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강신.
주신을 직접 몸에 강림시키는, 일종의 최종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석찬이 전투 상황에서 강신을 선보인 적은 단 세 번뿐.
그때마다 라우르는 압도적인 힘을 선보이며 적을 말살했다.
하지만.
쾅!
이번 적은 달랐다. 남자, 아니 또 다른 라우르의 영혼은 가볍게 라우르의 공격을 막아내고 반격까지 해왔다.
“아무래도 신체 스펙은 내 쪽이 더 좋은 것 같은데?”
퍽!
석찬의 몸을 날려버린 남자가 신력을 잔뜩 모아 거대한 광선을 날렸다.
콰광!
“큭…!”
석찬의 몸에 빙의한 라우르가 밀리기 시작했다.
“제기랄, 이 내가 힘에서 밀리다니….”
광선을 흘려낸 라우르가 남자를 향해 돌진했다.
캉!
어느샌가 나타난 마력의 검이 남자의 목을 겨눴다.
“그 신체 능력으로 이 정도의 기동력이라니. 역시 나답군.”
하지만 남자는 별거 아니라는 듯 검을 쳐내며 주먹을 쥐었다.
이어지는 공격들은 차원이 다르게 강력했다. 강신 전 몇 배의 위력을 가진 공격이 초 단위로 펼쳐지자, 주변 지형이 버텨내질 못했다.
후웅- 쾅!
충격파에 땅이 1자로 파였다.
콰과광!
어디까지 이어졌을지 모를 정도로 긴 충격파. 그것이 향한 곳은, 80층 마을이었다.
* * *
80층 마을. 총인원수가 천 명 단위에 불과한 만큼, 마을의 크기도 지금까지 거쳐 왔던 곳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70층 마을이 다른 마을의 서너 배 컸다면, 이곳은 그 반대라고 보면 됐다.
그리고, 그런 마을의 절반이 괴멸되어 있었다.
“크윽…”
산산조각이 난 건물 잔해 사이에서 기어 나온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게 무슨….’
그들은, 눈앞에 생긴 기다란 ‘길’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시간을 조금 되돌려 3분 전.
쿵! 쿠궁!
어디선가 들리는 의문의 진동에, 사람들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들도 나름 80층까지 올라온 강자들. 한 명 한 명이 수없이 많은 전투를 경험해왔고, 그에 걸맞은 강함을 갖추고 있었다.
쿠구궁!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충격은 그런 그들도 버티기 힘든 것이었다.
‘조금 전의 것도 엄청났지만, 지금 것은… 큭!’
천지가 요동치고 대기의 마력이 진동한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 스킬까지 쓰는 사람이 생길 지경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싸움을 벌이는 거지?’
모두가 같은 궁금증을 품었다. 그리고, 시야가 암전함과 동시에 일이 터졌다.
“드래곤?”
또 다른 투신의 화신이 내뿜은 펀치의 위력은, 흡사 드래곤의 브레스 같은 위력을 뿜어냈다.
아마도 저것에 휩쓸린 사람들은 전부 죽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사람들이 주변 보호를 강화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충격파는 여전히 그들을 강타했고, 번번이 보호 스킬들을 깨트렸다.
“젠장. 90층 사람들인가? 아니, 애초에 인간이 맞긴 한 거야?”
인간인지 의심이 들 정도의 괴물들. 불평하던 와중에 몇몇 사람이 마을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봐, 은발의 천사 파티다.”
그중 하나는 탑 역사상 최고 속도로 탑을 등반하고 있는 이브의 파티였다. 그들 말고도 움직이는 자들은 전부 80층에서 난다 긴다 하는 최강의 전사들이었다.
가장 앞서 움직이는 이브 파티는 뼈를 찌르는 충격파와 그 안에 든 힘을 보고 대충 어떤 싸움이 일어나는지 깨달았다.
‘이건… 신력.’
그것도 석찬이 이따금씩 사용하던 최강의 비기, 강신을 사용할 때 나타나던 신력.
‘석찬 오빠, 대체 누구랑 싸우고 있는 거야? 강신을 사용했는데도 결판이 안 난다니….’
