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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180화 (180/200)

제180화

콰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무너지는 동굴.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

말없이 무너진 동굴을 바라보는 남자는 얼굴이 없었다. 문자 그대로 텅텅 빈 검은 안면에는 이목구비 대신 작은 점 하나가 나 있을 뿐이었다.

새하얀 점은 꺼먼 표면을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이 정도면 죽었겠죠?”

타르킨.

그는 마계의 위대한 후작급 악마였다.

후작.

공작급인 엘리자베스보다 한 단계 낮긴 하지만, 마계 내에서도 그와 견줄 자가 20명이 채 안 되는 높은 직책이었다.

일주일 전.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신의 영지 근처를 순회하고 있었다.

‘음, 좋군요. 아주 좋아요.’

자신의 강함을 뽐내며 끊임없이 단련하는 부하 악마들을 보며, 그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저택으로 돌아가려는 그 순간이었다.

쿠궁.

멀리서 거대한 굉음과 함께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악마의 마력이 아니다. 이건… 인간의 마력?’

석찬이 사용한 마력을 단번에 캐치한 그는 며칠에 걸쳐 몰래 그의 동태를 살폈고, 그의 거처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제거 시도 시 위협 요소는… 없다.’

라우르가 힘을 잘 숨기고 동굴 밖으로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모든 변수가 없다고 판단한 타르킨은 그대로 마법을 시전해 동굴을 무너뜨렸다.

‘끝이야.’

석찬이 죽었다고 판단한 그는 제 얼굴처럼 검은 외투를 고쳐 입더니 천천히 뒤돌아서려고 했다.

그러던 그때.

오싹.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강한 살기에 흰 점이 얼굴을 한 바퀴 돌아 뒤통수에서 나타났다.

“저건?”

동굴 밖으로 튀어나온 두 개의 머리를 보며, 타르킨이 놀랍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어떻게 빠져나온 것이죠? 게다가, 두 명이었나요…?”

예상치 못한 변수에,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타르킨은 멀쩡하게 몸을 일으키는 석찬과 라우르를 보며 질문을 이어 갔다.

“상처 하나 없을 수 있나? 대체 정체들이 뭡니까?”

타르킨과 두 사람의 거리는 어림잡아 5km 남짓. 육안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영역이고, 마력을 쓰더라도 희끗한 점으로 보이는 게 정상인 거리였다.

그런데 그 순간, 타르킨이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처음은 흰 머리에 짙은 녹안을 지닌 남자의 표정 변화였다. 순식간에 날아온 살기의 근원지로 보이는 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자신이 있는 곳을 정확하게 째려보더니 입 모양으로 말했다.

‘뒤졌다. 딱 기다려.’

왜 저렇게 화가 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화가 자신에게 향한 것만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팟.

흰 머리의 남자가 사라졌고, 옆에 있던 흑발의 남자도 모습을 감추었다.

‘뭐지, 설마?’

몇 초 사이에 확 강해지는 살기와 마력 반응을 보며, 타르킨은 기습을 확신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몹시 화가 난 듯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지?”

“어떻게 절 찾아낸 거죠?”

“거, 대놓고 서 있었으면서 어떻게 찾기는 개뿔.”

라우르가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주먹에 신력을 불어넣었다.

“신력… 당신은 누구십니까? 왜 이곳에…”

“닥치고, 일단 한 대 맞자.”

상황 설명 따위는 없었다. 라우르가 있는 힘껏 타르킨의 명치를 후려갈겼다.

“커헉!”

아무리 타르킨이 후작급 악마라고 한들, 분노한 신 그것도 투신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막대한 대미지를 입고 날아간 타르킨이 최대한 침착하게 다시 일어섰다.

“대체 왜…”

“저게 얼마 만의 만찬이었는데, 그걸 방해해? 진짜 뒤졌다, 넌.”

라우르의 머릿속에 한 입도 먹지 못하고 전부 돌덩이에 깔린 노란 괴조 고기가 떠올랐다.

“다시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

그의 몸에 휘둘린 신력이 더욱 거대해졌다.

