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고블린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검은 바람의 주먹에 맞고 날아갔고 다른 한 마리는 검은 바람이 머리를 손으로 잡더니 그대로 벽에 처박아서 달걀처럼 으깨버렸다.
그렇게 살벌한 모습을 한 검은 바람이 카일에게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주인님.”
“그, 그래.”
‘좀 질리기는 했지만 말이야.’
검은 바람이 투란의 전사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이제야 실감이 났다.
‘아무리 고블린이라고 해도 몬스터인데 그걸 벌레 으깨듯이…….’
카일은 너무 살벌한 광경에 살짝 위축되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든든했다.
이 강한 남자가 절대적인 자기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바람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주인님. 전투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강 알겠습니다.”
“그래. 그런가?”
“예. 그냥 없다고 보면 되는군요.”
“…….”
사실이긴 한데 살짝 기분이 나쁜 카일이었다.
검은 바람은 그런 카일에게 아랑곳 하지 않고 말했다.
“고블린의 단단한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는 휘두르기나 한손 찌르기로 동체를 관통하는 일격을 보면 힘은 대단하신 편입니다. 하지만 전투에 대한 기술과 경험이 너무 없으시군요. 고작 고블린 다섯 마리를 상대로 제가 나서야 할지는 몰랐습니다.”
“한심한 주인이라서 미안하군.”
투덜거리는 카일의 말에 검은 바람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약자가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냉정하게 자신의 위치와 부족함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약함을 부정하는 자는 결코 나약함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가?”
“예. 그리고 누구나 처음에는 초보이고 약자입니다.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죠.”
“뭐,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긴 하지.”
“주인님의 실력은 대강 알겠습니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오늘은 1층을 좀 더 돌다가 돌아가도록 하죠.”
“그래. 알았다.”
그렇게 카일과 검은 바람은 네 시간을 던전의 최상층인 1층에 움직였고, 그 동안 다섯 번의 고블린과의 전투를 벌였다.
그렇게 다섯 번의 전투를 벌이는 동안 마석은 딱 두 개를 챙겼다. 그것도 갓난아기의 손톱만큼 작은 것으로 말이다.
“모험가는 벌이가 좋은 직업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층에서 고블린만 잡아서는 무리죠.”
“그런가?”
“예. 고블린 사냥으로 먹고 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열 마리를 잡아야 한 마리가 마석을 줄까 말까한 놈들이니 이걸로는 무리죠. 사실 장비의 수선료가 더 나올 겁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몇 층까지 내려가야 모험가다운 수입을 올릴 수 있을까?”
“그렇군요. 최소한…….”
검은 바람은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최소한 5층까지 내려가서 오크들을 상대로 싸우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수입이 나올 겁니다.”
“5층이라……. 검은 바람 예전에 네가 전투 노예로 있던 파티는 몇 층까지 내려갔었지?”
“여기와는 다른 던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최고 기록은 지하 15층이었습니다.”
“지하 15층? 거기서는 뭐가 나오지?”
“리빙 아머와 레이스가 나오더군요.”
“그거 언데드 중에서는 최상급 몬스터 아닌가?”
“그렇죠. 그리고 살아 있는 몬스터 중에는 오우거도 나왔습니다.”
“오우거가 나왔다고?”
“예. 죽을 뻔 했었죠.”
오우거는 대형 몬스터 중에서도 재앙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였다.
익스퍼트 최상급의 기사와 대등하게 싸우는 괴물인 것이다.
어지간한 중소 영지의 귀족들은 자력으로 토벌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상급 귀족이나 국가에 돈을 주고 토벌 의뢰를 해야 했다.
“너 생각보다 대단한 파티에 있었군.”
“예. 지금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마법사와 신관까지 포함되어 있는 파티였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던 검은 바람은 갑자기 어깨를 펴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의 파티에서도 전사 중에 저보다 강한 자는 없었습니다.”
“호오… 그런가?”
“예. 저와 함께라면 주인님도 지금 당장 5층 정도는 내려가실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다만 뭐지?”
“지금 이 상태로 내려가기에는 아직 많은 준비가 부족한 듯합니다. 적어도 주인님이 5층에서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나서 내려가기를 권합니다.”
“그렇군.”
