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프랭크는 자세를 바로하고 카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장사꾼입니다. 잠깐의 이득을 위해서 고객에게 손실을 안기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 말씀을 믿어 드리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지금은’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카일이었다.
“철저하시군요.”
“꼼꼼하다고 해야겠죠.”
“알겠습니다. 그럼 정직하게 말해서…….”
프랭크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120골드 정도면 몹시 타당한 가격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카일은 그 말을 듣고 필사적으로 안면 근육을 관리했다.
120골드.
이제까지 카일이 올렸던 수익의 신기록이었다.
굉장히 흥분한 카일이었지만 겉으로는 표를 내지 않고 말했다.
“미스릴 함유량이 얼마인지도 모르는데 200골드는 받아야 하지 않나요?”
“그 말대로 미스릴 함유량이 얼마인지를 모르죠. 함유량이 3%이하라면 120골드로도 저희가 손해 볼 겁니다.”
“시약의 반응도를 봤을 때 그렇게 미량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최소한 10%는 되겠죠. 그럼 200골드도 싸다고 보는데요?”
카일의 말에 프랭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150골드. 최종 가격입니다.”
“그건…….”
“그리고 이 거래에 대한 고객님의 정보를 철저하게 비공개로 하겠습니다.”
바로 이어서 말하는 프랭크의 제시에 카일은 멈칫했다.
‘이 인간…….’
프랭크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손님의 입장에서도 거금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가 주변에 알려지면 곤란하지 않으십니까? 갑작스럽게 등장한 미스릴의 등장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딱 좋죠.”
“그 관심을 오직 행크의 대장간에서 감당해 준다는 말입니까?”
“그걸 원하신다고 봤습니다. 아니라면 일반적인 정규 거래로 180골드를 지불해도 좋습니다.”
일반적인 정규 거래로 진행하면 카일의 이름이 어디선가 나올 것이다.
거래가 진행된다면 행크 대장간은 미스릴 도끼의 출처를 공개해야 할 테고, 그 과정에서 카일이라는 이름의 모험가가 지하 6층에서 운 좋게도 습득했다는 정보가 바이에른의 모험가 사이에서 빠르게 퍼질 게 뻔했다.
그렇게 될 여지를 깔끔하게 차단해 주겠다는 프랭크의 제안은 카일의 입장에서 굉장히 당기는 것이었다.
‘지금은… 아니, 앞으로도 돈보다는 안전이 우선이다.’
카일은 결심을 굳혔다.
“알겠습니다. 그 조건에 거래하죠.”
“좋은 거래였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웃었다.
이 정도면 양쪽 모두 만족할 만한 거래였다.
특히 카일은 거금을 손에 넣고서도 자신의 이름을 완전히 숨길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돈은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잠시 후, 프랭크는 노예 한 명과 함께 나타났다. 그 노예는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는데 그걸 내려놓으니 꽤 묵직한 소리가 났다.
쿵.
“세어 보시겠습니까?”
“아니요. 그렇게까지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검은 바람.”
“예, 주인님.”
카일의 지시에 검은 바람은 금화가 가득 든 주머니를 짊어졌다. 그리고 카일은 대장간을 나가기 전 다른 부산물도 정산했다.
“5골드 50실버입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큰 거래를 한 후라서 느낌이 오지 않았지만 이것도 충분히 후한 가격이었다. 아마도 미스릴 거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부산물의 가격을 좀 더 잘 쳐준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십시오.”
그렇게 카일은 점원의 인사를 받으며 건물 밖으로 나갔다.
마석으로 얻은 수입이 23골드 65실버.
부산물로 얻은 수입이 5골드 50실버.
미스릴 함유 도끼로 얻은 수입이 150골드.
다 해서 무려…….
‘179골드 15실버.’
이전의 기록인 71골드 95실버를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거금을 손에 넣으니 카일은 세상이 행복하게만 보였다.
“검은 바람, 아리시아. 오늘부터 이틀간은 편하게 쉬면서 먹고 마시자.”
