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원래 카일의 파티가 5층으로 이동하는 시간은 3~4시간 정도였다. 그런데 목표를 6층으로 잡으니 이동 시간만 잡아도 여섯 시간으로 늘어나 버렸다. 5층에서 6층 입구로 이동하는 거리가 굉장히 멀었고, 또 5층에서의 오크들은 생각보다 발목을 꽤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동 자체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뿐이지 별 문제 없었다.
검은 바람 혼자서 앞에 나가도 5층의 오크들을 불도저처럼 밀어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6층에 도착하자 검은 바람이 말했다.
“지금부터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리시아 너도 조심해라.”
“알겠다.”
“예. 오라버니.”
대열은 3열.
검은 바람이 가장 앞에 서고 카일이 중간, 아리시아는 후방을 맡았다.
카일은 뒤에서 적이 공격해올 경우 아리시아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뒤로 가려고 했지만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가 둘 다 반대했다.
“주인님이 가장 안전한 위치에 있어야 저희가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습니다.”
“오라버니 말이 맞아요. 그리고 제 청력은 인간보다 훨씬 좋아요. 뒤에서 몰래 접근하는 몬스터가 있다면 바로 알아챌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둘의 주장이 나름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카일은 한 발 물러났다.
특히 아리시아의 청력에 관해서는 새삼 굉장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던전에서 울리는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고 모두 듣고 있었다.
“오라버니, 멀리서 짐승의 발소리가 들려요.”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아리시아의 말에 검은 바람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숫자는?”
“잘은 모르겠지만 스무 마리는 넘어 보여요.”
“고블린 라이더군. 준비하는 게 좋겠다.”
“예. 오라버니.”
고블린 라이더.
6층부터는 고블린 상위종이 두 가지 등장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고블린 라이더다.
늑대를 길들여서 타고 다니는 몬스터로 고블린 자체보다 놈들이 타고 다니는 늑대가 더 까다롭다.
실제로 고블린 라이더를 잡아 봐야 하급 마석을 줄 뿐이지만 늑대의 경우 가끔 중급 마석을 주기도 했다.
일행은 적을 맞이하기 위해서 자리를 잡았다.
검은 바람과 카일이 앞에 서고 아리시아는 조금 후방에서 종유석 기둥에 몸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타타타타타타―
이윽고 카일에게도 들릴 정도로 늑대의 발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아리시아. 견제해.”
“예. 오라버니.”
그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검은 바람이 지시를 내렸고 아리시아가 화살을 날렸다.
쉬이익.
그녀가 발사한 화살은 바람을 가르고 어둠속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차를 두고 무언가 화살에 맞고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캐애앵!”
“계속 쏴.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최대한 줄여야 한다.”
“예. 오라버니.”
아리시아는 계속해서 화살을 날렸고 그녀가 화살을 쏜 후에는 반드시 몬스터의 비명이 들렸다
“키에엑!”
“케엑!”
“카하앙!”
그녀가 열 발 정도 화살을 쐈을 때.
“옵니다.”
“음. 보고 있어.”
이제 카일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고블린 라이더들이 가까이 왔다.
늑대를 타고 그 위에서 작은 돌도끼와 쇠붙이를 들고 달려오는 고블린 라이더는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키에에에에!”
“키르르륵! 키르륵!”
놈들 중에 몇몇은 몸에 화살이 박힌 상태로 덜렁 거리고 있었다.
‘약이 바짝 올랐구만.’
카일은 준비했고 검은 바람은 놈들이 어느 정도 다가오자 먼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우오오오오오!”
촤아악!
검은 바람의 일격이 달려오던 고블린 라이더 두 마리를 동시에 갈라버렸다. 타고 있는 늑대까지 통째로 절단해 버리는 깔끔한 솜씨였다.
“키르르르륵!”
“키에엣!”
고블린 라이더는 검은 바람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자기들 끼리 무슨 얘기를 하더니 그대로 늑대를 조종해서 반으로 갈라져서 양 갈래로 돌진했다
“이놈들!”