카일은 조금 아쉬웠지만 여기서는 검은 바람의 말을 따르는 게 맞았다.
“알았다. 그럼 앞으로 나의 경호뿐만 아니라 단련에도 많은 도움을 바란다.”
“예. 맡겨 주십시오.”
그렇게 앞으로의 방침을 정한 카일과 검은 바람은 던전을 나왔다.
던전을 나온 카일은 보관 중이던 마석을 길드 직원에게 제출했다.
“최하급 둘이군.”
“예. 그렇습니다.”
던전 직원은 카일에게 2실버를 주었다.
‘최하급 마석은 1실버 밖에 안 하는 거군.’
예상은 했지만 너무 짰다.
이걸로는 카일과 검은 바람이 저렴한 식사 한 끼 먹으면 딱 떨어질 정도였다.
‘뭐, 당분간은 어쩔 수 없지.’
지금 당장은 눈앞의 푼돈보다는 강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는 카일이었다.
* * *
카일은 하루를 규칙적으로 계획했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면 검은 바람에게 기초적인 검술 단련을 받았다.
“준비 자세!”
“합!”
“내려치기 300회 시작!”
“하나! 둘! 셋! 넷…….”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여덟 시까지 이어지는 단련 시간 동안 검은 바람은 용서 없는 호랑이 교관이 되어서 지도했고 카일도 거기에 순순히 따랐다.
가르침을 받는 입장에서 주인과 노예라는 관계는 방해가 될 뿐이었다.
그렇게 아침 단련이 끝나면 여관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식후에는 잠시 휴식을 가진다.
검은 바람은 카일에게 식사 후에도 바로 훈련을 더 하는 게 좋다고 했지만 이 부분에서 카일은 단호했다.
“안 돼. 충분한 휴식 없는 트레이닝은 그냥 몸을 혹사시킬 뿐이다.”
“하지만 저희 부족의 전사들은 모두 그렇게 해서 강해졌습니다.”
“그런 식으로 훈련하다 종종 못 버티고 다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도 나오지 않던가?”
“가끔 나약해 빠진 놈들도 있는 법이죠. 하지만 진정한 강자는 그런 놈들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
‘아니 그건 그냥 미친 듯이 가혹하게 단련시켜서 버틸 수 있는 인자강들만 남고 평범한 일반인들은 모두 낙오한다는 말이잖아?’
왜 투란의 전사들이 모두 강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투란의 전사들이 강한 게 아니라 강한 놈들만 남아서 투란의 전사라고 불렀던 것이다.
물론 카일은 그런 무식한 훈련법에 동참할 생각은 없었다.
‘그딴 식으로 구르다간 몸 망가지기 딱 좋지.’
과학적인 이론에 기초하면 신체를 효과적으로 단련하기 위해서는 트레이닝 못지않게 식사와 휴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이 세계에서 그 이론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건 카일뿐이었고 검은 바람에게는 알려줘도 전혀 이해할 것 같지가 않았다.
“이건 명령이다. 오전의 휴식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알겠나?”
“예. 명령이시라면 따르겠습니다.”
결국 주종관계를 이용해서 밀어 붙였다.
검은 바람도 거기에는 순순히 따랐다.
그렇게 오전 휴식이 끝난 후.
카일과 검은 바람은 던전에 들어갔다.
하루하루 단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던전에 들어가서 실전 감각을 키우는 것도 중요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경험입니다. 아무리 훈련에서 잘 따라오는 전사라고 해도 실전의 경험이 적으면 죽을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
이 부분에서는 둘의 의견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검은 바람의 경우 던전의 저층에서 경험을 쌓을 필요가 없었지만 카일은 달랐다.
눈만 마주치면 미친 듯이 발광하며 달려드는 고블린은 카일에게 좋은 경험치가 되어 주었다.
거기다 가끔씩은 마석도 남겨 주었고 말이다.
수익 측면에서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완전 무보수인 것보다는 나았다.
던전을 나오면 마석을 매각하고 여관으로 돌아와서 식사를 했다.
그 후, 하루의 가장 중요한 일과를 했다.
“긴장하지 말고 전신에 힘을 빼라.”
“예. 주인님.”
대답은 잘 하지만 검은 바람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카일은…….
“후우우우…….”
