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잠재력 무한-190화 (190/200)

제190화

90층. 인류가 개척한 마을 중 가장 높은 층에 있는 마을은 그 명성만큼 극소수의 인간만이 들어올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잘 쳐봐야 300명 정도밖에 거주하지 않는 마을이었기에, 지금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뭔 일 났냐? 왜 저렇게 사람이 많아?”

10명 이상의 사람이 한 번에 모인다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적어도 이 90층 마을에서는 말이다.

상당한 수의 사람이 모이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둘 사람들이 바라보는 게 뭔지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미친.”

부서진 벽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그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저… 저 사람 드레이븐 아니야?”

짙은 적안을 빛내며 도끼를 휘두르는 백발의 남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야. 랜스, 메리, 베로니카… 네 사람 전부 다 최고 간부야.”

전설의 파티, 올가 파티의 일원들이자 현(現) 사냥꾼 길드 최고 간부인, 이들이 싸움을 벌이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상대가 누구야?’

워낙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어서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남자들은 흑발… 여자는… 큭, 무슨 충격파가.’

지척까지 다가가 싸움을 보고 있자니 그 충격파가 전신을 두들겼다. 하지만 구경꾼들도 명색의 90층 등반자. 충격파 정도야 거뜬히 버틸 수 있었다.

그저.

“어이! 마법사들은 구경만 하지 말고 결계라도 쳐봐!”

충격파로 벽과 가까이 들어선 건물들이 붕괴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었기에, 임시 조치로 마법사들을 대동해 방어막을 치고 건물을 수리할 뿐이었다.

그때.

콰직!

기껏 만들어놓은 방어막을 깨부수며 튕겨 나온 드레이븐이 거리를 굴렀다.

“큭, 역시 대단한 녀석이구만.”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낸 그는 적안을 더욱 빛내며 도끼를 빙빙 돌렸다.

“오랜만에 재밌는 싸움이 되겠어!”

후우웅-!

빠르게 회전하는 도끼가 석찬을 향해 쇄도했다.

캉!

도끼를 힘껏 잡아챈 석찬이 몸을 회전하는 반동을 이용해 그것을 그대로 드레이븐에게 돌려주었다.

콰지직!

“크으윽!”

도끼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원래 힘에 석찬의 힘까지 추가되어 돌아온 도끼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고.

푸확!

“크헉.”

결국은 어깨에 박힌 도끼. 찢어진 부위에서 다량의 피가 흘러나왔다.

“미친… 어떻게 드레이븐 님을…”

한 사냥꾼 길드 길드원이 기겁하며 공격을 맞받아친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재차 놀랐다.

“저, 저 사람은…”

짙은 흑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위엄이 넘치는 용모 아래로 잘 단련된 조각 같은 몸이 드러났다.

“강석찬!”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가 된 그제야 석찬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얼마 전에 83층이라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83층? 난 86층이라고 들었는데.”

“87층 아니었나?”

워낙 괴물 같은 속도로 탑을 오르는 그들이었기에, 정보에 오차가 조금씩 있었다.

“방금 것은… 조금 위험했습니다.”

스르륵.

충격파로 부서졌던 갑옷이 원래의 형태를 되찾아 갔다. 라우르의 전신 갑주의 내구도는 무한, 아무리 파괴되어도 다시금 재생되었다.

“나야말로, 이걸 막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촤아악.

도끼를 뽑은 드레이븐이 찢어진 어깨를 대충 봉합하고 다시 무기를 쥐었다.

“계속하실 겁니까?”

“확실히 강하네. 하긴, 그러니까 페널티 해제 캡슐을 먹은 랜스가 졌으려나.”

드레이븐의 주먹에 실린 힘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말이야. 너무 방심하지는 말았으면 해.”

“예?”

“알지? 이건 우리 둘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거.”

그 순간, 다리 아래에서 꽁꽁 얼 듯한 한기가 올라왔다.

‘마법!’

빠르게 다리를 떼려 했지만, 한발 늦었는지 발바닥부터 시작해서 무릎 부근까지 차디찬 얼음이 차올라 움직임을 속박했다.

