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카일은 후방 대열에 가장 믿음직한 검은 바람을 배치하고 달렸다. 하지만 카일의 파티가 이동하는 속도보다 고블린 라이더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
“꺼져라!”
“키에엑!”
검은 바람이 뒤에서 적당히 쫓아내고는 있지만 도망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카일은 판단했다.
‘퇴로가 있는 곳으로 도망쳐도 도망 칠 수는 없어.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요 며칠간 지형을 샅샅이 탐색한 카일이기에 알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가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좋아. 도착했다.”
카일이 목적지로 정한 곳.
거기는 후방이 막혀 있는 막다른 길의 끝이었다.
“주인님. 길이 막혔습니다.”
“알고 있어. 검은 바람 입구에 서라.”
“예. 주인님.”
카일 역시 검은 바람의 뒤에 서면서 말했다.
“아리시아. 뒤에서 대기. 화살은 너무 멀리 있는 상대에게 쏘지 마라. 회수를 못 한다.”
“예. 주인님.”
그리고 카일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 들어. 도망가지 못한다면 싸워야 한다. 여기라면 후방은 신경 쓰지 않고 앞의 적만 상대할 수 있다. 적을 전멸 시킬 생각으로 싸우자.”
“예. 주인님.”
“예. 주인님.”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래. 여기라면 앞의 적만 신경 쓰면 돼.’
‘어차피 도망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싸워서 이긴다. 과연, 훌륭한 전사가 되셨습니다. 주인님.’
둘은 카일이 가장 적절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온다.”
카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무리의 고블린 라이더들이 개떼처럼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보고 검은 바람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서 말했다.
“내 뒤로는 아무도 못 간다!”
“키에에에에!”
“커허엉!”
그렇게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카일의 파티가 이 던전에 들어오고 나서 벌어졌던 전투 중에서도 가장 힘든 전투였다.
과감하게 퇴로를 포기하고 지형적인 유리함을 선택한 카일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 판단 덕분에 검은 바람이 입구 쪽에 서서 고블린 라이더를 상대할 수 있었다.
검은 바람은 실로 압권이었다.
고블린 라이더가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해도 태도를 휘두르는 검은 바람의 상대는 아니었다. 이미 수십, 아니 백 마리가 넘는 고블린 라이더들이 검은 바람에게 죽었다.
가끔은 틈을 노려서 뒤로 빠지는 놈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놈들은 아리시아의 화살이 빠르게 요격당했고, 그 마저도 피한 놈들은 카일의 검에 죽음을 당했다.
완벽한 포지션과 전략으로 카일의 파티는 순조롭게 이기고 있었다.
“후우우. 많아도 너무 많군.”
카일이 땀을 흘리며 말했다.
다만, 적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벌써 백 마리가 넘는 적을 물리쳤지만 적을 전멸시키지 못했다.
고블린 라이더는 계속해서 몰려왔다. 덕분에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못하고 전투에 매진해야 했다.
‘이러면 안 좋은데?’
카일은 지금 상황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유리하게 싸우고 있다고 하지만 이쪽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다.
주 전력이 검은 바람은 아직 쌩쌩해 보였지만 아리시아와 카일은 슬슬 체력이 떨어짐을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진다.’
뭔가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작전을 바꿔야 할 때였다. 카일이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크르르르르.”
고블린 라이더 놈들 뒤에서 덩치가 커다란 고블린이 한 마리 나타났다.
보통의 고블린보다 세 배는 더 커다란 체격.
검은 바람하고 거의 비슷한 체형의 그 고블린은 바로 고블린 워리어였다.
‘역시 저게 있었군.’
카일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고블린 라이더의 숫자가 많다는 것을 느꼈을 때부터 짐작은 했다. 이 무리의 뒤에 고블린 워리어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블린 워리어는 고블린 상위 종에 하나로 그 힘은 일반 고블린과는 격을 달리한다.
오크 정도는 다섯 마리 정도는 혼자서 거뜬하게 물리친다. 아마도 순수하게 전투력만 놓고 보면 지금의 카일과 비슷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곤란한 것은 이놈이 같은 고블린을 무리로 이끌며 지휘한다는 것이다.
