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카일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모험가 길드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보이는 인물에게 말했다.
“모험가가 되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러자 말끔한 차림을 하고 있는 직원이 친절하고 사무적으로 응대했다.
“여기 번호표를 뽑고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뭐지? 생각한 것 하고 조금 다른데?’
그 후에도 카일이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길드 직원이 와서 말했다.
“신규 등록은 3번 창구입니다.”
창구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길드의 직원으로 보이는 여성은 카일에게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글을 읽고 쓰실 수 있나요?”
“예. 가능합니다.”
“그럼 여기 서식에 체크된 부분을 작성해 주세요. 신규 등록비는 30실버, 노예는 이미 등록이 되어 있으니 재등록비 10실버 입니다.”
서류를 작성하고 종이를 내밀자 길드 직원은 빠르게 수리해 주었다.
직원은 종이에 도장을 찍고 이중으로 나눈 다음 안쪽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드의 모험가 등록증을 가지고 와서 내밀었다.
“다 됐습니다. 앞으로 좋은 활동을 기대합니다.”
그렇게 해서 모험가 길드의 등록은 아주 순조롭게 그리고 허무하게 끝이 났다.
모험가 길드를 나오고 나서 카일은 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 이런 건가? 생각보다 굉장히 체계적이고 사무적인데?”
마치 은행에 들어가서 계좌 하나 만들고 온 듯한 느낌이었다.
거친 상남자들의 텃세를 예상하고 들어갔던 카일로서는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런 카일에게 검은 바람이 말했다.
“모험가 길드에는 하루에도 수백 명씩, 많게는 천 명이 넘게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 많은 인원을 대응하기 위해서 저렇게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죠.”
“과연, 생각보다 큰 조직이었군.”
저렇게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많은 돈과 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모험가 길드라고 해서 얼핏 거친 인간들의 모임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 운영진은 꽤 인텔리한 이들인 모양이다.
‘하긴, 어디를 가도 조직이라는 게 멀쩡하게 돌아가려면 머리 좋은 사람들은 필수지.’
무장을 갖추고 모험가 길드에 등록도 했다.
덕분에 아직 시간도 점심시간을 약간 지난 정도였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된 일정에 카일은 오늘 당장 던전에 들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검은 바람. 오늘 당장 던전으로 가자.”
“지금 바로 말씀이십니까?”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닙니다. 그렇다면 도구점에 들려서 잠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도록 하죠.
그리고 카일은 검은 바람의 말대로 도구점에 들여서 미궁 탐사에 필요한 도구 몇 개를 구입한 후 바로 미궁으로 향했다.
* * *
“꽤 엄중하군.”
카일이 미궁의 입구를 보고 중얼거렸다.
모험가 길드가 은행을 연상하게 했다면, 미궁의 입구는 철저하게 통제를 하고 있는 군사 시설을 떠올리게 했다.
미궁의 입구를 봉인하는 몇 겹으로 된 바리케이트와 거대한 철문이 보였다. 그 개폐를 담당하는 것이 모험가 길드의 길드원 같아 보였다.
건장한 체격에 전원이 중무장을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카일이 막연하게 생각하던 모험가의 모습 그대로였다.
카일은 검은 바람과 줄을 서서 기다렸고 금방 차례가 되었다.
“다음.”
“예.”
카일이 앞으로 들어가며 모험가 길드증을 제시했다. 담당 직원은 그걸 꼼꼼하게 살펴보더니 카일에게 물었다.
“신규 등록이군. 미궁은 처음인가?”
“예. 그렇습니다.”
“옆의 노예는?”
“검은 바람은 미궁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군.”
그리고 그는 사무적으로 카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궁에서 얻어내는 마석의 권리는 모험가 길드에 우선적으로 있으며 그 매입가는 일괄 시세로 정해져 있다. 알겠나?”
“예. 알고 있습니다.”
“미궁 안에서 얻어내는 마석은 모두 나올 때 판매해야 하고 혹시 마석을 빼돌릴 경우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알겠습니다.”
“좋다. 그 밖의 자세한 규칙은 옆의 노예가 이미 경험이 있다니 알고 있을 것이다. 그에게 듣도록. 두 명 통과.”
“예.”
그리고 카일과 검은 바람이 미궁 안으로 들어갔다.
미궁에 들어간 검은 바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간단했다.
“횃불을 붙이겠습니다.”