“이건…”

“너무 늦었잖아, 미쉘.”

미쉘 그레이스. 사냥꾼 길드 부길드장인 그녀가 언짢다는 기색을 그대로 드러내며 석찬에게 다가왔다.

“갑자기 큰 소란이 나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벌써 시작했던 건가.”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 그나저나 조심해, 이놈…”

파창!

어느새 얼음을 깨부순 석찬이 미쉘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미쉘은 가벼운 손짓만으로도 그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이 느낌은…’

곧이어, 미쉘의 전신을 백색 마력이 뒤덮었다.

“역시… 언제 도달하신 겁니까?”

일전에 보았을 때 그녀의 마력은 흰색 단계가 아니었다.

“이브… 그 아이를 보다 보니까 조금 노력을 하게 되더라고. 조카 녀석한테 뒤처질 수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네가 이렇게 만든 거야?”

미쉘이 힘이 다 빠져 주저앉은 랜스와 상처를 부여잡고 있는 드레이븐, 그리고 석찬의 동료들과 혈전을 벌이고 있는 두 여인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도 절 막으실 겁니까?”

“그러길 원한다면.”

대답과 함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살기가 석찬을 압박했다.

‘이건…’

일전에 1층에서 느꼈던 살기는 어린아이 수준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격이 다른 살기였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버틸 만하다. 그렇게 생각한 석찬이 신마력으로 살기를 중화했다. 그에 미쉘도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그게… 그 힘의 완성형이야?”

“그 힘? 신마력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맞습니다.”

생각해보니 미쉘은 지금 이 순간이 신마력을 목도하는 첫 순간이었다. 동시에 그녀의 표정이 풀어졌다.

지금까지 느껴졌던 위압감과 위엄 따위가 아닌 안도와 따스함이 담긴 눈빛이었다.

“뭡니까, 그 눈…”

“강석찬, 미안하지만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예?”

“응?”

갑작스러운 말에 석찬을 포함해 드레이븐, 그리고 두 사람의 대치 상태를 관망하던 사람들도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장, 알프레드 올가를 막아줘.”

이어지는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에 장내가 크게 뒤집어졌다.

* * *

90층 마을의 한 카페.

90층에서 가장 맛있는 디저트와 음료를 판매하는 이곳은 원체 사람이 없는 90층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매일 손님이 찾아올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오후 5시.

원래라면 영업시간임이 분명했지만, 때아닌 손님의 방문으로 카페는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가게를 하루 쉰다는 팻말까지 문 앞에 걸어두고 온 참이었다.

“저, 손님… 음료는 입에 맞으시는…지요?”

몸을 파르르 떨며 붕대를 칭칭 감싼 백발의 남자 앞에 선 여직원이 힘겹게 질문했고, 드레이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잔 더.”

“주… 주문받았습니다.”

무뚝뚝한 그의 주문에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빈 잔을 받아 든 여직원은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났다.

“후우…”

방을 벗어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곁으로 동료 직원들이 다가왔다.

“두리, 어땠어?”

“위압감 때문에 숨도 못 쉬는 줄 알았어.”

“누구누구가 왔다고?”

“그게 말이지…”

지금 카페를 점령한 집단을 상기하는 여직원의 몸이 다시금 파르르 떨렸다.

한 곳은 탑 최강의 파티이자, 사냥꾼 길드를 설립한 올가 파티의 파티장을 제외한 파티원 전원.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여러모로 온갖 구설수를 몰고 다니는, 이제는 초신성이라는 말로도 모자란 강석찬 파티였다.

“사실 아까 얘기를 들었거든. 마을 정문 앞에서 큰 싸움이 있었다고. 그런데 바로 여길 온 걸 보면…”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려는 것 아닐까요?”

궁금증이 밀려왔지만, 알량한 호기심이 목숨을 버릴 수는 없었기에 직원들은 충실히 음료와 다과를 만들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방 안에서는 나름 심각한 이야기가 오갔다.

