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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170화 (170/200)

제170화

터벅, 터벅.

고요해진 전장을 가르는 구두 소리.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강렬한 빛이 멎고, 한 남자가 먼지를 걷어내며 석찬 일행에게 다가왔다.

“당신은….”

제 신의 억지에 혼란스러워하던 오펠리아가 그를 보고 뒷걸음질 쳤다.

단정하게 입은 검은 양복, 서구적인 외모와 중세 시대에서나 볼 법한 단안경.

“어떻게, 잘 마무리는 된 것 같군요.”

안내자 G. 대천사 아이테르의 특명을 받고 탑에 내려온 천계의 사자가 석찬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몸은 조금 괜찮으십니까?”

그 말에, 석찬이 힘겹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뒤질 것 같으니까….”

그의 밝은 녹안은 검은색으로 돌아가고 새하얗던 머리칼도 시커먼 본래의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음, 곧 페널티가 오겠군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G는 덜덜 떨리는 석찬의 몸을 보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잠시만 기다려 보십쇼.”

그것은 작은 상자였다. 그는 상자를 몇 번 뒤적이더니 안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보라색 액체가 든 병이었고, 석찬도 잘 아는 것이었다.

‘엘릭서.’

숨만 붙어 있다면 누구든지 살려낸다는 탑 최고의 비약이었다. 그런데, G가 엘릭서를 어떻게?

“어떤 꼰대 천사께서 당신한테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자 받으…”

G가 석찬에게 엘릭서를 건네려는 순간이었다.

두근.

갑자기 석찬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끄…아아악….”

갑작스럽게 찾아온 격통에 석찬의 몸이 이리저리 뒤틀리기 시작했다.

뿌득, 뿌드득- 콰직.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조각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저히 사람의 몸에서 나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에 G는 물론, 다른 이들도 놀라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진현이 G에게 소리쳤고, G는 석찬의 몸을 살피면서 말했다.

“젠장, 강신 후유증이잖아요? 게다가 이 느낌은, 강제 돌파까지 쓰셨구먼. 미친.”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석찬의 몸은 실시간으로 악화되었다.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전부 핏물이 흘러내리고, 피부가 쩍쩍 갈라졌다.

“이거… 빨리 치료 마법을…”

G가 급하게 소리쳤고, 그 전부터 대규모 치료 마법을 준비하던 이브가 빠르게 마법을 전개했다.

콰아아-

강대한 마력이 석찬을 향해 떨어졌다. 자색 빛이 그를 감싸고, 갈라진 피부가 조금씩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비유가 놀라워하며 외쳤다.

“이런 치유 마법이 있을 줄이야. 이거라면 저 친구도 분명 나을 수…”

쩌적, 쩍.

하지만 언제 좋아졌냐는 듯 다시 갈라지는 피부. 게다가 상태가 더욱 안 좋아졌는지 피부 사이에서도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이, 아재도 빨리 도와봐요!”

진현 또한 할 수 있는 치료 마법을 전부 석찬을 향해 들이부었다.

‘젠장.’

G는 석찬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며 한 손에 쥔 엘릭서를 바라봤다.

‘이걸 먹여야 하는데…’

격렬하게 경련하는 그의 몸을 봐선 이것을 먹이기는커녕, 잘못했다가는 애꿎은 엘릭서만 날리게 될 것 같았다.

“우선, 떨림을 멈춰야 합니다. 이브 님은 계속 치료 마법을 사용해 주시고, 나머지는 팔다리를 잡아주십쇼.”

석찬을 살리기 위해, G의 지시에 맞춰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큭.”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저항이 너무 거셉니다!”

당장 이거 놓으라는 양 팔다리를 휘젓는 그 덕분에 80층 최고의 인간들이 진땀을 뺐다. 게다가, 아직 강신과 강제 돌파의 힘이 남아 있는지 제대로 된 제압조차 불가능했다.

퍽!

“꾸엑!”

석찬의 주먹에 얻어맞은 진현이 그대로 쓰러졌다. 정통으로 맞은 배를 쓰다듬으며, 그가 석찬에게 속박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마법에는 별로 조예도, 관심도 없어 초급 마법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그가 석찬을 제대로 속박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파지직!

“꾸엑!!”

마법을 타고 흘러온 석찬의 신마력에 진현이 다시 몸을 뉘었다.

“이런…”

그 모습을 본 다른 이들은 더 이상 석찬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그를 지켜봤다.

‘허….’

G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격렬하게 저항하는 석찬에게 다가갔다가 팔 한 쪽이 부러져, 그대로 물러서서 남은 손으로 열심히 엘릭서를 지켰다.

‘이것마저 박살 나면 진짜 방법이 없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는 사이, 석찬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게다가 이브도 마력이 떨어져 가는지 마법의 위력이 반감된 것이 느껴졌다.

“쿨럭!”

그때, 이브가 각혈을 토했다. 힘에 부친다는 뜻이었다.

“이브 님!”

낭패였다.

그리고 그 순간.

터벅-

이브가 석찬을 향해 다가갔다. 그 모습에 경악한 G가 말리려고 했지만.

“위험합니다! 다가가지… 어?”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턱.

아무렇지도 않게 석찬의 몸에 손을 올린 그녀가 더더욱 강력한 치료 마법을 퍼붓기 시작했다.

‘저게 무슨…’

G와 다른 이들은 적잖게 당황했다. 분명 자신은 차갑게 내치던 석찬이었건만, 이브에게만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렇다면 설마.’

