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찰리가 처음으로 소개한 매물은 던전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이건 꽤 좋은 물건입니다. 위치도 적당하고 넓기도 넓죠. 2층 건물에 방이 네 개. 지하에는 치즈 저장용으로 만들어둔 창고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카일은 물건을 살펴봤지만 썩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없었다.
‘나쁘지는 않아. 하지만 그렇게 좋지도 않군.’
첫 매물을 보고 바로 결정할 정도로 당장 급한 일은 아니었다.
“너희들 생각은 어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주인님이 정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요.”
둘은 집에 관해서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 알았다. 찰리 씨, 다음 물건을 보여 주시죠.”
“이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니요. 하지만 하나만 보고 결정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가능하면 여러 가지 물건을 보고 싶군요.”
“하하하. 굉장히 꼼꼼한 성격이시군요. 과연 프랭크 그 친구가 소개 하실 만합니다.”
시골에서 살다 도시로 상경한 어리숙한 청년이라면 그냥 하수 시설이 갖춰진 건물만 소개해 줘도 신세계를 본 것처럼 눈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카일은 부엌과 화장실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봐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다음 물건입니다. 원래 여관으로 운영하던 건물이었는데 매물로 나왔죠. 그래서 방이 무려 열 개나 됩니다.”
“상업지구에 지어져 있어서 좀 시끄럽겠군요.”
“뭐, 그게 감수해야 할 단점이긴 하지요.”
“이런 건물이라면 차라리 지금처럼 여관에서 숙식을 해결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좀 더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건물은 없나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찰리가 다음에 소개한 건물은 카일의 주문대로 프라이버시는 완벽하게 지켜지는 건물이었다.
“어떻습니까? 3층 건물에 창문에는 모두 덮개가 달려 있고, 문의 자물쇠는 무려 3중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매물 중에서 보안에 관해서는 이 건물이 최고입니다”
“건물의 보안은 훌륭하네요. 그런데…….”
카일은 건물에서 불과 3분 거리에 떨어진 거리를 보고 말했다.
“저기는 뭐죠?”
“음, 저기는 그게…….”
“슬럼가 바로 입구에 지어진 건물은 그다지 내키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숨길 생각인 것 아니고, 그저 강건한 모험가 분들이라면 슬럼의 도적들 정도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아서 제가 이 매물을 추천했습니다.”
“던전 밖에서까지 그런 드잡이질을 하고 싶지는 않군요. 집에서는 편히 쉬고 싶습니다.”
“예. 그럼 다음 매물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건…….”
찰리는 몇 번에 걸쳐서 매물을 소개했고 카일은 물건을 보면서도 계속 내키지 않는 것처럼 퇴짜를 놨다.
결국 찰리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다음에 보여드리는 매물이 아마 제가 보여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매물일 겁니다.”
“알겠습니다.”
하루 종일 건물을 보러 돌아다녔으니 찰리는 물론이고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까지 지친 기색을 보였다. 던전을 하루 종일 탐험해도 지치지 않는 모험가라도 부동산을 도는 것은 좀 다른 모양이다.
“던전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건물입니다. 높이는 3층이고 외부는 멋진 벽돌로 마무리 했습니다. 방은 여섯 개이고, 1층은 소소한 모임이 가능한 로비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특징으로는 지하에 있는 목욕탕이죠.”
“목욕탕? 지하에 목욕탕이 있다고요?”
“예. 일전에 이 건물을 설계한 모험가가 남방 지역 출신이었는데 그 지역 사람들은 목욕과 사우나를 즐기는 스파라는 문화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게 몹시 중요했는지 특별 주문을 해서까지 목욕탕과 사우나를 만들었습니다.”
“사우나도 있다고요?”
“예.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카일은 꽤 당기는 표정을 지었다.
‘하루의 피로를 푸는데 스파 만큼 좋은 것도 없지. 거기다…….’
카일은 아리시아를 흘깃 본 다음에 말했다.
“지하가 통째로 욕실이라면 꽤 크겠군요.”
“예.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일단 가보죠. 가봐야 알겠습니다.”
어쩐지 이번 매물은 감이 좋은 카일이었다.
“여기입니다.”
매물 앞에 도착한 찰리의 말을 들은 순간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는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오…….”
“어머?”
둘의 눈앞에는 붉은 벽돌로 우아하게 지어진 멋진 3층 건물이 있었다. 일단 외관만 봐도 이제까지 봤던 물건들 중에서 가장 고급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부를 보고 싶군요.”
