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하아아……”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험가들의 모습을 본 카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숫자는 다섯 명.
남자 두 명에 여자 세 명의 구성이었다.
하고 있는 무장을 봐서는 전부 전사인 듯 검이나 창, 철퇴 등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다만, 장비에 비해서 실력은 별로 없는 모양인지 뒤에서 쫒아오는 한 무리의 구울에게서 헐레벌떡 도망치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검은 바람.”
“예. 주인님.”
“처리해라.”
“예. 알겠습니다.”
카일의 명령이 떨어지자 검은 바람은 바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헐레벌떡 도망치는 모험가들을 스치고 지나가서 바로 구울 무리에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오!”
얼마나 많은 숫자가 모였는지 족히 서른은 넘어 보이는 구울이 상대였지만 검은 바람의 앞에서는 그냥 썩은 내 나는 고깃덩어리일 뿐이었다.
콰직. 우지직. 촤아아악!
구울의 몸을 부수고 가르며 거침없이 파괴하는 검은 바람의 모습에 모험가들은 얼이 빠졌다.
“세상에…….”
“…괴물이다.”
이들은 처음에 열 마리 정도의 구울을 감당하지 못해서 시간을 끌다가 결국 구울의 숫자가 몇 배로 늘어나서 동료까지 한 명 죽자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쳐 온 상황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 야만족의 전사 한 명이 그 구울 무리를 말 그대로 쓸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막 송사리 취급을 받을 애송이 모험가들에게 있어서 투란의 전사 출신인 검은 바람은 상어나 다름없었다.
“전부 정리했습니다.”
검은 바람은 1분도 걸리지 않아서 구울을 다 정리했고 카일에게 정중하게 보고했다.
“수고했다.”
카일은 그런 검은 바람에게 치하를 하고 상대들을 바라봤다.
“리더가 누굽니까?”
그런 카일의 말에 한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아, 접니다. 필이라고 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기소개를 한 이는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나이의 젊은이였다.
‘나하고 동년배인가?’
뒤를 흘깃 보니 다른 이들도 모두 비슷비슷한 연령대로 보였다.
‘젊은 나이대의 모험가들이 뭉쳐서 파티 사냥을 하다가 저층에서는 수입이 나지 않아서 5층으로 내려가는 길인 모양이군.’
얼추 상황을 파악한 카일은 담담하게 말했다
“카일입니다.”
그리고 카일은 한쪽에 쓰러져 있는 구울 무리를 보면서 말했다
“저놈들에게서 나오는 마석은 우리가 다 가져도 될까요?”
“예, 예. 그게…….”
필이라는 젊은 모험가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고 뒤편에 있는 동료들의 눈치를 봤다.
‘카리스마 없구만.’
카일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안 됩니까?”
“아니, 아닙니다. 구해 주셨으니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시원하게 대답할 것이지.’
마석을 마냥 양보하자니 조금 아쉬웠던 모양이다.
카일은 검은 바람에게 시켜서 마석을 채취하게 했고, 그들에게 말했다.
“마석을 챙기는 대로 저희는 가겠습니다. 저희가 앞질러서 이동해도 괜찮겠습니까?”
“예. 괜찮습니다. 그런데 혹시…….”
“뭡니까?”
“혹시 두 분도 5층으로 내려가는 길이십니까?”
“그렇습니다만?”
카일은 어쩐지 다음에 나올 말이 예상 되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괜찮다면 저희도 함께 이동해도 될까요?”
“그게 안 된다는 건 굳이 대답해야 합니까?”
필이라는 신출내기가 한 말은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꽤 무례한 말이었다.
‘제가 당신에게 빌붙어도 될까요?’라는 말과 같았다.
카일의 말에 필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꼭 5층으로 내려가고 싶습니다. 부디 챙겨 주신다면 저희도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그는 이제 자존심도 뭐도 없이 그저 매달렸다.
카일은 그런 필과 뒤편에 있는 다른 모험가들을 보고 말했다.
“필요 없습니다.”
“예. 그러지 마시고 다시…….”
필이 끈덕지게 달라붙자 검은 바람이 어느새 다가와서 위압적으로 바라봤다.
“주인님께서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다. 못 알아먹겠나?”
“아니 그게…….”
“물러나라. 더 이상은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배제하겠다.”
검은 바람이 경고를 하자 필이라는 인물은 동료들을 챙기고 황급하게 물러났다.
“필 이대로 갈 거야?”
“어쩔 수 없잖아?”
