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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12화 (12/215)

12화

무기를 바꾸고 나서 가장 먼저 달라졌다고 느낀 것은 거리감이었다.

이전의 숏 소드는 거의 붙어서 공격해야 했는데 지금은 적이 닿지도 않는 곳에서 공격이 가능했다. 게다가 공격력도 올라서 숏 소드보다 참격이 훨씬 더 깊게 들어갔다. 덕분에 카일은 전보다 훨씬 쉽게 오크를 상대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오크 두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 정도는 거뜬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취익, 취익.”

오크가 잔뜩 흥분해서 달려들었지만 카일은 침착하게 태도를 뻗어서 놈을 견제했다.

‘우선 바로 앞까지 태도를 뻗어서 적을 위협하고…….’

“취이이익!”

흥분한 오크가 카일의 태도를 쳐내기 위해서 무기를 크게 휘둘렀다.

그 모습에 카일이 빠르게 반응했다.

‘지금!’

카일은 가볍게 손목을 움직여 태도를 회수했다. 그러자 오크의 공격은 허무하게 허공만 갈랐고, 그로 인해 오크의 중심이 무너졌다.

카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묵직한 일격을 날렸다.

“하압!”

콰지직!

오크의 신체 중에 가장 두껍고 견고한 두개골이 일격에 파괴되었다.

스스륵 쓰러지는 오크를 보고 카일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좋았어.”

“훌륭하십니다. 주인님. 이제 오크 두 마리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군요.”

“무기가 좋아서 그래.”

“좋은 무기도 엄연한 실력입니다.”

“뭐, 그런가. 아무튼 이건 정말 마음에 들었어. 베는 맛이 좋아서 오크의 가죽이 전혀 질기게 느껴지지 않아.”

“그래도 머리를 공격하는 건 조심해 주십시오. 오크의 머리뼈에 잘못 걸리면 태도의 날이 상할 겁니다.”

“그래. 그러면 곤란하지.”

모처럼 거금을 투입해서 업그레이드 한 장비다. 최대한 조심하면서 오랫동안 사용하고 싶었다.

그때 검은 바람이 말했다.

“슬슬 6층을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뭐?”

카일은 좀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내 실력으로 6층을 가려면 오크 열 마리 정도는 상대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객관적으로 지금 카일의 실력으로는 오크 네 마리 정도가 한계였다.

본격적으로 모험가로 활동한 경력이 짧은 것을 생각하면 경이적인 성장 속도였지만 실력 자체는 아직 부족했다.

검은 바람은 그걸 알면서도 말했다.

“주인님의 성장을 더 빠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성장?”

“예. 제가 지켜본 결과 주인님은 단순한 수련보다 실전을 거치면서 성장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내가 그런가?”

“예. 물론 기초 수련을 게을리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무엇이든 기초가 튼튼해야 하지요.”

“하지만 내 성향 자체는 실전을 거치는 편이 맞다는 거지?”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검은 바람의 말에 카일은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위험성이 높은 건 아닌가?”

“지금보다 더 높은 건 사실입니다.”

“그럼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는 말지.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해야 할 필요는 없어.”

“주인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검은 바람은 순순히 카일의 뜻에 따랐다.

카일의 재능이 아깝기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검은 바람이 지켜야 하는 것은 카일에 대한 존중이었다.

“이제 슬슬 올라가자.”

“예. 주인님.”

사흘간 5층에서 탐험을 마친 카일과 검은 바람은 지상으로 올라갔다.

둘의 배낭에는 오크들을 처리하고 얻는 마석과 부산물이 가득했다.

이번에는 운 좋게 부산물로 멀쩡한 체인 소드를 얻을 수 있었다.

상태가 거의 새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도 어느 신출내기 모험가가 빼앗긴 것 같은데 이것 하나만 팔아도 4~5골드 정도는 나올 것 같았다.

