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여기인가?”
“예. 그렇습니다. 주인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카일은 폐기장의 입구에 도착했다.
‘건물도 뭐도 아니군.’
마치 중고차 시장 마냥 그냥 넓은 공터에 폐기장이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들어가니……
“웃…….”
카일은 순간 던전의 4층에 온 것을 생각했다.
구울에서 나는 썩은 살점에서 풍기는 악취. 그것과 비슷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그 불쾌한 악취의 근원은 주변에 빼곡하게 쌓여 있는 철장 안에 갖춰진 노예들이었다.
‘최악이군.’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환경은 카일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최악의 환경이었다.
그때 카일에게 한 남자가 접근했다.
“이런, 손님이 오셨군요.”
허리춤에 채찍과 단검을 소지하고 있는 남자는 투실투실한 뱃살과 기름기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카일을 발견하더니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무슨 볼일로 오셨습니까?”
그 말에 카일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말했다.
“노예를 구입하고 싶다.”
카일은 고압적인 태도로 말을 놨다.
행크의 대장간이나 길드 직원을 상대로는 말을 높여 주었던 카일이지만 여기서는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빈민가에서 사업체를 유지하는 인물이면 그게 제대로 된 도덕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일 리가 없다. 그런 인간에게 만만하게 보이면 이쪽이 손해를 볼 게 뻔했기 때문에 일부러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한 것이다.
“아, 그러시군요.”
상대도 카일의 고압적인 태도를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오히려 무척 친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구입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던전에서 미끼로 사용하실 겁니까? 아니면 마법사의 실험용?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용도로도 한둘 정도 사시죠. 저희 폐기장은 고객분들에게 최저가에 노예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
물론 말하는 내용은 친절한 미소와는 정반대되는 내용이었지만 말이다.
카일은 순간 역겨우니까 닥치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상 내가 그럴 자격은 없겠지.’
이 폐기장에 와서 돈을 주고 노예를 구입하려는 목적으로 온 이상 카일도 이 남자를 무작정 비난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카일은 그냥 담담하게 말했다.
“일단 둘러보고 싶군.”
“아. 그러시군요. 예. 얼마든지 둘러보십시오.”
그리고 카일은 검은 바람과 함께 주변을 돌아보면서 노예들을 살폈다.
대부분의 노예들은 철장 안에서 두려운 눈빛으로 카일을 바라보거나 혹은 의지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 멍한 눈으로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생지옥이 있다면 여기군.’
이 생지옥을 없애는 건 불가능 하다.
카일은 그럴 힘이 없었다.
다만 가능한 것은 단 한 명만큼은 이 생지옥에서 구해서 그 인생을 구원해 주는 것이다.
물론 그 마저도 위선임을 잘 알고 있다.
어디까지나 카일은 필요에 의해서 저렴한 가격에 노예를 구입하기 위해서 온 것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생지옥에 빠져 있는 노예들에게는 그런 카일의 위선이 유일한 구원이다.
노예들을 신중하게 살펴보던 카일이었지만 사실 어느 노예가 가장 좋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워낙 상태들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르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혹시 모험가 출신이나 용병 출신의 노예가 있나?”
“예? 아아… 예, 있기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놈들은 지금 몸 상태가 망가져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텐데요?”
“상관없다. 어쨌든 과거에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노예를 구입하고 싶다.”
폐기 노예의 과거를 따져가며 구입하는 고객은 굉장히 특이한 경우였다. 하지만 남자는 어쨌든 카일의 요구에 응했다.
“멀쩡하던 시절에 강했던 놈이라면… 역시 이 놈이겠죠?”
그는 삐쩍 마른 체형에 양 팔이 절단되어 있는 노예를 소개했다
“과거에 강했다고?”
“예. 이놈이 원래 범죄자 출신의 노예입니다. 한창때는 왕국 전체에 지명수배가 내려졌었죠. 심지어 체포 과정에서 기사들을 상대로도 대등하게 싸웠다고 합니다.”
“흠… 그래?”
“예. 소문에는 몸이 망가지기 전에는 익스퍼트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조건만 들어보면 딱 카일이 원하는 경우였다.
