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어서 오십시오. 카일 씨. 또 오셨군요.”
행크의 대장간으로 찾아가니 점원은 카일을 알아보고 인사했다. 오크를 죽이고 얻은 중고 무기를 몇 번이고 팔러 오다 보니 이제 얼굴이 익은 것이다.
카일은 점원에게 말했다.
“오늘은 팔 물건이 조금 많습니다.”
“호오, 그런가요? 어디 한번 보도록 하죠.”
카일이 검은 바람에게 눈짓을 하자 검은 바람은 장비를 하나씩 늘어놨다.
롱 소드 한 자루.
바스타드 소드 한 자루.
투척용 재벌린 다섯 자루.
단검 다섯 자루.
가죽 갑옷 네 벌.
철제 건틀린 하나.
그 밖에 자잘한 장비들까지 포함해서 꽤 많은 물건들이 나왔다.
그러자 점원이 카일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카일 님 혹시 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인간 사냥꾼들이 습격했습니다. 역으로 격퇴하고 얻은 전리품들이죠.”
“그렇군요.”
대장간의 점원은 카일의 말을 순순히 믿었다.
아니, 그보다는 경위야 어쨌든 좋은 물건을 매입 할 수만 있다면 좋다는 생각이었다. 카일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건 점원이 알 바 아니었다.
“장비의 상태는 나쁘지 않군요.”
“그런가요?”
“예. 오크들이 쓰던 무기는 관리가 되지 않아서 날도 엉망이고 무기도 휘어 있는 경우가 많죠. 거기에 비해서 이건 꾸준하게 관리를 하던 물건이라는 게 표가 납니다.”
점원은 눈앞에 있는 물건을 하나하나 감정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다 해서 30골드 어떨까요?”
순간 카일은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 번에 30골드.’
새삼스럽지만 왜 인간 사냥꾼들이 끊이지 않는지 실감이 났다.
마석을 처분하고 얻은 돈이 21골드 95실버였다. 거기다 부산물을 처분한 돈 30골드를 더하면 한 번에 50골드 이상 가는 수입을 얻은 것이다.
정상적으로 5층에서 탐색을 하면 열 번은 들어가야 벌 수 있는 금액을 한 번에 번 것이다.
‘너무 좋아하지 말아야지.’
카일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점원에게 말했다.
“30골드는 좀 부족하다 싶군요.”
“하하하. 우리도 남는 것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45골드 정도는 예상하고 왔는데 말이죠.”
카일의 말에 점원은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는 저희 쪽의 수익이 너무 적습니다.”
“방어구 빼고 무기만 판매해도 그 정도 가격은 되지 않나요?”
이제 카일도 대략적인 장비의 시세는 알았다.
그러자 점원이 곤란한 표정을 말했다.
“하지만 언제 팔릴지 모르는 중고 물품은 계속 보관하고 있어야 하죠.”
“그래도 좀…….”
카일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점원이 먼저 한 발 물러났다.
“35골드 어떻습니까?”
“중간인 40골드가 좋겠군요.”
“너무 비쌉니다.”
“제 라운드 실드를 바꿀 때가 거의 다 됐는데 40골드로 쳐주시면 지금 당장 하나 사죠.”
카일의 말에 점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40골드로 하죠.”
“감사합니다. 라운드 실드 추천품은 뭐가 있나요?”
“예산이 풍족하시니 이런 건 어떻습니까? 철판을 삼중으로 겹친 물건인데 그 중간에 탄성이 좋은 트롤의 가죽을 끼워 넣은 겁니다. 질기고 견고할 뿐만 아니라 충격을 흡수해 주기도 하죠.”
“호오오, 좋군요. 얼마죠?”
“10골드입니다.”
“…….”
‘비싼 걸로 추천했구만.’
이 방패는 이제까지 카일이 산 장비 중에서 가장 비쌌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카일은 과감하게 방패를 바꿨다.
어차피 방패는 팔에 끼우는 부분의 버클이 헐렁해져서 바꿀 때가 되었다. 거기다 성공적인 거래 조건 자체에 방패 구입을 넣었으니 살짝 비싼 가격은 이해해 줄 수 있었다.
‘부산물을 당초 가격인 30골드에 팔았다고 치면 방패는 거저 얻은 거지.’