“예. 바로 열겠습니다.”
찰리가 가지고 있는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일단 보이는 것은 넓은 거실 겸 식당이었다.
“좋군요. 여기 부엌에 설비는 생활 아티팩트 인가요?”
“예. 수도는 물론이고, 조리가 가능한 가열판까지 있습니다. 모두 마탑에서 판매하는 정품 아티팩트입니다..”
“아티팩트가 옵션으로 붙은 건물이라니…….”
카일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 건물을 설계한 모험가는 자기 집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시면 벽이나 바닥에 사용한 건축물도 상당한 고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그렇게 보이는 군요.”
건물 구석구석에 사용된 건축재와 생활의 편리함을 더해줄 아티팩트까지 있는 건물에 카일은 이미 반쯤 마음을 정했다.
‘예산만 맞으면 이걸로 하자.’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하고 싶은게 있었다.
“지하에 스파 시설이 있다고 했죠? 한 번 확인해도 될까요?”
“예. 물론입니다.”
카일이 지하에 내려가자 거기에는 지구의 목욕 시설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완벽한 스파 시설이 있었다.
사람이 열 명은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욕탕이 두 개나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쪽방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사우나로 보였다.
찰리는 직접 사우나를 작동시키는 방법을 알려줬다.
“여기 이 장치에 마석을 끼우고 작동시키면 여기 있는 돌무더기가 가열됩니다. 그때 물을 끼얹으면 수증기가 발생하면서 내부의 온도가 올라간다고 하죠. 남부의 사람들은 이 사우나를 정말 좋아해서 집집마다 다 사우나가 있다고 할 정도지요.”
“그렇군요.”
카일은 사우나도 마음에 들었지만 다른 것보다 저 욕탕이 마음에 들었다.
혹시나 하고 염려했지만 다행이도 상당한 크기의 욕실이었다. 저 정도 크기라면…….
‘아리시아와 둘이 들어가도 넉넉하겠어.’
이것 때문에 스파를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그 외에도 집을 꼼꼼하게 살펴봤지만 특별히 하자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보면 볼수록 감탄했다.
“주인님. 방이 여관에서보다 훨씬 넓습니다.”
“주인님. 여기 창문을 보세요. 유리로 되어 있어요.”
이제까지 묵묵히 따라오기만 했던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도 이 집은 마음에 든 모양이다.
“계약을 하고 싶군요. 얼마죠?”
“예. 이 건물은 아주 저렴하게 나왔습니다. 보증금 170골드에 월세는 5골드입니다.”
“예?”
카일은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카일이 당초에 말했던 예산에 들어오는 가격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아슬아슬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찰리의 입에서 나온 가격은 상당히 넉넉한 가격이었다.
이 정도면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이다.
“찰리 씨, 정말 그 가격인가요?”
“예. 참고로 건물주는 트리니 상단입니다. 절대로 보증금이 때일 걱정은 없으니 안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트리니 상단이라면 카일도 이름을 들어 봤을 정도로 유명한 상단이었다. 그렇다면 소유주도 믿을 만한 신용이 있는 건물이고, 건물 자체도 굉장히 고급스럽게 지어져 있는데 왜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나왔다는 걸까?
‘이거 무슨 문제가 있나?’
사람은 조건이 너무 좋아도 역으로 의심을 하기 마련이다.
카일은 찰리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찰리 씨, 진짜 솔직하게 말해 주십시오. 이 건물 가격이 너무 저렴한데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까?”
“아니요. 전혀요. 이 건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진짜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매물이 나온 거죠?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건… 그, 그러니까…….”
망설이는 찰리를 보고 카일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찰리 씨, 저는 프랭크 씨에게 당신을 믿을 만한 업자라고 소개받았습니다.”
중간에 끼인 소개인의 이름까지 말하자 찰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진짜로 이 건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다만 뭐죠?”
“모험가들이 미신을 많이 믿어서 문제입니다.”
“미신이라고요?”
“아니, 사실 미신까지도 아닙니다. 그냥 우연이 몇 번 겹친 것뿐인데도, 거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찰리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까 말씀드렸지요. 이 건물을 지을 때 이렇게 요구를 한 사람이 모험가였다고?”
“들었습니다.”
“그 모험가는 바이에른에 정착해서 본격적으로 던전을 탐험하기 위해서 이 집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이 집을 짓고 얼마가지 않아서 던전에서 그만 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실력도 좋은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그건 흔하게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던전에서 모험가가 죽는 것이야.”