“젠장, 오늘 안에 5층에 가보자며? 이게 뭐야!”
“나는 오늘 장비도 새로 샀다고?”
“어쩔 거야? 이러면 완전 적자란 말이야.”
“왜 나한테 그래?”
송사리들이 모여서 만든 파티는 팀워크도 별로인지 멀어지면서 자기들 끼리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검은 바람이 카일에게 말했다.
“주인님. 저들과 같이 행동하지 않으신 이유가 뭡니까?”
“일단 빈대들은 질색이야.”
카일은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게 다입니까?”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도 저 치들은 도움이 하나도 안 돼. 오히려 폐만 되지.”
카일은 좀 전에 저들을 흘깃 보면서 대부분의 장비가 사라져 있음을 발견했다.
무기와 갑옷 등의 장비와 횃불 몇 개가 남았을 뿐 식량과 식수통 등은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좀 전의 구울들에게서 도망치면서 잃어버린 것일 것이다. 즉…….
“저 놈들하고 같이 움직여 봤자 우리 식량만 빠르게 떨어질 뿐이야. 거기다 저 정도 구울에 애먹을 정도면 어차피 전력도 안 되잖아?”
“맞습니다. 잘 판단하셨습니다.”
검은 바람은 흐뭇한 표정으로 카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치 잘 가르친 제자를 바라보는 선생님과 같은 표정이었다.
“하나 덧붙이자면 설령 앞에서 주인님이 말씀하신 조건이 아니더라도 던전 안에서 모르는 인물과 같이 다녀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몬스터보다 더 위험하다. 맞지?”
“맞습니다. 선량한 얼굴과 친절한 말투로 다가와서 등을 찌르는 건 인간 이외에는 어떤 몬스터도 못하는 일이죠.”
“그래. 나도 알아.”
배신에 관해서라면 카일을 새롭게 강의를 들을 필요도 없었다.
‘전생에 세계 정부에게 크게 당해 봤으니 말이야.’
일행은 다시 출발했고 5층으로 내려가는 입구까지 최단거리로 이동했다.
“도착했군.”
드디어 5층에 도착한 카일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5층이라고 해도 밀폐된 미궁일 뿐이었고 결코 공기가 상쾌한 건 아니었지만 숨 쉬는 것 자체가 지옥 같던 4층에 비하면 상쾌한 같았다.
“좀 낫군.”
“많이 힘드셨던 모양입니다.”
“그랬지. 검은 바람 너는 괜찮나?”
“예. 괜찮습니다.”
“넌 비위도 강하군.”
“하하하. 주인님도 자주 다니시다 보면 익숙해지실 겁니다.”
“그러기 싫은데 말이지.”
투덜거리는 카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 그럼 움직이자. 여기 있다가 괜히 다른 모험가들과 만나는 건 사양하고 싶으니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카일과 검은 바람은 빠르게 움직였다.
* * *
“취이익. 취익. 취익.”
카일과 검은 바람이 오크를 처음 만난건 5층에 내려오고 나서 10분도 되지 않아서였다.
“운이 좋군요.”
“그래. 그렇군.”
검은 바람은 미소 지었고 카일은 살짝 긴장했다.
‘저게 오크란 말이지.’
오크는 고블린이나 코볼트와 달리 보통 성인보다 약간 큰 키와 확연하게 거대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 병사 둘 정도가 힘을 합쳐서 상대한다는 몬스터가 오크였다.
그리고 골치 아픈 것은 이 오크라는 놈들은 결코 혼자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게는 네다섯 마리부터, 많게는 수백, 수천 마리가 뭉쳐서 행동하기도 하는 게 오크다. 인간만큼은 아니라도 제법 지능이 있어서 무기를 다루는 것도 꽤 능숙하다.
지금 카일과 검은 바람의 앞에 나타난 오크는 일곱. 카일 혼자였다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다. 하지만 지금 그의 곁에는 뛰어난 실력자가 있었다.
“일단 제가 정리를 하겠습니다.”
검은 바람은 태연한 얼굴로 앞에 나섰다.
“취익. 취이익.”
“취이익.”
오크들은 그런 검은 바람에게 흉포하게 콧김을 뿜으며 달려들었다.
‘어디 한번 볼까?’
카일은 내심 여기서 검은 바람의 실력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동안 저층의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보인 검은 바람의 전투는 압도적이었지만 실력이라고 할 만한 부분은 없었다.
그냥 빠르게 롱 소드를 휘둘러서 베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거기다 가끔은 귀찮은지 무기도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적을 압살해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오크라면 일곱 마리라면 제법 전투다운 전투가 되지 않을까?’