7년 전, 마계의 대공을 골로 보냈던 것을 생각해보면 경악할 만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서서히 싸움을 벌이는 이들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 느낌은 신력이다. 게다가 특이하군. 투박하고, 거칠어.”
한 남자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이름은 비유. 새하얀 도포를 입고 있는 그의 곁으로 중갑으로 무장한 남자가 다가왔다.
“천계 소속인가? 아니지… 이 정도면, 주신을 뒀을 가능성도 있겠군. 아니, 확실해.”
오펠리아 데이먼. 해왕(海王)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비유와 더불어 몇 없는 천계 소속 인간이자, 무려 신의 간택을 받은 남자였다. 또한 그는, 무려 탑을 90층까지 오른 명실상부 탑의 최강자 중 한 명이다.
“오펠리아, 짐작 가는 신이 있나?”
“모르겠군. 허나, 이 위력…”
저릿한 팔을 진정시키며, 그가 눈을 뱀처럼 가늘게 떴다.
“전투신, 그중에서도 강한 신이다.”
“너의 신은 뭐라고 하시더냐?”
“말이 없으시다.”
그와 함께, 오펠리아의 눈이 시퍼렇게 변했다.
“젠장, 잠깐 쉴 겸 내려온 건데 이게 무슨 일이야.”
싸움을 관측하기 위해 시력을 강화한 순간.
찌릿.
“큭.”
뭔가 엄청난 힘이 그의 정신을 찌르며 들어왔다.
‘방금 것은…,’
그리고 들리는 의문의 목소리.
[잔챙이는 방해 말고 꺼져라.]
“큭…”
무릎을 꿇은 오펠리아에게 비유와 그의 부하들이 다가왔지만, 그는 그들을 막아 세우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곳으로 가봐야겠어.”
“흐음?”
비유가 그게 무슨 말이냐며 되물었지만, 오펠리아는 결심한 듯 말했다.
“저 싸움을 막아야 해. 강신을 진행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막지 않으면 마을, 아니, 80층 전체가 멸망한다.”
비장한 눈빛으로 그는 이브 파티에게 다가갔다.
“은발의 천사.”
“응? 해왕 님 아니신가요?”
이브 파티도 그의 명성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탑 내에서 꽤 유명 인사였다.
15년 만에 나온 90층 도달자. 비록 ‘개척자 파티’보다는 못하지만,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탑을 오른, 게다가 천계 소속에 주신을 두고 있는 엄청난 거물이었다.
그런 그가 다가오니 그 천무진 조차 제법 놀란 모습을 보였다.
“해왕 님께서 저희에겐 어쩐 일로….”
“그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예?”
그게 무슨 소린가.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니.
오펠리아는 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지금 일어나는 싸움을 막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고.
그 생각에는 이브도 동의했다.
‘확실히, 지금 싸움은 위험해.’
심지어 탑 자체도 그 싸움의 위험성을 깨달았는지.
[긴급 퀘스트가 부여됩니다.]
[긴급 퀘스트 : 저지]
[내용 : 잊힌 신의 화신들이 전투를 벌였습니다. 빨리 막지 않는다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예정입니다.]
[전투 저지 (미완료)]
[보상 : ???]
[실패 시 페널티 : 80층의 소멸, 사망]
보상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페널티가 어마어마했다.
퀘스트를 본 사람들이 침을 삼켰고,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위험하긴 해요. 게다가, 퀘스트가 아니더라도 빨리 말리지 않으면 둘 중 한 명이 죽을 수도 있다고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이브는 결심했다.
“좋아요, 가죠. 저쪽에 계신 분들도 같은 생각이신가요?”
“그렇다.”
비유를 제외하고도 80층의 최고위 전사들 또한 출정을 위해 무기를 꺼내 들었다.
어차피 싸움을 막지 못하면 페널티로 사망이었기에 몸을 사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럼, 가봅시다.”
오펠리아를 필두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바로 석찬의 전투 현장이었다.
* * *
그 시각.
‘어디 건방진 새끼가.’