고블린은 지능이 낮고 흉포성이 높아서 누군가의 지휘를 받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생물이었다.
하지만 같은 동족 중에서도 상위종은 예외였다.
본능적으로 같은 존재이지만 자신보다 격이 높은 존재라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고블린은 고블린 워리어에게 복종했다.
그리고 6층의 고블린 워리어는 골치 아프게도 그냥 고블린도 아니고 고블린 라이더를 이끌고 다녔다.
강력한 고블린 워리어가 이끄는 수백 마리의 고블린 라이더. 이게 6층에서 가장 강력한 몬스터 조합이었다.
‘그러고 보니 테리라는 모험가가 경고했었지? 고블린 워리어가 이끄는 군단이 있다고…….’
아마도 그들도 이 무리에 당해서 패퇴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
“키르륵! 키륵 키륵.”
돌진하지 않고 망설이는 고블린 라이더에게 고블린 워리어가 뭐라고 말했다.
“키르키르키르. 키르르륵.”
그러자 고블린 라이더가 필사적으로 변명하듯이 말했다. 아마도 동료가 너무 많이 죽었기 때문에 항의하는 듯했다.
“키르르.”
터억!
고블린 워리어가 그대로 고블린 라이더의 목을 한손으로 잡고 들어 올렸다.
“키이이… 키이이……!”
고블린은 애처롭게 버둥거리며 애원했지만 자비는 없었다.
퍼어억!
고블린 워리어는 그대로 애원하는 고블린 라이더의 머리를 벽에 내던져 깨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무기인 양날 도끼를 크게 들어 올리며 외쳤다.
“키르르르! 키르르!”
그러자 이제까지 돌입을 망설이고 있던 고블린 라이더들이 미친 듯이 돌격했다.
“쯧, 어리석은 놈들 같으니라고…….”
검은 바람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그도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자신은 몰라도 주인과 아리시아의 체력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때 검은 바람의 곁에 카일이 다가와서 말했다.
“검은 바람.”
“주인님. 뒤로 물러나셔야 합니다.”
“아니… 흡!”
“키에에엑!”
말을 하면서도 카일은 고블린 라이더를 처리했다. 상황이 급박해서 도무지 느긋하게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카일은 짧게 용건을 전달했다.
“검은 바람.”
“예, 주인님.”
“저놈을 잡을 수 있겠나?”
검은 바람은 계속 싸우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고블린 워리어를 봤다.
‘저 정도라면…….’
“예, 가능은 합니다.”
검은 바람의 대답을 들은 카일은 단호하게 명령했다.
“좋아. 그럼 돌격해서 놈을 잡아라.”
“예?”
“그게 유일한 방법이다.”
아무리 고블린이 흉폭하고 후퇴를 모르는 생물이라고 하지만 물러나는 몇 가지 상황은 있다.
대표적으로 적이 자신들보다 더 많을 때와 자신들의 지휘관이 죽었을 때다.
물론 검은 바람도 그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를 지키지 않으면 주인님이 위험합니다.”
“내가 입구를 지키겠다.”
“주인님.”
“이대로는 그냥 버티기일 뿐이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네가 앞으로 돌격해야 해.”
“하지만…….”
“이대로 시간을 끌어서 내 체력이 소진되면 작전의 성공 가능성이 더 떨어질 뿐이다.”
검은 바람도 머리로 알고 있었다.
카일이 하는 말이 모두 맞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주인, 아니 그냥 단순한 주인을 넘어서 자신이 충성을 바친 주군인 카일의 위험을 담보로 삼기에는 선 듯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때 카일의 뒤로 아리시아가 다가와서 말했다
“오라버니. 가세요. 주인님은 제가 지킬게요.”
“…….”
검은 바람은 결심을 굳혔다.
애당초 양자택일도 아니다.
남은 선택지가 하나뿐이었는데 자신이 겁을 먹고 망설이고 있었을 뿐이다.
“아리시아. 주인님. 10초만 버텨 주십시오.”
“그래. 알았다.”
“그 정도는 버틸게요. 오라버니.”
