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4화 (4/215)

4화

카일의 질문에 검은 바람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라서…….”

“그럼 지금 생각해 봐라.”

검은 바람은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노예 해방 말이군. 모든 노예들의 꿈이지.”

노예가 해방되는 경우는 천에 하나, 아니 만에 하나 정도의 확률이라고 할 정도로 극악하다.

왜냐하면 주인의 입장에서는 노예를 풀어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종속 마법으로 죽을 때까지 충성하는 노예가 있는데 그걸 중간에 풀어줄 이유가 없었다.

아주 가끔씩 자유를 얻는 노예들은 주인을 잘 만난 경우였다.

‘좋아. 어차피 노예 계약 때문에 반항이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수동적인 것과 능동적인 것은 다르지.’

카일은 그렇게 생각하며 검은 바람에게 말했다..

“앞으로 10년만 나를 위해서 일해 준다면 너를 고향으로 보내 주겠다.”

“10년이라… 꿈같은 일이군요.”

검은 바람은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 그는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노인이다.

그런데 여기서 10년이나 더 일하라니?

희망은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어야 빛이 나는 법인데 이건 현실과 너무나 먼 얘기였다.

카일은 그런 검은 바람에게 말했다.

“너무 깊게 생각할 것 없다. 어차피 네가 손해 볼 것도 없는데 뭘 망설이지?”

“…….”

생각해 보니 그건 그랬다.

카일은 검은 바람에게 거듭 말했다.

“앞으로 10년. 너를 내 수족으로 부리겠다. 그 후에는 자유까지는 몰라도 너를 고향으로 가게 해주겠다. 이건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카일이 진지하게 검은 바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검은 바람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의 말대로 제가 손해 볼 것은 없군요.”

“좋아. 그렇다면 서로 약속한 거다.”

“예. 주인님.”

“그럼 우선 그 몸부터 고쳐야겠군.”

“예. 무슨 말씀…….”

“미리 말해 두겠는데 고통스러울 거다.”

카일은 그렇게 말한 후 검은 바람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좋아. 오랜만이지만 할 수 있어.’

카일은 자신의 초능력 염파를 검은 바람의 뇌 속으로 슬금슬금 침투시켰다. 그런 뒤 짧게 읊조렸다.

“각성.”

검은 바람을 초능력자로 각성시켰다.

“흑… 으… 으으으……. 끄아악!”

검은 바람은 갑자기 닥쳐오는 고통에 눈을 뒤집고 쓰러져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쓰러진 검은 바람의 몸이 이리저리 비틀리기 시작했다.

카일은 그 끔찍한 광경을 익숙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군.’

일반인을 초능력자로 만드는 각성.

이것은 전생에서도 카일밖에 사용 할 수 없는 능력이었지만 문제는 각성의 과정이 상당히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다수의 초능력자를 양성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고문의 대용으로 사용해도 괜찮을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고통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 과정이 끝나면 두 가지 장점이 있다.

하나는 초능력을 각성할 수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신체를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내일 하는 노인들도 이 각성 과정을 거치고 나면 수십 년 정도 젊어졌고, 불치병에 걸린 사람도 몸이 싹 나았다.

그래서 개중에는 수명 연장을 위해서 카일에게 이 능력을 받으려는 이들도 있었다.

비록 끔찍한 고통이 뒤따랐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 * *

30분 후.

“크… 크으으윽…….”

검은 바람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이 고통의 순간이 끝나자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뿌드드득.

바로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준 카일을 향한 증오심이었다.

“주…인님. 저에게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어차피 종속의 계약 때문에 공격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검은 바람의 시선에는 피 맛을 본 맹수와 같은 흉포함이 있었다.

카일은 그 시선을 담담하게 받으면서 말했다.

“무슨 짓을 했는지는 네 몸을 확인하면 알겠지?”

“제 몸이라니? 그… 헉?”