“알겠습니다. 주인님.”
“예. 주인님.”
돈을 벌었으면 쉰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 정한 카일의 규칙이었다.
* * *
며칠 후.
“곤란한데.”
“그렇군요.”
카일과 검은 바람, 그리고 아리시아까지 모두 세 명이 모여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한 꾸러미의 금화 주머니가 펼쳐져 있었다.
살짝 열려 있는 주머니 틈새로 영롱한 금색의 광휘가 발산되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애물단지라는 말이 딱이군.”
“예? 그게 무슨…….”
“아니, 그냥 그런 말이 있어.”
적당히 얼버무렸지만 지금 카일은 눈앞의 금화가 진짜 애물단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걸 진짜 어떻게 해야 하지?’
이번에 기록적인 수입을 올리고 그전에 가지고 있던 돈까지 합쳐서 지금 카일이 가지고 있는 재산은 222골드 25실버. 충분히 거금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돈이었다.
원래 이 도시에 왔을 때 카일의 수중에는 단돈 10골드 정도 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훌륭한 전투 노예 두 명에 충실한 장비, 그리고 막대한 현금까지 가지고 있다.
모험가의 꿈을 꾸면서 바이에른에 상경한 젊은이들 중에서는 충분히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이 현금을 보관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무게만 해도 상당했고, 무엇보다 이렇게 큰 금액은 여관에 계속 둘 수가 없었다.
처음에 카일은 이 돈을 은행에 맡기려고 했다.
거래해본 적은 없지만 이 세계에도 은행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은행은 카일이 알고 있는 은행이 아니었다.
우선 돈을 맡기려고 하면 귀족의 신분이 있거나 귀족의 보증이 있어야 했다. 평범한 일반 모험가가 계좌를 계설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맡긴다고 해도 문제다.
이 세계의 은행은 돈을 맡기면 이자를 주는 게 아니라 보관료를 거둬 갔다.
그런 곳에 돈을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걸 여관에 계속 둘 수도 없다.
세 사람이 잠깐 외출하거나 던전에 들어가면 아무도 없는 여관에 이 금화 꾸러미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수십 골드일 때는 그냥 여관의 어딘가에 숨겨 두고 말았지만 200골드가 넘어가니 이제 그렇게 하기에는 부담이 되었다.
결국, 이 돈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마음 놓고 던전에 들어갈 수도 없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데 말이야. 뭐 좋은 생각 없어?”
카일의 말에 검은 바람이 말했다.
“새로운 노예를 구입하시는 것은 어떤가요? 단순하지만 가장 빠르게 전력을 강화하는 건 역시 숫자를 늘리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리시아의 코어를 관리하고 있어.”
“20골드 정도의 건장한 노예 열 명을 사서 짐꾼으로 부리면 좋을 겁니다.”
던전에서 짐을 들어주는 일꾼이 생기면 챙길 수 있는 부산물이 확 증가한다. 하지만…….
“머리수를 무작정 늘리는 건 반대다. 너무 눈에 띄기도 하고 그렇게 늘어난 사람을 다 먹이고 재우고 하는 것도 부담이야.”
노에는 사고 나서 끝이 아니다.
의식주 전반에 계속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유지비가 든다.
지금은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 단 둘 뿐이라서 별 표도 나지 않지만 열 명이나 한 번에 늘이면 유지비도 부담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급의 전투 노예를 구입 하는 건 어떻습니까? 200골드 정도라면 자기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는 전투 노예를 구입 할 수도 있습니다.”
“글쎄, 썩 내키지 않는군.”
“그렇군요.”
의견을 제시 하는 건 자유지만 카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끝이다.
검은 바람도 굳이 강권하지는 않았다.
그때 카일이 얌전하게 앉아만 있는 아리시아에게 손을 들고 말했다.
“주인님. 지금 돈을 보관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죠?”
“그렇지.”
“그렇다면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이 있다면 굳이 지금 돈을 상요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지. 뭔가 좋은 방법이 있나?”
카일의 말에 아리시아가 말했다.
