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22화 (22/215)

22화

카일의 예상대로였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저쪽에서 일렁거리는 횃불을 들고 몇 명의 모험가들이 등장했다.

그는 충분히 떨어진 거리에 서서 외쳤다

“나는 테리라고 한다. 10인 규모의 파티를 이끌고 있는 파티장이다.”

“카일이다. 이쪽은 3인조 파티다.”

카일쪽의 숫자가 적다는 것을 알자 저쪽에서 다시 말을 걸었다.

“수원 쪽으로 접근한 이유는 물을 원해서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물주머니를 넘겨라. 우리 쪽에서 물을 담아서 건네주겠다.”

그러자 카일이 대답하기도 전에 검은 바람이 작게 속삭였다.

“안 됩니다. 주인님.”

“그래. 나도 알아.”

만약 저쪽에서 물주머니에 독을 타기라도 하면 파티가 통째로 전멸 할 수도 있다.

카일은 다시 저쪽을 향해서 외쳤다.

“그건 거부하겠다. 잠시라도 좋으니 수원에서 자리를 비켜 주면 물을 담고 바로 떠나겠다.”

“우리를 의심하는 건가?”

“여기는 던전이다. 의심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카일의 말에 저쪽에서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지금 사정이 있어서 바로 이동 할 수가 없다. 다른 수원으로 가면 안 되겠나?”

“다른 곳은 너무 멀다. 애당초 던전 안에서 수원을 독점하는 건 금지일 텐데?”

“수원을 독점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사정이 좀 있다.”

저쪽의 말에 카일은 신중하게 생각해 봤다.

‘수원에 집착하는 게 아닌데 자리를 비킬 수 없는 상황. 그리고 10인 파티라고 하는데 앞에는 세 명밖에 없다. 그렇다면…….’

카일은 지금 상대편이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혹시 부상자가 있는 건가?”

카일의 말에 저쪽은 좀 시간을 두고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이동 할 수가 없으니 잠시 양해를 구했으면 한다.”

저쪽은 저쪽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는 말이다.

카일은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우리는 3인조 파티다. 세 명이서 조용하게 이동해서 물만 뜨고 바로 나가고 싶다. 잠시라도 좋으니 영역을 공유하자.”

“…정말 세 명 뿐인가?”

“틀림없다.”

“좋다. 대신 허튼 수작을 부렸다가는 죽을 줄 알아라.”

“그 말은 그쪽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걸 명심해라.”

결국 짧은 교섭 끝에 두 파티가 잠시 같은 공간을 공유하기로 했다.

카일의 파티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카일은 아리시아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놈들이 이상한 말을 한다거나 하면 바로 알려줘.”

“예. 주인님.”

아리시아의 청력을 경계망 삼아서 카일의 파티는 수원이 있는 공동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들어가자 한쪽 구석에 무장을 하고 있는 모험가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열 명이 맞군. 그런데… 다섯 명이나 쓰러져 있잖아?’

파티의 절반 이상이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저들이 섣불리 이동하지 못했다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들 중에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갈색 머리의 남자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내가 테리다. 리더는 너인가?”

그는 카일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카일이다. 잠시 물만 뜨고 바로 이동하겠다.”

“그래. 알았다.”

테리는 카일의 파티가 세 명뿐이라는 것을 알고 안심했다.

양쪽 모두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당장 수상한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양족 파티의 리더는 조금이지만 상대를 믿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리시아 물을 떠 와라.”

“예. 주인님.”

아리시아는 동공의 한쪽에서 솟아나는 샘물에 양가죽으로 만든 물주머니를 가져가서 물을 채웠다.

물을 다 뜬 다음 카일은 테리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볼일을 다 봤으니 우리는 가겠다.”

“그래. 그런데 잠깐?”

“무슨 용무지?”

날카롭게 물어보는 카일에게 테리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포션이 있나? 부상자의 상태가 심각해서 꼭 필요하다. 지금 준다면 사례는 밖에서 틀림없이 하겠다.”

포션은 신관이 없는 파티에 있어서 유일한 생명줄이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포션이 없다.”