검은 바람은 자신의 태도를 크게 휘둘러서 그런 고블린 라이더를 도살했다.
“키이익.”
“카하앙.”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고블린 라이더들이 죽어 나갔다. 하지만 고블린 라이더의 특기는 늑대를 이용한 기동력이다.
몇 마리가 검은 바람의 간격을 멀리 돌아서 우회하더니 뒤편에 있는 카일을 노렸다.
“주인님 몇 마리가 갑니다.”
검은 바람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 말을 들은 카일은 한쪽에 횃불을 내려놓으면서 무기를 잡고 말했다.
“와라.”
카일은 겁먹지 않고 담담하게 기다렸다.
‘고블린 라이더는 오크보다 약하다. 숫자가 많고 단체로 움직여서 문제지.’
길드에서 사전에 얻은 정보를 생각하며 카일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달려오는 놈을 노리고 정확하게 칼을 뻗었다.
푸욱!
“크엑”
고블린의 몸통을 정확하게 꿰뚫은 일격이었다.
하지만 놈이 타고 있던 늑대는 멀쩡해서 카일을 향해서 이빨을 들이밀었다.
“크하앙!”
카일의 목덜미를 노리고 뛰어오른 늑대였다. 하지만 카일은 허리를 살짝 숙여서 그 공격을 피했다.
따아악!
허공의 공기만 씹은 늑대에게 카일의 공격이 이어졌다.
촤아악!
“캐앵!”
늑대는 최후의 단발마만 남기고 쓰러졌다. 그리고 이어서 계속 달려오는 고블린 라이더들을 향해서 카일이 검을 뻗으며 견제했다.
“어디 와봐라.”
카일이 들고 있는 태도의 사정거리를 고블린 라이더의 무기보다 압도적으로 길었다. 그저 뻗어서 겨냥하고만 있어도 고블린 라이더들을 섣불리 돌격하지 못했다.
“키르르르.”
“키륵 키륵.”
거리를 두고 견제하고 있는 놈들을 보고 카일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놈들 일반 고블린하고 전투력은 별로 다르지 않은데 머리가 좋군.’
보통 고블린보다 지능이 좋기에 무작정 돌격하지 않고 이렇게 간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고블린이 머리가 좋아 봐야 고블린이다.
퍼억!
“키에엑!”
카일을 견제하고 있는 놈들에게 아리시아의 화살이 정확하게 날아들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위력이 올라간 아리시아의 화살은 고블린의 머리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좋았어. 아리시아.”
카일의 칭찬에 아리시아는 대답 대신 계속해서 화살을 당겼다.
팅. 팅. 팅.
“키에엑.”
“깨앵!”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쏘아지는 아리시아의 화살은 민첩한 고블린 라이더도 피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그렇다고 아리시아에게 접근하고자 하니 앞에서 카일이 자신들을 막고 있었다.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 동료들은 하나씩 하나씩 죽어가는 답답한 상황. 이 상황에서 고블린 라이더의 선택은 뭘까?
“크에에엑!”
“키르륵!”
결국 고블린은 고블린이다.
인내심이 다한 놈들은 괴성을 지르며 그냥 마구 달려들었다.
후퇴해서 대열을 정비한다는 생각 같은 것은 없었던 모양이다.
상황이 열세라고 해도 인간을 보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게 고블린들의 습성이다.
“얼마든지 와라.”
카일은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자신에게 오는 고블리 라이더들을 착실하게 상대했다.
태도로 베고, 방패로 쳐내면서 능숙하게 상대하는 카일의 모습에는 이제 초보자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다 아리시아의 견제까지 받쳐 주니 고블린 라이더들은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흡!”
“카하앙!”
마지막으로 남은 늑대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면서 전투는 끝이 났다.
어느새 자기 몫을 다 정리하고 지켜보고 있던 검은 바람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주인님. 일곱 마리나 되는 고블린 라이더를 혼자서 처리하셨군요.”