석찬의 몸에 빙의한 라우르가 섬뜩한 음성으로 그를 내쫓고는 또 다른 자신의 옆구리를 때린 뒤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하하, 왜? 눕혀서 때리면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냐?”
“아니?”
석찬의 손에 거대한 힘이 모였다.
“그건….”
라우르의 최대 비기 중 하나이자 최강의 공격 기술.
파괴(破壞).
녹빛 신력이 남자의 얼굴에 작렬했다. 하지만.
“후, 방금 것은 위험했어.”
이번에도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킨 남자가 반쯤 녹아버린 방어막을 걷어냈다.
“그건… 어떻게 파괴를.”
“파괴 말이야. 도저히 기억이 안 나던데, 역시 그쪽 조각이 가지고 있던 거였어.”
남자는 그 말과 함께, 손에서 강대한 기운을 뿜어냈다. 파괴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어디 한번 막아봐.”
송곳처럼 날카롭게 변한 기운이 석찬을 향해 작렬했다.
파바밧!
수십 개로 분열해 쇄도하는 신력에 석찬이 몸을 방어했다. 하지만, 전방위로 가해지는 일격은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보스 몬스터는 한 방에 골로 보낼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자랑했다.
솔직히 무슨 저런 사기 기술이 다 있나 싶었다.
지직, 파직!
그 때문인지 보호막도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라우르, 저건…’
“신검만발(神劍萬發). 젠장, 어쩐지 기억이 안 나더라니.”
두 라우르의 대화를 들어보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다양하다던 라우르의 기술은 아마 각각의 영혼 조각이 나눠 가졌고, 다른 영혼 조각에 든 기술은 사용은 물론 기억도 못 하는 것.
이후로도 두 사람은 서로 수없이 많은 기술을 선보이며 그야말로 신들의 전쟁을 보여주었다.
* * *
‘엄청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석찬은 물론, 저 멀리서 싸움을 관망하던 자들도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무슨 저런 대결이….’
‘마그마가 요동친다.’
실제로 석찬과 남자가 싸우던 일대에는 이미 마그마의 바다가 형성되고, 주변도 그렇게 될 조짐을 보였다.
쿠구궁!
수시로 폭발하는 화산들과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막아내며, 사람들은 싸움의 장소로 향했다.
잠시 후, 그들의 앞에 거대한 일격이 날아왔다.
또 다른 라우르가 걷어낸 석찬의 공격이었다.
“보호막을!”
방패를 치켜든 탱커들의 위로 이브와 마법사들이 거대한 보호막을 둘렀다.
콰과광!
수십 겹으로 쌓은 보호막이었지만, 겨우 두세 장 남짓만 남겨두고 전부 박살이 나고서야 공격이 소멸한 것을 보고, 사람들은 침을 삼켰다.
‘이게 무슨….’
‘도대체 어떤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이쯤 되니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70층 마을로 피신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을 다잡았다.
‘저 싸움을 막아야 돼.’
‘어차피 퀘스트에 참여한 이상 뒤는 없다.’
쿠궁, 쿠구궁.
얼마나 움직였을까, 전투의 소음이 커져갈 때쯤.
반짝.
하늘에서 빛이 떨어지면서 무언가가 이브와 오펠리아 파티를 향해 쇄도했다.
“조심해!”
다시금 푸른 눈으로 변한 오펠리아와 자색 마력을 일으킨 이브가 빛을 막아내기 위해 마력과 신력을 전개했다.
진현과 다른 이들 역시 무기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콰과광!
그들을 스쳐 지나간 빛이 바닥에 처박혔다.
어찌나 거대한 충돌이었는지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 크레이터 안에서 일어난 남자가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일어섰다.
“젠장.”
입에서 피를 한 움큼 뱉어낸 백발의 남자, 석찬이 다시금 도약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때.
‘이브?’
그의 눈에 이브와 동료들이 들어왔다. 이브 파티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한가득 모여 있었다.
‘이브가 왜 여기에?’
퀘스트의 존재를 모르는 석찬은 연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겐 생각할 틈이 없었다.
“옆의 인간들은 누구지? 동료인가?”
어느새 나타난 또 다른 라우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