결심을 굳히고 앞으로 나서는 검은 바람에게 카일이 말했다
“초능력을 사용해라. 조금은 더 도움이 될 거다.”
“예. 주인님.”
그리고 검은 바람은 크게 고함을 질렀다.
“우워어어어어어어어어!”
사방이 막힌 던전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검은 바람의 포효에 고블린 라이더와 늑대들이 위축되었다.
그 순간의 틈을 타고 검은 바람이 앞으로 달렸다.
“하아아압.”
촤아아악!
지키면서 막아 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가면서 공세로 나간 검은 바람의 공격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고블린 라이더 다섯 마리가 절단되었다.
개중에는 돌진하는 검은 바람의 측면을 노리고 달려드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늑대들은 주인이 죽어도 끈질기게 검은 바람의 다리나 발목을 물었다.
그 순간 검은 바람의 덩치가 1.2배 정도 커지고 피부색이 더 진한 구릿빛으로 변했다. 그러자 검은 바람은 늑대들의 이빨이 거의 파고들지 않음을 느꼈다.
‘된다. 이거라면…….’
외피의 강도가 올라간 검은 바람은 앞으로 성큼 성큼 발을 내디디며 돌진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자잘한 공격은 무시하고 그저 저기 앞에 보이는 고블린 워리어에게만 의식을 집중하고 달렸다.
“키에에에엑!”
“크이익!”
“캐애앵!”
고블린 라이드와 늑대들이 죽어가는 비명이 난무했다. 마치 전차처럼 적을 짓밟고 돌진하는 검은 바람의 돌격은 거칠 것이 없었다.
“키르르르르!”
고블린 워리어는 검은 바람이 자신에게 달려들자 부하들에게 거칠게 외쳤다.
아마도 저 괴물을 막아라. 같은 말이 아닐까 싶었다.
“꺼져라!”
“키에에에엑?”
“케에엑!”
하지만 막을 수 있었다면 진자 막았을 것이다.
검은 바람은 거칠 것 없이 돌진해서 드디어 고블린 워리어의 지척에 도달했다.
돌진하고 나서 7초.
카일에게 말했던 10초에 3초 못 미치는 시간이었다. 이제 야속을 지키려면 남은 3초 안에 고블린 워리어의 목을…….
“으아압!”
“크에에에엑!”
단 일격.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검은 바람의 일격에 고블린 워리어의 몸은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깔끔하게 절단되었다.
“키에에에에.”
“키르르르. 키르 키르.”
고블린 워리어가 죽은 그 순간, 다른 고블린들은 패닉을 일으키며 외치더니 뿔뿔이 흩어져서 도주했다.
검은 바람은 그런 고블린의 모습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황급하게 뒤를 바라보며 외쳤다
“주인님!”
그러자 그 뒤에서 다소 상처를 입은 카일이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살아 있다.”
“오오… 주인님…….”
카일은 검은 바람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자신의 뒤편에 있는 아리시아까지 지켜야 했다.
거칠게 쏟아지는 고블린 라이더의 무리 앞에서 이제까지 배운 기술 같은 건 사용할 여력이 없었다. 그저 두 발로 서서 버티면서 최선을 다해서 무기를 휘두르는 게 고작이었다. 덕분에 여기저기 자잘한 상처를 입었지만 방어구를 잘 착용한 덕분에 급소에 맞은 공격은 없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주인님.”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검은 바람.”
“…과분하신 말씀을.”
검은 바람으로서는 카일의 이 말 한마디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포상이었다.
카일은 포션 한 병을 썼다.
사실 치명상도 없는데 사용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주인님. 돈은 몸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맞아요. 주인님. 제발 마셔 주세요, 제발……. 안 그러면 저는…….”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가 간절하게 애원하기에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
‘하긴, 파상풍이라도 걸리면 곤란하지.’
카일은 포션을 마셨고 그러자 전신에 나있던 상처들이 빠르게 아물었다
“후우우…….‘
애당초 자잘한 상처가 대부분이었고 깊은 상처는 없었기 때문일까?
상처는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이대로 계속 던전 탐색을 할 수도 있었지만 카일은 단호하게 결정했다.
“올라간다.”
“현명하신 판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