“정말인가? 한 병도 없나?”

“없어. 애당초 고작 세 명이서 다니면서 그렇게 비싼 물건까지 살 정도로 여유가 많지는 않아.”

“그래. 그렇군.”

테리는 몹시 아쉽다는 듯이 말했고, 카일은 그런 테리에게 말했다.

“도움을 줄 수 없어서 유감이다. 무사히 귀환 할 수 있도록 행운을 빌지.”

“동감이다. 그리고 조심해라. 이 근방에 고블린 워리어가 이끄는 군단이 있다.”

“그렇군. 정보 고맙게 받겠다.”

그렇게 카일과 테리는 작별을 하고 서로 떨어졌다.

수원을 나오고 한참 지나서 카일이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에게 말했다.

“잘했어. 둘 다.”

“별것 아닙니다.”

“표정 관리만 했을 뿐인걸요.”

둘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카일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않아. 사실 거짓말을 하면서도 둘의 표정에 티가 나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했거든.”

“하지만 적절한 대우였습니다. 예민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주인님은 최선의 선택을 했습니다.”

검은 바람의 칭찬에 카일은 피식 웃고 말았다.

지금 이 세 명이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카일의 파티에는 포션이 있다.

비록 하급 포션이긴 하지만 세 병의 포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카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포션은 없다고 말했고, 다른 두 명도 태연한 표정으로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카일이 한 최선의 선택지였다.

테리라는 인물의 파티는 그때 포션이 간절했다.

열 명 중에 다섯 명이 거동도 잘 못할 정도로 다쳤다는 것은 사실 심각한 위기였다.

그저 전력이 반으로 줄어든 게 아니다.

다른 다섯 명이 부상자를 이끌고 지상으로 후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는 길이 험난할 것은 뻔했다.

최소한 포션으로 파티원들의 부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할 수 있다면 생존율은 크게 올라간다. 그러니 포션을 나눠 달라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카일의 입장에서 봤을 때 포션을 줄 수는 없다. 포션 자체가 상당한 고가의 물건이며, 심지어 일반 장비와 달리 소모품이기도 하다. 이걸 던전에서 줬으니 지상에서 갚으라고 해도 상대가 모른 척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관이 없는 카일의 파티에서 포션을 생명줄이다.

설령 열 배의 보상을 약속한다고 해도 카일은 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포션을 줄 수 없다는 말을 한다고 상대가 순순히 포기할까?

앞에서도 설명했다 시피 테리라는 남자가 이끄는 파티에서는 포션이 절실한 입장이었다.

만약 카일이 거부한다고 해도 포션이 있다는 것만 알면 싸워서 뺏어야 한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도 있었다.

결국 포션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 밝혀져도 전투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10 대 3의 전투.

비록 열 명 중에 다섯 명이 부상 중이라고 해도 부담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카일은 애당초 그렇게 비싼 물건은 없다고 말하며 선을 그어 버린 것이다.

괜한 분란의 소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저들 열 명보다 너희들 두 명이 더 소중하다.”

카일의 말에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는 깊은 감동을 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평생 주인님만을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카일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둘을 외면하며 계속 걸었다.

‘당연한 걸 가지고 오버한다니까.’

물을 채워 온 카일의 파티는 이제 길드의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역으로 도달했다.

여기서 부터는 최대한 신중하게 이동해야 했다.

카일이 일행의 중간에 끼어서 지도를 바라보며 여백의 지역을 꼼꼼하게 그리고 옆에 메모를 하면서 이동했다.

지도에 없는 지역을 이동할 때의 문제점을 몬스터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꼬이고 꼬인 던전에서 방향 감각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지도와 나침반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생명줄이었다.

이제까지 길드에서 판매한 지도는 그 정확도가 몹시 뛰어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부터는 카일이 그 지도를 만들고 채워가며 이동해야 했다.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동 중에 갈림길 하나 빼먹으면 던전 안에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던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도 가장 끔찍한 상황 중에 하나다.