거기다 아직 카일은 모든 부산물을 처리한 것도 아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말씀하시죠.”
“이번에 얻은 전리품 중에 이런 것들이 있는데 말이죠.”
카일이 꺼낸 것은 인간 사냥꾼들 중에서도 마법사의 품 안에서 나온 물건들이었다.
카일이 보기에는 잡동사니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몰랐다.
“이건, 마법사들의 소지품이군요. 적들 중에 마법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죠. 사실 이런 물건은 어디서 처분할지를 몰라서 말이죠.”
카일의 말에 대장간 점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말했다
“확실히 저희들이 취급하는 물건은 아니죠. 저희로서는 정확한 가치를 감정하는 것도 무리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가져가야 할 까요?”
“마법사의 물건은 마탑에 가져가야 제대로 된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마탑……. 이 도시에 그런 건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 물론 마탑 자체는 여기에 없죠. 하지만 마탑에서 운영하는 도구점은 여기도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카일로서는 처음 안 정보다.
사실 마법사가 아니면 별로 인연이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위치를 가르쳐 드릴 테니 한 번 가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카일은 거래를 마치고 행크의 대장간을 나섰다.
‘나쁘지 않군.’
마석으로 21골드 95실버.
행크의 대장간에서 40골드.
여기서 방패를 구입해서 10골드를 쓴 것을 생각해도 51골드 95실버다.
‘매일 오늘 같았으면 좋겠네.’
“가자 검은 바람.”
“예. 주인님.”
카일은 대장간의 점원이 가르쳐 준 마탑이 운영하는 도구점으로 향했다.
* * *
마탑.
그것은 모든 마법사들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으면 마법사들의 성역이다.
그 힘은 강대하고 초국가적인 단체라서 세상 어디를 가도 마탑을 함부로 대하는 나라가 없을 정도다.
그럼 마탑에서 운영하는 도구점이라고 해서 카일은 꽤 커다란 가게를 상상했다.
“여기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카일이 찾아간 곳은 작은 구멍가게였다.
전생에 이 정도 규모의 가게는 은퇴한 노인들이 소일거리 삼아 운영하는 슈퍼마켓이 생각날 정도로 작은 가게였다.
‘유통기한 지난 라면이 있을 것 같은 가게네.’
“일단 들어가 보자.”
카일은 검은 바람과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그러자 가게 안에는 푸른색의 로브를 입고 있는 마법사 한 명이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그는 카일을 흘깃 보더니 말했다
“뭐요?”
‘불친절 하군.’
귀찮음이 다분하게 느껴지는 그 마법사의 말에 카일은 일단 조심스럽게 말했다.
“판매하고 싶은 물건들이 있어서 왔습니다.”
“판매라… 어디 봅시다.”
“검은 바람.”
“예 주인님.”
검은 바람은 마법사의 앞에 잡동사니라고 부르기에 딱 좋은 물건들을 늘어놨다.
불에 탄 듯한 나뭇가지.
말린 약초 같은 잡풀.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병 등등.
마법사는 그것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디서 하급 마법사 하나 턴 모양이군.”
그 말에 카일은 순간 울컥했다.
“그쪽이 먼저 공격했습니다.”
“던전 안에서?”
“그렇습니다.”
“그럼 누가 먼저였는지 알게 뭐야?”
“…….”
‘상당히 무례한 걸?’
카일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마법사는 자기 알바 아니라는 듯이 물건만 살폈다.
“마나 회복에 각성제, 벼락 맞은 떡갈나무 가지. 하급 포션, 강장제……. 쯧, 뭐 이 새끼가 나쁜 놈일 수도 있긴 하겠네.”
“무슨 말씀입니까?”
“이 물건 중에 강장제나 마약류가 좀 있군. 아마도 같은 파티의 전사들에게 먹이는 거였겠지.”
“그럼 더 강해지나요?”
흥미를 보이는 카일에게 마법사가 피식 웃었다.
“힘 좀 세지고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정도? 그래봤자 큰 폭은 아니야. 그리고 오랫동안 복용하면 부작용도 강하고…….”
‘마법사들이 만든 즉효성 스테로이드 같은 건가?’
카일의 예상이 얼추 맞았다.
그 마법사는 동료 파티원들의 몸이 망가지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꽤 무리한 약품을 투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법사는 물건을 꼼꼼하게 따져 보더니…….
