아직은 무리가 있습니다.”
“역시 그런가?”
“예. 주인님은 아직 검에 오러를 불어넣지 못하고 계십니다. 이놈의 가죽을 찢을 수는 있어도 근육을 뚫지는 못할 겁니다.”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카일은 순순히 납득했다.
검은 바람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인물도 아니고, 못한다면 못하는 것이다.
‘괜찮아. 아직 나는 더 강해질 수 있다.’
익스퍼트의 경지는 너무 먼 얘기였지만 최근에 카일도 오러 유저에 오를 기미가 보이고 있었다.
유저에 오르면 신체 능력을 강화 할 수 있고, 검의 내부에 오러가 스며들면서 공격력도 조금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카일의 신체강화 능력과 맞물려서 전투력이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오늘은 이쯤하고 이제 돌아가자.”
“예. 주인님.”
카일은 후퇴를 결정했다.
트롤은 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7층이 어떤 곳인지는 대강 느낌이 왔다.
‘한 명 더 데리고 와야겠어.’
카일의 능력은 본인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부하들을 강화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원을 한 명 더 늘리기만 해도 7층에서 활동할 전력이 나올지 모른다.
“주인님. 누군가 옵니다.”
후퇴를 결정하고 이동하던 중, 아리시아가 다급하게 말했다.
“뭐? 사람인가?”
“예. 사람인데…. 다른 소리도 들립니다. 거대한 무게를 지닌 발자국 소리 이건…….”
“트롤이군. 아리시아. 누가 더 앞에 있지?”
“사람들이 앞에 있고 트롤이 쫓아오는 것 같아요.”
“위기 상황이라는 건가? 주인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검은 바람. 자신 있나?”
“물론입니다.”
“좋아. 트롤까지 잡아보고 올라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