불을 붙이는 것이다.
미궁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깊은 동굴이었고, 이 어둠은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그래서 빛을 밝히기 위한 도구가 필수적이었다.
능력이 좋은 모험가들의 경우 마법이나 정령술을 이용해서 불을 밝히기도 하지만 카일과 검은 바람의 경우 그런 능력은 없다.
그러니 횃불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 바람이 횃불 두 개를 만들고 카일과 검은 바람이 한 개씩 들었다.
카일은 횃불을 들고 가면서 말했다.
“무기를 들고 횃불까지 드니 꽤 불편한 걸? 굳이 두 개나 들어야 하나?”
“예. 만에 하나 전투 중에 하나가 꺼지거나 없어진다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어둠에 패닉이 올 수 있습니다.”
“음, 여분이 필수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실제로 초보 모험가들의 경우 횃불이 거추장스럽다고 하나만 들고 다니다가 전투 중에 갑자기 꺼져서 몬스터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
건장한 체격의 모험가도 완전한 어둠 속에서는 고블린 한 마리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허용할 수 있었다.
“발밑을 조심하십시오. 주인님.”
검은 바람은 직접 앞장서서 미궁을 걸어갔다.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있는 벽과 바닥을 걷고 있으면 이따금씩은 멀리서 싸우는 듯한 소리와 몬스터의 비명이 들려왔다.
‘과연, 이게 미궁이라는 거지.’
카일은 일단 이 공기에 적응하기 위해서 길게 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동을 하자.
“나왔습니다.”
검은 바람의 앞에 첫 몬스터가 등장했다.
열 살 정도 되는 어린애의 체구에 짙은 초록색을 띄고 있는 피부, 그리고 흉측한 외모에 흉포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노란 눈빛.
“고블린이군.”
“예. 맞습니다.”
카일이라고 고블린을 보는 게 처음은 아니다.
고블린은 이 세계에서 가장 흔한 몬스터 중에 하나였고 루트비안 자작령에서도 가끔 나오고는 했다.
고블린이 농민들의 가축을 습격한다는 애기는 해마다 몇 번씩 들리는 얘기였다.
다만, 미궁 속에서 만나는 고블린은 확실히 밖에서 보던 것과 달랐다.
“키르르르르륵.”
“키륵키륵. 키륵!”
‘인간을 전혀 겁내지 않는군.’
보통 바깥세상의 고블린들은 인간을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다수의 고블린이 모여서 소수의 인간을 포위한다면 공격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같은 수, 혹은 조금 많은 수 정도로는 인간을 두려워하고 도망친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인간이 고블린보다 더 강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체격도 더 크고 무기도 더 잘 사용하고 무엇보다 더 영리하다.
딱히 전투를 배우지 않아도 건장한 젊은이라면 몽둥이 하나만 들고 서너 마리 정도는 거뜬하게 쫓아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미궁에서 만난 고블린들을 달랐다.
고작 세 마리 주제에 둘이나 있는 카일과 검은 바람을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크에에에엑!”
“케에에엑! 케에에엑!”
기분 나쁜 괴성을 지르면서 검은 바람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카일은 순간 움찔했다.
야생의 살기를 실제 마주한 것이 처음이라서 위축된 것이다. 하지만…….
“하찮은 것들.”
검은 바람은 오히려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포식자가 사냥감을, 아니 사냥감이라고 칭할 자격도 없는 노리개를 보는 듯한 미소였다.
후우우웅!
절단음 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은 바람의 롱 소드가 한 번 휘둘러졌을 뿐이다.
“…….”
“…….”
그 결과 고블린들은 단말마의 비명도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반토막 나버렸다.
‘세상에…….’
카일은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고블린이 아무리 약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몬스터다.
단 일격에 세 마리를 동시에 썰어버리는 검은 바람의 일격에는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검은 바람은 카일을 돌아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워낙 오랜만의 전투라서 그만…….”
검은 바람은 실수를 한 대형견 같은 모습으로 사과를 했다.
“응?”
오히려 카일이 반문하자 검은 바람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주인님의 몫을 남겨 드리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 그래? 단지 그거?”
그제야 카일은 왜 검은 바람이 사과를 하는지 알았다.
거의 인생이 나락으로 치달았다가 기적같이 현역 전사로 북귀한 검은 바람은 그 기쁨에 벅차서 그만 혼자서 적을 다 해치워 버린 것이다.