팔이 절단되어 있기는 하지만 카일의 능력이면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
“범죄 노예라면 무슨 범죄를 저질렀지?”
“대량 살인죄입니다. 몰살한 마을만 수십 개에 죽인 사람의 숫자는 수천이 넘는다고 하죠. 자기 흔적을 숨기기 위해서 애 어른 할 것 없이 아주 그냥 다…….”
“이놈은 됐다. 다른 노예를 소개해 다오.”
“예. 알겠습니다.”
카일은 망설임 없이 포기했다.
조건은 좋았지만 이 생지옥에 어울리는 놈을 굳이 건져줄 필요는 없었다.
그 외에도 여러 노예들을 소개받았는데 그 대부분이 극악한 범죄자들이었다.
방화, 약탈, 살인, 강간 등등…….
다양한 죄목의 죄인들을 소개받자 카일은 생각했다.
‘혹시 여기 조금은 정당성이 있는 곳인가?’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카일이 과거에 강한 힘을 지녔던 노예들을 소개해 달라고 했고, 그런 노예들 중에 상당수는 극악한 범죄자에서 노예로 떨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일은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을 굳이 구해주고 싶지 않았다.
“으음,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드시나 보군요.”
“좀 그렇군.”
상대도 난색을 표했고 카일은 차라리 여기서는 포기할까 싶은 생각도 했다.
포기를 하려던 그때였다.
“주인님 이 노예는 어떻습니까?”
처음으로 검은 바람이 카일에게 누군가를 추천했다.
“이… 노예 말이지?”
검은 바람이 추천한 것은 전신에 흉악한 화상 자국을 가지고 있는 여성 노예였다.
쭈글쭈글해진 피부와 다 타버린 머리카락 등을 보고 있으면 지금 살아 있는 게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로 상태가 엉망이었다.
눈빛도 다 죽어 있는 그녀에게 딱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그건 인간보다 조금 길고 뾰족한 귀였다.
“엘프인가?”
카일의 말에 폐기장의 주인이 말했다.
“예. 순종은 아니고 쿼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
이종족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들에게 박해의 대상이다.
인간보다 더 우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이종족을 착취해서 이용하기 위해서 혈안이 된 인간들은 오래전부터 이종족들과 갈등을 빚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엘프와 드워프는 대표적인 대상으로 드워프들은 그 능력을, 엘프들은 그 미모와 전투력이 탐욕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인간들의 탐욕에 이종족들은 죽으면 죽었지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는 형태로 맞서 싸웠다.
하지만 수적인 열세에 밀려서 점점 형세가 밀리고 결정적으로 인간들이 개발한 종속 마법이 이종족들의 열세에 쐐기를 박았다. 종속 마법으로 노예화시킨 이종족들은 인간들에 의해서 동족을 침략하는 첨병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종족들은 대부분 죽거나 사로 잡혀서 노예화 되었고, 인간들은 대륙의 패권을 잡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몇몇 학자들이 당시 인간들의 행위에 대한 야만성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아쉽게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이종족들은 지금도 오지에 몰래 숨어서 살거나 인간들의 사회에서 노예화되어 살고 있으며 인간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카일의 눈앞에 있는 이 쿼터 엘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아이가 뭔가 저지른 범죄가 있나?”
카일의 말에 폐기장의 주인이 말했다.
“예. 물론이죠.”
“무슨 잘못을 했지?”
“이년은 간악하게도 키워준 주인의 은혜도 잊고 스스로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습니다. 노예 어미에서 태어난 자신도 노예가 되어야 함을 분명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런 짓을 했으니 끔찍한 범죄죠.”
“…종속 마법에는 자해나 자살도 금지되어 있을 텐데?”
“그게 당시 주인이었던 남자가 종속 마법을 아직 걸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그랬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 물론 지금은 꼼꼼하게 종속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저희 매장에는 고물은 있어도 불량품은 없습니다.”
“쓰레기는 있는 것 같은데?”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카일은 말을 얼버무리고 검은 바람에게 말했다.
“이 녀석이 내 목적에 도움이 될까?”
“예. 주인님.”
폐기장의 주인이 듣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논의는 할 수 없었지만 검은 바람은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다.
“좋아. 그렇다면…….”