“후우…”

검은 음료를 한 모금 들이켠 석찬이 턱을 괸 채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다시 한번 정리해보죠.”

알프레드 올가, 지금의 그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 이유라고 하면은.

“신, 신이라…”

석찬이 슬쩍 라우르를 돌아봤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케이크 한 조각을 썰어 입 안에 넣을 뿐이었다.

“이야, 맛있다. 나 때는 이런 거 없었는데 세상 참 좋아졌어~.”

“말을 말자… 쨌든, 어떤 신의 화신이 된 이후로 쭉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을 해왔다는 것이죠.”

“그래. 그리고 드레이븐, 그거 꺼내 봐.”

“웃차.”

드레이븐은 쭉 아공간 주머니에 보관 중이던 검 하나를 꺼내 탁상 위에 올려두었다.

“이건…”

온통 황금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검이었다.

“마검 카세타쥬.”

그 말에 석찬이 검을 탁 치며 자리를 벗어났다.

“왜 그래요?”

“저 검… 알렉산더에게 들었어. 마력 저장소를 파괴하는 마검.”

이미 검의 정체를 파악한 이브는 당장이라도 검을 부숴버릴 듯한 기세였고, 처음 들은 자들은 각자 검을 경계했다.

어느 곳에도 해당하지 않는 천사, 악마, 안내자 삼인방은 검을 신기한 듯 훑어보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마검…”

“과연,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걸.”

“대장은 너를 죽이는 임무에 이것까지 사용하는 것을 허락했어.”

“전부터 궁금했는데, 왜 당신들 대장은 저를 못 죽여서 안달인 겁니까?”

“주신의 명령이라고 들었어.”

“주신의 명령이라…”

주신의 명령. 화신에게 있어서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녀석, 신들이 널 어지간히 죽이고 싶나 보네. 이 라우르는 네가 자랑스럽다.”

“…….”

라우르의 장난 섞인 말에 석찬은 대꾸를 포기했다.

“주신의 명령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지. 얼마 전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집단을 파괴하라는 명을 받았는데…”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집단을 괴멸했다고 한다. 아예 재기조차 못 할 정도로 철저하게.

“원래 대장이 그런 성격이 아니었거든. 대장은 평화와 안정을 중요시했어.”

“그런 분이 아버지를…”

“조카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때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몇 번이고 같은 선택을 했을 거다. 그때의 우리는 무척이나 지쳐 있었거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지…”

“…….”

이브가 입술을 앙다물었고, 미쉘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대장의 결단력이야 예전부터 좋았지만, 이렇게까지 거리낌 없이 살육을 이행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 그런데 그 주신이 모든 걸…”

“혹시 주신이 누구인지 알아요?”

“모르겠어. 강력한 전투신이고 보랏빛 신력을 다룬다는 것 정도밖에…”

“파괴 녀석이네.”

“라우르?”

어느새 미쉘과 석찬 사이에서 귀를 쫑긋대던 라우르가 숙였던 허리를 펴고 말했다.

“이 새끼는 예전에도 이러다가 나한테 된통 당했으면서, 또 이 지랄을 해?”

조금은 분노한 듯한 그의 모습에 미쉘이 침을 삼켰다. 그녀도 눈앞의 남자, 아니 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라우르, 신계에서 추방당한 최강의 신.

마도를 탐구하다 발견한 고대 문헌에서 몇 줄 기록으로만 간신히 봐왔던 존재가 눈앞에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지만.

‘파괴신이라고?’

자신들의 대장 위에 선 존재의 정체를 알게 되자 더욱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파괴신이라면 신계 내에서도 내로라하는 신이라고…”

“응, 아냐. 나한테 발려.”

“어라? 자… 잠시만 여기 좀…”

그때, 안내자 G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쉘과 라우르는 대화를 멈추고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웅웅.

그의 손에 들린 마검 카세타쥬가 울고 있었다.

“저…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기현상에 G가 억울해하며 주변을 돌아봤다.

그리고 잠시 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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