이에 석찬이 그를 제지했다.

“라우르, 신력 조절 좀 해요. 어디 투신 왔다고 광고할 일 있어요?”

“투신?”

그 말에 타르킨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당신이 투신? 라우르?”

“너, 나 아냐?”

“마계에서 당신 모르는 악마가 어디 있겠습니까?”

방금 전까지 얻어맞아 괴로워하던 그가 활기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꽤나 강한 신이겠다고는 예상했지만, 그 투신님이라니. 아, 혼자 말해서 죄송합니다. 당신은 저의 영웅입니다, 투신 라우르.”

“엉?”

갑작스럽게 자신을 보고 영웅이라고 칭하는 타르킨의 모습에 라우르가 벙쪄 주먹에 쥔 힘을 풀었다.

“그게 뭔 개소리야? 내가 왜 너희 영웅…”

“이럴 때가 아니죠, 제 저택으로 가시죠! 자, 극진하게 모시겠습니다. 일행분도 오십쇼!”

“응?”

두 사람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듯 자신들의 등까지 떠밀며 어딘가로 향하는 타르킨의 모습에 석찬과 라우르는 의심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순순히 그를 따라갔다.

눈․코․입이 없어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몸짓이나 행동거지만 봐도 진심이 느껴졌기에 가능했다.

‘물론 진심이 아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엘리자베스는 가끔가다 몇 번씩 이런 말을 했다.

‘석찬 님, 악마라는 족속은 말입니다. 절대 함부로 믿으면 안 돼요.’

정직한 악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지 못한 녀석들이 대부분이고, 오히려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이용해 더더욱 큰 이득을 챙기려 하는 자들이 많다고 했다.

‘뭐, 만약에 배신한다고 하면…’

석찬이 슬며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확실히 환경이 어려운 곳에서 수련해서 그런 것일까? 마력 컨트롤 실력을 더불어 마력 자체의 출력 또한 확연히 증가한 모습이었다.

‘이거라면 신마력이 없어도…’

남작급 혹은 자작급 악마까지는 혼자서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만약 신마력이 더해진다면? 장담컨대 후작급 악마까지도 홀로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후의 수단으로… 라우르가 있지.’

당연히 언제까지나 라우르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다. 라우르는 어디까지나 비장의 카드. 그리고 라우르는 원체 힘이 거대해 조금이라도 흥분하거나 제 실력을 발휘했다가는 마계의 다른 악마들에게 정체가 들통날 수도 있다.

조금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화가 나서 조금 강하게 신력을 방출하자 그의 정체를 어느 정도 유추하지 않았는가?

‘최악의 경우에 마신을 만나게 된다면…’

지금 시점에서 마신은 절대적인 기피 대상 1호다. 괜히 사고 쳤다가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이동한 지 10여 분, 타르킨 일행 눈앞에 거대한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누추하지만 제가 사는 곳입니다. 들어오시죠, 라우르 님과 동료분.”

석찬은 타르킨의 저택과 비슷한 곳을 한 번 본 적 있다.

‘엘리의 저택.’

먼 옛날, 엘리자베스를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다크니스 길드 영토의 저택.

지금 앞의 저택은 그것과 판박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똑같이 생겼었다.

“그 꼬맹이 악마가 떠오르는구먼.”

라우르 또한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나지막이 말했다.

“꼬맹이 악마요?”

타르킨이 호기심을 표하자, 라우르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살리나스였나? 그 녀석 집이 딱 이렇게 생겼었지.”

그 이름에, 타르킨이 더욱 놀라워하며 물었다.

“살리나스라면 설마 살리나스 공작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너 걔 알아?”

“알다마다요. 제 주인님이시자, 마계의 위대한 7공작 중 한 분이신데. 한데 라우르 님께서는 어찌 공작님을 아십니까? 그 당시 질투의 권능 소유자는 그분이 아니라…”

“탑에서 봤다.”

그 말에 타르킨이 이해했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맞아요, 그분은 수백 년 전 탑으로 들어가셨죠. 혹시 다크니스 길드라고 아시나요?”

“녀석이 거기 지부장이던데?”