검은 바람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몸이 변해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 같던 팔다리에는 근육이 올라와 있었고 움직이기만 해도 찌릿한 고통이 올라왔던 관절통도 사라졌다.

일어나 보니 자신의 눈높이도 10센티미터 정도는 더 높아져 있었다.

검은 바람은 변화한 자신의 몸을 보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이건 도대체…….”

“초능력자가 된 것을 축하한다. 검은 바람. 덤으로 젊어진 것도 말이지.”

실제 나이 예순다섯.

하지만 오랜 노예 생활로 학대당한 몸은 거의 70대 후반 정도의 노인으로 보였다.

그런 검은 바람이 지금은 40대 중반 정도의 중년의 모습으로 서있었다.

거기다 그냥 나이만 젊어진 게 아니다.

탄탄한 근육과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과 구릿빛의 건강한 피부.

진짜 전사로서의 활동하던 시기의 역량을 갖춘 몸으로 돌아간 것이다.

카일은 그런 검은 바람을 보고 감탄했다.

‘대단한 걸? 팔뚝이 내 허벅지 만해.’

누가 저 노예를 1골드에 샀다고 하면 믿을까?

“주…인님께서 하신 겁니까?”

“그래.”

“어… 어떻게 이런……. 주인님 정체가 무엇입니까? 혹시 위대한 종족이십니까?”

“나는… 아니, 내 정체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카일은 자신을 인간이라고 밝히려고 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초능력자라고 설명하기도 어려웠고, 사실 멋대로 오해를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편하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네가 새로운 기회를 손에 넣었다는 거지. 어떤가? 앞으로 10년, 나를 위해서 충성을 다 할 수 있겠나?”

카일의 말에 검은 바람은…….

쿵!

여관의 바닥이 부서질 것처럼 격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카일에게 말했다.

“10년이 아니라 제 남은 평생 전부를 주인님을 위해서 바치겠습니다. 맹세코 주인님에게 영원한 충성을 바칠 것을 투란의 신에게 맹세합니다.”

새로운 인생을 얻은 검은 바람은 진심으로 카일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좋아. 앞으로 잘 부탁한다. 검은 바람.”

“예. 주인님.”

그렇게 검은 바람은 완벽하게 카일에게 충성하는 노예가 되었다.

* * *

다음 날.

카일은 검은 바람을 데리고 우선 무기상으로 향했다.

모험가가 되어서 던전을 공략하려면 가장 먼저 무장을 갖춰야 했다.

미궁 도시답게 바이에른에는 무기상들이 모여 있는 거리가 있었고 그 거리에는 수많은 상인들이 무기를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자, 쌉니다. 싸요. 바이에른 최저가 무기는 여기에 있습니다.”

“20년 경력의 장인이 손수 만든 무기만 취급합니다. 다른 곳과는 질이 다릅니다.”

무기에 관해서 전문 지식이 없는 초짜가 여기에 와서 무기를 사려고 하면 사기당하기 딱 좋은 곳이다.

사실 카일이 딱 그랬다.

전생에 군에 소속되어 있기는 했지만 초능력자인 카일이 냉병기에 대한 지식이 있을 리가 없었고, 이 세계에는 귀족의 서자로 태어나서 하인과 다를 바 없이 자랐다.

무기의 좋고 나쁘고를 판단할 지식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런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전부 맡기겠다. 검은 바람.”

“예. 주인님.”

카일에게는 검은 바람이 있었다.

투란에서 전사로서 살아온 30년의 세월과 그 후에 검투사 노예로 살아온 5년의 세월, 던전의 전투 노예로 살아온 세월이 5년.

무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기를 손에 쥐고 싸워온 검은 바람은 무장에 관해서 완벽에 가까운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주인님. 주인님이 다루실 무기에 관해서 알아야 하는데 어떤 무기를 주로 사용하십니까?”

“무기를 다뤄본 적이 없어. 그러니 내가 앞으로 배울 것까지 고려해서 무기를 골랐으면 하는군.”

