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15화 (15/215)

15화

그날 저녁.

카일과 검은 바람은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숙소로 들어갔다. 주머니가 두둑하니 하룻밤 정도는 소소한 사치를 부려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알딸딸하게 취해서 숙소에 돌아온 카일은 그대로 침대에 눕고 싶었다. 하지만…….

‘할 일은 해야지.’

“검은 바람. 이쪽으로 와라.”

“예. 주인님.”

검은 바람의 초능력 코어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관리는 하루도 빼먹을 수 없었다.

물론 지금도 검은 바람은 강하지만 그렇다고 더 강화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특수 능력을 개화하지 않고 기초적인 염동력만 개화해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카일은 검은 바람의 이마에 손을 얹고 코어에 힘을 불어넣었다.

한 차례 초능력 코어를 자극한 후.

카일은 힘을 회수했다.

“음?”

카일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자신의 힘을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은 바람의 코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하필이면 오늘.”

술은 카일뿐만 아니라 검은 바람도 마셨다.

지금부터 검은 바람이 집중해야 하는 시점인데 잘못하면 기회를 날릴 수도 있었다.

카일은 황급하게 말했다.

“검은 바람. 지금 느낌이 어떻지?”

“주인님 이게 설마…….”

“집중해라. 지금의 느낌을 감각적으로 느껴. 처음으로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코어를 움직이는 거다.”

일단 활성화된 코어를 자신의 의지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이 단계에서 실패하면 다시 활성화 될 때까지 또 카일이 계속 관리를 해줘야 한다.

천만다행히도…….

“예. 움직입니다. 작은 씨앗 같은 무언가가 제 의지대로 움직입니다.”

검은 바람은 감각이 좋았다.

“좋아. 됐어. 드디어 해냈어!”

카일은 환호를 질렀다.

검은 바람을 구입하고 몇 달 동안 꾸준하게 관리를 했고, 드디어 검은 바람의 안에 초능력 코어가 활성화되었다.

“축하한다. 검은 바람. 너는 이제부터 진짜 초능력자가 된 것이다.‘

카일의 파티의 전력이 크게 늘었다.

바로 다음 날.

카일과 검은 바람은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바로 던전으로 달려갔다.

사실 바로 어제 던전에서 올라왔으니 하루 이틀 정도는 쉴 생각이었지만 검은 바람의 초능력이 각성하는 바람에 일정이 변했다.

그게 어떤 능력인지 알기 위해서는 한 번 사용을 해봐야 하는데 던전 밖에서는 너무 눈에 띌 수 있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서 새로운 힘을 시험해 보기에는 던전 안이 딱이었다.

“좋아. 이쯤에서 해보자.”

“예. 주인님.”

카일과 검은 바람은 던전의 2층에 외각 지역에 있는 작은 동공에서 멈췄다. 그저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일 뿐이니 굳이 깊게 내려갈 필요는 없었다.

“우선 능력을 특성을 밝혀야 한다.”

“예 주인님.”

“코어를 활성화시키면서 자연스럽게 힘의 흐름을 유지해라. 전신에 힘을 빼고 마음을 텅 비워.”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검은 바람은 차분하게 카일이 시키는 대로 했다.

‘코어에서 나오는 힘을 자연스럽게……. 이건 오러를 다루는 것과 비슷하군.’

보통 초능력자들은 이 부분에서 꽤 애를 먹는 편이었으나 검은 바람은 이미 다른 부분에서 달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서 그런지 비교적 쉽게 힘을 컨트롤했다.

그리고 검은 바람의 초능력이 발현된 순간.

부우욱!

갑자기 검은 바람의 몸이 커졌다.

“읏?”

원래도 체격이 큰 검은 바람이었지만 갑자기 몸 전체가 살짝 커졌다.

대략 1.2배 정도 더 커진 것이다. 거기다 구릿빛의 피부색도 조금 더 진해졌다.

“이건, 변신 계통이 능력이군.”

“그게 무엇입니까?”

“자신의 몸을 변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몸의 크기만 커진 게 아니라 아마 피부의 밀도도 조금 올라갔을 거야.”

검은 바람은 자신의 몸을 만지고 두드려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몸이 조금 더 단단해진 느낌입니다.”

“좋아. 아주 좋은 능력이야. 아마 능력을 계속 성장시키면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그게 정말입니까?”