이것 덕분에 당초 예정보다 하루 빠르게 위로 올라가기로 결정한 카일 이었다.

‘매각할 때가 기대되는군.’

그렇게 카일은 가벼운 마음으로 지상으로 올라갔다.

“음…….”

그러나 3층쯤에서 갑자기 검은 바람이 멈춰 섰다.

“무슨 일이야?”

“앞에 누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선행하는 모험가라면 기다리지.”

던전에서 탐색하다 보면 다른 모험가와 루트가 겹치는 건 흔한 일이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카일이었지만 이어지는 검은 바람의 말은 심상치 않았다.

“이쪽으로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

카일은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건가?”

“혹시 모르니 물러나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다.”

카일과 검은 바람은 멀리 돌아가는 루트로 길을 바꿔서 후퇴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갈림길을 거쳐서 이동하기를 한참 지난 후였다.

“주인님. 상대가 계속 따라오고 있습니다.”

“고의라는 거군.”

중간에 갈림길이 몇 번이고 있었는데 계속 따라온다는 말은 절대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뿌리칠 수 있겠나?”

“중간에 흔적을 숨기면서 이동했는데도 따라오는 것을 보면 전문적인 추적꾼이 있는 듯합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카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인간 사냥꾼.

던전의 모험가들이 사이에서 종종 있는 이들이다. 몬스터보다 더 짭짤한 대상인 인간을 대상으로 해서 영업을 하는 인물들 말이다. 그런 놈들에게 추적꾼까지 있다면…….

‘피할 수는 없겠군.’

카일은 결심을 굳혔다.

“싸우자.”

“명대로 따르겠습니다. 주인님.”

* * *

“빌, 제대로 추적하는 것 맞아?”

“하고 있어. 그런데 이놈들 이동 속도가 너무 빨라서 따라 잡기가 어려워.”

“우리를 알아챘다는 거야?”

“그럴지도.”

“쯧, 예민한 놈들이네.”

“어떻게 해? 포기할까?”

“그럴 수는 없지. 고작 두 놈이잖아? 밀어붙이자.”

“좋아. 그럼 계속 가자.”

카일과 검은 바람을 추적하고 있는 것은 5인조 파티였다. 전사 셋에 도적 하나 마법사 하나로 이뤄진 제법 균형 잡힌 파티였고 주 활동 무대는 5층이었다.

다만, 이들의 수익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고생하면서 오크를 잡아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다섯 명이서 나눠야 했기 때문이다.

카일의 경우 자신이 모든 수입을 가졌지만 이들은 공평하게 서로 나눠야 했다.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더 밑으로 내려가야 했지만 6층의 난이도는 이들도 제법 위험했기에 항상 쪼들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던전에서 다른 모험가 파티와 시비가 붙었다.

시비는 별것 아니었다.

던전 안에 있는 식수원에서 물을 뜨는 과정에서 다른 모험가와 마주쳤고 거기서 물을 뜨는 순서 때문에 시비가 붙었다.

문제는 별것 아닌 시비라도 던전 안에서는 피를 보는 사태로 흘러가기 쉽다는 것이다.

우발적으로 상대편의 피를 봤고 순간 양쪽 파티는 전투에 들어갔다.

결과는 5인조 파티의 승리였다.

상대가 세 명이었던 것에 비해서 머릿수가 두 명 더 많은 것이 유리했다.

그렇게 승리한 후 그들은 상대의 장비와 마석을 모두 챙겨서 팔았다. 상대도 5층까지 내려갈 정도의 모험가였기 때문에 장비의 매각 비용이 상당했다.

그때 이들은 직접 체험했다.

5층에서 며칠 동안 힘들게 탐색하면서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같은 모험가를 사냥하는 편이 몇 배는 남는 장사라는 것을 말이다.