“그렇군요. 그곳이 저희 악마들이 운영하는 길드입니다.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하죠.”

그 말에, 갑자기 라우르의 표정이 싸해졌다.

“역시, 너희가 운영하고 있었냐, 다크니스 길드.”

다크니스 길드.

탑에서 가장 거대한 어둠의 길드인 그곳은 청부를 포함해 여러 악행과 불법을 저지르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그리고 소문 중에는 인간을 살해하거나 납치, 감금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악마가 탑에서 그런 짓을 하는 것은… 2차 천마대전을 일으키자는 것 아닌가?”

인간 출신으로서 누구보다 인간을 아꼈던 신이 언짢음을 표출하자, 타르킨이 다급하게 손을 저으며 해명했다.

“라우르 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론 다크니스 길드가 하는 일들이 떳떳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탑에 무조건 해악이 되는 짓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호?”

“저희가 해를 가하는 인간 대부분은 저희 악마들이 생각하기에도 악마보다 더한 인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선량한 인간을 해친 적은 절대 없다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다크니스 길드 사람도 아니면서.”

석찬의 질문에, 타르킨이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라우르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만약 악마가 탑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은 2차 천마대전으로 이어질 겁니다. 때문에 저희 쪽도 정해놓은 선이 있습니다. 천사들이 허용하는 선 안에서 모든 일을 행했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죠.”

그 말에 라우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래. 뭐, 완전히 믿지는 않지만, 알았다.”

“이해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이해했다고 한 적 없는데?”

“…….”

타르킨은 말없이 길을 안내했다.

거대한 복도 안을 걸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거대한 연회장이 나왔다.

그곳에는 저마다 독특한 생김새를 지닌 악마들이 음식이 놓인 테이블을 세팅하고 있었다.

“원래 점심은 홀로 먹을까 했는데, 라우르 님을 뵌 뒤에 미리 기별을 넣어놨습니다.”

“감당할 수 있겠어?”

“10명이 먹어도 끄떡없을 정도로 준비했으니, 앉으시죠.”

타르킨의 손짓에 따라 라우르와 마주 보고 앉은 석찬이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들을 살폈다.

‘독은… 난 레플렉시아 덕분에 면역이라고 해도 라우르는…’

잠시 걱정이 들기는 했지만.

‘뭐, 라우르인데. 걱정 안 해도 되겠지.’

그라면 어련히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 석찬이 음식의 향을 맡아보았다.

‘으음…’

일단 냄새 자체는 굉장히 훌륭했다. 당장이라도 수저를 들어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잠시 후, 한 악마가 마지막 접시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자, 준비가 다 되었으니, 이제 드시죠들.”

타르킨의 말과 함께 식사가 시작되었다.

‘오.’

걱정과는 다르게 음식의 맛은 굉장히 좋았다. 아니, 좋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솔직히 지금까지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독도 없었다.

라우르와 석찬이 걸신들린 듯 음식들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타르킨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즐겁다는 듯이 쳐다보며 식사했다. 입도 없는데 어떻게 음식을 섭취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떻게 잘 먹고 있었다.

잠시 후, 산처럼 쌓인 접시 사이에서 얼굴만 쏙 내민 그가 물었다.

“어떻게, 식사는 입에 잘 맞으셨는지요?”

“굿.”

두 사람이 동시에 엄지를 치켜들자, 타르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요. 그렇다면, 식사도 끝났으니 여쭤볼 게 있다면 여쭤보시죠.”

그 말에 석찬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왜 우리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거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타르킨은 악마였다. 그것도 후작급 악마. 그런 그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이런 호의를 베푸니 의심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타르킨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앞서 말했듯이, 라우르 님은 저의 영웅이시니까요. 동료분도 대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 말에, 이번에는 라우르가 질문했다.

“내가 왜 네 영웅이지? 나는…”

“네, 저희 악마가 천마대전에서 패배하게 만든 장본인이죠.”

라우르가 하려던 말을 가로챈 타르킨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말씀드리죠.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해봐.”

두 사람의 관심 속에, 타르킨이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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