순간, 머릿속에 적절한 방법이 떠오른 G가 부러진 팔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적당히 팔을 맞춘 그가 합장했다.

쩡!

그러자 신력이 그의 손에 뭉쳐졌다.

“응? 안내자가 신력을 사용한다고?”

“엥? 안내자는 신력 못 써요?”

“당연한 것 아닌가? 저것은 천사와 신의 전유물. 안내자 따위가.”

그 모습에 사람들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G는 괘념치 않고 신력을 운용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손에서 검은 공간이 펼쳐졌다.

[저건…]

그것에 반응한 사람은 오펠리아의 눈으로 상황을 쭉 지켜보고 있던 해신이었다.

[당장 저걸 막아!]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던 그가 빠르게 화신에게 지시를 내렸지만, 한 발짝 빠르게 검은 공간 속으로 G, 이브 그리고 쓰러진 석찬이 사라졌다.

* * *

“후우….”

마법이 제대로 발동한 것을 확인한 G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쓰러졌다.

“석찬 오빠? G? 이게 무슨…”

주변이 온통 새카만 공간에 들어온 이브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공간 속에 비친 것은 세 사람이 전부였다.

“G? 여기가 대체 어디예요?”

“제 비밀 공간입니다. 하아… 여기까지 써야 될 줄은 몰랐는데.”

“그보다, 석찬 오빠는….”

이브는 초조한 눈빛으로 석찬을 살폈다. 이내 놀라운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페널티가 진행되고 있지 않아.’

그렇다. 실시간으로 쩍쩍 갈라지고 망가지던 몸이 들어오기 전 상태에서 그대로 멈춰 있었다.

“설마, 당신이 한 거예요?”

“이 공간의 특성입니다. 시간을 대충 100배 정도 느리게 흘러가게 하는 곳인데, 제가 사용하는 것 중에 가장 힘들고 대가도 많이 받아 가는 놈이니까,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그 말에 이브가 감사를 전한 뒤 석찬에게 치료 마법을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G가 말려 세웠다.

“잠시만요, 이브 님.”

“네?”

“이브 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치료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거.”

그 말에 이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치료 마법은 그저 석찬이 죽는 것을 늦춰주는 것일 뿐, 직접적인 치료 방법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놔둘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제가 당신을 이곳에 데려온 겁니다.”

“네?”

G는 옷가지를 가다듬으며 이브에게 말했다.

“어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석찬 님이 당신만 공격하지 않더라고요?”

“네… 그래서요?”

그가 지금껏 한 손에 쭉 쥐고 있던 작은 병을 건넸다.

“엘릭서?”

“이것을, 석찬 님께 먹여주십시오. 이브 님밖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에게서 엘릭서를 받아 든 그녀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이거라면, 석찬 오빠를 고칠 수 있나요?”

“엘릭서가 고치지 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 말에 이브가 과거를 떠올렸다. 10년도 더 전, 석찬이 엘릭서로 가슴이 관통되어 죽어가던 에브릭을 살려내던 그때를.

스윽.

그녀가 엘릭서를 쥔 채 석찬에게 다가갔다. 역시 그는 이브를 공격하지 않았고, 석찬의 머리맡에 앉은 이브가 그의 입을 벌리려고 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으니.

“어, G?”

“예?”

멀찍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G가 그녀의 물음에 석찬에게 몇 발자국 다가가며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석찬 오빠가 입을 안 벌려요.”

“엥?”

확실히 석찬은 입을 굳건히 다물고 있었다.

“그, 조금도 안 벌려집니까?”

“조금, 아주 조금은 벌리는데.”

엘릭서를 안정적으로 먹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 말에 G가 고뇌했다.

‘이런, 저 정도 상태라면 엘릭서 한 병을 통째로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혹시 생각나는 방법 있으십니까? 이거 아니면 석찬 님을 살릴 수가 없어요!”

자신이 직접 가면 좋을 것이긴 한데.

픽!

역시나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자 무자비하게 공격을 날리는 그의 모습에 G가 혀를 찼다.

“젠장. 차별하는 거야, 뭐야? 이브 님은 제 연인이라고…”

그때, G의 머리가 번뜩였다.

“잠깐, 연인?”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지금 상황에서 석찬을 살릴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방법이 말이다.

“이브 님?”

“네?”

“저한테 묘수가 떠올랐는데, 혹시 들어보시렵니까?”

“무슨 방법인가요?”

“그보다, 이브 님이 이 방법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한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한시가 급했던 이브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G는 그녀를 향해 그 방법을 말했다.

“키스하십쇼.”

“예?”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듯 되묻는 그녀에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석찬 님과 키스를 하십쇼. 키스, 모르십니까?”

그 말에 이브가 버벅거리며 말했다.

“아, 아니. 모르는 건 아닌데.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그게? 밑도 끝도 없이.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그때, G가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장난치는 게 아닙니다.”

그는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석찬 님께 제대로 엘릭서를 전달할 방법은 당신이 입에 엘릭서를 머금은 뒤 키스를 통해 전부 석찬 님의 입으로 내보내는 것뿐.”

“다, 다른 방법은 없어요?”

G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이제 ‘연인 사이’이지 않습니까? 화이팅입니다! 당신의 손으로 남자 친구의 목숨을 구하는 겁니다!”

그 말에 이브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석찬을 내려다봤다.

여전히 굳건히 닫힌 입술 사이로 조금의 틈이 보였다.

‘진짜 해야 돼?’

일생일대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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