“그…렇군요.”

카일의 말에 검은 바람은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안색을 바로 하고 말했다.

“던전에서 싸우실 생각이시라면 가장 기본적인 무장은 한손 검, 한손 방패. 그리고 가죽 갑옷 정도가 적당할 겁니다.”

“한손 검이라……. 창같이 긴 무기가 좋지 않나?”

“전쟁터에서 아군과 함께 싸운다면 창이 유용하지만 던전의 복잡한 지형에서는 위험합니다. 숙련자가 아닌 이상 적의 접근을 허용하게 되죠. 그리고 창은 양손으로 다뤄야 하기 때문에 방패를 들 수 없어서 생존력이 떨어집니다.”

“그렇군.”

“던전에 들어갈 경우 가장 기본적인 건 지근거리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수단입니다. 한손 검과 방패, 그리고 가벼운 가죽 갑옷 등을 권해 드립니다.”

검은 바람의 설명에 카일은 고집 부리지 않고 수긍했다. 이럴 때는 괜히 고집 부리지 말고 경험자의 말을 듣는 것이 좋았다.

“전부 너에게 맡기지. 나와 네 무장까지 모두 골라 봐라. 단, 예산 안에서.”

“예. 주인님.”

그리고 검은 바람은 무수하게 늘어져 있는 무기상을 돌아보며 무기를 고르기 시작했다.

“이봐 야만족 양반, 이 정도면 괜찮아.”

“너무 까다로운 것 아니야?”

너무 신중하게 고르는 만큼 상인들이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검은 바람은 그들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오로지 무기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것이.

숏 소드―1골드 50실버.

라운드 실드―50실버.

오크 가죽 갑옷―2골드 20실버.

다 해서 4골드 20실버의 예산으로 카일을 완전 무장시켰다.

“좋군. 나쁘지 않아.”

카일은 무장을 갖춘 자신의 몸을 거울에 비춰 보며 만족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올라온 만만한 촌뜨기로 보였는데 무장을 갖추니까 제법 나아보였다.

“잘 어울리십니다. 주인님.”

“고맙다. 검은 바람. 그보다 너는 그거 하나면 되는 거냐?”

무기에 방어구, 갑옷까지 모두 갖춘 카일에 비해서 검은 바람은 무기만을 구입했다.

롱 소드―2골드.

부실한 무장에 카일이 염려하자 검은 바람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주인님께서 모험가가 처음이라면 아마 당분간은 저층을 위주로 돌아다니실 겁니다.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적어도 3층까지는 제대로 된 무장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자신의 실력에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는 검은 바람의 모습이었다.

‘듬직하구만.’

그런 검은 바람의 모습에 카일은 든든함을 느꼈다.

“좋아. 이제 모험가 길드로 가자.”

“예. 주인님.”

무장을 갖췄으니 다음으로 향해야 할 것은 모험가로 등록을 하는 것이다.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험가로서의 신분이 필수였다.

던전 자체가 모험가 길드에서 독점하다시피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험가 등록을 하러 가면서 카일은 살짝 긴장했다.

아무래도 모험가라고 하면 거친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그러니 카일 같은 어린 신출내기가 찾아가면 반드시 텃세를 부리는 놈들이 나타날 것 같았다.

예를 들어서 전신에 칼자국이 나 있고 험악한 인상의 근육질 대머리가 나타나서…….

‘꼬마야.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렴.’이라고 말하면서 시비를 건다거나 말이다.

‘만약 그렇게 나온다면 이제는 참지 않겠어.’

카일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16년씩이나 자기 힘을 숨기고 굴욕을 참으며 인내했다.

그리고 마침내 미궁도시에 와서 자유로운 삶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더 이상 참을 이유가 무엇인가?

절대 그럴 수 없다.

이용당하고 무시당하는 삶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그때는 너만 믿는다. 검은 바람.’

카일은 자기 옆에서 걸어가는 검은 바람을 믿음직하게 바라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