검은 바람의 기준에서는 그게 잘못처럼 느껴진 모양이다.
‘무슨 전투 민족이냐?’
“미안해할 필요 없다. 필요하면 마음껏 싸워도 돼.”
카일의 말에 검은 바람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안 됩니다. 주인님의 실력을 파악하지 않으면 앞으로 파티로서 맞춰 가기 힘듭니다.”
“아… 그건 그렇군.”
“그럼 다음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주인님이 앞장서서 싸우시고 제가 뒤에서 보조를 하겠습니다.”
“알았다. 그렇게 하지.”
검은 바람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사실 카일도 자신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신체능력 자체는 초능력으로 강화를 하면 상당한 수준까지 올릴 수 있다.
‘아마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중량을 들면 3대 600정도는 치겠지.’
지금 카일의 몸이 다 자라지 않고 부실한 영양 관리로 꽤 마른 체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파워이긴 했다.
단,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그냥 힘이 꽤 좋은 성인 남자일 뿐. 기술적인 면에서는 제로나 마찬가지였다.
과연 이 상태로 어느 정도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카일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이동을 하자 다시 고블린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다섯 마리.
“키르르르르.”
“케륵, 케륵케륵.”
놈들은 이쪽을 발견하더니 광분한 맹수처럼 달려왔다.
“주인님. 그럼 부탁드립니다.”
검은 바람은 슬쩍 카일의 뒤로 물러나며 후위를 자처했다.
‘이런, 진짜냐?’
아까보다 더 많은 숫자의 고블린을 보고 카일은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뒤로 뺄 상황도 아니었기에 그냥 해보기로 했다.
“와라!”
호기롭게 소리를 지른 카일은 가장 선두에서 달려오는 고블린 놈의 정수리를 숏 소드로 내리쳤다.
콰지직.
“키에에엑!”
카일의 일격은 고블린의 머리를 반 정도 파고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달려오는 놈에게 검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이런…….’
고블린의 머리에 박힌 검이 순간적으로 빠지지 않아서 동작이 늦었다.
고블린은 뛰어 올라서 흉악한 이빨로 카일의 안면을 물려고 했다.
“방패!”
뒤에서 들려오는 검은 바람의 말에 카일은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고 있는 손을 휘둘렀다.
쩌어어엉
“키에에에엑!”
안면의 뼈가 다 찌그러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뛰어 올랐던 고블린은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검은 바람이 뒤에서 말했다.
“고블린의 머리를 발로 차면서 검을 뽑으십시오.”
“이렇게?”
카일은 검은 바람이 시키는 대로 고블린의 머리를 발로 차면서 검을 뽑았다.
그리고 뽑힌 검을 휘둘러서 남은 고블린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견제했다.
검은 바람은 뒤에서 팔짱을 낀 상태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짜 안 도와줄 거냐?’
카일은 혹시 검은 바람이 모종의 음모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눈앞의 고블린이다.
아직 셋이나 남은 놈들은 카일에게 여전히 흉악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키에에에엑.”
“키륵키륵.”
그런 놈들의 모습에 카일은 이를 악물고 달려 들어갔다.
“이놈들!”
숏 소드를 과감하게 휘두르며 전진하는 카일에게 고블린들은 일순간 뒤로 물러나는 듯 했다.
하지만 정 중앙에 있던 놈은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괴성을 지르며 카일에게 달려들었다.
“어림없다!”
푸우욱!
카일은 달려드는 놈의 심장에 숏 소드를 찔러 넣었다. 그러나 심장이 찔린 놈은 그 상태로 손을 뻗어서 카일의 양손을 잡아 버렸다.
“키이이이…….”
순간 카일을 무기를 봉쇄당했고 좌우에 있던 다른 놈들은 그 틈을 노리고 카일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양쪽에서 동시에 달려드는 고블린 두 마리.
이 위급한 상황에서 카일은 당황했다.
조금 전처럼 방패로 쳐내야 하나?
하지만 둘을 한번에 쳐낼 수는 없다. 그럼 나머지 한쪽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고블린의 이빨은 카일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쩌어엉! 우지직!
무언가를 후려치는 소리와 함께 으깨버리는 소리가 시간차로 들렸다.
“…검은 바람?”
그것은 카일의 뒤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던 검은 바람이 고블린 두 마리를 순식간에 처리한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