사람은 한 번 편한 길을 맛보면 어려운 길로 돌아가기 어려운 법이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저질렀다. 별것 아닌 이유로 시비를 걸고 그로 인해서 우발적인 전투를 벌인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점점 그 빈도가 늘어났고 1년 정도 지났을 때 이들은 완전히 업종이 변질되었다.

몬스터가 아니라 같은 동종인 모험가를 사냥하는 인간 사냥꾼으로 말이다

그런 이들이 이번에 찍은 것이 카일과 검은 바람이었다.

“빌, 두 명뿐인 것 확실하지?”

“당연하지. 나 못 믿어?”

“아니야. 그냥 확인하는 거지.”

그동안의 경험 끝에 이들이 알게 된 것이 있다.

아주 수준이 높은 모험가가 아닌 이상 숫자가 많은 쪽이 이긴다는 것과 저층에서 적은 숫자로 다닌다는 것은 어차피 그저 그런 수준의 모험가라는 것.

진짜 일류 모험가가 깊은 곳을 목적으로 탐색 할 때는 모험가는 물론이고, 짐꾼의 숫자도 열 명이 넘어간다. 그러니 적은 숫자로 저층을 누비는 모험가는 별로 강하지 않다는 말이다.

빌이라는 도적은 함정 해체나 탐색보다는 사람의 족적과 흔적을 추적하는데 더 유능했다. 그는 검은 바람이 중간에 숨긴 흔적도 예리한 시선으로 찾아냈고, 상대가 두 명일 뿐이라는 것도 확신하고 있었다.

‘5 대 2면 압승이지.’

손쉬운 사냥감을 놓치기 싫은 빌은 더 속도를 냈다.

“잘못하면 놓치겠어. 지금부터 달리자.”

“알았어.”

그리고 다섯 명의 파티원들은 던전을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시선에 희미한 횃불의 흔적이 보였다.

“저기다.”

“잡았어.”

목표가 보이자 그들은 더욱더 속도를 내서 달렸다. 뒤에서 전사 두 명이 선행하던 도적을 앞질러서 먼저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거의 목표에 접근했을 무렵이었다.

“멈춰!”

빌이라는 도적이 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엇?”

“으아앗!?”

앞에서 달리던 전사 두 명이 그대로 쓰러져 버린 것이다.

그들이 쓰러진 이유는 발밑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로프 때문이었다.

간단하다 못해 유치한 함정이었지만 목표를 발견하고 흥분해서 달리던 두 명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앞의 그들이 쓰러진 순간…….

“하아압!”

카일과 검은 바람이 재빨리 뛰쳐나갔다.

* * *

“주인님 적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우리보다 숫자가 더 많을 겁니다.”

“자신이 있으니까 공격한다는 거지?‘

“분명 그럴 겁니다.”

‘어떻게 할까?’

카일은 검은 바람의 실력은 믿고 있었지만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목숨이 걸린 전투에서 승산은 조금이라도 더 높은 게 좋았다.

카일은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검은 바람. 로프 있지?”

“예. 가지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카일은 던전의 통로 중에 적절하게 좁은 곳을 골라서 로프를 발치에 묶었다.

저층의 던전은 자연 동굴 같은 형태를 튀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프는 종유석에 묶으면 됐다.

‘지구에서 이러면 학자들이 난리 나겠지?’

수천 년에서 수만 년에 걸쳐서 자연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한순간에 파괴하는 행위는 학자들이 경기를 일으킬 만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카일에게 중요한 건 자연보호가 아니라 자기 목숨이다.

“주인님 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함정에 적이 걸릴지는…….”

“조금 떨어진 앞에 횃불을 걸어서 우리가 있는 것처럼 꾸며라.”

카일의 말에 검은 바람이 탄성을 질렀다.

“과연, 적의 주의가 분산되겠군요.”

“분명 통할 거다.”

‘안 통해도 어쩔 수 없지만 말이야. 어차피 실패해도 본전이다.’

그런 생각으로 카일은 함정을 설치하고 그 주변에 매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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