강함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검은 바람은 카일의 말에 반색했다.

“그래. 물론이다.”

칼일은 전생에 변신 계통 중에 이것과 비슷한 능력자를 본 적이 있었다.

그 능력자는 몸을 20층 높이의 빌딩에 버금갈 정도로 거대화시킬 수도 있었다.

당연히 그 거대화된 몸에서 나오는 파괴력은 어마무시했다.

‘가끔은 쓸모없는 능력도 있는데. 다행이군. 이건 전투에 특화된 능력이야.’

카일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좋아. 이제 원래대로 돌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요령은 코어의 힘을 천천히…….”

수우욱.

카일의 설명이 끝나기도 검은 바람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뭐, 그렇게 하면 돼.”

카일이 조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검은 바람은 힘차게 무릎을 꿇었다.

쿠웅!

“왜 또 이래?”

이전에 젊음을 찾아 주었을 때도 이랬을 때도 이랬는데 이번에도 검은 바람은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이번은 이전과 달랐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저 검은 바람 다시 한번 주인님에게 불멸의 충성을 맹세합니다.”

머리를 바닥에 박고 감격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만해. 야, 이마에 피난다.”

“주인님은 저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더 강력한 힘도 주셨습니다. 투란의 전사로서 이 은혜를 갚지 못한다면 저 검은 바람은 죽어서도 영광의 들판을 달리지 못할 것입니다.”

“영광의 들판? 그게 뭐야?”

“영광의 들판은 명예로운 전사가 죽었을 때 그들의 영혼이…….”

“응. 대강 알았어.”

카일은 영광의 들판을 투란 인들이 믿는 전사 전용의 천국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대강 맞는 말이기도 했다.

“어차피 우리는 쭉 함께 갈 거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검은 바람.”

“예. 주인님.”

이렇게 해서 검은 바람은 초능력자가 되었고 한층 더 강해졌다. 이제 카일은 더 이상 검은 바람의 초능력 코어를 유지하기 위해서 힘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말은 즉…….

‘진짜 새로운 전력을 추가 할 수 있겠어.’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새로운 전력.

즉, 새로운 노예를 구입하기 위해서 카일은 신중하게 생각했다.

‘초능력 코어를 활성화시키면 그게 누구든 간에 전력은 돼. 하지만 가능하면 원래 어느 정도의 강함을 지니고 있는 노예가 좋겠지.’

검은 바람의 경우는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혹사와 노쇠로 인해서 다 죽어가고 있던 투란의 전사.

‘그런 행운을 두 번 연속으로 바라는 건 너무 뻔뻔한 일인가?’

그런 카일에게 검은 바람이 말했다.

“주인님.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뭐라고? 어떻게?”

“우선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주인님의 능력이라면 몸의 부상이나 질병 같은 것은 모두 치료 하실 수 있는 게 맞습니까?”

“딱, 한 번이라면 가능하지.”

초능력 코어를 이식하는 과정에서 대상자의 몸은 전성기 시절, 혹은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탈바꿈한다.

실제로 병이 낫는 것뿐만 아니라 신장이나 근육량이 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회복 능력 덕분에 전생에 카일의 능력은 세계 정부의 권력자들에게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검은 바람은 카일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폐기 노예를 알아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폐기 노예? 그게 뭐지?”

어쩐지 이름만 들어도 비인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름이었다.

검은 바람은 담담하게 설명했다.

“수명이 다해서 죽어 가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이제 아무도 사주지 않는 노예를 말하는 겁니다. 보통 페기장이라는 곳에서 보관하다가 일정 날짜가 되어도 팔리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겠다.”

카일은 검은 바람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내 코가 석자라서 누구를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 아닌 건 알지만…….’

“제길.”

욕이 저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검은 바람은 그런 카일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냉정한 결단력이 있으신 분이지만 마음은 따뜻한 분이시다.’

폐기 노예에 관해서 이렇게 동정심을 보이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

이 세계의 상식으로 쓸모가 다한 노예를 폐기하는 건 그냥 당연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검은 바람도 그날 노역장에서 죽지 않았으면 가까운 시일 안에 폐기장으로 끌려갈 운명이었다.

카일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폐기장이라는 곳은 어디에 있지?”

“안내하겠습니다.”

* * *

검은 바람이 안내한 곳은 바이에른에서도 가장 치안이 좋지 않은 빈민가였다. 카일은 그 주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슬럼은 있군.’