“흡!”
촤아아악!
“쿠에에엑!”
“쿠이이익!”
하지만 그 결과는 별 다를 바 없었다.
그냥 고블린들에 비하면 오크들이 조금 더 시끄럽게 비명을 지르며 죽어간다?
딱 그 정도 차이 뿐이었다.
한 놈도 검은 바람의 일격을 받아내는 놈들이 없었고, 검은 바람은 냉정하게 오크들을 처리해갔다.
지근거리에 들어오는 놈들을 그저 단순하게 공격해서 베어낼 뿐.
그런 간단한 전투방식으로도 충분했다.
“조금은 손을 봐야겠군.”
여섯 마리를 처리한 검은 바람은 남은 한 마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바로 마지막 남은 오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콰직.
“쿠에에엑!”
검은 바람은 발차기로 오크의 무릎을 찍어 내렸다.
“뀌이익… 꾸웨에에엑!”
놈은 말 그대로 돼지 멱을 따는 듯한 비명을 질렀지만, 그 와중에도 손에 쥐고 있는 손도끼를 휘두르며 반항했다. 검은 바람은 그 공격을 유유히 피하면서 카일에게 말했다.
“주인님. 우선 이 녀석을 처리해 보십시오.”
“내가?”
“예. 일단 주인님이 오크의 질긴 가죽을 뚫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검은 바람의 말은 그럴 듯 했다.
“좋았어.”
카일은 무기를 들고 발작적으로 손도끼를 휘두르고 있는 오크에게 다가갔다.
“쿠웨에엑! 퀴이이익!”
그 놈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결사적으로 카일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인간을 향한 몬스터들의 적대심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고 하더니…….’
놈이 보이는 투지는 투쟁심보다는 생리적인 본능 같아 보였다.
카일은 침착하게 놈에게 다가가서 일단 휘두르는 손도끼를 한 번 받아 봤다.
카아앙!
두꺼운 나무에 철판을 두른 라운드 실드 위로 오크의 손도끼가 떨어졌다.
‘음, 이 정도인가?’
팔에 충격이 조금 오기는 했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놈이 다리를 다쳐서 힘이 반감되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말이다.
‘좋아. 그럼 내 차례다.’
카일은 침착하게 놈의 손도끼를 피하면서 자기 숏 소드로 오크의 팔을 베었다.
촤악!
검은 바람은 일격에 오크의 몸뚱이를 절단했다. 하지만 카일의 일격은 오크의 가죽을 약간 베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쿠이익!”
놈은 피를 보고 더 흥분해서 달려들었다.
“쯧.”
카일은 못 마땅하게 혀를 찼다.
오크의 가죽은 무두질을 한 후에 갑옷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질긴 가죽이긴 하다.
실제로 지금 카일이 입고 있는 가죽 갑옷도 오크 가죽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공격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은 기분이 나빴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
카일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초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냈다.
뿌득. 뿌드득.
카일의 몸에 근육이 꿈틀 거리면서 전신의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호오… 저건? 주인님은 유저가 아닌데도 저런 능력을 사용하실 수 있는 건가?’
검은 바람은 카일의 변화를 보고 살짝 흥미를 보였다.
지금 카일이 사용한 것은 초능력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이고 흔한 능력.
신체강화 능력이었다.
염동계 능력자들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 능력이며 지금 카일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전투 능력이다.
카일의 전생에는 신체강화 능력으로 최강의 반열까지 오른 괴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카일의 수준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저 신체 능력 전체를 약간 올려주는 것 정도가 한계였다.
“하압!”
최대치로 힘을 끌어올린 카일은 다시 한번 숏 소드를 내리쳤다.
콰지직!
“쿠웨에엑!”
이번 일격은 오크의 가죽을 뚫고 놈의 뼈까지 파고들어서 반토막을 내버렸다.
오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고 그런 놈에게 카일의 공격이 더해졌다.
“우오오오오!”
제자이다 보니 가르친 스승을 닮는다는 걸까?
카일은 마치 검은 바람처럼 소리 지르면서 오크를 베고 또 베었다.
퍼어억!
“쿠웨에에엑!”
무수한 공격 중에 하나가 오크의 목을 반 이상 파고들었다.
결정타였다.
오크는 몸을 부르르 떨다가 인내 축 늘어졌고 카일은 피 묻은 얼굴을 닦으며 검을 회수했다.
“후우우우…….”
“수고하셨습니다. 주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