“그렇죠.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
“그다음에도 이 건물을 매입한 것은 모험가였습니다. 8인조 파티로 나름 탄탄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죠. 그런데 그들도 이 건물을 사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던전에서 그만…….”
“죽었단 말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소유주도, 그다다음 소유주도……. 이상하게 이 건물만 구입하면 길어도 한 달, 짧으면 두 달 안에 명을 달리했습니다. 한 마디로 이 건물은…….”
“재수가 없다 이거군요.”
“뭐, 그런 헛소문이 돌고 있다는 거죠.”
“몇 년 동안 몇 번이나 주인이 바뀐 건가요?”
“2년 동안 아홉 번 바뀌었습니다.”
“좀, 많기는 많군요.”
마가 끼었다는 오해를 받을 만한 전력이었다.
“예. 그렇긴 한데 사실 다 오해입니다.”
“오해요?”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말씀드리기 좀 그렇지만 모험가는 원래 사망률이 높은 직업입니다.”
진짜로 모험가 본인 앞에서 하기는 좀 그런 말이었다. 하지만 찰리는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해냈다.
“세상에 집을 잘못 샀다고 죽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그냥 미신일 뿐입니다. 실제로 이 건물에 많이 들어온 저는 멀쩡하게 잘 먹고 잘 살지 않습니까?”
찰리는 필사적으로 이 건물을 변호했다.
자기가 떠안고 있는 물건을 어떻게든 팔아 치우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어차피 나는 미신 같은 것 믿지 않지.’
카일은 그런 것을 전혀 믿지 않았다.
집에서 갑자기 병으로 죽는다거나 비명횡사를 한다면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모든 모험가들이 던전에서 죽었다고 했다.
‘그럼 그냥 우연의 일치일 뿐이지.’
카일은 이게 자신에게 좋은 기회라고 믿었다
“알겠습니다. 계약하도록 하죠.”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카일 님.”
찰리는 몹시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이 건물은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더럽게 안 팔리는 물건 중에 하나였다.소문이 너무나 안 좋게 나서 소유주가 가격을 내리고 또 내려도 물건이 안 나가서 속만 썩이고 있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신앙심이 강했고 미신이나 징크스도 굉장히 신경 쓰면서 살았다.
소유주가 연달아서 죽는 건물.
그런 건 아무도 살고 싶지 않아 했다.
“전 이 건물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카일만 빼고 말이다.
“탁월하신 선택입니다. 그럼 바로 계약을 진행하겠습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찰리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군.’
카일은 그런 찰리의 뒷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때.
“주인님. 정말 여기를 사실 겁니까?”
“주… 주인님. 방금 얘기 들으셨죠? 여기 사람이 죽었대요. 그, 그것도 계속 연달아서요.”
찰리가 나가자마자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가 달려들었다. 카일은 불안한 표정의 두 사람을 보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생각을 미처 못 했군.’
카일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 다 진정해. 그냥 우연의 일치일 뿐이야. 찰리 씨 말대로 원래 모험가가 던전에서 죽는 일은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만 이건 좀…….”
“주인님. 수상해요. 혹시 여기가 저주라도 걸린 곳이면 주인님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어요.”
“저주라니? 이렇게 채광 좋은 집에 저주는 무슨 저주야?”
“밤이 되면 으스스할 수도 있어요.”
“주인님. 다시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둘은 상당히 진지했다.
카일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다.
‘여기서는 그냥 강제로 의견을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카일은 두 사람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도 이 집이 저주에 걸린 집인 건 알아.”
“예? 정말요?”
“아니, 주인님. 그걸 아시면서 왜…….”
깜짝 놀라는 두 사람에게 카일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건물에 걸린 저주를 푸는 방법을 알거든.”
“아! 그런 수가…….”
“역시, 주인님은 다 생각이 있으셨군요.”
둘은 크게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카일은 두 사람을 안심시키듯이 말했다.
“나한테 신비한 능력이 있는 건 알고 있지? 사실 그중에 하나가 저주를 푸는 능력이야. 이 건물에 걸린 저주는 내가 특수한 의식을 통해서 풀 수 있어.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매물을 싸게 구할 수 있는 거야.”
카일의 말에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는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제가 괜한 걱정을 한 것이군요.”
“죄송해요. 주인님. 제가 그것도 모르고 그만…….”
그런 두 사람에게 카일이 말했다.
“괜찮아. 날 걱정해준 두 사람의 마음은 잘 알고 있어.”
카일은 그렇게 선의에 거짓말로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나중에 고사라도 지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