“다 해서 20골드 정도면 되겠네.”
“어? 정말입니까?”
“다 싸구려야. 시약은 분해해서 원료만 뽑아서 써야 되서 손도 많이 가고. 이 이상은 못 쳐줘.”
“알겠습니다.”
카일은 놀란 표정을 빠르게 수습하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마법사 한 명이 가지고 있던 게 20골드였다니.’
사실 마법사가 돈을 많이 벌고 많이 쓰는 직업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카일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급 마법사 한 명의 주머니를 털었을 뿐인데 이 정도 금액이 나올 줄은 몰랐다.
“바로 정산해 주지.”
마법사는 카일에게 돈을 지불했고, 카일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돈을 받았다.
“그럼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그러든가 말든가.”
퉁명한 대답을 듣고 밖으로 나간 카일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탑의 위세가 대단한 건 알지만 장사 하면서까지 저렇게 콧대를 세워야 하나?”
그런 카일에게 검은 바람이 말했다.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마법사에게는 우호적이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은 경계하니까요.”
“마법사들의 우월주의 말이지. 나도 소문으로는 들었어.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마법사는 마나에 대한 재능이 없으면 평생을 노력해도 아무 성과를 거둘 수 없는 이들이다.
그래서일까?
마법사들은 마법사가 될 수 있는 재능을 두고 ‘마나의 축복을 받았다.’ 라고 표현한다.
이 말을 뒤집어서 해석하면 마법사 이외의 인물들은 마나의 축복을 받지 못한 존재라는 말이다.
즉, 마법사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고 있으며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들을 은근히 깔보는 경향이 있다.
‘마치 세계 4차 대전 시대의 초능력자들 같군.’
카일의 전생에서도 4차 대전 시대에는 초능력자들이 자신들이 선택받은 신인류라고 주장하며, 일반인들을 힘으로 찍어 누르고 착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것 때문에 카일은 철저하게 관리 받으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야 했지만 말이다.
‘잘나갈 때 겸손하지 않으면 훗날 X 되는 법이지.’
어쨌든, 이번 던전의 탐색은 카일에게 큰 성과를 남겼다.
마석과 전리품을 취급한 돈을 다 합치면 71골드 95실버.
단 한 번의 탐색으로는 꿈도 꾸기 힘든 돈을 손에 넣은 것이다.
평소보다 더 많은 수익을 손에 쥔 채 뿌듯해하는 그때, 검은 바람이 말했다.
“주인님. 기회입니다.”
“기회라니?”
“전력을 증강시키기 위해서 새로운 인물을 영입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검은 바람의 말에 카일은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제대로 된 전투 노예를 사기에는 부족한 금액 아닌가?”
던전에 노예를 데리고 들어가는 이들은 카일 말고도 꽤 있다.
그런 노예들을 전투 노예라고 하는데 보통 전투 노예의 가격은 수백 골드에서 수천 골드까지 한다고 한다.
지금 카일의 수중에 제법 많은 돈이 들어오긴 했지만 전투 노예를 구입 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물론 검은 바람도 그걸 알고는 있었다.
“전투 노예가 아니라도 그냥 평범한 노예를 구입하셔도 됩니다. 단련시키기에 따라서는 충분한 전력이 될 겁니다.”
“처음부터 단련시키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카일은 어차피 노예를 구입한다면 필요한 것은 즉시 전력이 될 수 있는 노예를 원했다.
“망가진 노예 중에 잘 찾아보면 저 같은 이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 주인님의 능력을 사용하신다면…….”
“아니, 그건 못해. 적어도 지금은 말이야.”
지금 카일의 능력으로 두 명의 초능력 코어를 동시에 유지시키는 것은 무리다.
검은 바람의 초능력 코어가 활성화되기 전에는 함부로 능력을 사용 할 수 없다.
‘잘못해서 코어가 굳게 된다면 초능력을 다시 각성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 해.’
그러니 카일은 노예 구입을 망설이는 것이다.
“지금 당장 새로운 노예를 구입하는 건 무리가 있어. 이 돈을 어떻게 쓸지는 좀 더 생각해 보자.”
“알겠습니다. 주인님의 뜻이 그렇다면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카일과 검은 바람은 숙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