“잠시 정지. 여기 지형을 자세히 기록해야겠어.”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래서 카일은 이동하는 도중 특이한 지형이 나오면 무조건 정지해서 주변을 기록했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미리 준비해온 잉크펜으로 작게 표시하기도 했다.

‘여기는 A―5로 기록해 두자.’

카일이 잘 보이는 종유동에 작은 글씨를 써 두었고 일행은 다시 천천히 이동했다.

신중하게 조심조심 말이다.

* * *

6층 탐색을 진행하고 5일째.

그동안 카일은 조금씩 탐색 영역을 넓혀가며 6층 외각 지역의 지도를 확장하고 있었다.

설령 아무런 정보가 없다고 해도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역의 정보만으로도 길드에서는 보수를 지불한다. 그 정보를 토대로 길드에서 판매하는 지도가 더 정확해지고 모험가들의 활동도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카일은 최대한 신중하게 지형정보를 수집했다. 여차하면 자신이 밖에 나가서 모자란 지역의 지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하게 말이다. 그렇게 신중하게 탐색 활동을 하면서도 마석의 수입은 5층보다 확실히 높았다.

단 하나의 층을 내려왔을 뿐이지만 마석을 주는 몬스터들의 비율이 올라갔고, 특히 오크나 고블린 라이더보다는 놈들이 타고 다니는 늑대가 제법 짭짤했다.

“주인님. 여기 식사 드세요.”

“알았다.”

아리시아의 말에 카일은 지도를 그리던 것을 멈췄다.

식사라고 해봐야 던전 안에서는 건량과 육포, 그리고 약간의 말린 과일 정도였다. 전부 마른 음식이다 보니 물 없이는 먹는 게 상당히 고역이었다. 마른 식량을 꼭꼭 씹어서 물과 함께 삼키는 방식이 던전 안에서의 식사였다.

카일은 식사를 하며 말했다.

“검은 바람. 식량과 도구는 충분하지?”

“예. 주인님.”

“좋아. 이대로 사흘만 더 탐색하고 올라가자.”

“알겠습니다.”

“아리시아. 화살은 충분해?”

“예. 주인님. 몇 개는 부러졌지만 아직 충분해요.”

“좋아. 혹시 중간에 모자랄 것 같으면 말해. 바로 올라가는 게 나으니까.”

“예. 주인님.”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짧은 휴식을 취한 카일의 파티는 다시 탐색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음?”

“왜 그래. 아리시아?”

“주인님. 고블린 라이더의 발소리가 들립니다.”

“숫자와 방향은?”

카일의 물음에 아리시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숫자는 이제까지 중에 제일 많습니다. 그리고 방향은…….”

아리시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쪽과 뒤쪽 모두에서 달려오고 있습니다.”

“제길, 포위당했군.”

카일은 황급하게 지도를 펼쳤다.

그리고 빠르게 판단했다.

‘앞뒤에서 달려오고 있다면 놈들은 이미 우리를 표적으로 찍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마친 카일은 바로 움직였다

“검은 바람. 앞으로 달려라. 아리시아. 바짝 붙어 따라와.”

“예. 주인님.”

“예. 주인님.”

카일의 파티는 앞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그렇게 1분 정도를 뛰어가자 세 갈래 길이 나왔다.

그 중에 정면에서는 카일의 귀에도 들릴 정도로 고블린 라이더들의 질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른쪽으로!”

카일은 빠르게 지시를 내리고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카일의 파티가 오른쪽 길로 접어들자 정면에 있던 길목에서는 고블린 라이더들이 튀어나왔다.

“키에에에에!”

“커허엉!”

그놈들은 그대로 카일을 향해서 달려왔다. 하지만…….

“이놈!”

검은 바람의 주먹이 고블린 라이더의 머리를 분쇄해 버렸다.

“케에엑!”

놈이 타고 있던 늑대는 주인이 죽어도 개의치 않고 사납게 달려들어서 검은 바람의 발목을 물고 흔들었다.

“흥.”

그러나 검은 바람은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 다른 쪽 발로 걷어찼다..

“검은 바람 뒤에서 따라와라.”

“예.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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