검은 바람의 이마에 손을 대더니 그곳으로 자신의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검은 바람의 안에 있는 초능력 코어를 살살 자극하기 시작했다.
“음…….”
검은 바람은 몹시 긴장했다.
카일의 설명에 의하면 이것은 자신의 안에 잠들어 있는 새로운 힘을 깨우기 위한 과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검은 바람은 첫 날 각성 의식 때 카일의 손에 의해서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꼈다.
전사로 살면서 당했던 수많은 고통과 노예로 살면서 당했던 수많은 채찍질들……. 그 전부를 합한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각성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으니 검은 바람으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다 끝났다.”
카일이 검은 바람의 이마에서 손을 때자 그제야 검은 바람의 긴장도 풀렸다.
“아직은 좀 시간이 필요하겠군.”
카일의 말에 검은 바람이 말했다.
“정말 이렇게 하면 언젠가 저에게 새로운 힘이 생긴다는 말입니까?”
“그래. 틀림없다.”
“주인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워낙에 터무니… 아니 대단한 일이라서 그만…….”
초능력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이 세계의 사람에게는 당연한 말이었다.
카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적어도 각성 때와 같은 고통은 이제 없을 것이다. 아마도 말이지.”
“아마도 라면 혹시 나중에는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아주 가끔은 2차 각성이라는 게 있기는 한데. 신경 쓰지 마라. 그건 굉장히 희귀한 경우라서 좀처럼 없다. 설마 네가 그 경우는 아니겠지.”
“예. 아닐 겁니다. 아니고말고요.”
검은 바람은 절대 아니어야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럴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
그렇게 초능력의 단련까지 더하고 나면 이제 하루의 일과가 끝난다.
이게 최근 정해진 카일의 일과였다.
* * *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카일은 모아둔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꾸준하게 던전 활동과 단련에 공을 들였다.
그 보람이 있어서 이제는 저층의 고블린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최근에는 2층으로 내려가서 흡고블린들과 상대를 하고 있었다.
일반 고블린이 인간으로 치면 초등학생 정도의 체격을 지니고 있다면 흡고블린은 중학생 정도의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힘도 더 강하고, 결정적으로 고블린에 비하면 흡고블린은 머리가 꽤 좋았다. 적을 발견하면 괴성을 질러서 근처의 동료들을 불러서 다구리를 칠 정도의 지능이 있었다.
물론 그렇게 불러 봐야 검은 바람이 있는 카일의 파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한 달 정도 훈련받은 것뿐이었지만 카일은 흡고블린 두세 마리 정도는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
“대단하십니다. 주인님. 상당히 강해지셨군요.”
카일이 흡고블린 두 마리를 혼자서 처리한 것을 보고 검은 바람이 박수를 치며 칭찬했다.
“뭐, 그렇긴 하지. 그렇긴 한데…….”
카일은 뭔가 미묘한 시선으로 검은 바람을 바라봤다. 그리고 검은 바람의 발치에는 흡고블린 열 마리가 모두 처참하게 망가진 시체로 쓰러져 있었다.
“너한테 들으니까 뭔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단 말이야.”
“하하하. 저야 평생을 전사로 살았으니까요.”
검은 바람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서 발치에 있는 흡고블린의 손에서 녹슨 철검 하나를 주웠다.
“오늘은 부수입도 있군요. 2층에서 이 정도면 흔치 않은 행운이죠.”
“그런가?”
“예. 아마 이 흡고블린이 모험가를 죽이고 빼앗은 무기일 겁니다.”
저층의 몬스터는 무기를 사용할 줄 알지만 가지고 있는 녀석은 적다.
대부분은 맨몸이고 기껏해야 나무로 만든 몽둥이나 돌덩어리를 던지는 정도가 고작이다.
다만 가끔은 지금처럼 철제 무기를 가지고 있는 놈들이 있는데 이 경우는 사망한 모험가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당연히 이것을 다시 인간이 가져가서 대장간에 가져다 팔면 짭짤한 부수입이 되는 것이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무기로는 가치가 없지만 일단 철 덩어리니까 원재료 가격은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좋군. 그럼 슬슬 돌아가자.”
“예. 주인님.”
카일과 검은 바람은 그날 주운 철검을 대장간에 가져가서 흥정 끝에 60실버를 받았다.
오랜만에 짭짤한 수입을 올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