카일은 검은 바람을 신뢰했다.
그냥 종속 마법이 걸려 있기 때문에가 아니라 검은 바람이 진심으로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굳힌 카일이 폐기장의 주인에게 말했다.
“얼마지?”
“예. 이건 3골드입니다.”
“3골드? 폐기 직전의 노예가?”
“헤헤헤. 이렇게 보여도 엘프의 피가 흐르니 마법사들의 실험용으로는 아직 써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꼴이 이렇다고 해도 암컷이 수컷보다는 더 비싼…….”
“됐다.”
카일은 바로 3골드를 지불하고 말았다.
“어이구 감사합니다.”
“…….”
다소 비싼 가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금전적인 여유는 충분했다.
‘무엇보다… 이 새끼랑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노예를 판매하는 쓰레기나 그 노예를 필요에 의해서 구입하는 카일이나 어떻게 보면 한 통속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일은 이 폐기장의 주인이 노예를 취급하는 모양새에 구역질이 났다.
“KA―98746, 일이다. 오늘 안에 이 죄인을 각성시켜라.”
“KA―98746, 어제 만난 사람의 인원수와 대화를 모두 기록해서 보고서를 제출해라. 속이면 페널티가 있을 것이다.”
“KA―98746, 일을 똑바로 하지 못했군. 독방에서 근신형 한 달이다.”
‘…빌어먹을.’
이제는 잊고 싶은 기억.
하지만 절대 잊히지 않는 기억.
카일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 거지 같은 곳을 다 박살 내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자신에게 말이다.
“헤헤헤. 여기 있습니다. 종속 마법도 인계되었으니 이제 이건 손님 것입니다.”
“검은 바람. 네가 업어라.”
“예. 주인님.”
스스로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그 노예를 위해서 카일은 검은 바람이 업도록 했다.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
카일은 폐기장 주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더럽기 그지없는 이곳을 두 번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카일은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또 와야겠지.’
자신의 능력으로 폐기장의 노예들을 일부나마 구할 수 있다면 또 와야 할 것이다.
* * *
숙소로 돌아온 카일은 우선 새로운 노예를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그 앞에 마주 앉아서 대화를 시도했다.
“나는 카일이다. 그리고 이쪽은 내 충복인 검은 바람.”
“…….”
“네 이름은 뭐지?”
“아리…시아.”
그녀의 목소리는 대답할 의지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종속 마법으로 인해서 주인의 명령에 거부할 수 없기에 강제로 대답한 것이다.
카일은 그녀의 태도에 개의치 않고 말했다.
“나는 널 동료로 맞이해서 던전 탐색의 동료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괜찮겠나?”
그 말에 노예소녀, 아니 아리시아는 자조적인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나를 전투 노예로……. 차라리 그냥 죽이시기를 권해 드리죠.”
“싫다는 건가?”
“저한테, 거부할 권리가 있나요?”
“원래는 없지. 하지만 네가 정 원한다면 네 의사를 존중하마.”
카일의 말에 아리시아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무슨… 꿍꿍이시죠?”
“말 그대로다. 네 의지로 우리와 함께 할 건지.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보통의 노예로 있을 건지를 선택하라는 거다.”
“…보통의 노예라면 제가 뭘 할 수 있나요? 이렇게 망가진 몸으로…….”
“몸은 고쳐 주마.”
그 말에 아리시아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거짓말을…….”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있나?”
“…….”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카일의 말에 아리시아는 입을 다물었다. 카일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아니, 사실은 이런 말을 할 이유 자체가 없다. 무엇을 시키던 간에 종속 마법이 걸린 노예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
그런데 선택지를 준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다만,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상황에서도 아리시아는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선택의 권리를 준다는 아주 작은…….
그야말로 카일은 스스로 특별하다고 인식도 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권리였지만 아리이사에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특혜를 받아본 느낌이었다.
그녀는 종속 마법의 강제력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말했다.
“만약 주인님이 저를 고쳐 주신다면 제 몸과 마음 영혼까지 모두 바쳐서 영원히 주인님을 섬기겠습니다. 던전의 전투 노예가 아니라 더한 짓을 시킨다고 해도 모두 따르겠습니다.”
이것은 아리시아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해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