술에 취했는지, 약에 취했는지 모를 몽롱한 표정의 인간들과 반쯤 헐벗은 옷을 입고 진한 화장으로 나이를 감추고 있는 여인들.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꼬질꼬질한 모습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들까지…….

가난한 사람은 세상 어디를 가도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외부에서 온 듯한 카일과 검은 바람을 반쯤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리고 나머지 반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카일이 만만하게 보였다가는 바로 도적들이 달려들 것이다.

“가시죠. 주인님.”

“그래.”

탄탄한 근육질에 거대한 체격의 검은 바람이 앞장서 있었고, 그뿐만 아니라 카일과 검은 바람 둘 다 무장을 하고 있는 상태다. 즉, 빈민가의 도적들이 함부로 달려들기에는 너무 부담되는 상대라는 것이다.

그런 카일과 검은 바람에게 유일하게 다가오는 이들이라곤…….

“멋진 모험가님이네. 5실버에 어때요?”

별 위협되지 않는, 진하게 화장을 하고 있는 창녀들 정도였다.

치마를 들어 올려서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며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창녀에게 검은 바람이 굳은 표적으로 나서서 말했다.

“물러서지 않으면 베겠다.”

그 퍼런 서슬에 여자는 주춤주춤 하더니 뒤로 물러났다.

“퉤. 재수 없어.”

그러곤 침을 뱉고는 떠났다.

창녀가 물러나자 검은 바람이 카일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허락 없이 나서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런 여자들은 전염병에 걸릴 확률이 높으니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괜찮아. 네 생각이 옳다.”

이렇게 위생 환경이 최악인 장소에서 매춘을 하는 여자는 거의 걸어 다니는 병원균이나 다름없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관둬. 그렇게 사과할 일도 아니잖아?”

“혹시 주인님이 불쾌하실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지.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너한테 화낼 리가 있냐?”

카일에게 검은 바람은 단순한 노예가 아니라 중요한 오른팔이었다. 진심으로 충성을 다하고 능동적으로 카일의 활동을 지지하는 검은 바람에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검은 바람은 그런 카일에게 웃으며 말했다.

“주인님은 여자에게도 꽤 담담하시군요.”

“뭐, 그런 편이지. 사실 여자를 겪어 본 적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말이야.”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는 카일을 보고 검은 바람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검은 바람은 무언가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은 있었지만 함부로 말하면 주인인 카일의 권위에 손상이 갈까 봐 그냥 속으로 생각만 했다.

‘하긴, 이제 막 성인이 되신 분이니 없을 수도 있지. 여기가 투란도 아니고.’

투란의 경우 16세가 되도록 성경험이 없는 남자는 주변에서 이상한 놈으로 취급받았다.

유목민족의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를 취하고 취한 여자를 지키는 것은 남자의 당연한 의무였기 때문이다.

그 의무를 져버리고 여자를 거느리지 못하는 남자는 투란에서는 경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성에게 너무 관심이 없는 것은 왜지?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건가?’

율리우스 왕국부터 투란의 이민족까지 16세의 남자라고 하면 성에 대한 호기심이 굉장히 강력할 시기다.

하지만 카일의 경우는 너무 담담했다.

사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카일은 이번 생뿐만 아니라 전생에도 성경험은 없었다. 왜냐하면 KA―98746번이라고 불리던 시절 카일은 세계 정부에 철저하게 통제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초능력자는 결혼과 출산 등등 모든 것에 세계 정부의 인가가 필요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인가가 평생 나오지 않기도 했다.

카일의 경우가 딱 그랬는데 혹시라도 카일의 희귀한 능력이 후손에게 이어질 경우 초능력자 관리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세계 정부는 카일에게 여자가 접근조차 못 하게 했었다.

그리고 이번 생에 태어나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생부인 루트비안 자작이 반면교사 역할을 했다.

무능하고 욕심만 많은 주제에 조금 예쁘다 싶으면 시녀부터 평민까지 가리지 않고 다 건드리는 루트비안 자작의 행동을 보고 자란 카일은 속으로 ‘최소한 저 새끼 같은 짓은 안 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여성에 관해서는 담백하다 못해 무감각해졌던 것이다.

검은 바람은 카일의 이런 전후 사정은 몰랐지만 지금 카일의 심리 상태가 조금 비정상적이라는 것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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