“집을 빌리시는 것이 어떨까요?”
“집?”
“예. 200골드 정도의 보증금을 내면 지금처럼 여관에서 사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집을 빌릴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하면 숙식비도 절약할 수 있고,, 200골드의 금액도 보증금의 형태로 보존되어요.”
“……좋군.”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다.
검은 바람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파티의 전력을 증강시키는 것만 생각했더니 집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나도 그랬어. 아리시아가 똑똑한 거지 뭐.”
카일과 검은 바람의 칭찬에 아리시아는 쑥쓰러운 듯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 숙였다
“집이라. 좋아. 그럼 집을 구해 보자.”
그렇게 결정한 카일은 바로 움직였다.
바이에른은 거대한 도시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를 반복했다.
그만큼 부동산의 매물도 다양했다.
상업용 건물부터 일반 가정집, 대형 클랜의 본부용, 용병단 본부, 그리고 모험가 파티원들이 함께 숙식을 해결하기 위한 숙소형 건물도 있었다. 그걸 개인이 일일이 찾아보면 끝이 없고 일다는 믿을 만한 부동산 업자를 찾아야 했다.
카일은 행크의 대장간에 가서 믿을 만한 부동산 업자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이전의 거래로 안면이 튼 프랭크가 직접 나타나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믿을 만한 업자를 며칠 안으로 보내 드리죠.”
그렇게 해서 며칠 후에 카일을 찾아온 것이 바로 이 업자였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프랭크의 소개로 찾아온 찰리 부동산의 찰리라고 합니다.”
그는 삼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나이에 말끔한 외모와 커다란 키의 남자였다.
“카일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둘은 가볍게 악수를 하며 인사했다.
“일단 앉으시죠.”
“예. 감사합니다.”
둘은 여관 1층의 식당 겸 로비에 앉아서 거래 예기를 시작했다.
“집을 찾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형태의 물건을 원하시나요? 매매? 아니면 월세?”
“월세가 좋겠습니다. 저와 제 노예 두 명이 같이 거주할 수 있는 만큼의 공간은 있어야겠죠.”
“예. 세 명이 말이죠. 그런데 직업이 모험가라면 혹시 파티원이 더 늘어날 수도 있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럼 최소한 세 명으로 보고 조금 더 늘어날 수 있는 인원수까지 포함해서 5인 이상이 살 수 있는 건물이 좋겠군요.”
“그렇죠.”
“보통 모험가라면 길드나 던전 입구에서 가까운 지역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카일 님은 어디를 원하십니까?”
“던전에서 가까우면 좋겠군요.”
“예. 알겠습니다.”
찰리는 확실히 프로답게 카일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짚으면서 물건의 조건을 들었다.
“원하시는 매물의 조건은 대강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예산은 어느 정도로 보고 계신가요?”
“보증금은 150골드에서 200골드까지 가능합니다. 월세는 뭐, 싸면 쌀수록 좋겠죠.”
“호오오… 과연, 생각보다 예산이 풍족하시군요.”
찰리가 예상했던 보증금의 액수는 끽해야 50골드 정도였다. 아직 어려보이는 카일의 외모를 생각하면 이제 막 청운의 꿈을 품고 바이에른에 상경한 젊은이로 생각하기 딱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일은 최근에 대박을 터트려서 예산이 충분했고, 이 정도 예산이 있으면 생각보다 괜찮은 매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몇 가지 물건이 좁혀지는데 지금 바로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예. 검은 바람. 아리시아.”
“예. 주인님.”
“지금 나가겠다. 함께 가도록 하자.”
“예. 알겠습니다.”
카일의 명령에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는 착실하게 따라 붙었다.
찰리는 그 두 명이 노예치고는 건강 상태가 좋고 표정도 좋아 보이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굉장히 아끼는 노예들인가 보군.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게 좋겠어.’
노예는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소모품이지만 가끔 주인에 따라서는 자신의 노예에 애착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다.
찰리는 카일이 그런 타입이라고 생각하고 두 사람을 데리고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