“아리시아의 견제 덕분이지. 혼자 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훌륭한 발전입니다. 이제 숙련된 검사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너무 칭찬하지 마라. 진짜인 줄 알고 자만할라.”
카일은 피식 웃으며 태도의 피를 닦아서 집어넣었다.
“자, 마석 수거하자.”
“예. 주인님.”
“저도 돕겠습니다.”
일행은 쓰러져 있는 고블린 라이더와 늑대의 심장을 가르며 마석을 채취했다.
멀리서 아리시아의 화살을 맞고 죽은 놈들까지 합하니 총 서른다섯 마리의 고블린 라이더가 있었다.
“하급 다섯 개, 중급 두 개입니다.”
한바탕한 결과도 꽤나 괜찮았다.
“나쁘지 않네. 어디 다친 곳은?”
“전 괜찮습니다. 아리시아 너는?”
“저도 문제없어요. 오라버니.”
“좋아. 그럼 계속 움직이자. 일단 수원 근처로 가서 물을 공급한 후. 지도에 나오지 않는 외각 지역으로 가자.”
“예. 알겠습니다.”
검은 바람이 아무리 강하고 숙련되었다고 해도 파티의 리더는 카일이니 전체적인 목표와 방향성은 카일이 정했다. 그렇게 카일을 주축으로 한 파티는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목표로 한 수원의 근처까지 가면서 카일은 두 번의 고블린 라이더 무리와 싸웠고, 한 번은 오크 무리와도 싸웠다.
6층의 오크는 큰 차이는 아니지만 5층의 오크보다는 강했다. 덩치가 조금 더 크고 힘이 강한 정도였는데 사실 큰 문제는 없었다.
다행히도 아직 6층에서 검은 바람이 애먹을 정도의 몬스터는 나오지 않았다. 거의 일격. 가끔 장비가 좋은 놈들이 이격을 받아내는 것 정도가 6층 오크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검은 바람은 몰라도 카일이나 아리시아에게 6층은 충분히 위험할 수 있는 수준의 난이도다.
그렇기에 일행은 신중하게 이동하면서 목표한 수원근처까지 이동했다.
카일이 목표로 잡은 수원은 길드의 지도에 나온 수원 중에서 가장 외각 지대에 있는 것이다.
이곳을 근거지로 해서 지도에 나오지 않는 외각 지대를 탐사하는 것이 카일의 목표였다.
어차피 마석 채취는 탐색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거고, 혹시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면 짭짤한 추가 이득이니 말이다.
문제는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카일 하나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주인님. 수원이 있는 쪽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요.”
아리시아의 말에 카일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수원에 자리를 잡은 이들이 있다는 거군.”
“그런 듯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검은 바람의 말에 카일은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일단 기다려 보자. 저쪽에서 물을 다 뜨면 움직일 테니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카일의 파티는 잠시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하면서 앞에 있는 수원의 사람들이 떠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도 그들은 수원에서 떠나지 않았다.
“뭐지? 설마 저기에 자리를 잡았다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귀찮게 됐군.”
“다른 수원을 목표로 움직이시겠습니까?”
“아니, 다른 곳은 너무 멀다. 그보다 우리 쪽에서 수원으로 간다는 표시를 하면서 서서히 이동해 보자.”
“예. 알겠습니다.”
검은 바람은 허리에서 단검을 꺼내더니 자신의 태도와 부딪혔다.
까아앙!
“이러면서 이동하겠습니다.”
“그래. 천천히 가보자.”
그리고 카일의 파티는 주기적으로 소리를 내면서 수원이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기척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소리를 내면서 이동한다는 것은 적의가 없다는 표현이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다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인간 사냥꾼들이 오히려 함정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이렇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냥 막 다가가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게 더 낫기는 했다.
어느 정도 이동해서 수원지에 가까워지자 저쪽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까아앙!
자신들이 들었다는 말이다.
검은 바람은 카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조금 기다려 보자. 인간 사냥꾼이 아니라면 대화를 시도하겠지.”
“예.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